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법1 철학> 타인의 평가에 민감한 당신에게

『불안』 & 『나보다 멋진 새 있어?』

by 꿈의 떨림


르네상스 시대 이탈리아에서 처음 시작되었을 때부터 제1차 세계대전 무렵 자취를 감출 때까지 결투의 관행 때문에 유럽인 수십만이 목숨을 잃었다. (중략)
객관적으로 보아도 중요한 일 때문에 결투가 벌어지는 경우도 있기는 하지만, 대부분은 작은, 심지어 사소하다고 할 수 있는 명예 문제 때문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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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투는 우리의 지위는 우리가 알아서 할 일, 우리가 결정할 문제이지 다른 사람들의 변덕스러운 판단에 좌우될 문제는 아니라고 믿지 못하기 때문에 벌어진다. 결투하는 사람은 다른 사람들이 자신을 어떻게 생각하느냐에 맞추어 자신을 바라본다. 주위 사람들이 악하거나 수치스럽다고, 겁쟁이이거나 실패자라고, 바보이거나 나약한 사람이라고 생각하면 자신의 눈에도 자신이 마음에 들지 않는다. 그의 자기 이미지는 다른 사람들의 눈에 좌우되기 때문에 사람들 마음에 자신에 대한 좋지 않은 생각이 자리 잡는 꼴을 보느니 차라리 총을 맞거나 칼에 찔려 죽는 쪽을 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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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예의 문제에 폭력으로 대응하는 사람들을 비난하는 눈으로 바라볼지 모르지만, 그러는 우리도 그런 사람들의 정신구조의 가장 중요한 측면을 공유하고 있을지 모른다. 다른 사람들의 경멸에 매우 약하다는 것이다. (중략)
무엇이 중요한가를 판단하려고 할 때, 다른 사람들로부터 우호적인 시선을 받고 싶은 강렬한 요구는 과거와 다름없이 우리 생각을 지배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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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학자들은 우리의 지위가 장터의 감정이나 변덕에 휘둘리는 것이 아니라 지적인 양심에 의지하여 안정을 얻을 수 있는데, 이것은 이성 덕분이라고 보았다. 이성적으로 검토해보았을 때 공동체로부터 불공정한 대접을 받은 것이라면 공동체의 판단에 흔들릴 필요가 없다고 말한다. 망상에 사로잡혀 2 더하기 2는 5라고 주장하는 사람들이 우리에게 무슨 말을 한다 한들 흔들릴 필요가 있겠냐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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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다고 해서 다른 사람들의 비난이나 질책이 무조건 근거 없다고 생각해서는 안 된다. 우리의 가치 평가를 지적인 양심에 맡기는 것은 무조건적 사랑을 기대하는 것과는 다르다. 우리가 무슨 짓을 하든, 어떤 결점이 있든 우리를 높이 평가하는 부모나 연인과는 달리 철학자는 사랑에 계속 기준을 적용한다. 다만 세상이 흔히 적용하는 변덕스럽고 비합리적인 기준이 아닐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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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학은 불안도 종류에 따라 쓸모가 있다는 사실을 부정하지 않는다. 불안 때문에 잠 못 이루며 성공을 거둔 불면증 환자들이 오래전부터 강조해왔듯이 생존에 가장 적합한 사람은 불안에 떠는 사람일 수도 있다. (중략)
철학자들은 이성을 이용하여 감정을 적절한 목표로 이끌라고 충고해왔다. 우리가 원하는 것이 진정으로 우리에게 필요한 것인지, 우리가 두려워하는 것이 진정으로 무서워할 만한 것인지 자문해보라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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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학자들은 오래전부터 다른 사람들의 의견을 면밀하게 검토해보면 서글픈 동시에 묘하게 위안이 되는 사실을 발견하게 된다고 이야기해왔다. 어떤 문제이든 다수의 의견에는 혼란과 오류가 가득하다는 것이었다. 샹포르는 그의 이전과 이후의 여러 세대의 철학자들의 염세적 태도를 반영하여 이 점을 이렇게 간단하게 정리했다. "여론은 모든 의견 가운데 최악의 의견이다."
이렇게 여론에 결함이 있는 것은 공중이 이성으로 자신의 생각을 엄격하게 검토하지 않고, 직관, 감정, 관습에 의존해버리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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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론의 빈곤을 인정하는 것은 고통스러운 일일지 모르지만, 그럼에도 이 깨달음은 지위로 인한 우리의 불안, 다른 사람들에게 훌륭하게 보이고 싶은 피곤한 욕망, 사랑의 표시를 보고 싶어 안달하는 갈망을 다독이는 데 도움이 된다.
다른 사람들의 인정은 두 가지 이유에서 우리에게 중요하다. 물질적인 면에서 보자면, 공동체로부터 무시당할 경우 신체적으로 불편하고 위험할 수 있다. 심리적인 면에서 보자면, 다른 사람들이 우리를 존중하지 않을 경우 스스로에 대한 자신감을 유지할 수 없다.
철학적인 접근방법의 장점은 심리적인 면에서 드러난다. 누가 우리에게 반대하거나 우리를 무시할 때마다 상처를 입는 대신 먼저 그 사람의 그런 행동이 정당한지 검토해보게 되기 때문이다. 비난 가운데서도 오직 진실한 비난만이 우리의 자존심을 흔들어놓을 수 있다. 따라서 사람들의 인정을 바라며 자학하는 습관을 버리고 그들의 의견이 과연 귀를 기울일 만한지 자문해보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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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요한 것은 우리가 어떤 무작위 집단에게 어떻게 보이느냐가 아니라 우리가 우리 자신에 대해 무엇을 알고 있느냐 하는 것이다.


- 불안 -


"예전에 일하던 곳에서 이런 얘기를 들었어요. 장점 하나를 내세우면서 자신의 단점 열 개를 덮는 사람이 있고, 단점 하나에 연연하다가 장점 열 개를 덮는 사람이 있는데 저는 후자래요. 이 얘기를 한 사람은 저를 안타까워하면서 조언을 해줬는데 점점 비난인지 악담인지 모를 말을 하더라고요.


그는 비속어 하나 없이 점잖고 세련된 단어와 문장을 구사했지만 눈빛과 말투와 행동으로 엄청난 모욕감을 주는 그런 사람이었어요. 많은 이들이 뒤에서 그를 비난했는데 그의 지위 때문에 대놓고 말하지는 못했죠. 그는 업무뿐 아니라 옷차림, 행동, 표정, 말투, 단어, 심지어 감정까지 모든 것을 다 평가하고 통제하려 했어요. 힘들어도 지친 표정을 지으면 안 됐고, 사람들이 보는 곳에서 한숨을 쉬어도 안 됐고, 살이 쪄도 안 됐고, 일을 마친 후 함께 한 사람들에게 '수고했습니다' 혹은 '고생했습니다'라고 해도 안 됐어요. 이건 모두를 이롭게 하는 일이고, 당연히 해야 하는 건데 거기에 왜 '수고'와 '고생'을 넣느냐며 분노했죠. 꼭 대형 기획사에서 관리받는 연예인이 된 기분이었어요. 제 말 한마디와 행동 하나하나가 조직의 이미지였거든요. 혹시라도 그가 이 얘기를 듣는다면 '일, 업무, 출근'이라고 표현한 저를 욕할 거예요. 이건 일이 아니라 마땅히 해야 할 활동이고, 삶이어야 하니까요.

안 그래도 자존감이 약한데 그곳에서는 더 했어요. 조언인지, 비난인지, 악담인지 모를 말을 들은 날이면 제 존재가 갈가리 찢기는 기분이었죠. 그나마 그는 저를 존중했다고 하는데 그게 존중이면 그는 진짜 존중이 뭔지 모르는 사람인 거죠. 하긴 다른 동료들에 비해 저는 약하긴 했어요. 회의에 들어가기 전부터 무섭다며 우는 친구도 있었으니까요.


언젠가부터 출근하러 가는 길이 꼭 공룡 입속으로 들어가는 기분이었어요. 오래전에 사라져야 할 거대한 생명체가 아직도 살아남아 인간을 노리고 있는 듯했거든요. 오늘은 또 무슨 말을 들을지, 오늘 그의 기분은 어떨지, 나는 이곳에서 어떤 존재가 될지 공포였지요. 이런저런 사연들 때문에 그곳을 나온 뒤에도 트라우마에 시달렸어요. 미움의 시작은 그인데 마지막에는 저를 증오하더라고요. 그를 비롯한 몇 명이 제게 퍼부은 말보다 제가 그들에게 퍼붓지 못한 말 때문에 오랫동안 아팠죠.


저는 단점 하나 때문에 저의 장점들을 덮었는데 그는 자기가 마음에 들지 않는 한 가지 때문에 타인의 강점마저 약점으로 만들었어요. 옳지 않은 그의 평가를 그때는 왜 절대적이라 믿었는지, 그의 말이 사실이더라도 그의 태도는 문제가 많았는데 왜 거기에 순응했는지, 그럭저럭 괜찮았던 저를 왜 그렇게 부족하다며 몰아세웠는지 여전히 화가 나요. 어떻게 이 분노를 풀어야 할지 모르겠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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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이다. 당신이 이렇게 소리 내 웃으며 그림책을 보는 게. 이 책이 마음에 드나 봐요,라고 묻자 당신은 조금도 주저하지 않고 그다지요,라고 대답한다. 웃으면서 보길래요, 라는 내게 당신이 비웃음도 섞여있다고 응수한다. 약간 머쓱해진 나는 머리를 긁적인다. 아, 이 책이 마음에 안 든다는 건 아니고요. 생각하시는 것만큼은 아니라는 거예요. 당신의 목소리가 꽤 경쾌하고 명쾌하다.



"앗! 바로 저거야!

당신은 제목과 표지의 그림을 봤을 때, 주인공이 얄미웠다고 한다. '나보다 멋진 새는 없어'라고 대놓고 잘난 체를 했으면 좀 나았을 텐데 의문문으로 가장해 우쭐거리는 게 별로였단다. 고개를 높이 들고 있는 모습도 한몫했다며 한때 친하게 지냈던 누군가가 떠올라 더 그랬다고 한다. 꼿꼿하게 서서 한껏 뻐기는 표정을 짓고 있다고 확신했는데 다시 보니 그건 아닌 것 같네요. 선입견과 질투심이 뒤섞여 제대로 보지 못했다고 당신이 발랄하게 말한다. 평상시와 달리 들뜬 모습에 좋은 일이 있는지 묻자 당신이 고개를 젓는다. 제가 말 안 했나요? 조울기질이 있어요. 당신이 어깨를 으쓱하며 웃는다. 당신을 따라 나도 웃는다.






『나보다 멋진 새 있어?』의 빌리는 산책을 나가기로 한다. 날씨가 너무 좋아 가만히 있을 수 없다. 기분 좋게 걷고 있는데 고양이와 부엉이의 비웃음이 들린다. 늘씬한 다리라고 생각한 자신의 다리가 그들에게 조롱거리가 된 것이다. 다른 새들도 빌리의 다리가 비리비리해 보인다며 비웃는다. 모두에게 놀림을 받은 빌리는 너무너무 속상하다. 이제 빌리는 자신의 다리에 '늘씬한' 이 아닌 '비쩍 마른'이라는 수식어를 붙이고 어떻게든 다리를 굵게 만들기로 결심한다. 체육관에 가서 열심히 운동을 했지만 아무 소용없다. 우걱우걱 꾸역꾸역 부지런히 음식을 먹어 살찌우려 했는데 배만 나올 뿐 다리는 그대로다. 옷으로 다리를 감추면 될 줄 알았는데 우스꽝스럽기만 하다. 산책을 하다 미술관을 발견한 빌리는 바로 저거라며 환호한다. 이제 빌리는 자신의 약점이 아닌 강점에 주목한다.

볼수록 빌리는 대단하네요. 당신이 흐뭇한 표정을 짓는다. 빌리를 놀렸다가 찬사를 보내는 동물들에게도 이번에는 너그럽다. 어리석고 얄밉지만 나름 귀엽단다.


고양이의 비웃음을 듣고 멈칫하는 빌리를 보자마자 웃음이 터졌어요. 빌리의 표정과 동작이 너무 재미있었거든요. 표지를 봤을 때는 잘난 체하는 새라고 생각했는데 이 장면에서 오해라는 걸 깨달았죠. 부엉이의 놀림에 주눅이 든 빌리를 볼 때에는 굽은 등을 쓰다듬어 주고 싶더라고요. 운동을 해도 안 되고, 먹어도 안 되고, 옷으로도 해결하지 못했을 때 어떤 일이 일어날지 궁금했어요. 분위기로 봤을 때, 분명 유쾌한 결말일 텐데 이렇게 마무리가 될 줄은 몰랐죠. 그래서 더 만족스러워요. 이제 빌리는 있는 그대로의 자신을 드러낼 줄 아는 용기가 생겼잖아요. 무엇보다 빌리를 놀리던 이들이 빌리를 극찬한 게 짜릿했어요. 이성적인 판단 없이 자기들 기분에 따라 타인을 평가한 거잖아요. 그들에게 화가 났지만 그보다는 안도가 되더라고요. 이렇게 시시한 이들이라면 어느 정도 무시할 수 있겠다, 싶었거든요.


당신은 종이와 펜을 달라고 한다. 빌리를 그리고 싶다며 이 정도는 따라 그릴 수 있을 것 같단다. 고양이는 지문을 이용해서 그린 것 같다면서 자신의 엄지손가락의 지문을 바라본다. 물감이나 잉크도 줄까요, 했더니 당신이 고개를 젓는다.


그림이 단순해서 충분히 그릴 수 있을 것 같았는데 쉽지가 않네요. 종이에는 완성되지 못한 빌리가 늘어난다. 얼굴과 부리까지는 있는데 어떤 것은 눈에서 멈췄고, 어떤 것은 몸통에서 멈췄고, 어떤 것은 다리 하나에서 멈췄다. 당신은 미완성인 빌리들을 보면서 입술을 삐죽 내민다. 그만 둘 줄 알았는데 당신이 다시 손을 움직인다. 미완성된 그림에 눈을 그리고, 몸을 그리고, 다리를 그린다. 왜 똑같이 그리려 했을까요. 당신은 개성이 강한 새들을 그리겠다며 보라색 펜을 잡는다.


열여덟 살 청소년에게 예쁘다고 말한 적이 있어요. 볼 때마다 성의 없는 모습으로 나오더니 그날따라 꽤 신경 써서 왔더라고요. 그 친구는 정색을 하면서 외모에 대해 얘기를 하면 안 된다고 했어요. 칭찬인데도 안 되냐고 했더니 단호하게 안 된대요. 그것 역시 평가이기 때문에 그 말을 들으면 타인의 시선을 의식할 수밖에 없고, 그 기준에 맞추지 못하면 힘들어질 수 있다면서요. 그 친구의 말을 듣는데 멋있더라고요. 자기보다 나이가 훨씬 많은 제게 당당하게 자신의 의견을 전하는 모습이 부럽기도 했고요. 빌리의 다리를 놀리던 고양이와 부엉이와 새들을 보는 내내 그 친구의 말이 떠올랐어요. 그들이 지난날을 잊고 빌리의 다리를 극찬할 때에는 웃음을 참을 수 없었죠. 저를 다 안다는 듯이 지껄이던 그들이 얼마나 우스운 인간이었는지 깨달아서 기분이 좋았거든요. 이토록 가볍고 경솔하고 변덕스러운 인간들에게 휘둘린 지난날이 아프긴 한데 그래도 오늘은 웃음이 나오네요. 동시에 반성했어요. 저 역시 그런 무리 중 하나이기도 하니까요.


당신은 이야기를 하면서도 계속 색을 고르고, 그림을 그린다. 다양한 생김새의 새들이 완성되고 있다. 색을 칠하면서 당신은 빌리가 극찬을 받았기 때문에 자신감이 생긴 거라고 말한다. 그래서 꾸미지 않은 본연의 모습을 보일 수 있었다며 타인의 평가에서 자유롭기란 쉽지 않다고 한다. 여전히 경쾌하고 명쾌한 말투다. 여기까지 말하고 당신이 손을 멈춘다. 그리고 잠시 뭔가를 생각하는 듯하더니 빙그레 미소를 짓는다. 하긴 그래도 빌리는 대단해요. 자신을 잃지 않고 약점을 강점으로 만들었잖아요. 빌리는 있는 그대로의 자신을 받아들이고 내세우면서 지금도 당당하게 산책하고 있을 거예요.


당신은 완성된 새들을 보면서 입꼬리를 올린다. 빌리와 달라서 더 만족스럽다고 한다. 다시 한번 이 책이 마음에 드는지 묻는다. 조금도 망설이지 않고 당신이 아직은요,라고 대답한다. 그다지요,라고 했던 처음의 대답보다는 긍정적이다. 당신은 몇 번 더 읽어보고 결정하겠다며 책장을 펼친다. 이번에는 빌리의 옆에 있는 박쥐에게 주목하겠다면서 씩 웃는다.




* 불안, 알랭 드 보통 지음 / 정영목 옮김 / 은행나무 펴냄

* 나보다 멋진 새 있어? / 매리언 튜카스 지음 / 서남희 옮김 / 국민서관 펴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