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년 8월, 여자농구 국가대표 소집을 앞두고 팀의 주축인 박지수 선수가 대표 팀에서 제외되었다는 기사가 나왔습니다. 전년도 시즌 MVP이며 WNAB에서도 뛴 경력이 있는 역대 한국 여자 농구 최고의 센터 자리를 예약한 박지수의 나이는 당시 25살이었습니다. 박지수선수를 주저앉힌 병명은 아킬레스건 파열이나 반월판 손상 등의 육체적 부상이 아니라 공황장애였습니다. 몇 해 전부터 도를 넘는 악의적인 댓글로 우울증 초기증세를 겪던 그는 결국 팀 훈련도중 호흡곤란 증세가 심해졌고, 공황장애 판정을 받았다고 합니다. 일반인보다 월등히 높은 신체능력을 갖춘 프로선수들조차 쓰러지게 만드는 것이 마음의 상처입니다. 정신적 건강은 육체적 건강과 별개입니다.
현대인들은 자신들의 마음을 얼마나 돌보고 있나요?
각종 비타민과 자양 강장제를 챙겨 먹으며 주기적으로 건강검진까지 받지만, 마음의 생채기는 무시하거나 의지의 문제로 치부하기까지 합니다. 문명의 발달로 인간은 과거에 비해 육체적으로 훨씬 편리한 생활을 누릴 수 있게 되었지만, 자본주의의 과도한 성장으로 인해 정신적으로는 더 고통받고 있습니다. 공황장애나 우울증은 더 이상 TV 속 연예인만의 문제가 아닙니다. 전화 벨소리에 화들짝 놀라거나, 극도의 피로감을 호소하면서도 쉬이 잠들지 못하는 사람들을 주변에서 흔히 볼 수 있습니다. 오죽하면 우울증과 불안장애에 시달리던 저자가 정신과 전문의와의 대화를 풀어쓴 ‘죽고 싶지만 떡볶이는 먹고 싶어’가 베스트셀러가 되었을까요?
박지수 선수의 소식은 저에게 남달리 와닿았습니다. 저는 농구팬의 한 사람이자, 수년 전 공황장애로 고통받았으며, 여전히 극복하는 과정에 있기 때문입니다. 박지수 선수와 제가 겪은 호흡장애는 경험하지 못한 사람에게 글이나 말로는 그 공포를 온전히 설명할 수 없습니다. 세상에서 가장 쉬운 일이고 당연한 일인 호흡을 자신이 통제하지 못할 때 느끼는 공포감이란.
저의 경우 호흡곤란은 주로 밀폐된 공간에서 찾아왔습니다. 출근길 지하철에서, 금요일 밤 마트에서, 주말 낮 극장에서, 혼자 탄 엘리베이터 안에서. 일상이 공포가 되는 순간 지옥이 펼쳐졌습니다.
한참의 시간이 지난 후에야 한의원을 찾았습니다. 한방 치료를 통해 증세가 호전되자 일상에서도 마음을 돌볼 수 있는 방법을 찾기로 했고, 그 끝에서 글의 주제인 명상을 만났습니다. 명상에 관련된 책을 읽기 시작했고, 2개월짜리 명상 기초수업을 듣기도 했습니다. 이후 명상의 효과를 확실히 체험하고 수년째 명상을 이어오고 있습니다.
저는 명상을 통해 마음의 치유 효과뿐만 아니라 두뇌 활동과 육체적 피로 해소에도 도움을 받고 있습니다. 글쓰기에 도움이 되는 아이디어는 샤워 도중이나 걷기 명상 도중, 또는 호흡 명상 도중에 자주 떠오릅니다.
우리의 뇌도 휴식이 필요합니다. 24시간 쉬지 않고 공부하고, 연구하는 것이 가능하지도 않지만, 결코 효과적이지도 않습니다. 운동선수들이 무리한 경기일정 탓에 부상이 발생하기도 하고, 적절한 휴식을 취한 후 더 높은 경기력을 발휘하는 듯이 우리의 마음과 뇌도 휴식이 필요하다. 저도 20~30대 시절 자기 계발 강박에 시달리며 분 단위로 시간을 쪼개어 쉼 없이 달려왔고, 그러다 100세 시대의 반환점도 돌지 못하고 잠시 주저앉았던 것입니다. 개인적인 경험담은 여기까지이고, 과학적으로 입증된 데이터를 통해 명상의 효과를 살펴보겠습니다.
명상은 불교뿐만 아니라 다른 종교에서도 그 기원을 찾을 수 있으며, 최근 들어 Mindfulness 마음 챙김의 용어로도 불리고 있습니다. 흔히 하는 오해들 중에 하나가 명상은 종교적인 행위에 가깝기에 과학적이지 못하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사실일까요? 오해일까요? 세계 유수의 명문대학에서 명상에 효과에 관해 시행한 실험을 살펴보시죠.
미국 위스콘신대 신경과학 연구팀은 2002년부터 명상 전문가를 대상으로 10년 넘게 연구를 진행하였습니다. 프랑스의 승려 마티유 리카르가 명상을 하는 동안 그의 머리에는 200개가 넘는 센서가 부착되어 있었습니다. 명상을 하는 그의 뇌에서는 신경과학 역사상 기록된 적이 없는 수치의 감마파가 감지되었다고 합니다. 감마파는 집중력, 기억력과 밀접한 관련이 있습니다.
미국 매사추세츠 종합병원에서는 일반인을 상대로 명상의 효과를 입증하는 실험을 실시했습니다. 8주 동안 명상을 한 사람들과 그렇지 않은 사람들을 비교 분석한 결과 명상을 한 집단의 스트레스 대응력이 더 높았고, 학습과 기억능력이 개선되었다는 연구결과를 발표했습니다.
캐나다의 몬트리올대학은 명상과 육체적 통증에 관한 연구를 시행했습니다. 1천 시간 명상을 한 그룹과 전혀 명상을 하지 않은 그룹으로 나누었는데, 전자는 열판의 온도가 50도일 때부터 통증을, 후자는 48도에서부터 통증을 느꼈다고 한다.
명상의 효과가 입증되자 자본주의의 최전선에 있는 이들이 명상에 돈을 쏟아 붓기 시작합니다. 구글, 애플, 골드만삭스, 나이키, HBO 등 다양한 글로벌 기업들이 직원들을 위한 명상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습니다. 과연 이런 기업들이 직원의 복지만을 위해서 명상을 권장할까요? 업무적으로도 더 나은 성과가 나온 것이 입증되었기 때문입니다.
구글은 실리콘벨리에서 명상문화가 가장 잘 자리 잡은 곳인데, 그 이유는 구글의 창립멤버이자 천재 엔지니어로 불렸던 차드 멍 탄 때문입니다. 모두가 부러워할 성공가도를 달리던 그도 예고 없이 찾아온 우울증에 빠졌고, 이를 해결하기 위해 전 세계를 뒤지다 명상을 만나게 되었습니다. 이후 명상의 효과에 완전히 심취한 그는 각 분야의 전문가들과 함께 ‘내면검색’이라는 명상 프로그램을 만들기에 이릅니다. 이 프로그램은 구글 직원들에게 실제로 적용되며 큰 호응을 받고 있습니다. 그는 세계적인 명상 전문가가 되어 또 다른 성공가도를 달리고 있습니다.
한국에서 가장 과학적인 기관을 꼽으라면 어디가 떠오르시나요? 카이스트는 인문학 연구단체 플라톤 아카데미와 협업하여 명상과학연구소를 운영 중입니다. 한국 최고의 기업이라는 삼성은 2017년도 경북 영덕에 대규모 명상센터를 건립하여 운영하고 있습니다.
최근 10년간 읽은 가장 인상 깊었던 책을 꼽으라면 유발 하라리의 ‘사피엔스’입니다. 전 세계 지성에게 충격을 주었다는 카피는 절대 과장이 아니었습니다. 사피엔스, 호모데우스에 이어 인류 3부작의 마지막이라는 그의 또 다른 저서 ‘21세기를 위한 21가지 제언’은 세계 최고의 부자라는 빌게이츠의 생각도 완전히 바꾸어 놓았습니다. 이 책을 읽기 전까지 빌 게이츠는 명상이 미신에 가까운 것이라고 생각했다고 합니다. 그러나 이 책으로 인해 명상을 시작하게 되었고, 잘못된 선입견과 편견을 버리고 이제는 명상이 마음을 단련하는 운동이라고 생각한다고 합니다.
유발 하라리는 명상을 하지 않았다면 사피엔스 같은 책은 쓰지 못했을 것이라고 말합니다. 참고로 그는 인도에서 가장 오래된 명상인 고엔카의 윗빠사나 명상을 수행한다고 합니다.
유발 하라리, 빌 게이츠와 외모와 업적 면에서 상당히 유사한 두 명의 천재도 명상과 관련이 깊다. 우선 한국인이 가장 사랑하는 외국 작가라고 해도 과언이 아닌 ‘개미’의 베르나르 베르베르는 아이디어의 원천은 명상이라고 밝힌 바 있습니다. (베르베르의 전 세계 책 판매량은 2천만 부가 넘는데, 천 만부가 한국에서 팔렸습니다). 안경을 낀 마른 몸매와 시원하게 밀어버린 헤어 스타일까지 하라리와 베르베르는 프로필 사진을 서로 바꾸어 사용해도 열혈독자가 아니라면 눈치채지 못할 정도로 닮았습니다.
빌 게이츠 필생의 라이벌 스티브 잡스의 명상 사랑은 많은 사람들이 이미 익히 알고 있을 것입니다. 위인전의 표상이 되는 책이라고 생각하는 월터 아이작슨의 ‘스티브 잡스’를 보면 잡스는 명상뿐만 아니라 걷기에도 진심이었습니다. 잡스는 중요한 일을 논의할 때조차도 상대에게 걸으며 대화를 하자고 제안했습니다. 잡스도 저처럼(?) 걷기와 명상을 사랑한다는 사실을 확인하고, 혼자 몹시 흐뭇해했습니다.
명상은 스포츠 스타들에게도 큰 영향을 주고 있습니다. 2010년대부터 남자 테니스 세계 정상을 유지하고 있는 조코비치는 명상과 식이요법을 통해 경쟁자뿐만 아니라 자신을 넘어서게 되었습니다. 인류 역사상 스포츠 마케팅 측면에서 최고의 스타라 할 수 있는 마이클 조던 또한 경기 전 명상으로 집중력을 높였다고 합니다. 또 다른 NBA의 아이콘 르브론 제임스는 명상 앱의 빗소리를 들으며 팀원들과 명상을 한다고 합니다.
이쯤 되면 명상이 하고 싶어 몸이 근질거리는 분들이 분명 있을 것입니다. 이제 생활 속에서 명상을 할 수 있는 간단한 방법을 알려드리겠습니다.
생업에 종사하며 매일 일정한 시간에 장시간 명상을 하기는 쉽지 않습니다. 필자의 명상 패턴을 잠시 소개하겠습니다. 출퇴근 버스나 지하철에서도 호흡명상을 합니다. 호흡명상을 하는 방법은 자신의 몸을 풍선이라 생각하고 코로 숨을 들이마시면 그 숨이 몸 안을 차오르게 하여 배가 불록 나오게 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코나 입으로 숨을 내쉬면 몸에 바람이 빠져서 배가 다시 꺼진다는 느낌을 가지고 들숨과 날숨을 반복하시면 됩니다. 들숨과 날숨의 길이는 각 2초 정도가 적당하지만 개인의 차가 있으므로 자신이 편안함을 느끼는 호흡을 하면 됩니다. 처음 하시는 분들은 일분도 쉽지 않을 것입니다. 온갖 생각이 떠오르는 것은 당연한 일입니다. 이것은 매우 자연스러운 일이며, TV 리모컨으로 전원을 끄듯이 생각을 끄고 다시 호흡에 집중하시면 됩니다. 하루 일분이라도 명상을 반복하여하다 보면, 잡념에 빠지지 않고 호흡에 집중하는 자신을 발견하게 될 것입니다.
업무를 하는 도중에도 화를 부르는 일과 사람은 늘 존재합니다. 그런 순간이 오면 저는 흡연실 대신 빈 회의실을 찾았습니다. 저는 극심한 스트레스를 받으면 몸의 열기가 위로 향하여 얼굴이 붉어지는데 들숨과 날숨을 반복하는 단순한 행위만으로 몸과 마음이 진정됩니다.
점심시간에는 걷기 명상이 가능합니다. 주변에 공원이 없더라도 걷는 동안 자신의 오감에 집중하며 걸어보세요. 발가락부터 발바닥 발뒤꿈치까지 내 몸의 감각을 느끼다 보면 몸과 마음이 함께 건강해지는 것을 느낄 수 있을 것입니다. 하루의 일과를 마친 후에는 소파나 침대에 누워서도 명상이 가능합니다. 몸은 피곤한데 잠이 오지 않는다는 현대인이 많습니다. 명상은 불면증에도 효과가 있다고 입증이 되었습니다.
넷플릭스 구독자라면 ‘헤드 스페이스 명상이 필요할 때’를 추천합니다. 스님이 공동 창업자이기도 한 명상 어플 헤드스페이스가 넷플릭스에 론칭한 것인데, 친절한 설명과 방법이 비교적 자세히 나와 명상 초보자에게 적합합니다.
이 글의 제목 ‘나를 만나는 길’ 은 2022년 5월에 개봉한 다큐멘터리 영화의 제목을 빌린 것입니다. 카메라는 틱낫한 스님이 프랑스에 설립한 명상 공동체 플럼 빌리지의 모습을 담았습니다. 스님은 1926년 베트남에서 태어나 평생을 반전운동과 세계평화를 위해 헌신했고, 마틴 루터 킹 목사에 의해서 노벨평화상 후보로 추천되기도 했습니다. 이 영화의 내레이션은 배우 베네딕트 컴버배치가 맡았습니다.
베네딕트라는 거물급 스타가 이런 저 예산 다큐멘터리 영화에 참여한 이유는 무엇일까요? 그는 틱낫한 스님의 명상 제자이기 때문입니다. 베네딕트는 교양미가 넘치는 대표적인 배우인데, 역시나 명상을 하고 있었습니다. 영화의 곳곳에 틱낫한 스님의 글귀를 읊조리는 베네딕트의 목소리가 별처럼 뿌려져 있습니다. 잔잔하다 못해 자칫 졸릴 수도 있는 이 작품은 영화와 명상의 경계를 넘나듭니다. 영화 후반부에 나오는 생전 스님이 남긴 말로 이 글을 마무리할까 합니다. 지금 이 순간 과거의 상처와 일어나지 않은 미래의 일들로 인해 마음에 큰 고통을 받고 있는 모든 이들의 쾌유를 진심으로 기원합니다.
마음 챙김 수행은 항상 도착하는 겁니다. 지금 여기에 도착하는 것.
우리는 늘 달려왔지만, 아직 도착하지 못했어요.
항상 뭔가를 찾고 구하고, 갈망하지만 찾지 못했지요.
그래서 계속 달립니다.
얼마나 오래, 얼마나 더 많이 달려야 찾을 수 있을지 몰라요.
자신에게 없다고 믿는 행복의 조건을 찾고 있는 것일 수도 있죠.
달리는 것과 찾는 것이 습관이 됐습니다.
삶과 그 경이로움은 오직 현재의 순간에만 우리 곁에 있습니다.
과거는 이미 지나갔고, 미래는 아직 오지 않았으니 오직 현재의 순간만 있지요.
그래서 마음 챙김 명상은 지금 여기로 돌아오게 하고, 삶을 더 깊이 사는 법을 가르쳐 줍니다.
그래서 삶을 낭비하지 않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