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인4 능력주의> 불안으로 편견을 더하는 당신에게

『불안』 & 『우리 집은』

by 꿈의 떨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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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세 가지 이야기는 서기 30년부터 1989년까지 각기 다른 방식으로 낮은 지위에 있는 사람들을 위로했다. 물론 이런 이야기만 있는 것은 아니었지만, 많은 사람들이 귀를 기울인 가장 설득력 있는 이야기는 그것들이었다. 이 이야기들은 좋은 운을 타고나지 못한 사람들에게 기운을 북돋는 세 가지 메시지를 전달했다. 첫째, 그들이 사회에서 진정으로 부를 창조하는 사람들이며, 따라서 존중을 받을 자격이 있다는 것. 둘째, 세상의 지위는 신이 보기에 아무런 도덕적 가치가 없다는 것. 셋째, 부자는 파렴치하며, 정당한 프롤레타리아 혁명이 일어나면 서글픈 종말을 맞이할 수밖에 없기 때문에 어차피 존중할 가치가 없다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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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적인 능력주의 사회에서 상속이나 다른 유리한 조건 없이 경제적으로 성공을 거둔 개인은 과거 아버지에게서 돈과 저택을 물려받았던 귀족은 결코 경험할 수 없었던 개인적 정당성의 요소를 확보했다. 그러나 동시에 경제적 실패는 과거에 삶의 모든 기회를 박탈당했던 농민은 다행스럽게도 겪을 필요가 없었던 수치감과 연결되었다.
훌륭하고, 똑똑하고, 유능한데도 왜 여전히 가난한가 하는 문제는 새로운 능력주의 시대에 성공을 거두지 못한 사람들이 답을 해야 하는(자기 자신과 남들에게) 더 모질고 괴로운 문제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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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적 능력주의의 등장과 더불어 어떤 영역에서는 가난한 사람들이 이제 '불운하다'고 묘사되는 것이 아니라 '실패자'라고 묘사되었다. 따라서 빈자들은 이제 부자들의 자선과 죄책감의 대상이 아니었으며, 자수성가한 강건한 개인들의 눈에는 오히려 경멸의 대상이 되었다. 자수성가한 사람들은 자신의 저택에 부끄러움을 느끼지 않았으며, 그들이 떠나온 가난한 무리를 가엾게 여기는 척하며 악어의 눈물을 흘리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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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와 가난의 분배가 정의롭게 이루어진다는 생각을 19세기의 사회진화론 철학보다 분명하게 표현한 사상은 없을 것이다. 사회진화론자들은 모든 인간이 처음에는 돈, 일자리, 존경이라는 빈약한 자원을 놓고 공정한 경쟁을 한다고 주장했다. 이 경쟁에서 일부는 우위를 차지하는데, 그것은 부당한 이점이나 운 때문이 아니라 그들이 뒤처진 사람들보다 본질적으로 나은 데가 있기 때문이다. 부자는 도덕적 관점에서는 그들보다 더 낫지 않다. 그러나 천성적으로 더 낫다. 그들은 더 힘이 세며, 그들의 씨는 더 강하며, 그들의 정신은 더 빈틈없다. (중략) 부자는 생물학적 원리가 원해서 부자가 된 것이고, 빈자 역시 생물학적 원리가 원했기 때문에 빈자가 된 것이다.
나아가서 사회진화론자들은 가난한 사람들의 고난과 이른 죽음이 사회 전체에 유익하며, 따라서 정부가 개입해서 막으면 안 된다고 주장했다. 약자는 자연의 실수이며, 재생산을 하여 나머지 사람들을 오염시키기 전에 소멸하도록 허용해야 한다는 논리였다. 동물의 왕국이 기형으로 태어난 짐승을 포기하듯이, 인간 세계도 그래야 한다는 것이다. 짓밟힌 자는 자비를 베풀지 말고 죽게 놔두는 것이 인간이 할 수 있는 가장 친절한 행동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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능력주의 사회의 비옥한 귀퉁이에서 움트는 더 가혹한 의견들에 따르면, 사회적 위계는 단계마다 거기에 속한 사람의 자질을 엄격하게 반영한다고도 한다. 따라서 훌륭한 사람들이 성공하고 게으름뱅이가 실패할 조건은 이미 굳어져 있는 셈이고, 결국 자선, 복지, 재분배 장치, 단순한 동정의 필요성은 약해질 수밖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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능력주의 체제에서는 가난이라는 고통에 수치라는 모욕까지 더해지게 된다


- 불안 -



"스무 살을 앞두고 임대아파트 단지에 있는 복지관에서 자원활동을 했어요. 초등학교 3학년 남자아이의 집에 찾아가 학습을 도와주고, 같이 놀아주는 활동이었죠. 그 아이의 집에 들어갈 때면 숨을 한 번 멈춰야 했어요. 퀴퀴하고 역겨운 냄새가 훅, 하고 들어왔거든요. 거실에는 온갖 물건들과 술병들이 어지럽게 나뒹굴었고, 개수대에는 음식 찌꺼기와 그릇들이 가득했지요. 방에는 아이의 누나들이 벗어놓은 옷들이 쌓여있어서 그것을 헤집고 앉아야 했어요. 덩어리 진 먼지가 나뒹굴고, 다양한 크기의 바퀴벌레들이 기어 다니는 그런 집이었지요.

제가 현관에 들어서면 아이는 제 얼굴이 아닌 손부터 살폈어요. 제 손에 어떤 과자가 있는지 확인한 후에 실망하거나 만족스럽게 웃었죠. 저는 그 아이와 인사를 하면서부터 집에 누가 있는지 확인했어요. 중학생 누나가 있기를 바라면서 그 아이의 아버지가 있지 않을까, 걱정했지요. 그는 거의 집에 없었어요. 어쩌다가 있었는데 제가 아이와 방에 있는 동안 무관심으로 일관했지요. 하지만 그의 존재는 너무 불편하고 무서웠어요. 그가 있는 날이면 술병이 더 많이 뒹굴었고, 알코올 냄새와 담배 냄새가 더 강하게 났어요. 문틈 사이로 간간이 그의 혼잣말이 들렸는데 매번 욕설이 섞여 있었죠. 한 시간이 빨리 가기를 바라면서 아이와 숙제를 하고, 책을 읽었어요. 아직 십 대였던 제게 아이의 아버지는 두려움이었고, 아이는 버거움이었죠. 열 살 아이의 생각은 가끔씩 섬뜩해서 어떻게 반응해야 할지 모르겠더라고요.


그 뒤로도 몇 번 다른 지역의 복지관과 아동센터에서 활동을 했어요. 그곳을 나와 지하철을 타러 갈 때면 저절로 눈살이 찌푸려졌죠. 낡고 지저분한 동네가 불결해서 빨리 이곳을 벗어나고 싶었어요. 제가 사는 동네도 다르지 않으면서, 제 집도 바퀴벌레와 곰팡이 냄새가 가득하면서 그들의 가난과 저의 가난을 분리하려 했어요. 그 동네 사람들과 저는 다르다고 선을 그었지요. 그때마다 경멸과 동정의 눈빛으로 저희 집을 둘러보던 잘 산다는 아빠의 사촌이 떠오르더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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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시 뜸을 들이더니 당신이 사회진화론자에 대해 이야기한다. 그들의 주장에 따르면 우월한 인종이 열등한 인종을 지배하는 것은 자연의 법칙이다. 빈부의 격차 역시 당연하다. 가난한 사람들은 열등하기에 가난한 거다. 그러니 부자들은 죄책감을 느낄 이유가 없고, 가난한 이들에게 자선을 베풀 필요가 없다. 도움을 줘도 주정뱅이 부랑자와 게으름뱅이는 변하지 않는다. 오히려 그들은 다른 사람들을 오염시킨다. 인류의 진보를 위해 가난한 사람들은 그냥 죽게 놔두어야 한다.


사회진화론자에 관해 읽는 내내 당신은 등줄기가 싸했다고 한다. 그들의 주장이 제국주의를 정당화했고, 인간성을 박탈했다며 당신은 팔뚝에 난 소름을 쓰다듬는다. 단어의 선택과는 달리 당신의 표정과 말투는 담담하다. 근데 더 끔찍했던 건요, 당신이 시선을 아래로 돌린다. 깍지를 낀 당신의 열 손가락에 힘이 들어간다. 당신은 다음 말을 준비하듯 헛기침을 몇 번 하더니 뜬금없이 『우리 집은』의 주인공 아이가 대견하단다. 아이의 부모가 멋지고, 자신의 선입견이 부끄럽고, 교과서적이지 않은 현실이 아프다고도 말한다. 가난한데도 가족끼리 화목할 수 있을까요? 아이의 자존감은 계속 유지될까요? 아이의 부모도 분노와 좌절을 느끼지 않을까요? 당신의 질문에 부자는 가족끼리 화목한가요, 부잣집 아이들은 자존감이 높은가요, 부자들은 좌절감이 없을까요,라고 되묻는다. 당신이 짧고 강하게 아, 한다.




우리 집은 여기야.
엄마랑 아빠랑 동생이랑 살아.

『우리 집은』의 주인공 아이는 새로 이사 온 집이 너무너무 마음에 든다. 예전에 살던 집에는 식탁이 없어 밥상에서 동생이랑 둘이 밥을 먹을 때가 많았는데 이제는 커다란 식탁에서 네 식구가 같이 밥을 먹는다. 새로운 집에는 방이 두 개이고, 화장실에는 욕조가 있다. 현관문을 열어 놓으면 무척 시원해서 에어컨이 필요 없다. 복도에는 텃밭도 있고, 빨래를 널면 아주 잘 마른다. 옆집에는 식물을 많이 키우는 할머니가 살고, 옆옆집과 앞동에는 귀여운 아기가 있다. 엘리베이터는 엄청 빠르고, 집에서 학교도 가깝다. 아이는 우리 집이 너무 좋다. 친구에게 집을 자랑하며 놀러 오라고 하자 임대아파트가 뭐가 좋냐며 친구가 비꼰다. 아이는 엄마에게 임대가 무엇인지, 임대에 사는 게 부끄러운 건지 묻는다. 엄마는 그렇게 말하는 사람이 부끄러운 거라며 아이들을 안고 우리 집이 엄청 좋다고 한다.


3단지는 임대아파트인데 뭐가 좋냐는 비웃음이 없었다면 이 그림책을 시시하다고 생각했을 거예요. 너무 아름답고 따뜻하게만 그려 반감을 느꼈겠죠. 이 말을 아이가 했기 때문에 더 강하게 다가왔어요. 어른들이 하는 얘기를 듣고 아이도 계층을 나누고, 차별을 배우는 거잖아요. 부자들은 모두 능력자이고, 그들 모두가 행복을 누린다고 장담할 수 없는 것처럼 가난한 이들 모두가 실패자이고, 그들 모두가 불행하다고 할 수 없는데 말이죠. 열심히 살아도 부를 누릴 수 없고, 자발적으로 가난을 택한 사람도 많은데 보이는 것만으로 전부를 평가하려 해요. 그런데요……


당신이 혓바닥으로 마른 입술을 축인다. 다음 말을 해야 할지, 말아야 할지 망설이는 듯하다. 이 시간만이라도 솔직하자고 다짐했는데 어렵네요. 당신이 머뭇거리더니 다시 사회진화론자에 대해 이야기한다. 너무 위험하고 무서운 철학이라며 인상을 찡그린다. 그런데 더 무서운 건요, 이 부분에서 당신이 또 말을 멈춘다. 주먹을 쥔 당신의 왼손을 오른손이 세게 주무른다. 전부는 아니지만 저도 그들의 주장에 동의했다는 거예요. 당신의 입은 웃고 있지만 눈에는 살짝 물기가 보인다.


일 때문에 다양한 아이들을 만났어요. 부모의 교육 수준과 경제적인 능력에 따라 아이들도 차이가 있더라고요. 물론 전부가 그런 건 아니지만 대체적으로 그래요. 경제적으로 어려운 가정은 화목하기가 쉽지 않아요. 성공한 경험이 없는 이들은 자신의 분노와 좌절을 적절하게 해소하지 못하거든요. 제대로 화를 내는 방법도, 화해를 하는 방법도 알지 못하지요. 그들은 타인에게 받은 상처를 풀기 위해 가족을 공격해요. 특히 아이를요. 그래서 『우리 집은』의 이야기가 제게는 비현실적이에요. 현실을 꼬집는 듯 하지만 주인공 아이의 가족이 너무 이상적이어서 아름다운 동화 같아요. 어딘가에는 그런 가족이 있다고 생각하지만 과연 얼마나 될까요? 대부분의 아이들은 부모의 분노와 좌절에 공격을 당하면서 그것을 그대로 학습해요. 폭력을 당하고, 부정적인 감정을 제대로 해소하지 못한 채 자란 아이가 어떤 어른이 될지 뻔하잖아요. 도움을 준다고 그들이 변할 수 있을지 모르겠어요. 타인에게 피해만 주지 않으면 성공이죠.


당신은 가난하고 무능력한 사람이 갖고 있는 분노가 무섭다고 한다. 차별과 폭력을 겪으면서 쌓아온 부정적인 감정이 어떻게 터질지 두렵단다. 자신도 가난하게 자랐으면서, 지금도 부유하지 않으면서, 누군가에게는 동정과 멸시의 대상이면서 왜 이런 생각을 하는지 모르겠단다. 당신의 얼굴 근육이 일그러진다. 한참 그런 얼굴을 하더니 이번에는 가진 자들의 이기심과 탐욕에 대해 말하기 시작한다. 그들의 세련된 말과 행동에 속았다며 무조건 그들이 옳다고 믿었고, 스스로를 한없이 비하했던 어느 날을 이야기한다. 있으면서 욕심을 부리고, 다른 사람을 깎아내리면서 우월감을 느끼고, 분노를 제대로 조절하지 못하고, 모두가 자기를 우러러보기를 바랐던 몇 명을 이야기하면서 당신은 콧방귀를 뀐다. 권력자들이 세상을 어떻게 망쳤고, 망치고 있는지에 대해 얘기할 때에는 내내 냉소적이다. 나는 최대한 말을 아끼고 당신의 이야기를 듣는다. 적절하게 고개를 끄덕이고, 미소를 짓고, 인상을 찡그리고, 감탄사를 내뱉는다.


대체 무슨 소리를 하고 있는 거죠? 뭔가를 깨달았다는 듯이 당신이 눈을 크게 뜬다. 잠시 당혹스러운 표정을 짓더니 이내 어이없다는 듯 웃는다. 가난한 사람들은 언제 무슨 짓을 저지를지 모르는 시한폭탄이라 단정하고, 가진 자들은 탐욕스러운 가식덩어리로 몰아세웠다며 실소를 터뜨린다. 불안 때문에 불특정 다수를 미워하고, 의심하고, 단정 짓는다고 당신이 말한다. 정다운 가족을 있는 그대로 보지 못한 채 부정적인 요소부터 떠올리는 자신이 마음에 들지 않는다며 울려는 건지, 웃으려는 건지 모를 얼굴로 『우리 집은』의 표지를 응시한다.


오늘은 여기까지예요,라고 하자 당신이 이렇게 끝내면 안 될 것 같다고 한다. 어떤 결론도 없이 자신의 부끄러운 마음만 들킨 채 끝낼 수는 없단다. 어차피 결론은 나지 않아요. 내 말에 당신이 발끈한다.


억지로 근사하고, 착하게 마무리할 필요가 있나요. 우리의 목적은 자신의 진심을 마주하는 거예요. 미국의 심리학자 칼 로저스가 그랬어요. 자신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일 때 변화가 가능하다고요. 자신을 알아챘으니 받아들이면 돼요. 그리고…… 오늘 당신은 충분히 멋졌어요.


당신은 어처구니가 없다는 듯 나를 바라보더니 허, 하고 웃는다. 이게 뭔가 싶으면서도 후련하다는 얼굴이다. 당신은 몇 번이나 콧방귀와 함께 실소를 터뜨린다. 뭔가 할 말이 있지만 하고 싶지도 않다는 듯 그렇게 나를 바라보고는 자리에서 일어난다.




* 불안, 알랭 드 보통 지음, 정영목 옮김, 은행나무 펴냄

* 우리 집은, 조원희 지음, 이야기꽃 펴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