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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꿈의 떨림 Aug 23. 2020

<그렇기에 우리인 날> 그래봤자 개구리

  - 이런 날 그림책

<이런 날 그림책>의 '날'은 중의적인 의미를 갖고 있습니다. 어떠한 날(day)이나 경우를 의미하기도 하고 '나(나를, me)'라는 주체를 의미하기도 합니다. 그림책에 마음을 기대 울고 웃었던 기억을 당신과 나누고 싶습니다. 


그래봤자 개구리, 장현정 지음, 키다리 펴냄


내가 올챙이었던 그때, 나는 내가 누구인지 궁금하지 않았다. 내가 누구든 상관없었다. 나는 누구든 될 수 있다고 믿었기 때문이다. 언젠가는 하늘을 날 수 있다고 생각했다. 어른이 되면 우주의 질서를 바로 잡아 평화를 이루리라 다짐했다. 그게 꿈이나 목표가 아닌 과대망상이라는 것을 깨달으면서 뭐가 되고 싶다는 생각도 멈췄다.



하루하루 별 일 없이 살면 다행이었다. 점심시간에 같이 밥을 먹을 친구가 있으면 됐고, 수업시간 발표에 걸리지 않으면 행운이었다. 성적이 오르길 바랐지만 간절하지 않았다. 그래서 악착같이 공부를 하지 않았다. 공부를 잘하는 능력이나 비법도 없었다. 성실하게 학교를 다니고 규칙에 어긋난 행동을 하지 않았지만 학교 생활을 성실하게 하지는 않았다. 꿈도, 욕심도, 야망도, 요령도, 융통성도 없던 10대였다.  


하고 싶은 게 생기면서부터 정체성을 자각했다. 나는 누구인가에 대한 고민보다는 나는 왜 이렇게 못났는가에 대한 분노가 전부였다. 거기에 열등감과 질투가 더해졌다. 미움이 넘쳤고 인정받고 싶은 욕구가 컸고 실패에 대한 두려움이 강했다. 책임감에 짓눌려 다 놓고 싶다가도 존재감이 사라질까 봐 꾸역꾸역 일을 붙잡았다. 자존감은 바닥이었는데 자존심은 세서  아닌 척하거나 그런 척할  때도 많았다.  세상 고민을 혼자 다 떠안은 듯 무겁다가도 세상을 통달한 듯 냉소적이었다. 웃는 날이 훨씬 많았는데 우울한 날의 기억이 너무 강력했다.


정체성에 대한 고민은 지금도 진행 중이다. 나를 제대로 보려 할 때마다, 인정할 건 인정하려 할 때마다 열등감과 질투심이 방해한다. 자꾸만 나와  당신을 비교하면서 내게 없는 당신의 능력과 감성을 훔치고 싶다. 적자생존의 세상에서 내가 제대로 살아남을지 의문이고, 약육강식의 원리에 따라 나는 소멸할 것만 같다. 괜찮았는데 다시 또 아래로 가라앉고 있었다. 그때 위안이 된 그림책이 『그래봤자 개구리』다.         

                                                                                                                                                       

여기는 어디인지, 나는 누구인지, 앞으로 어떤 일이 펼쳐질지, 언제쯤 날 수 있을지 올챙이들은 궁금하다. 미래에 대한 설렘으로 가득하지만 먹이사슬의 세계에서 그들은 하위층이다. 그들을 위협하는 포식자들은  너무 많다. 개구리가 되어 힘껏 뛰어보지만 위협을 피하기에는 역부족이다. 아무것도 모르던 올챙이 시절에는 꽃길을 날아다닐 줄 알았는데 시간이 갈수록 아니라는 것을 깨닫는다.  세상이 암흑으로 뒤덮이는 그 순간, 개구리가 눈을 크게 뜬다. 그리고 큰소리로 외친다.



"그래! 나 개구리다!"



날아오르기는커녕 힘껏 뛰어봤자 거기서 거기인 개구리가, 위험 앞에서 힘없이 나동그라지는 개구리가, 거대한 힘에 질려 숨어 떨고 있는 개구리가, 그래 봤자 개구리가 자신의 존재를 알리는 장면은 통쾌하고 짜릿하다. '그래 봤자'라는 말에 대항하며 자신을  당당하게 외치는 개구리에게 박수를 보낸다. 엄청난 위험과 고통을 이겨내고 개구리로 성장한 올챙이에게 존재의 위대함과 숭고함이 느껴진다. 그런 그들에게 '그래 봤자'는 가당찮다.


타인의 시선에 맞추느라, 당신과 나를 비교하면서 좌절하느라, 나를 긍정하지도 나의 약점을 제대로 보지도 못했다. 내가 누구인지 궁금하다면서 스스로 어둠 속으로 들어가 부정에 부정만 더했다. 당신이 걸어온 지난한 시간을 보지 않은 채 단편적인 부분만 보고 부러워했다. 당신 역시 어둠에 갇혀 앞이 보이지 않던 날이 있었을 것이다. 누군가의 비난과 비웃음을 받고 스스로를 학대하느라 외롭고 무서운 시간도 보냈을 것이다.  무너질 듯 휘청거리는 자신이 마음에 들지 않을 때도 있지만 지금 여기에 두 발을 내딛고 있는 것만으로도 '그래 봤자'가 아닌 '그렇기에' 당신이다. 당신에게 질투가 아닌 응원을 보내는 것을 시작으로 나를 제대로 마주하려 한다. '그래 봤자'를 받아들이는  여유와 '그렇지 않음'을 증명하는 용기가 있으면 충분하다.      


* 그래봤자 개구리, 장현정 지음, 도서출판 키다리 펴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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