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안』&『난 곰인 채로 있고 싶은데……』&『블레즈씨에게 일어난 일』
경제의 특성 때문에 지위를 얻으려는 노력은 그 결과가 불확실할 수밖에 없다. 미래를 생각해보면 우리는 동료나 경쟁자 때문에 좌절할 수도 있고, 자신에게 선택한 목표를 이룰 재능이 없다는 사실을 발견할 수도 있고, 굽이치는 시장의 파도 속에서 재수 없는 흐름에 말려들 수도 있다. 게다가 우리의 실패는 동료의 성공 가능성 때문에 더 심각해 보일 수도 있다.
불안은 현대의 야망의 하녀다. 생계를 유지하고 남들로부터 존경을 받으려면 적어도 다섯 가지 예측 불가능한 요인이 뜻대로 따라주어야 하는데, 이것은 사회적 위계 내에서 자신이 바라는 자리를 얻거나 유지할 수 있을 것이라고 확신하지 못하는 다섯 가지 이유가 되기도 한다.
(1) 변덕스러운 재능
우리는 가끔씩만 재능을 보여줄 뿐, 평소에는 그런 재능의 소유자답지 못하게 구는 경우가 많기 때문에 우리의 성취의 많은 부분은 외적인 힘이 준 선물처럼 보일 수도 있다. 변덕스럽게 나타나거나 사라지는 그 힘에 의해 우리의 인생 경로와 경제적 능력이 결정되는 셈이다.
(2) 운
기술이 지금처럼 발달하지 않았던 시절, 신의 힘과 자연의 예측 불가능한 변덕을 존중하던 시절에는 자신이든 남이든 사태의 흐름을 제어할 수 없다는 관념이 널리 퍼져 있었다. 그래서 외적인 힘에 감사를 하기도 했고 책임을 돌리기도 했다. (중략)
그러나 환경의 움직임을 통제하고 예측하는 인간의 힘이 성장하면서 운이나 수호신이라는 관념은 힘을 잃었다. 지금도 말로는 운이 출세를 좌우하는 데 어떤 역할을 한다고 말하기도 하지만, 실질적인 면에서 사람에 대한 평가는 스스로 자신의 이력에 책임을 질 수 있다는 관점에서 진행되고 있다. 승리를 '행운' 덕으로 돌리는 것은 지나치게(또 심지어 수상쩍을 정도로) 겸손하게 보일 수도 있다. 이 맥락에서 이보다 더 중요한 것은 패배를 불운 탓으로 돌리는 것이 궁색해 보인다는 점이다.
(3) 고용주
피고용자가 되는 고통에는 고용 기간의 불확실성만 아니라 수많은 작업 관행과 역학에서 오는 모욕감도 포함된다. 대부분의 사업체가 피라미드 구조를 갖추고 있으며, 피고용자로 이루어진 넓은 밑변은 관리자들로 이루어진 좁은 꼭짓점에 굴복할 수밖에 없다. 이런 상황에서 누가 보상을 받고 누가 뒤처지느냐 하는 문제는 작업장을 억압적인 분위기로 이끄는 요인이 되며, 이런 불확실성을 바탕으로 불안이 자라나게 된다.
(4) 고용주의 이익
고용의 안정성은 조직 내의 정치만이 아니라 회사가 시장에서 계속 이윤을 내는 능력에도 달려 있다. 시장은 본래 생산자들이 자신의 경쟁력이나 가격 우위를 장기간 지키기 어려운 곳이다. 많은 노동자들이 치열한 경쟁으로 인해 녹아내리는 부빙(浮氷) 위에 서 있는 듯한 불안감을 느낀다. 그것은 회사가 이윤을 개선하는 가장 효과적이고 빠른 방법이 언제나 피고용자 숫자를 대폭 줄이는 것이기 때문이다.
(5) 세계 경제
회사와 종업원들의 생존은 경제 전체의 성적 때문에 위태로운 지경에 처하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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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실패에 대한 생각 때문에 괴로워하는 것은 성공을 해야만 세상이 우리에게 호의를 보여준다고 믿기 때문이다. 가족의 유대, 우정, 성적인 매력 때문에 가끔 물질적 동기가 부차적인 것이 되기도 하지만, 그런 것들이 자신의 요구를 온전히 충족시켜 줄 것이라고 믿는 사람은 무모한 낙관주의자일 것이다. 인간은 웃어줄 만한 확실한 이유가 없으면 좀처럼 웃어주지 않는 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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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산 라인 가동 비용이 엄청나게 비싸지면 가동을 중단하기도 하는데, 이때 기계는 자신의 불행한 운명을 한탄하지 않는다. 석탄 사용을 중단하고 천연가스를 사용해도 도태된 에너지 자원은 절벽에서 뛰어내리지 않는다. 그러나 노동자는 자신의 가격이나 존재를 줄이려는 시도에 감정으로 대응하는 습관이 있다. (중략)
이런 감정적인 반응을 보면 지위를 부여하는 격투장 내에 공존하는 두 가지 요구가 드러난다. 하나는 사업의 일차적 목적은 이윤의 실현이라고 규정하는 경제적 요구다. 또 하나는 피고용자가 경제적 안정, 존경, 종신직을 갈망하도록 이끄는 인간적 요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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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용의 이런 불안정이 문제가 되는 것은 돈 때문만은 아니다. 다시 처음 이야기한 주제로 돌아가 본다면 그것은 사랑 때문이기도 하다. 다른 무엇보다도 일을 기준으로 남들이 우리를 존중하고 배려하는 수준이 결정되는 것이다. 무슨 일을 하느냐 하는 질문에 우리가 어떤 대답을 하느냐에 따라 사람들은 우리를 대접하는 방식을 결정한다. 이것은 우리가 새로운 사람을 만났을 때 맨 처음에 대답해야 하는 질문이기도 하다.
- 불안 -
"저 죄송합니다만, 저는 곰인데요."
하지만 회사에 가야 하니까
블레즈씨는 서둘러 준비를 마치고 집을 나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