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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백도바다 Feb 28. 2017

인도 고아, 주당들이 매력을 느끼는  곳-(5)

--여기는 완죤 술 마시기 좋은 인도 속 작은 포르투갈.

술에 붙는 세금이 없는 고아주 정부의 방침에 따라 어느 곳보다 맥주 마시기 좋은 곳이다. 다른 주, 다른 도시의 가게에서 맥주를 사는 값이면 분위기 좋은 레스토랑에서 똑같은 킹피셔 맥주를 마실 수 있다는 사실, 술을 즐기는, 특히 맥주를 좋아하는 주당인 나에게는 상당히 매력적인 도시가 고아였다.

함피나 첸나이, 방갈루루에서는 500ml 킹피셔 맥주 한 병에 130~140루피(2,500원 정도) 쯤 준 것 같다. 고아의 술 파는 가게에서는 80루피 약 1,400원 정도니, 부어라 마셔라 할 수밖에...

그러나 고아에서도 하루에 한 두병 정도만 마셨다. 여행 일정에 차질을 주면서 마시는 맥주는 결국 경제적으로 시간적으로 심적으로 막대한 손실을 초래하는 행위라는 것쯤은 안다. 명색이 남인도를 유유자적 여행하는 배낭여행자 아닌가! 배낭여행에 힘이 되고 도움이 될 정도만 마신다?, 이게 내가 마크한 정답인 것이다.

탄두리 치킨과 마시는 킹피셔

환상의 궁합, 그 이상의 묘미

지금까지 계획대로 잘 다녔던 여행이 호스펫을 떠나는 순간 완전히 망가지고 만 것이다.
8시 20분에 출발한다고 티켓팅 한 기차가 (한국에서 인도 기차표 대행, 이거 믿으면 절대 안 된다. 현지에서 꼭 다시 확인해야 한다.) 6시 20분에 출발했다니 믿기지 않는 일이 벌어진 것이다.

여기저기 뛰어다니며 물어봐도 분명한 것은 하루에 두 차례 고아의 미드가온으로 가는 기차가 있는데
새벽 열차는 6시 20분이 분명 맞고 이미 떠난 기차였고 밤 10시에 열차가 한 차례 더 있다는 사실, 이 아침에 환장할 정도로 돌아버리기 직전 확인한 것, 이게 내가 파악한 전체였다.  

그럼 어떻게 할 것인가? 버스도 밤늦게 출발하는 스리핑 버스만 있다는데 대안은 택시를 대절해서 가는 방법밖에 없었다. 다른 선택의 여지는 없었다. 만 루피, 8천5백 루피가 6천으로 다운되었다. 그래 오케이닷! 오케이오케이 하다 미군 총에 맞아 죽은 6.25때 아래 동네 아재처럼 무조건 간다 가!!!.....그러나 속이 몹시 아렸다. 열차비 날렸지, 6천 루피 별도로 날렸지, 아이공 ! 6천 루피면 근사한 데 가서 디너를 4번은 할 낀데...

인도에서의 여행은 항상 이런 돌출변수를 염두에 두어야 하니까.... 여기가 어딘가? 여기는 인도니까......

나는 기차를 놓쳐 신경질이 나는데 릭샤왈라들은 웃고 떠들며 신기한 듯 쳐다 보고 있다.

택시와 협상 후...

진짜 힘들게 고아 파나지에 도착했다. 무려 8시간 동안 호스펫에서 작은 택시에 몸을 구겨 넣은 채 감옥살이도 이런 감옥살이가 없다 싶을 정도로 힘들게, 400km의 거리를 참고 참으며 달려왔다.
"여기는 인도니까! 모든 걸 참아야 하는 인도니까!" 하면서  즐겁게(?) 해탈의 경지를 맛보면서 학수고대하던 그 유명한 고아의 빤짐에 기여코 도착한 것이다. 이번 남인도 여행의 백미는 바로 이거구나!. 여행 후 나중에 두고두고 남을 이야깃거리를 기여코 만들고 만 것이다.!

유럽의 작은 도시처럼 매력적이고 주세가 없어 더욱 좋은 도시 고아는 만세다.

인도 안에 있는 가장 작은 주, 고아, 인도의 다른 도시와는 특별한 매력이 숨어 있다. 빤짐에서 숙박한 나는 가까운 해변인 북쪽 지역의 깔랑굿 해변과 안주나 해변을 다녀왔다. 순수 배낭여행자처럼 로컬버스를 타고 다니는 맛은 각별했다, 인도인들과 같이 로컬버스를 타면 그들이 이방인을 쳐다보고 미소 짓고 말을 거는 모습이 좋았다. 우선 로컬버스를 타고 시내버스 터미널까지 가서 거기서 깔랑굿 해변 버스를 갈아타야 한다. 올드고아 가는 방법도 마찬가지였다.  올드고아 갈 때도 버스터미널까지 10루피, 터미널에서 올드고아까지 20루피를 지불했고 깔랑굿 해변 갈 때도 10루피, 30루피를 차장에게 건네주었던 걸로 기억한다. 올드고아를 쉽게 가려고 택시나 오토릭샤를 타면 최소 200~300루피 이상은 주어야 했는데 현지교통비를 절약한 걸로 그날 점심, 탈리를 먹은 셈이다.

아시시의 프란치스코  성당(Church of Francisco Assisi)과 쎄 대성당( Se Cathedral)은 올드 고아의 대표 선수이다. 두 곳의 성당을 보는 것만으로도 행복했다.

17세기 초에 건설되어 알렉산드리아의 성녀 캐더린에게 봉헌된 이 성당은 올드고아에 있는 성당 중에서 가장 규모가 큰 것인데, 특히 이 종탑에는 고아의 어느 곳에서도 종소리를 들을 수 있었던 거대한 황금종(Golden Bell)이 걸려있었던 것으로 유명하다. 지금은 황금종은 보이지 않는다. 장방형의 이태리 토스카나 양식의 외형과는 달리 내부는 십자형의 코린트 양식으로 지어졌다. 한 때는 가톨릭 신자였던 나는 더욱 경건한 마음으로 성당을 둘러보았고 자연스럽게 두 손을 모아 기도하는 모습을 재현하였다. 신심이 식은 나를 누군가는 '냉담자'라  불렀던가?  아프다. 내 마음은 무겁다. 두렵다. 다시 착한 어린양, 신앙심이 돈독한 신자로 돌라갈 수 있는가? 나는....

고아의 수도인 파나지에서 만도비 강을 따라 9km를 더 들어가면 식민시대의 수도 '올드 고아'가 있다. 그런 연유로 남유럽풍이 가장 강한 이 도시에 16세기에 건축된 '봄 지저스 성당'이 있다. 이 성당에는 교황청이 공식적으로 기적으로 인정한 선교사인 <프란체스코 하비에르> 신부의 유해가 생존 당시의 모습으로 온전히 안장되어있다.  

올드고아에는 오래된 사랑이 꽃 핀다. 그 꽃들이 아직도 시들지 않고 지나가는 사람들을 보고 있다.

나는 그걸 확인하러 여기에 왔고 폐허가 되거나 남루해진 올드를, 이름이  이쁜 고아를, 부모가 없는 고아처럼 측은하고 가엽게 연민으로 느끼고 있는 것이다.

성 어거스트 수도원의 폐허가 된 모습으로 남았는데

오랜 세월의 흔적이 남루하지만 화려했다.


저층 건물과 여유로움이 특징인 이 강변 도시, 고아는 뚜렷한 유럽의 맛과 다양한 인도-포르투갈식 건축물을 보유하고 있다. 고아의 주도 파나지는 아직도 흔히 포르투갈식 이름인 판짐(Panjim)으로 불리며 옛 식민 통치국의 유산은 거기서 끝나지 않는다. 풍부한 녹지 공간, 하얗게 칠한 교회, 분위기 있는 옛 식민지 지구가 심미적인 인상으로 포르투갈을 연상시킨다.

파나지는 올드 고아를 대체하여 포르투갈령 인도의 주도가 된 19세기 중반까지 작고 조용한 강변 마을이었다. 대부분의 개발은 포르투갈의 통치자의 지휘 하에 이루어졌으며 넓은 거리와 깔끔한 레이아웃, 포르투갈을 연상시키는 건축 양식이 모두 그 증거이다. 고아의 색채적 특성을 부여해 온 파스텔 색으로 칠해진 고전적인 콜로니얼 양식 건물을 많이 보았다..

1541년에 건립된 동정녀 마리아 성당의 모습은 고혹적이다.
거의 470여 년이 넘는 이곳에서 아직도 매일 미사를 올리고 있다니

이 성당은 파나지 최고의 명품으로, 이곳을 관광하는 사람들은 누구나 한 번은 들리는 곳이리라.

사진을 찍는데 두 여인이 내 사진을 막았다. 그래서 아래 사진을 한참 기다렸다가 다시 찍었는데 수평이 문제다.

판짐은 올드고아를 탐방하기 위한 좋은 거점으로 삼을 수도 있다. 한때 번성했던 웅장한 식민지의 주도는 19세기에 여러 차례 발생한 전염병이 이 지역을 휩쓴 후 버려졌다. 일 년 중 파나지를 방문하기에 가장 좋은 시기는 기온이 따뜻하고 쾌적한 10월 말부터 4월 초 사이이다. 가장 가까운 공항은 파나지에서 차로 약 40분 거리인 다보림에 있다. 이 도시는 또한 뭄바이, 망갈로르, 방갈로르, 호스펫 등 여러 다른 인도의 주요 중심지들과 버스나 기차로 연결되어 있다. 파나지의 대부분은 걸어서 다닐 수 있지만 먼 곳으로 이동하려면 시내버스를 타거나 오토릭샤의 도움을 받아야 한다.      

인도에서 면적으로 보면 가장 작은 주이고 인구로는 4번째로 작은 주이다. 인도 서부에 위치하고 있다. 고아는 1510년 포르투갈 상인들이 상륙·점령하여 450년간 포르투갈의 식민지로 있다가, 인도가 1961년 12월 무력으로 탈환한 역사가 있기 때문에 현재도 포르투갈 상인들의 후손들이 상당수 거주하고 있으며, 그들의 문화가 남아 있다.

인도 사람들은 80% 이상이 힌두교 신도들 이어서 소(牛)를 신으로 숭배하기 때문에 쇠고기를 안 먹는 것으로 알려져 있지만 사실은 그렇지 않다. 이곳 고아에서는 쇠고기를 판매하는 곳이 있다. 다른 지역과 달리, 주민 40% 이상이 그리스도교인이기 때문이다. 힌두교인들은 먹지 않지만 그리스도교인들은 쇠고기를 먹는다. 자동차 도로와 상가나 인가 주변, 해변 등 어디서나 소를 볼 수 있는 것이 이채롭다.
 아름다운 해변으로 유명한 이곳 고아는 매년 수만 명의 외국인 관광객이 다녀간다.  

깔랑굿 해변 입구에는 타투하는 곳이 많았다. 나도 함 해볼까?

이 해변에는 인도인이 정말 많았다. 인도로 치면 건기이고 겨울인데

해수욕을 즐기는 그들을 보면서 그저 부러울 뿐

풍~덩! 바닷속으로 들어가지 못하는 이 답답함이여!!

안주나 해변에는 인도 사람보다 유러피언 투성이었다.

그들이 점령한 비치인 것 같아 왠지 정이 떨어졌다.

과거엔 히피들의 천국이라 했는데 지금은 어떤가?

파나지 시내를 관통하는 만도비 강의 환상적인 일몰,

그렇게 남인도 고아의 하루는 식어가는 중이었다.

아쉽다.

여행은 왜 끝이 나려 하는가?

인생은 왜 해가 지려하는가?

어느 하루, 해가 뜨면

꼭 해는 져야 하는가?

누가 만든 순리인가?

나는 포르투갈의 어느 도시에 와 있는 것이다.

고아 -- 뭄바이를 가기 위해, 국내선 제트에어웨이를 탔다.

이제 인도 기차는 사기꾼 같아 정이 떨어졌다. 실타.

나는 남인도의 고아를 진정 좋아한다.

그건 다시 오겠다는 약속 맞지? 하고

내가 나에게 한번 슬쩍 물어보는 것이었다.

뭄바이 공항--Smoking Zone--필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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