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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꿈의 떨림 Sep 20. 2020

<생각이 깊어지는 날> 허튼 생각

- 이런 날 그림책

<이런 날 그림책>의 '날'은 중의적인 의미를 갖고 있습니다. 어떠한 날(day)이나 경우를 의미하기도 하고 '나(나를, me)'라는 주체를 의미하기도 합니다. 그림책에 마음을 기대 울고 웃었던 기억을 당신과 나누고 싶습니다. 


허튼 생각, 브리타 테켄트럽 지음, 김서정 옮김, 길벗어린이 펴냄


나, L, H는 『허튼 생각』을 무작위로 펼쳤을 때 나오는 질문과 그림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었다. 재미있을 것 같아 내가 제안했고, 다들 그러자고 했다.



얘들은 왜 이렇게 멍청한 거야?
 
그림 속 인물이 초등학생처럼 보여 우리도 그때로 돌아가기로 했다.

나 : 멍청하다고 생각한 적은 없다.
       속이 좁고 이해심이 없다고 생각했다.
L : 역시 멍청하다고 생각하지 않았다.
      조금 유치했다.
H : 딱히 어떻다고 생각하지 않았다.


어린 시절, 어른에 대한 환상이 있었다. 첫째, 어른들은 푸근하고 너그럽고 이해심이 많다. 둘째, 내가 어른이 되면 웬만한 일에는 무뎌지고 강해져서 그들이 어떤 행동을 하든 상관하지 않을 것이다.


둘 다 착각이었다. 어른이라고 해서 마음이 넓지 않았다. 어떤 부분은 관대했지만 어떤 부분은 빡빡하고 옹졸했다. 나도 마찬가지였다. 어떤 부분은 무뎌지고 강해졌지만 어른이 되면 사라질 거라 기대했던 불안은 더 강화됐다. 주위의 어른들만이라도 제대로 분석했다면 환상을 품지 않았을 텐데 역시 어렸다. 살아보니 다 이해가 가고,  편해졌다는 어느 어른의 말을 순진하게 믿었다.


나와 비슷한 듯 다른 L과 이야기를 나누는 건 무척 흥미롭고 즐겁다. 그녀는 많은 이들의 가치와 관심사에 중점을 두지 않는다. 독특하고 고유한 자기만의 기준과 감성을 갖고 있어 나는 자주 그녀에게 감탄하면서 고개를 끄덕인다. 간혹 공감이 가지 않거나 의견이 다를 때가 있다. 그럴 때면 목소리가 높아지면서 긴장감이 도는데 결론 없이 대화를 끝낼 때면 자꾸만 그녀의 말을 곱씹는다. 집으로 가는 길에, 밥을 먹다가도, 잠을 자려고 누울 때면 어느새 그녀의 생각에 동의하고 있다.


H는 말수가 적다. 조용한데 강하다. 친해지면 달라진다. 『허튼 생각』에 대해서는 주로 L과 내가 말을 많이 했는데 짧게 던지는 H의 질문과 의견에 생각과 생각이 더해졌다. 멍청하다거나 유치하다고 느낀 적이 없었다는 H에게 친구들이랑 잘 지냈죠,라고 물었다. H는 부끄러운 듯 웃었다. 그녀라면 분명 그랬을 것이다.



내가 찾는 걸 발견할 수 있을까?
 
H : 발견하고 싶은 게 뭔지 알고는 있을까?
나 : 아…… 그냥 마음이 아프다.    
L : 눈을 가린 건 자의일까, 타의일까?


그림을 보자마자 멍했다. 머릿속은 정지인데 심장은 요동쳤다. 그림 속 아이들은 뭔가를 찾는 게 아니라 자신이 어디에 있는지조차 모르는 듯했다. 뭔가를 하긴 해야 하는데 이 상황을 어떻게 헤쳐나가야 할지 몰라 굳어있었다.


마음이 너무 아픈데 그게 뭔지 모르겠다는 내게 L은 아이들이 자의로 눈을 가린 건지, 타의에 의해 가려진 건지 궁금하다고 했다. 나는 타의에 의한 자의라고 했다. L은 이해가 가지 않는다는 듯이 고개를 갸웃하고는 무슨 뜻인지 물었다. 누군가가 눈을 가려야 한다고 했고, 나(그림 속 아이는 어느새 내가 되었다)는 거기에 수긍했다고 말했다. 그럼 타의는 누구인가요? 선생을 비롯한 다른 어른이라고 답했다. 소풍 때 했던 보물찾기가 생각났고, 그 게임의 규칙이 눈을 가리는 거라고 했다. 그럼 이제 안대를 벗으라고 하면 어떻게 할 건가요? L이 다시 물었다. 바로 벗지는 않을 거예요. 어려운 상황에서도 찾아야 할 것 같거든요. 세상은 호의적이지 않은데 안대를 벗으면 패배감이 들 거예요. 만약 제가 안대를 벗는다면 찾는 것도 그만둔다는 뜻이에요. 굳이 찾을 필요가 없다고 판단할 때 안대를 벗을 거예요.


나조차 납득할 수 없었다. 이게 진심인지, 곧 정정해야 하는 즉흥적인 발언인지 헷갈렸다. 극과 극인 나의 성향이 튀어나오자 머릿속이 뒤죽박죽 엉켰다. 재미있을 것 같아 제안한 놀이에 압박을 느끼는 중이었다. 정답이 없는데 정답을 찾아야 한다는 부담감이 얹어졌다. L과 H를 설득해야 한다는 이상한 사명감까지 들었다. 눈이 보이지 않고, 다리마저 흐릿한 이 상황이 삶인 것 같아요. 매번 좋은 환경이 제공되지 않을 테니 제게도 저런 시련이 닥칠 수 있잖아요. 그때 저는 포기하고 싶지 않아요.


그러면서 조지 프레더릭 워츠의 그림 <희망>을 얘기했다. 눈에 붕대를 한 여인이 한 줄밖에 남지 않은 하프를 연주하는 그림은 슬픔과 절망이 가득하다. 그런데 제목이 희망이다. 워츠의 <희망>까지 끌어들이면서 어떤 어려움이 닥치더라도 헤쳐나가고 싶다고 했다. 대부분 '~이고 싶다'와 '~인 것 같다' 등의 간절한 바람과 자신 없는 표현이었다. 이게 정말 내가 원하는 건지, 아니면 그래야 한다고 주입하고 있는 건지 갈피를 잡지 못하자 두서없는 말이 이어졌다. 결국 나한테 왜 그래요, 라며 울상을 지었다. 내 표정과 말투가 재미있었는지 L과 H가 웃었다. 그리고 L은 이 장면에 대한 자신의 느낌과 의견을 분명하고 솔직하게 표현했다. 집에 돌아와서도 나는 왜 이 그림이 불편했는지 내내 생각했다.    


그날, 내가 감지했던 건 깊숙한 곳에 숨긴 진심과 어떻게든 보지 않으려는 나였다. 마음의 밑바닥이 드러날 때마다 그것을 막으려 횡설수설했다.  


찾아야 할 게 뭔지 모른 채 아이들은 세상에 던져졌어요. 왜 찾아야 하는지, 뭘 찾아야 하는지 모르는데 세상이 그래야 한대요. 그런 제가 보여서 마음이 아팠어요. 왜 저 안대를 벗지 못할까요. 충분히 그럴 수 있는데 말이죠. 아이들의 다리가 불분명한 건 찾고자 하는 의지가 약해서예요. 자기가 정말 원하는 게 아니니까요. 그런데 사람들을 만족시키고 싶어요. 그게 뭔지 모르지만 어떻게든 찾고 싶어요. 당연히 찾을 수가 없죠. 그런데 이건 제 진심일까요?   



나도 할머니처럼 현명해질 수 있을까?

할머니가 모두 현명하나, 하는 의문에 현명한 할머니를 설정해서 이야기를 나눴다

나 : 큰 어려움 없이 늙는다면 가능하다.
L : 현명해지기 위해서는 이렇게 닳아야 하나, 싶어 답답하다.
H : 자신할 수 없지만 현명해지고 싶다.


여기에서의 현명함은 지식이 많은 똑똑함보다 너그러움일 것이다. 힘들어하는 젊은이를 다독이면서 품어주려면 내 삶이 평온하고 넉넉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어려움을 극복하는 과정에서 지혜가 생기지만 격한 시련 앞에서 인간은 어떻게 변할지 장담할 수 없다고도 했다. L이 환경결정론이네요,라고 말했다. 나는 격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몇 분 전만 해도 안대를 쓴 채 세상에 맞서겠다고 했는데 그것을 뒤집었다. 왓츠의 <희망>과 함께 어떤 고통이 닥치더라도 이겨내고 싶다고 해놓고 곧바로 고통이 닥치지 않게 해달라고 기원했다. 웃음을 참을 수 없었다.


우리는 각각 돌아가면서 책을 펼쳤고, 그렇게 세 개의 질문과 그림을 만났다. 정리되지 않은 감정과 사고가 이어지고 교차되는 과정은 아팠지만 확실히 즐거웠다. 고통과 쾌락의 언어를 나눌 수 있는 친구들이 있어 감사하다.


문득 당신의 생각이 궁금하다. 무작위로 책을 펼쳐 당신에게 내민다. 나지막한 당신의 목소리가 나를 깨운다.



왜 사람들은 모두 사랑받고 싶어 할까?



누군가 우리를 다른 삶으로 이끌어 갈까?



나는 왜 늘 벽에 부딪히지?
혹시, 벽은 내 머릿속에만 있는 걸까?



* 허튼 생각, 브리타 테켄트럽 지음, 김서정 옮김, 길벗어린이 펴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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