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술이 무슨 쓸모가 있을까? 이 문제는 1860년대 영국에서 현안이 되었으며, 많은 논평자들이 이런 답을 내놓았다. 별 쓸모가 없다. 위대한 산업도시를 만들고, 철로를 놓고, 운하를 파고, 제국을 확장하고, 영국을 최고의 나라로 만든 것은 예술이 아니었다. 오히려 예술은 이런 성취를 가능하게 한 특질들을 약화시키는 것처럼 보였다. 예술과 오래 접하면 유약한 성격, 내성적 태도, 동성애, 통풍, 패배주의에 오염될 위험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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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널드의 말에 따르면 위대한 예술은 구름 잡는 이야기이기는커녕, 삶의 가장 깊은 긴장과 불안에 해법을 제공하는 매체다. (중략) 위대한 예술가의 작품을 보라. 아널드는 제안한다. 거기에서 (직접적이든 아니든) "인간의 잘못을 없애고, 인간의 혼돈을 정리하고, 인간의 곤궁을 줄이고자 하는 욕망"의 흔적을 발견하게 될 것이다. 모든 위대한 예술가들은 "세상을 자신이 처음 보았을 때보다 더 낫고 더 행복하게 만들고자 하는 갈망"에 사로잡혀 있다. (중략) 그들의 작품에는 현재의 상황에 대한 항의가 나타나기 마련이고, 이에 따라 우리의 시각을 교정하고, 아름다움을 인식하도록 교육하고, 고통을 이해하거나 감수성에 다시 불을 붙이도록 돕고, 감정이입 능력을 길러주고, 슬픔이나 웃음을 통하여 도덕적인 균형을 다시 잡아주려고 노력하기 마련이다. 아널드는 이런 태도의 핵심을 이루는 선언으로 자신의 주장을 마무리한다 - 예술은 "삶의 비평"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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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술가들이 어떤 식으로든 사회가 사람들에게 등급을 부여하는 방식에 문제를 제기하는 작품을 창조한 것도 놀랄 일이 아니다. 예술의 역사는 지위의 체계에 대한 도전, 풍자나 분노가 서려 있기도 하고, 서정적이거나 슬프거나 재미있기도 한 도전으로 가득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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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가는 사회에서 사람들을 바라보는 표준 렌즈, 즉 부와 권력을 크게 확대해 보여주는 렌즈를 인격의 특질을 확대해 보여주는 도덕적 렌즈로 바꾼다. 도덕적 렌즈로 보면 높고 강한 사람은 작아지며, 잊혀져 뒤로 물러나 있던 인물이 오히려 크게 보일 수 있다. 소설의 세계에서 덕의 움직임은 물질적 부와 아무런 관계가 없다. 부자이고 품행이 단정하다고 해서 곧바로 좋은 사람이 되는 것도 아니고, 가난하고 교육을 받지 못했다고 해서 곧바로 나쁜 사람이 되는 것도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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샤르댕이나 존스의 작품과 마찬가지로 쾨브케의 예술에도 무엇이 중요한가에 대한 지배적인 물질적 관념에 도전하는 태도가 자리 잡고 있다. 세 화가는 여름날 저녁의 하늘, 햇볕에 달구어진 얽은 벽, 환자를 위해 달걀 껍질을 까는 미지의 여자가 우리 눈이 보고 싶어 하는 가장 아름다운 광경에 끼지 못한다면, 우리가 존중하고 갈망하도록 배워온 많은 것의 가치를 의심할 수밖에 없다고 주장하는 것 같다. (중략) 일상생활을 묘사한 위대한 화가들은 제인 오스틴이나 조지 엘리엇처럼 세상에서 무엇을 존경하고 존중할 것인가에 대한 속물적 관념을 교정하는 데 도움을 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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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인공에 대한 동정심, 주인공과 동일시를 했기 때문에 생기는 자신에 대한 두려움은 비극을 감상한 뒤에 나오는 자연스러운 감정적 결과다. 비극 작품은 재앙을 피하는 우리의 능력을 과대평가하지 말라고 가르치며, 동시에 재앙을 만난 사람들에게 공감을 느끼도록 우리를 인도한다. (중략) 우리가 비극 작품을 통해 다른 사람들의 실패에 평소보다 훨씬 더 큰 관심을 가지게 되었다면, 그것은 그 작품을 통해 실패의 유래를 이해하게 되었기 때문일 것이다. 이런 맥락에서 더 많이 아는 것은 더 많이 이해하고 용서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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농담은 비판의 한 방법이다. 이것은 오만, 잔혹, 허세에 대하여, 미덕과 양식으로부터 이탈한 것에 대하여 불평을 하는 방법이기도 하다. (중략) 유머는 높은 지위에 있는 다른 사람들을 공격하는 데 유용한 도구일 뿐 아니라 우리 자신의 지위에 대한 불안을 이해하고 조절하는 데도 도움을 준다. (중략) 우리는 그런 유머를 보고 들으면서 세상에는 나만큼이나 질투심 많고 사회적으로 허약한 사람이 많다는 것을 확인하고, 나처럼 돈 문제 때문에 고민하며 잠을 이루지 못하는 사람들이 많다는 사실을 확인하고, 나처럼 멀쩡한 표정을 짓지만 속으로는 약간 맛이 간 상태인 사람들이 많다는 사실을 확인하고 안심한다. 또 나처럼 고통받는 이웃들에게 손을 내밀고 싶은 마음도 생긴다. 마음이 상냥한 만화가들은 지위로 인한 우리의 근심을 보고 우리를 조롱하는 것이 아니라 놀린다. 그들은 우리가 기본적으로 괜찮은 사람이라는 전제 하에 우리를 비판한다. 그들의 교묘한 솜씨 덕분에 우리는 마음을 열고 웃음을 터뜨리며 우리 자신에 대한 씁쓸한 진실을 받아들인다. (중략) 만화도 다른 예술과 함께 매슈 아널드가 말하는 예술의 정의, 즉 삶의 비평이라는 정의를 공유하고 있다. 그들의 작업은 권력의 불의와 더불어 사회 체제에서 우리보다 높은 곳에 있는 자들에 대한 우리의 지나친 선망도 교정하려 한다. 만화도 비극과 마찬가지로 가장 안타까운 인간 조건에서 출발하는 것이다.
- 불안 -
"혼자 있을 때면 늘 후회해요. 왜 그렇게 쓸데없는 말을 쏟아냈는지, 왜 그렇게 경솔하게 감정을 드러냈는지 부끄럽더라고요. 사람들이 저를 어떻게 생각할지 걱정도 좀 되고요. 그러다가 제가 한 말들을 되새기면서 그게 아니라고 계속 반박을 해요. 그때의 저와 지금의 제가 논쟁을 벌이다 지칠 때쯤이면 뭔가가 떠오르는 것도 같은데 그게 뭔지는 모르겠어요. 물음표와 느낌표가 번갈아가며 새겨지는 중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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같이 그림책을 읽고 이야기를 나누면서 어떤 변화가 생겼는지 묻자 당신이 기적적인 변화는 없지만, 이라고 말끝을 흐린다. 당신은 내 시선을 외면한 채 책장 앞으로 간다. 거기에 있는 책이 궁금해서인지, 내 대답을 피하기 위해서인지는 모르겠다. 나는 그냥 기다리기로 한다. 사실 답을 듣지 않아도 알 것 같다. 극적인 변화가 없어 실망이지만 그래도 전과는 뭔가가 달라졌다는 의미일 것이다. 그 뭔가가 무엇인지는 모르겠지만 재촉하고 싶지는 않다. 지금이 아니더라도 언젠가는 당신이 말할 것이다.
당신은 손가락으로 책등을 짚으며 제목을 읽다가 마음에 드는 책이 있으면 꺼낸다. 철학, 소설, 역사, 사회과학, 여행, 예술, 그림책 등등 다양한 분야의 책이 나왔다가 꽂힌다. 당신의 표정과 행동만으로 그 책을 어떻게 생각하는지 알 수 있다. 제목을 보고 책을 꺼낸 뒤에 마음에 들지 않으면 볼에 바람을 넣고 인상을 찡그린다. 빠른 속도로 책장을 넘기면서 고개를 젓기도 한다. 마음에 드는 책을 읽을 때에는 몸에 힘이 빠진다. 책장을 천천히 넘기고, 눈을 살짝 감아 문장을 음미한다. 진짜 마음에 들면 휴대폰으로 사진을 찍는다. 잊지 않고 시간이 날 때 읽기 위해서라고 한다. 그런데 읽은 건 하나도 없어요. 익살스럽게 말하고는 소리 내 웃는다.
당신이 책장에 있던 그림책 한 권을 들고 의자에 앉는다. 내게 어떤 책을 갖고 왔는지 묻더니 자기가 선택한 책도 같이 얘기하자고 한다. 나는 고개를 끄덕이며 그 책을 고른 이유에 대해서 묻는다. 『우리 집은』한테 미안해서요. 그때 당신은 가난한 사람들이 갖고 있는 분노와 좌절에 대해 말하면서 『우리 집은』이 비현실적인 이야기라고 했다. 당신의 미안함이 어디를 향하고 있는지 짐작이 간다. 주인공 가족처럼 부유하지 않은 이들에게 가졌던 편견이 내내 마음에 걸렸나 보다. 당신은 수줍게 웃으며 『다음 달에는』을 탁자 위에 올려놓는다.
아빠는 밤마다 약속했다. "다음 달에는 학교에 갈 수 있어!" 하지만 다음 달이 되면 학교 가는 날은 또 다음 달이 됐다.
한밤에 짐을 싼다. 아빠는 이불을 두고 침낭을 챙긴다. 아이는 아빠의 손을 잡고 어두운 거리를 나선다. 이사를 간 곳은 공사장 앞에 있는 봉고차다. 아빠는 내일부터 공사장으로 일하러 간다며 밤새 계속 훌쩍인다. 아이는 당분간 학교에 갈 수 없다. 아빠는 밤마다 다음 달에는 학교에 갈 수 있다고 약속하지만 다음 달이 되면 학교 가는 날은 또 다음 달이 된다. 아이는 친구들을 만나면 숨고, 아빠는 빚쟁이들을 피해 달아난다. 학교에 갈 수 없고, 음식도 별로고, 씻을 수 있는 환경도 열악하지만 아이는 아빠가 좋다. 아빠가 울지만 않는다면 다음 달이 아니라 다다다다다음 달에 학교에 가도 괜찮다.
『불안』을 읽는데 조지 엘리엇의 소설 『미들마치』에 대해 나왔어요. 엘리엇은 주인공인 도로시아 브룩의 지위와 아빌라의 성녀 테레사의 지위를 서두에서 비교했대요. 성 테레사는 좋은 집안에서 태어나 그 환경이 주는 행운 덕에 높은 지위를 얻었지만 도로시아는 불리한 사회적 조건과 자신의 잘못으로 그렇게 되지 못했다면서요. '도로시아도 성 테레사처럼 덕을 갖추었지만 지위의 상징에만 관심을 가지는 세상의 눈에는 그 덕이 보이지 않는다'는 대목을 읽는데 그날의 제가 너무 부끄러웠어요. 『우리 집은』에 대해 얘기하던 그날이요. 가난한 사람들은 모두 무능력하지 않고, 구제불능도 아니고, 감정조절장애를 가진 것도 아닌데 그렇게 몰아세웠잖아요, 제가.
당신은 가족을 위해 열심히 일하고, 마음껏 사랑을 표현하는 그들에게 미안하다고 한다. 경제적으로 넉넉하지 않아도, 사회에서 인정해주는 지위에 있지 않아도 지혜롭고 정이 많은 사람들을 제대로 보지 못했다며 반성한단다.
『다음 달에는』의 아빠는 멋진 사람이에요. 무슨 일 때문에 빚을 졌는지 모르겠는데 자식에게 사랑받고 있잖아요. 집도 잃고, 돈도 없는 아빠를 아이는 조금도 원망하지 않아요. 오히려 아빠를 걱정하면서 안타까워하지요. 그건 아이가 아빠에게 사랑을 많이 받고 있다는 증거예요. 아빠가 아낌없이 사랑을 주고 있기 때문에 아이 역시 아빠와 함께 있는 것을 좋아하고, 아빠를 위하는 거죠. 몇 번이나 다음 달에는 학교에 갈 수 있다는 약속을 지키지 못했지만 마침내 아빠는 그 약속을 지켰죠. 자신의 삶에 책임지기 위해, 사랑하는 아들을 지키기 위해 그가 얼마나 최선을 다하면서 살았겠어요. 그의 지위와 경제적 상황만으로 그를 평가할 수는 없어요. 도리어 더 존경해야 하죠. 열악한 환경에서 최선을 다해 일어서고 있잖아요. 그런 아빠가 있으니 아이도 선하고, 믿음직한 사람으로 자랄 거예요.
오늘 당신은 날이 서 있던 예전의 모습과는 다르다. 냉소적인 뒷이야기를 상상하지도 않고, 가난한 사람들이 갖고 있는 분노와 좌절에 대해서도 언급하지 않고, 자신을 책망하지도 않는다. 오늘은 무척 긍정적이네요,라고 하자 얼마나 갈지 몰라요, 라는 대답이 돌아온다. 이번에는 좀 오래가면 좋겠어요. 당신이 편안하게 웃으며 내가 갖고 온 그림책을 보여 달라고 한다.
양들이 왜 자기를 좋아하지 않는지, 돼지왕은 도무지 알 수가 없었어. 양들은 언제나 불만투성이였어. 이것도 투덜투덜, 저것도 투덜투덜
아, 이건 진짜…… 웃프다는 게 이런 거군요. 너무 웃긴데 또 너무 슬퍼요. 그림책에서 그림을 읽어야 한다는 게 어떤 건지 또 깨닫네요.
당신은 『돼지왕』에 대해 할 말이 많다고 한다. 제목에 '돼지'가 크고 '왕'이 작은 이유에 대해, 뒤표지에서 바코드를 들고 있는 양에 대해, 사랑을 받고 싶다면서 사랑을 주고받는 방법을 전혀 모르는 사람들에 대해, 권력자의 불합리한 명령을 거역하지 못하는 다수에 대해, 지위에 어울리는 자격에 대해, 공감과 소통에 대해, 많이 갖고 있어도 자기에게 없는 것을 탐내는 욕망에 대해, 우매하고 탐욕적인 정치인을 뽑았을 때 겪는 고통에 대해 말할 게 많은 그림책이라고 한다.
돼지왕은 자기가 하는 짓은 생각하지 않고 양들이 자기를 좋아하지 않는다며 불평만 해요. 그러다가 자기가 근사해지면 양들이 좋아할 거라고 생각하고, 새 옷을 많이 만들기로 하죠. 이 장면에서 무릎을 쳤어요. 화려한 새 옷을 입는다고 근사해지는 게 아닌데 돼지왕은 내면이 아닌 겉모습에만 치중하려 한 거죠. 더군다나 그 옷을 누가 만들겠어요. 한밤중에 불려 나와 밤새 자기들의 털을 깎아 옷을 만들어야 하는데 어떻게 양들이 돼지왕을 좋아할 수가 있겠어요. 체념과 피곤에 찌든 양들을 보는데 왜들 그렇게 사는지 안타깝더라고요. 그런데 또 너무 이해가 가요. 이 슬프고 억울하고 화가 나는 상황을 어찌나 재미있게 표현했는지 웃으면서 울 뻔했어요. 탐욕스럽고, 우매하고, 어떤 면은 너무 순수해서 분노를 사라지게 하는 돼지왕은 또 어떻고요. 돼지왕의 지위에 기대 자신의 위치를 견고하게 하려는 양도 웃프기는 마찬가지였죠.
당신은 숨은 그림 찾기를 하듯 『돼지왕』의 그림을 꼼꼼하게 살핀다. 곳곳에 재치 있는 장면이 너무 많다며 아이처럼 해맑게 웃는다. 성문 위에 양은 출입금지라는 뜻의 그림이 붙어있었는데 일을 시켜야 해서 양을 불러들일 때에는 돼지왕의 초상화로 가려져 있어요. 대단한 보물을 발견한 것처럼 당신이 뿌듯해한다.
한참을 얘기하고는 당신은 지위가 그 사람의 됨됨이를 말해주는 것은 아니라는 것을 새기겠다고 말한다. 오늘은 여기까지예요. 그날 내가 했던 말을 오늘은 당신이 한다. 우리는 잠시 시선을 맞추고 동시에 웃음을 터뜨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