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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K직장인의 검은 생명수

by 김재완

아침 6시 10분, 경기도에 살지만 서울로 출근하는 직장인 K는 어제의 피로를 채 풀지도 못한 채 침대에서 몸을 일으킨다. 오늘은 모든 직장인에게 가장 힘겨운 월요일이다. 서둘러 준비를 마치고 집을 나서니 남아있던 졸음마저 순식간에 얼어버린다. 오늘 아침 최저 기온은 영하 17도이다. 한국의 1월은 일 년 중 가장 추운 계절이다. 그러나 K는 곧 추위를 느끼지 않게 될 것이며, 갈증은 물론이고 어쩌면 땀을 흘릴지도 모른다.


대한민국 인구의 50%가 경기도와 서울에 모여 산다. 그런데 서울을 포함한 경기도의 면적은 전 국토의 10%에 불과하다. 100명의 사람이 축구장 10개에 나누어 사는 것이 아니라 한 개의 축구장에 50명이 모여 살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서울의 집값은 전 세계 최상위급에 속하기에 많은 직장인들이 서울 인근의 경기도에서 회사가 있는 서울로 출퇴근을 하고 있다.


2023년 12월 통계청과 SK텔레컴의 조사에 따르면 한국인의 출퇴근 소요시간은 72.6분, 통근 이동거리는 18.4킬로로 나타났으며, 수도권 (서울, 경기 지역을 일컫는 말) 이 소요시간 83.2분, 이동거리 20.4 킬로로 무난히 2관왕을 달성했다. 경기도에 사는 사람들은 차량으로 이동거리 30분 내외는 슬리퍼를 신고 나간다는 슬픈 농담이 있다.

경기도에 사는 K가 겨울에는 아직 해도 뜨지 않은 시각에 일어나는 이유이다. K는 BMW를 이용해 출근한다. 여기서 BMW는 독일의 고급 승용차를 말하는 것이 아니라 BUS, METRO, WORK에서 따온 한국식 농담이다.


“역시 BMW가 최고야. 길 막힐 염려도 없고 말이야. 하하하하”


한국만큼 대중교통시스템이 잘 발달되어 있는 나라는 드물다. 특히 수도권은 자동차가 없어도 대중교통만으로 못 가는 곳이 없다. 그러나 문제가 있다. 수도권에 인구의 절반이 살고 있으니 아침 시간 버스와 지하철은 그야말로 K팝 콘서트장의 스탠딩석보다 붐빈다. 특히 회사가 많이 몰려있는 여의도나, 강남 등으로 향하는 지하철은 일명 지옥철이라고 불린다. 객실 내의 밀도는 생면부지의 사람과 코가 닿을 지경이고 내려야 할 역에 내리지 못하는 경우도 발생한다. 이미 포화상태의 열차가 달리는 다음 역에는 그 수만큼의 또 승객이 기다리고 있다.


"어? 더 이상 탈 공간이 없는데?"


하지만 열차는 그 역을 통과하지 않고 정차하며, 사람이 구겨지듯이 열차 안으로 밀려들어 온다. 한국인은 아니 인간에게 불가능이란 없다는 사실을 매일 아침 체감한다.

이것이 평화로운 수도권 지하철역의 아침 풍경이다. 우리 외할머니가 이 광경을 봤다면 이렇게 말씀하셨을 것이다.

“아이고야! 625 때 난리는 난리도 아니다. 넌 어떻게 매일 아침 이 난리를 치르냐?”


8시 30분, 집에서 일어난 후 2시간이 지나 회사 앞 지하철역에 내리면, 생체시계는 이미 퇴근시간이다. 한 겨울인데도 속에서 천불이 끓어오르니 K는 여름에 마시던 그 음료를 자연스럽게 주문한다.


“아아! 한잔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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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로 글을 쓰고 때때로 방송과 강연장에서 말을 하며 살아가는 낭만 아조씨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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