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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재완 Sep 28. 2024

그 겨울의 온기가 그립다.

장독대에서 막 꺼내 살얼음이 올려진 

동치미 국물과 고구마만으로도 따뜻했던

그 겨울의 온기가 그립다.


학원에 가지 않아도 친구를 만날 수 있던 

비좁은 골목길과 그 골목을 가득 채우던 

젊은 엄마의 힘찬 목소리가 그립다.


천 마리의 학과 네 잎 클로버를 준비하고도

용기를 내지 못해 열병을 앓던

소년의 수줍음이 그립다.


두 개의 도시락과 매점으로도 채워지지 않던

눈치도 없이 자꾸만 밀려오던

사춘기의 허기가 그립다.


과 편지함에 켜켜이 쌓인 

어린 군인들의 편지와 팔도에서 모인 학보,

나른한 스무 살의 무료함이 그립다.


두 편의 영화와 세 곳의 커피숍을 거치고도 

집 앞 공중전화에서 음성을 남기던

꺼질 줄 모르던 감정의 에너지가 그립다.


청바지가 잘 어울리던 여름 안의 청년.

이등병과 서른 살의 청춘을 달래주던 혜화동 삼촌.

무한궤도처럼 영원히 달릴 것 같던 까칠한 철학자.

서둘러 떠나버린 이들이 그립다.


애창곡의 가사와 가족의 전화번호는 고사하고

주말에 다른 이가 아닌 내가 한 일과 

어제 먹은 저녁을 기억할 수 있는

총기가 그립다.


손쉬운 커피 쿠폰 대신 LP를 선물하고,

단체 문자 대신 크리스마스 카드를 고르던 시절의

손때 묻은 번거로움이 그립다.


마스크가 지배하던 시절에는

명절마다 같은 안부를 묻는 친척의 무심함과.

꼰대 부장, 뺀질이 대리와 함께하던 

5인 이상의 회식조차 그립더라.


무엇보다 가장 그리운 것은 스마트하진 않았으나

개천에서 용이 날 수 있다는 신화가 존재하던 시절의 

무모한 낭만이 그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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