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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재완 Sep 29. 2024

길은 찾는 것이 아니라 만나는 것입니다.


 오십을 앞두고 아내 HJ와 함께 경제개발 5개년 계획이나 노후대책마련 프로젝트가 아닌 제주 올레 종주 5개년 계획을 수립하였습니다. 올레길 홈페이지를 확인하고, 패스포트까지 구매하니 실로 오랜만에 가슴이 두근거렸습니다. 오늘을 즐기기로 한 이상 기쁨과 기다림을 내일로 또다시 미루고 싶지 않았습니다. 그 자리에서 2주 후의 비행기 티켓을 끓었습니다. 그렇게 총 425킬로의 대장정을 시작하였습니다.

 그리고 20여 개의 코스를 걷다 보니 하늘의 뜻을 안다는 지천명의 나이에 이르렀습니다. 올레의 가장 좋은 점은 일상의 완벽한 변화입니다. 어제까지 백팩을 이고 승강장에서 지하철을 기다렸는데, 오늘은 물병이 담긴 배낭을 메고 올레길 위에 서 있습니다. 이보다 더 극적인 간극이 있을까요?

 여행이 그리울 때나, 몸이 버겁거나 마음이 요사스러울 때마다 올레를 찾았습니다. 올레는 하찮은 나의 희로애락과 상관없이 항시 부동의 얼굴로 맞이하여 주었습니다. 세상의 속도에 따르지 않고 변함없이 나를 대해주는 올레는 우리 부부의 반려길이며 숨구멍입니다.


 올레길 은 서명숙 제주 올레 이사장이 산티아고 순례길을 걷던 도중 만난 외국인의 물음에서 시작되었다고 합니다.

 “당신의 나라에는 어떤 길이 있나요?”

 그와 많은 사람들의 노력이 모아져 더 많은 사람들을 치유하는 제주 올레길이 생겨났습니다. 800킬로에 달하는 산티아고 길에 비하면 강동하지만 올레길이 더 다정합니다. 

 올레에는 연옥빛 바당 말고도 다채로운 기쁨이 채색되어 있습니다.

자동차가 아닌 두 발로 걷다가 만나게 되는 올레가 품고 있는 바다의 빛깔은 깊이와 질감이 다릅니다. 바다뿐만 아니라 오름과 곶자왈, 주상절리, 해녀삼촌도 만날 수 있으며, 계절마다 벚꽃과 유채꽃, 청보리가 육지 사람의 오감을 만족시키고 육감을 피워줍니다. 

 스티브잡스는 명상뿐만 아니라 걷기를 통해 영감을 얻고 생각을 정리했습니다. 회의는 물론이고, 사업적인 중요한 결정을 할 때도 상대방에게 걷기를 제안했다고 합니다. 철학자 루소는 "나는 걸을 때만 생각한다."라고 말할 정도입니다. 걷기보다 효과적인 창의력 수업은 없습니다. 걷는 사람이라는 책까지 출간한 배우 하정우는 오직 걷기 위해 하와이까지 간다고 합니다. 제주도는 하와이만큼 선겁지만 더 가직이 있습니다.


 올레는 애수의 길이기도 합니다.

 제주도는 세계적인 명성의 관광지이면서, 슬픔의 섬이기도 합니다. 조선시대 죄인들을 가장 많이 귀양 보낸 섬이 제주도와 거제도입니다. 생활하는 것 자체가 힘들었다는 것을 방증하는 기록입니다. 추사 김정희의 세한도가 탄생한 곳도 제주도입니다. 오늘날 관광차 사나흘 머무르며 맞는 바람은 낭만적이겠지만, 그 옛날, 삶을 견뎌야 했던 바람은 분명 달랐을 것입니다. 여기에 임금의 보살핌이 닿기에 멀었던 바다와, 그 바다의 파도를 타고 오는 왜적들까지. 

 제주도 사람들의 고난은 제주 4.3에 이르러 절정에 달합니다. 이 참극은 하루 만에 끝난 것이 아닙니다. 제주 4.3 평화 재단의 기록에 따르면 1948년부터 7년간 이어졌으며 한국 근현대사에서 6.25 전쟁 다음으로 많은 민간인 인명피해가 일어났다고 합니다. 보고서마다 차이가 있지만 제주 도민의 1/10이 목숨을 잃은 것으로 추정되는 문서도 있습니다. 

 겨우 목숨만 부지한 사람들은 정상적인 생활이 불가능했을 것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배를 타고 타향으로 타국으로 떠나야 했습니다. 떠나지도 못한 사람들은 연좌제로 고통받았고, 원통함을 소리 내지도 못한 채 숨죽여 제사를 지내야 했습니다. 제주도의 마을에서 많은 집의 제삿날이 겹치는 것은 4.3이 낳은 상흔입니다.

 올레길옆에 켜켜이 쌓여있는 돌담의 돌마다 처절한 슬픔이 알알이 박혀있습니다. 올레는 치유의 길이며 다크투어의 훌륭한 교본이기도 합니다.


 제주도는 세 번만 가면 볼 것도 없고, 그 돈으로 일본이나 동남아가 낫지 않냐고 묻는 이들에게 굳이 올레길을 권하지 않습니다. 길은 인간이 찾아가는 것이 아니라 만나는 것이라는 것을 깨달았기 때문입니다. 올레길을 만날 사람은 언젠가는 만날 것입니다. 당신에게도 그 행운이 깃들기를 진심으로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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