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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백도바다 Dec 20. 2016

보름달이 휘영청

--상징어의 신선함,  참신하고 새로운 시가 된다고...?


 

 


..저 하늘에 있을.. 00 선생!


 



  




   오늘, 보름달이 둥그렇게 떠있는 밤이다. 추석이 어제였으니 9.22 일요일 밤이다. 괜히 시큰둥해지기도 하고 춥기도 하고 외롭기도 하여 보름달이 휘영청하니 밝게 놀러 나온 앞마당을 수시로 들락거린다. 요사이 새로 나온 Lumem이라는 담배는 맛이 꽤 괜찮은 편이어서 보름달이 불렀던지 외로움이 불렀던지 앞마당으로 나갈 때마다 한 대씩 피워 문다. 후 ~ 담배연기를 달에게 불어 본다. 나의 담배연기가 결코 보름달에 미칠 수는 없겠지만 달도 콜록콜록 기침을 하였으면 속이 시원하겠다. 그만큼 지루하고 싱거운 일상 때문에 턱도 없는 상상을 하여 보는 것이다.

하루 종일 금방 먹었는데 또 먹고 티브이 보고 컴 앞에 앉아 멜 확인하고 스포츠신문을 모두 섭렵하고 동아, 한국, 중앙일보의 내용 중 큰 제목만 쭉 흩어보고 Ohmynews 의 가십거리 기사를 스크랩하듯 꼼꼼히 읽어보니 이제는 진짜 더 할 일이 없는 것 같아 여기저기 훔쳐보고 그것도 시시해져서 낮잠도 한 숨 자고 나서 저녁식사로 김밥과 떡볶이와 맥주 한 병 시켜 먹었다. 자

그녀는 주말마다 사랑 때문에 지지고 볶는 그런 신파조의 주말연속극 <그대를 알고부터, 그 여자 사람 잡네>도 편은(사실, 몰입하면 재미로는 1등인지는 나도 안다.) 절대로 놓칠 수 없다는 강한 어조 때문에 아홉 시 뉴스도 포기하고 할 수 없이 최근에 나에게 배달된  가을 계간 시지 <시안>을 펼쳤다. 사무실로 출근할 때 들고나가고 집으로 퇴근할 때 들고 들어오기를 그렇게 며칠을 하였던 <시안> 가을호인데 지금에야 펴본다는 것은 나에게 배달되는 <시안>을 비롯한 모든 책들에 대한 예의가 아니라는 것을 잘 알면서도 내심 모른 체했다. 그 이유로는 요사이 손에 아무것도 잡히지 않는다는 넋두리가 내가 우선 내세우는 변명이지만 그런 구차함까지 나를 또 곤혹스럽게 만들기에 충분하고 나를 기만하므로 인해 나에게 돌아 올 더 큰 자괴감을 자꾸 염두에 두고 있기에 이 시점에서 생략해야겠다. 매 권마다 기획되는 특집, 이 번호의 제목이 "나비와 잠자리의 원형 심상"이어서 직접적인 문학을 대상으로 한 것이 아니라는 생각에 호기심이 들었으나 그 특집을 읽기에는 그 분량이 만만치 않아 지레 겁을 먹고 포기하고 말았다. 그나마 계간 <시안>이라는 잡지는 내가 호감을 가지고 있는 순수문학잡지라고 생각한다. 그 외에 정기적으로 구독하는 월간지 <현대시학>은 정진규 시인을 정점으로 하는 끼리끼리 문학, 패거리 문학의 원형이라 해도 과언이 아닌 듯싶어 시 나부랭이나 간혹 읽고 만다. 변방, 지방의 무명시인이 겁도 없이 한국문단의 권위 있는 시전문 잡지를 폄하하는 말을 지껄였으니 정진규 같은 큰(?) 시인이 알면 경을 칠 일이지만, 정진규 시인도 몇 년 전인가 태백에 와서 나와 태백 문단의 문우들과 밥과 술을 같이 먹었으니 목숨만은 살려 주지 않겠는가.

그리고 계속하여 <시안>을 책장만 넘기듯이 펼쳐보고 있었다. 오탁번 시인의 정지용 탄생 100주년 기념 논문을 흟어보고, 옛 시인과 햇시인이 쓴 최근의 시들 중에 내 마음에 드는 사람의 얼굴만 한 번 씩 쳐다보고 책을 덮으려는데.... 뒤 장으로 넘기면서 꼭 보게 되는 시안 사이버 창작교실, 가을 <시안> 사이버 창작교실의 우수작으로 실려있는 너의 시를 우연히 발견한 것이다. 무척 반가웠다 그러나 이내 슬픈 마음이 되어 "그는 이제 없는데..."라는 말이 입에서 막 튀어 나올려다 쑥 들어갔다. 그리고 이렇게 너에게 알려 주려고 컴 앞에 앉은 것이다.

     

마흔 살(우수작) 

000

    

마흔 살을 앞두고 보는 월드컵

삶이 한 판의 축구 경기와도 같다면

자살골이라도 넣어 기권하고 싶은

완패로 끝나버린 마흔 살, 내 삶의 전반

어제는 상실에 관한 아득한 불안이

허점 많은 내 삶의 진영을 넘보다가 갔고

오늘은 나의 부재로 삶이란 경기가

중단되면 어쩌나 하는 공포가

내 삶의 문전을 무시로 휘젓고 있다

그러나 어느 감독의 전략처럼

나를 괴롭히던 내 삶의 진영을 넘보는

아픔들을 중앙선에서 압박하며

순간의 위기를 넘겨야만 한다

     

수만 관중의 환호에도

몸이 굳고 오그라드는 원정 경기

빈손에서 빈손, 완패로 끝나더라도

물러설 수 없이 맞는 후반의 삶

마음 다잡고 뛰어야 하는 마흔 살.

     

<단평> 박정식(시인)

... 님께 

님의 시를 처음 읽었을 때 마흔 살의 흔한 넋두리로만 들렸습니다. 그런데 자꾸만 <마흔 살>이 목에 걸려 다시 읽어보았습니다. 님의 시에서 아직도 (대~한민국 짝짝 짝 짝짝) 월드컵의 열기를 느끼게 합니다. 우리의 삶을 축구경기에 대입하고 생을 축구경기의 전후반으로 이등분한 것은 훌륭한 착상이라고 봅니다. 그런데 아무리 좋은 착상이라고 하더라도 너무 친절하게 설명으로 풀어가거나 시적 표현이 적절하지 아니하면 독자에게 전달되는 호소력이 반감되고 맙니다. 내가 하고픈 얘기를 직접 하지 말고 묘사를 통한 이미지로 나타내야 합니다. 마치 양복의 안팎이 뒤바뀐 채 옷을 입은 꼴이 되어 있는 느낌입니다. <삶>이란 말이 너무 진부한 시어이기도 하지만 이 시에서 무려 6번이나 남발되고 있습니다. 상징어나 비유로써 시를 이끌어 보시기 바랍니다. <마흔 살>이란 시어도 3번이나 들어 있는데 이미 제목에 나와 있으므로 모두 다른 상징어로 바꾼다면 시가 훨씬 새롭게 느껴질 것입니다. 마지막 연의 표현은 비교적 잘 처리되었는데 마지막 2행을 적절한 묘사로 장착한다면 멋진 마무리가 되겠습니다. 다음에 더 좋은 글 기대하겠습니다.

     

다음에 더 좋은 글 기대한다는 박정식의 말에 난 더 이상 할 말을 잃었다. 오늘은 그만 쓰고 내일이고 모르고 시간이 나면 <마흔 살>이라는 시에 대한 단평을 쓰기로 하겠다. 그리고 이 시를 <시안>의 창작지도교실에 올리기 전에 나에게 보여준 적이 있는데 그때 나의 반응이 시큰둥해서 너는 조금은 서운해한 것 같은데 그때 나의 생각도 "착상은 무척 좋다"라고 답한 바 있을 것이다. 나도 시가 어렵다. 그런 내가 누구의 시를 평하겠냐마는 너는 시를 지을 때마다 나에게 먼저 보여 주었고 내가 시를 찬찬히 읽은 후 "이 시 좋아, 어느 부분만 고치면 시가 되겠어" 하면 너는 좋아했고 또 그 시를 다시 천착해서 수정하였고 그런 시는 항상 성공하였다. 그렇게 한 너의 시는 어느 지면에 발표하여도 크게 다치지 않았다는 사실, 그리고 언젠가 <시안>의 사이버 창작지도교실의 단평에서 최우수를 받았고, 한양대 김광규 교수가 인용하여 글을 쓴 시 <멀리 있는 너에게>도 나는 한눈에 아! 하고 감탄하였었다는 사실, 너는 기억하고 있을 것이다. 이제 월요일, 새벽 2시다. 다시 들어오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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