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마다 각기 특정한 종류의 사람을 높이 평가한다. 또 기술, 억양, 기질, 성별, 피부색이 다르다는 이유로 어떤 사람들은 단죄하거나 무시한다. 그러나 이런 규정은 영원한 것도 아니고 보편적인 것도 아니다. 어떤 곳에서는 높은 지위를 얻을 수 있는 기술이나 자질이 다른 곳에서는 아무런 의미가 없거나 경멸의 대상이 되기도 한다. (중략) 이상적인 지위는 오래전부터 계속 바뀌어왔고, 앞으로도 계속 바뀔 수밖에 없다. 이런 변화 과정을 묘사하는 데 정치라는 말을 사용해볼 수도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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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 서양에서 사람들을 판단하고 지위를 분배하는 기준이 되는 지배적인 이상은 무엇일까? (중략) 2005년, 런던, 뉴욕, 로스앤젤레스, 시드니 성공한 사람이란 인정과 성별을 막론하고, 상업적 세계의 무수한 분야(스포츠, 예술, 과학 연구를 포함하여)의 어느 한 곳에서 자신의 활동(물려받은 유산이 아니라)을 통해서 돈, 권력, 명성을 축적한 사람을 가리킨다. 이들 사회의 기반은 '능력주의'라고 할 수 있기 때문에, 경제적 성취는 그럴 만한 '자격'이 있는 사람이 거둔 것이라고 이해한다. 부를 축적한 사람은 일단 주요한 미덕이 적어도 네 가지는 있다고 칭송을 받는다. 그 네 가지란 창의성, 용기, 지능, 체력이다. (중략) 이에 따라 경제적 실패 역시 능력에 따른 것으로 판단하기 때문에, 실업자는 전사들의 시대에 육체적으로 허약한 사람처럼 수치를 느끼게 되었다. 돈에는 윤리적 가치가 부여된다. 돈은 그 소유자의 미덕의 증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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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위와 관련된 근대의 이상에 대한 공격의 핵심은 이것이 우선순위를 엄청나게 왜곡하여, 물질적 축적 과정을 가장 높은 수준의 성취로 치켜세웠다는 것이다. 그러나 우리의 자아상을 진실되고 폭넓게 규정한다면, 물질적 축적은 우리 삶의 방향을 규정하는 여러 가지 가운데 하나에 불과할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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러스킨은 말한다. "삶, 즉 사랑의 힘, 기쁨의 힘, 감탄의 힘을 모두 포함하는 삶 외에 다른 부는 없다. 고귀하고 행복한 인간을 가장 많이 길러내는 나라가 가장 부유하다. 자신의 삶의 기능들을 최대한 완벽하게 다듬어 자신의 삶에, 나아가 자신의 소유를 통해서 다른 사람들의 삶에도 도움이 되는 영향력을 가장 광범위하게 발휘하는 그런 사람이 가장 부유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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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의 목소리 큰 사람들이 선험적 진리로 여기는 견해들이 사실은 상대적인 것이고 연구의 대상이 될 수 있다는 사실을 인식할 때 비로소 정치적 의식이 깨어난다. 그런 견해들은 자신만만하게 주창될 수도 있고, 나무나 하늘처럼 존재의 기본 구조에 속한 것처럼 보일 수도 있지만, 사실은-어떤 정치적 관점에 따르면-특정한 사람들이 특정한 현실적 또는 심리적 이해관계를 옹호하고자 만든 것이다. 이런 상대성을 받아들이기 어렵다면, 그것은 지배적인 믿음들이 자신은 태양의 궤도처럼 인간의 손으로 바꿀 수 없는 것이라고 공들여 주장해왔기 때문이다. 그들은 그저 자명한 것을 이야기할 뿐이라고 주장한다. 카를 마르크스의 유용한 표현을 빌리자면, 그런 믿음들은 이데올로기다. 이데올로기적 진술이란 중립적으로 말하는 척하면서 교묘하게 어떤 편파적인 노선을 밀어붙이는 진술이라고 규정할 수 있다. 마르크스가 보기에 이데올로기적인 믿음을 주로 퍼뜨리는 사람들은 사회의 지배계급들이다. (중략) 이런 관념들은 강압적으로 지배하는 것처럼 보이면 결코 지배를 할 수가 없다. 이데올로기적인 진술의 핵심은 높은 수준의 정치적 감각이 없으면 그 편파성을 발견할 수 없다는 것이다. 이데올로기는 무색무취의 가스처럼 사회에 방출된다. 그것은 신문, 광고, 텔레비전 프로그램, 교과서에서 자리 잡고 있다. 이곳에서 이데올로기는 자신의 편파적인, 어쩌면 비논리적이고 부당할 수 있는 방식으로 세상에 접근한다는 사실을 감추면서, 자신은 그저 오래된 진실을 이야기할 뿐이며, 오직 바보나 미치광이만이 여기에 반대할 뿐이라고 주장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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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념이나 제도가 "자연스럽다"고 생각할 때는 고통의 책임을 아무에게도 묻지 못하거나 고통을 겪은 당사자에게 묻게 된다. 그러나 정치적인 관점에서 보자면 우리가 아니라 관념이 문제일지도 모른다고 상상하게 된다. 수치감에 싸여 "나에게 무슨 문제가 있을까[여자라는 것일까/피부색이 검다는 것일까/돈이 없다는 것일까]?" 하고 묻는 대신 "나를 비난하다니 다른 사람들이 틀렸거나, 부당하거나, 비논리적인 것이 아닐까?" 하고 묻게 된다. 이것은 자신의 무죄에 대한 확신에서 나오는 질문이 아니라, 자연주의적인 관점이 이야기하는 것과는 달리 제도, 관념, 법은 어리석고 편파적이라는 인식에서 나오는 질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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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적 관점이 추구하는 것은 무엇보다도 이데올로기에 대한 이해다. 분석을 통하여 이데올로기가 자연스러운 것이 아님을 밝혀 그 뇌관을 제거하는 것이다. 그렇게 해야 어리둥절한 채 우울한 표정으로 대응하던 태도를 버리고, 눈을 똑똑히 뜨고 그 원인과 결과를 계보학적으로 파악할 수 있기 때문이다.
- 불안 -
"그래픽 아티스트 장 줄리앙의 전시회에 다녀왔어요. 작품마다 자유와 즐거움이 팡팡 터지더라고요. 그의 그림은 익살스러웠고, 선명했고, 생동감이 넘쳤죠. 이 사람은 자기가 하고 있는 작업을 진짜 즐기는구나, 내내 그 생각만 했어요.
전시장에 있는 설명을 보니 그는 수많은 실험적인 작업을 했대요. 하나의 방식으로 무언가를 시도했다가, 결실을 얻지 못하면 또 다른 방식으로 다시 시도하고 또 시도했다고 하더라고요. 그가 부럽고 존경스러운 한편 심술이 났어요. 대부분 성공을 했으니 하나가 실패해도 계속 도전할 수 있었던 거야, 혹평을 받아 그만둔 작업이 있을 거야, 실패한 경험이 많지도 않았고 힘들었던 시간이 길지도 않았을 거야, 그가 성공했기에 실제보다 더 크게 매력적으로 보이는 거야, 그의 성공에는 운도 크게 작용했을 거야 등등 질투가 만들어낸 의심은 계속 이어졌죠. 그래도 그의 열정과 노력은 부정할 수 없더라고요. 정말 이 일을 좋아해서 엄청난 시간을 쏟고 있으니 명성을 얻는구나, 인정했어요.
저에게는 남들의 반응과 상관없이 제가 진짜 하고 싶은 게 없어요. 한때는 있었던 것 같은데 오래가지는 못했죠. 긍정적인 결과가 없으니 지속하기가 힘들더라고요. 그래서 요즈음 그런 고민을 많이 해요. 간절했던 그 꿈은 진정 내가 원하는 거였는지, 사회가 정해놓은 기준에 맞춰 괜찮은 지위를 얻기 위한 도구였는지 말이죠. 타인의 관심이 없어도 할 수 있는 일, 실패해도 다시 도전할 수 있는 일, '온전한 나'로 살 수 있는 일, 진정한 아름다움을 추구하며 인간답게 살 수 있는 일을 저도 발견할 수 있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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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동안 편안 듯하더니 오늘 당신의 기분은 그리 좋아 보이지 않는다. 인상을 찡그리는 횟수가 잦아지고, 날이 서있다가도 한없이 연약한 표정으로 울상을 짓는다. 당신은 마음이 너그러워진 줄 알았는데 그게 아니었다며 실망과 절망 사이를 오간다. 사람이 그렇게 쉽게 변하지 않는다고 하자 당신은 자신의 약한 의지를 책망한다. 원하는 지위에 있다면 이 정도는 가볍게 넘어갈 수 있을 거라며 그렇게 살지 못하는 삶에 대한 푸념도 늘어놓는다. 어떤 능력을 인정받아 얼마만큼의 지위를 얻고 싶냐고 묻자 당신이 멈칫한다. 꽤 고민하고 망설인 끝에 잘 모르겠다고 한다. 그냥 선망과 존경의 대상이 되고 싶나 봐요. 당신은 이런 자신을 사람들이 한심하게 볼까 봐 걱정이라고 덧붙인다.
선망과 존경의 조건이 높은 지위와 경제력이냐고 묻자 그건 아니라고 부정한다. 지위가 높고, 부를 쌓은 이들 중에는 너무 형편없는 사람도 많다며 절대로 그런 이들을 부러워할 수도, 존경할 수도 없단다. 혹시 존경하는 사람이 있는지 묻자 당신이 예전에 살던 동네의 마을버스 기사라고 대답한다. 그동안 만난 기사들은 잔뜩 굳은 얼굴로 과도하게 화를 내거나, 운전 중에 혼잣말이지만 모두가 들을 수 있게 욕을 하거나, 잡담으로만 이루어진 통화를 하면서 운전을 했는데 그분은 아니었다고 말한다. 버스에 타는 사람들에게 반갑게 인사를 하고, 요금함 옆에 마련한 사탕을 건네고, 버스에서 내리는 사람들에게 좋은 하루를 보내라고 덕담을 하고, 승객을 살피며 안전을 최우선으로 한 기사였다고 설명한다. 사람들이 반응하지 않는데도 자신이 맡은 일을 성실하게 하면서 친절했던 그 기사를 존경한다고 말하고는 당신이 아, 하고 짧게 감탄사를 내뱉는다. 진짜 배워야 할 사람들을 놓친 채 허상만 쫓고 있었네요. 씁쓸하게 웃는 당신에게 그림책을 내밀며 진정한 챔피언에 대해 묻는다. 진정한 챔피언? 진정한 챔피언? 진정한 챔피언…… 생각을 정리하려는 듯 당신이 여러 번 제목을 중얼거린다.
아버지는 늘 말씀하셨지요. "압틴, 넌 당연히 우리 집안사람 모두의 자부심이 돼야 해. 트로피도 척척 받아 오고, 금메달도 주렁주렁 목에 걸어야 돼. 진정한 몰레스키, 진정한 챔피언이 되어야 한다고!"
몰레스키 집안사람은 모두 스포츠 챔피언이다. 집 곳곳에는 건장하고 다부진 체격을 지닌 가족들의 사진으로 가득하다. 사진 속 그들은 목에 메달을 걸고 있거나, 커다란 트로피를 들고 있거나, 최선을 다해 경기를 하고 있다. 누구 하나 웃는 사람이 없다. 모두의 눈썹은 한껏 올라가 있고, 양쪽 입꼬리는 아래로 향해 있다. 감격과 감동의 울음을 참는 건지, 경기를 너무 힘들게 해서 우승을 한 후에도 고통스러운 건지, 챔피언답게 강하게 보이고 싶은 건지, 다음 경기에서도 승리를 해야 한다는 부담 때문에 현재의 기쁨을 누리지 못하는 건지 그들은 영광의 순간에도 화가 난 것처럼 보인다. 이 대단한 몰레스키 집안에서 태어난 압틴은 다른 식구들과 아주 다르다. 운동을 잘하지 못하고, 챔피언이 되고 싶지도 않다. 다른 식구들처럼 입 위쪽에 점까지 없다. 압틴은 무거운 역기를 들고 힘을 과시할 때가 아니라 그림을 그릴 때 행복하다. 그런 압틴을 갓난아기일 때부터 훌륭한 운동선수로 만들려 애쓰던 식구들이 이제는 잔뜩 화가 난 얼굴로 압틴을 비난하고 압박한다. 심지어 아버지는 집안에 너 같은 아이가 태어났으니 조상님들께 용서를 빌어야 한다고까지 말한다. 압틴은 식구들을 실망시키고 싶지 않다. 식구들 모두가 행복하면 좋겠다. 압틴은 자기가 아는 방법을 다 써서 몰레스키 집안사람 모두를 행복하게 만들겠다고 마음먹는다.
몰레스키 집안이 우리 사회의 축소판인 것 같네요. 각자의 욕구와 개성은 고려하지 않고 획일적인 삶을 강요하잖아요. 아, 그래서 사진 속 그들이 다 그렇게 화난 표정을 지었나 보군요. 운동을 하고 싶지 않은데 몰레스키 집안사람이라면 당연히 스포츠 챔피언이 되어야 한다는 강압에 못 이겨서요. 누군가는 꽃을 키우고 싶었는지 모르고, 누군가는 유기동물을 돌보고 싶었을 수도 있는데 자기가 원치 않는 일을 하는 것도 모자라 거기에서 최고가 되어야 한다고 강요를 받은 거잖아요.
당신은 행복한 표정의 압틴과 잔뜩 주눅이 든 압틴을 오가면서 본다. 그러더니 불쑥 자기가 원치 않는 일에서 진정한 챔피언이 될 수 있는지, 혹시 되더라도 행복할 수 있는지 내게 묻는다. 내가 대답을 하기도 전에 그럴 수도 있겠지만 확률이 희박할 거라고 스스로 결론을 내린다. 그러니 사회가 원하는 이상적인 직업이 아니라 자신이 정말 원하는 일을 해야 한다면서 이번에는 압틴과 가족들을 비교한다. 가족들과 비교했을 때 압틴의 몸은 작아도 너무 작다. 그 크기는 물리적인 힘의 차이와 함께 가족 안에서의 위치도 보여준다. 눈썹이 위로 올라간 가족들과 달리 압틴의 눈썹은 아래로 처져 있고, 다양하고 엄청난 양의 음식을 먹는 아버지와는 달리 압틴은 적은 양의 채식을 한다. 늘 굳은 얼굴로 있는 가족들과는 달리 압틴을 그림을 보거나 그림을 그릴 때면 늘 웃고 있다.
제가 압틴과 같은 상황이라면 어떨지 상상했어요. 압틴은 자기가 좋아하는 게 뭔지 알았는데 저는 그것도 모른 채 살았을 것 같아요. 태어날 때부터 챔피언이 되어야 한다고 세뇌를 당했으니 그 기준에 못 미치는 저를 원망하고 증오했겠죠. 가족들이 옳지 않다고 판단하지 못한 채 수치심과 고통에 저를 닦달하면서요. 압틴은 가족들을 실망시키지 않고 행복하게 만들기 위해 자기만의 방법을 찾았는데 저는 그들의 뜻에 따르는 것밖에는 못했겠죠. 진정한 챔피언은 스포츠 대회에서 우승을 한 가족들이 아니라 그들 틈에서 자신의 길을 찾은 압틴이에요. 강압적인 분위기에 짓눌리지 않고 자기만의 방식으로 가족들을 기쁘게 해주려고 했죠. 어쨌든 사진 속 가족들을 행복하게 만들어주기는 했잖아요. 그 뒤에는 어떤 일이 벌어질지 모르지만요.
무슨 일이 생겼을까요? 뒷이야기를 예상해보라고 하자 경악하는 압틴의 아버지를 응시하며 당신이 빙그레 미소를 짓는다.
아버지의 표정으로 봐서는 고난이 시작될 거라 예상이 가는데 몇 번의 위기를 넘기다 보면 진정한 챔피언에 대한 가족들의 인식이 바뀌겠지요. 압틴은 가족들을 변화시킬 거예요. 다른 가족들에 비해 압틴은 육체적으로 약하지만 마음만큼은 무척 건강한 사람이거든요. 처음에는 한없이 나약하고, 소심한 것처럼 보였는데 그런 환경에서도 자신이 잘할 수 있고, 행복할 수 있는 일을 발견했잖아요. 너 같은 아이가 태어났으니 조상님들께 용서를 빌어야 한다는 얘기를 듣고도 가족을 미워하거나 원망하지도 않고요. 자기를 혐오하지도 않아요. 오히려 가족 모두가 행복해질 수 있는 방법을 찾고는 자신을 자랑스러워하죠. 시대와 환경에 따라 높이 평가되는 사람들이 변하듯이 이 집안에도 챔피언에 대한 정의가 바뀔 거예요. 그 시작이 압틴이겠죠. 곧 그는 진짜 자기를 찾을 거예요. 아니, 아니에요. 그런 집단 속에서도 '진짜 나'를 잃지 않았으니 압틴은 늘 자기 자신으로 살았던 거네요. 늘 남들이 부러워하는 이상적인 사람이 되고 싶어 '진짜 나'를 부정하는 저와는 달리요.
당신이 한쪽 입꼬리를 올린다. 마치 스스로를 비웃는 것처럼 보인다. 자신과 다른 삶을 꿈꾸며 너무 높은 기준을 세우고 있으니 매일매일이 무기력하다고도 한다. 무엇을 할 때 가장 행복한지, 자신의 강점이 무엇인지 열 개 이상을 기록해보라고 하자 당신이 눈을 크게 뜨고 열 개까지는 어렵다고 한다. 더 많다는 내게 말도 안 되는 소리라며 목소리를 살짝 높인다. 분명 갖고 있는 게 많으니 그걸 발견하고, 받아들이면 돼요. 너무 까다롭게 기준을 세워서 탈락시키지 말고요. 당신이 존경한다는 버스기사의 태도가 당신에게도 있어요.
내 말이 끝나기도 전에 당신이 어이없다는 듯 웃는다. 몇 번이나 고개를 저으며 헛웃음을 짓더니 집에 가서 천천히 생각해보겠다고 한다. 표정이 변하는 걸 보니 이미 많은 것들이 떠오른 모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