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들! 목욕탕 가자.”
“아빠! 벌써 일요일이야? 나 뜨거운 물에는 진짜 들어가기 싫은데!”
“뜨겁긴 뭐가 뜨거워! 시원하지. 아빠가 목욕 마치고 나면 바나나 우유 사 줄게.”
1980-90년대 일요일 아침, 한국의 가정에서 어린 아들과 젊은 아빠의 흔한 대화이다. 집집마다 샤워시설이 없던 시절, 대중목욕탕은 서민들의 휴식처이자 놀이터이며 빨래터이기도 했다.
온 가족이 함께 집을 나선 일요일 오전, 목욕탕 앞에서 두 갈래의 방향으로 갈라진다. 엄마와 딸은 여탕으로 아빠와 아들은 남탕으로.
“여보! 우리는 오래 걸리니까 당신은 애 데리고 먼저 집으로 가.”
목욕탕 문을 열고 들어서면 캐비닛이 있는 공용 탈의실이 나온다. 탈의실 가운데 평상에는 발톱을 깎는 옆 집 형도 있고, 신문을 읽는 앞집 아저씨도 만날 수 있다.
“오! 우리 아들, 지난주 보다 몸무게가 늘었네!”
탕 입구에는 목욕탕이나 병원이 아니면 구경하기 힘들었던 체중계가 있었는데, 회사일로 바쁜 젊은 아빠가 어린 아들의 성장을 수치로 확인할 수 있었다.
목욕탕 가운데에는 용암처럼 연기가 피어오르는 공포(?)의 열탕이 어린 아들을 맞이한다. 탕 양쪽으로 설치된 샤워기에서 몸을 씻은 후, 뜨거운 물에 몸을 담그면 아들과 아빠의 전혀 다른 반응이 나온다.
“으~시~~ 원하다.”
“으악! 뜨거워! 아빠 왜 거짓말해!”
“너도 어른이 되면 알 거다. 이게 왜 시원한지.”
그렇다. 한국인은 뜨거운 국물을 마시고도, 뜨거운 물에 들어가서도 시원하다고 말한다. 문법적으로는 분명히 틀린 말이지만 정서적으로는 맞는 말이다. 젊은 아빠의 말은 허풍이 아니다. 어른이 되면 저절로 이해할 수 있는 말이다.
뜨거운 물에 몸을 불리고 나면, 아들이 더 싫어하는 때 미는 시간이다. 속칭 이태리 타울로 불리는 손바닥만 한 크기의 손가락이 없는 녹색장갑을 낀 아빠는 소년의 등을 밀기 시작한다.
“우리 아들은 언제 커서 아빠 등 밀어주나.”
“아빠! 너무 아파. 살살해줘.”
“때 제대로 안 밀면 아빠가 엄마한테 혼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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