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연장에서 이른 살이애순 씨를 만났다.

by 김재완

서울의 한 센터에서 3개월간 한국사 강연을 하게 되었다. 첫날 강연을 마치자 여사님 한 분이 다가왔다.

"오늘 강연 너무 재미있게 잘 들었습니다. 저 작가님 책 찌라시 한국사도 사서 읽었습니다."

"너무 감사합니다. 다음 달에는 더 재미있는 강연이 있으니까 또 오세요."

고향에 있는 엄마 또래의 여사님은 꼭 그러겠다고 조그맣게 말씀하시며 강의장을 촘촘히 빠져나가셨다. 짐을 정리하고 복도로 나갔는데 여사님이 센터 직원분에게 무언가를 묻고 있었다. 나이가 더 들어도 50 센터에서 강연을 듣고 싶다는 취지였다.


여사님은 두 번째, 세 번째 시간에도 늘 앞자리에 앉아서 서툰 강의에 열렬한 리액션을 보내주시는 든든한 치어리더였다. 초보 강의자들은 졸고 있는 사람, 딴짓하는 사람이 아닌 나를 올곳이 바라보는 한 명을 바라보고 강의를 하는 것이 좋다고 누군가 말했다. 나는 여사님과 수시로 눈을 맞추며 나의 정신줄을 붙잡았다.


마지막 강의날 나는 출간된 지 일주일 된 신간 '기묘한 한국사'를 들고 센터를 찾았다.

강연 막바지에 청중들에게 신간이 나왔음을 알리고, 한 번도 빠지지 않은 유일한 참석자이자 열렬한 청취자이며 무명작가의 책을 이미 사 주신 여사님에게 드리면 어떻겠냐고 동의를 구했다. 청중들 모두 격하게 공감했고, 여사님은 소녀처럼 좋아서 어쩔 줄 몰라하셨다.


담당자와 인사를 마치고 나니 복도에서 여사님이 기다리고 계셨다.

"작가님? 혹시 오늘이 마지막 강의인가요? 폐가 되지 않는다면 작가님께 꼭 커피를 한 잔 대접하고 싶습니다."

우리는 센터 내에 위치한 커피숍으로 갔고, 여사님은 아내를 위한 쿠키까지 사서 내 가방에 밀어 넣으셨다. 영락없는 엄마의 모습이었다.


여사님은 1950년도에 경상도의 시골에서 태어나 올림픽이 열리던 해에 서울로 오셨다고 한다. 평생을 성실히 가정주부로 살아오셨지만 늘 책을 읽으셨고, 등산으로 건강을 유지하시며 무언가를 끓임 없이 배우시고 계셨다. 최근에는 하모니카를 시작하셨고, 작년에는 한라산 등정을 마치셨다고 한다.


그 순간 내 앞에는 70대의 여사님이 아니라 여전히 배우기를 좋아하는 애순이가 앉아 있었다.

어릴 때부터 책과 역사를 좋아하던 애순 씨는 2018년 나의 데뷔작인 '찌라시 한국사'를 우연히 보았는데 그때부터 나의 팬(?)이 되었다고 한다. 심지어 나의 에세이인 '나 아직 안 죽었다'까지 읽은 터라 고향은 물론이고 나의 취향까지 꿰뚫고 계셨다.

"작가님 책은 너~~~ 무 재미있어요."


2025년, 구 소식지에서 나의 강연 소식을 듣고 드디어 김재완 작가를 만나게 되는구나 라며 기뻐하셨다고 한다. 애순씨는 혹시라도 내 강연이 조기 마감(?) 될까 접수가 시작되는 날 알람까지 맞춘 상태였다. 그런데 하필이면 그날이 몇 년 전부터 계획한 울릉도 여행 첫날이었으며, 무려 50년 만에 성인봉을 손자와 등반 중이었다.

"할머니? 무슨 알람이야?"

애순씨는 성인봉을 오르다 말고 핸드폰을 열어 느리지만 정확하게 나의 강연을 1등으로 신청하고 다시 손자와 산을 올랐다고 한다. 이 대목에서 나는 아직도 해가 지지 않은 여름 한낮에 눈물을 감추느라 아아를 원샷 때려야만 했다.


나는 내 팬이 명백한 애순씨에게 '역사 썰명회'도 진행하고 있노라며 구독과 좋아요를 정중히 요청드렸지만, 애순씨는 유튜브는 보지 않는다고 사람 좋은 얼굴로 대답했다.

'하! 애순씨는 나 보다 더한 책 중독자 구나. 역시 세월을 그냥 보내신 게 아닌, 진정한 무림의 고수였어."

애순씨와 한참 수다를 떨다 보니 다음 강연을 위해 이동할 시간이 되었다. 나는 한 줌도 되지 않는 나의 팬이지만 취향만은 확고한 애순씨에게 정중히 인사를 고했고, 애순씨의 마지막 말에 나는 진짜 '뭐가 된 듯' 가슴이 벅차올랐다.

"이 책 너무 잘 읽을게요. 너무 좋아서 오늘 잠이 안 올 것 같아요."


세상의 모든 애순씨들을 내 팬으로 만들 때까지 더 재미있게 읽고 쓰고 떠들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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