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전하고 자유롭고 싶습니다

- 『위험한 책』 X 『멋진 신세계』

by 꿈의 떨림



두려워도 포기할 수 없었던 자유



쫄보에 겁쟁이인 저는 잠들기 전이면 매일 기도를 했습니다. 불이 나지 않게 해 주시고, 강도가 들지 않게 해 주시고, 전쟁이 나지 않게 해 주세요.


종교를 불신했으면서 밤이 되면 알라, 예수, 부처 등등 아는 신을 다 찾으면서 누구라도 제 간절함을 들어주길 바랐죠. 정말 성실하게, 매일 밤마다 하루도 쉬지 않고 열심히 빌었습니다. 저만을 위한 기도를 하면 괘씸해할까 봐 힘든 사람들을 한 명 한 명 나열하면서 저는 이렇게 착한 아이예요,를 증명하려 했지요. 몇 년 동안 긴 긴 기도를 하다가 중학교에 입학할 즈음에는 제발 모두에게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게 해 달라로 바꿨어요. 학년이 올라갈수록 불, 강도, 전쟁 말고도 무서운 일이 많아졌는데 일일이 열거하기 힘들고 귀찮았거든요. 이 한 문장으로 요약하고는 제 자신이 얼마나 기특했는지 몰라요.


처음 기도를 한 나이가 열 살이었을 거예요. 뉴스에서 사건사고를 접한 후로 화재와 강도가 무서웠어요. TV에서 반영한 전쟁 영화를 본 다음에는 무서운 게 또 추가되었죠. 북한 관련 소식은 두려움으로 다가왔습니다. 어린 제게 뉴스는 심각한 후유증을 남겼습니다. 특히 혼자 사는 여자 집에 침입자가 쳐들어왔다거나, 홀로 집에 가는 여자를 납치했다는 류의 기사를 읽으면 밤에 잠이 오지 않았습니다.


그런 제가 학교를 졸업하고 스물여섯 살에 집을 나왔습니다. 아빠에게 무릎을 꿇고 엄마에게 사정해서 얻은 자유였지요. 처음에는 고시원에 있었어요. 다음에는 친한 언니와 같이 살았고, 그다음에는 혼자만의 생활을 했습니다. 반지하에서 살던 2년 동안은 밤에 불을 끈 적이 없었습니다. TV도 늘 켜놓았죠. 날마다 특별한 혜택과 놀라움이 쏟아지는 홈쇼핑 채널로요. 아침이면 피곤한 몸으로 일을 하러 갔고, 퇴근 후 집 앞 골목길로 들어설 때면 두려움에 떨었습니다.


엄마는 같은 서울 하늘 아래에 살면서 왜 집을 나갔느냐며 걱정과 불만을 쏟았습니다. 고3인 막내 딸보다 혼자 사는 큰딸이 걱정이라며 집 나간 딸에 대한 부끄러움도 함께 드러냈습니다. 집에 들어오라고 하고 싶은데 안 들어올 게 뻔하니 엄마는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했죠. 얼마나 답답했는지 천주교 신자인 엄마가 점을 보는 친구 분께 제 사주를 넘겼더라고요. 그분 말씀이 큰딸은 아빠와 너무 맞지 않아 한 집에서 살 수 없다고 했대요. 그래도 결혼해서 잘 살 테니 걱정하지 말라고도 했다네요. 그 얘기를 들은 후부터 엄마의 걱정과 불만이 조금 누그러지긴 했습니다.


맞아요. 저는 아빠와 도저히 못 살겠더라고요. 같은 공간에 있는 것만으로도 어색하고 불편하고 힘들었어요. 낡고 허술했던 그 집이 무섭기도 했고요. 거기에 자유롭지 못한 것도 한몫했지요. 둘째 동생과 한 방을 썼는데 저만의 공간이 절실해지더라고요. 무엇보다 부모님의 구속에서 벗어나고 싶었습니다. 어렸을 때부터 친구 집에 놀러 갈 때면 엄마의 허락을 받는 게 힘들었어요. 부모님은 집에 계시니, 남동생과 오빠는 있니, 집에 비디오가 있니? 엄마는 꼭 이 질문을 했지요. 부모님이 있으면 다 상관이 없는데 부모님이 없으면 오빠와 비디오 둘 중 하나라도 있으면 안 됐지요. 솔직히 부모님이 계시는데 왜 그 집에 가겠어요. 당연히 친구 집에 가지 못할 때가 많았죠. 거짓말을 하면 될 텐데 고지식하고 겁이 많은 저는 그것도 못 했습니다. 그랬던 지난날이 싫어서였을까요. 대학생이 된 이후에 변하기 시작했습니다. 학교를 가다가도 버스에서 내려 영화를 봤고, 학교까지 갔지만 강의실에 들어가지 않았고, 하루 건너 하루 술을 마시면서 자주 외박을 했습니다. 오늘 늦는다, 오늘 집에 못 간다 일일이 허락을 받는 게 싫더라고요. 드디어 자의식이 생긴 저는 자유가 절실했습니다.


그런데요, 집을 나와보니 알겠더라고요. 집에서 느꼈던 두려움과 불안은 아무것도 아니었다는 것을요. 참 이상한 게 가족들과 같이 살 때는 아무리 늦은 시각이어도 집 근처에 가면 안심이 됐거든요. 그런데 혼자 살 때는 집 앞이 더 불안했어요. 가족들과 같이 살 때는 잠들기가 힘들었지 한 번 잠이 들면 깨지 않았는데 혼자 살 때는 어렵게 잠들었고 새벽이면 자주 깼지요. 공과금을 비롯한 생활비는 아끼고 아껴도 부족했고, 집에 있을 때는 몰랐던 엄마 밥이 너무 먹고 싶었어요. 그런데 집에 들어가고 싶다는 생각은 눈곱만큼도 안 들더라고요. 어떻게 얻은 자유인데 이것을 포기할 수 있겠어요. 어디에서 누구를 만난다고 보고하지 않아도 되고, 눈치 보지 않고 외박할 수 있고, 언제든지 친구들을 불러 밤새 놀 수 있는데 어떻게 이걸 그만둘 수가 있겠어요. 그래서 찾아낸 방법이 새벽에도 시끌벅적한 번화가 근처에서 사는 거였죠. 이사할 때 1순위가 돈이 아닌 주변 환경이라는 말에 누군가는 저를 부잣집 딸로 보더라고요. 번화가 가까이에 살아도 불안했지만 아지트처럼 저희 집을 들락날락하던 친구들 덕에 귀찮으면서 나름 잘 지냈습니다.



『멋진 신세계』와 『위험한 책』 속 세계



소설 『멋진 신세계』와 그림책 『위험한 책』은 공통점이 있습니다. 작가가 영국인이고, 두 작품 모두 미래 사회를 그리고 있지요. 밝고 희망적인 미래가 아닌 우울하고 암담한 미래입니다. 둘 다 꽃과 책을 금지하고 있고요.


문명이 고도로 발달한 시대를 배경으로 한 『멋진 신세계』는 안전과 안정을 이룬 세계입니다. 원하는 것은 무엇이든 얻을 수 있고, 얻을 수 없는 건 원하지 않습니다. 늙지도 않고, 질병도 없습니다. 편안하게 살다가 두려움 없이 죽음을 맞이합니다. 철저한 계급 사회이지만 계층 간의 불만이나 갈등도 없습니다. 계급에 맞는 훈련과 교육을 통해 모두 자기 계급에 만족하면서 살고 있지요. 인간은 모두 실험실에서 인공부화가 됩니다. 가족이라는 개념도 없고, 출산의 고통도 없고, 인간관계로 인한 괴로움도 없습니다. 연인과 친구 관계(연인과 친구라는 개념이 있는지는 모르겠지만)는 한없이 가볍고 쿨합니다. 마음이 맞으면 얼마든지 섹스를 할 수 있고, 섹스 후에도 감정을 섞지 않습니다. 절대로 한 사람만을 사랑해서는 안 됩니다. 만인은 만인의 소유물이니까요. 약간이라도 우울하다 싶으면 알약인 소마를 먹으면 됩니다. 그러면 금세 기분이 좋아집니다.


자동차 왕 헨리 포드를 기준년으로 삼은 『멋진 신세계』의 배경은 포드 632년입니다. 혁명적인 생산 시스템을 통해 과학이 고도로 발전한 시대이죠. 이곳에서 포드는 '포드 님'이라 불리며 절대자가 되었습니다. 분량이 긴 소설이다 보니 시대적 배경, 사건, 인물의 심리 등이 치밀하게 묘사되었습니다. 반면에 『위험한 책』은 시대적 배경부터 인물의 심리와 사건 등이 세밀하지는 않습니다. 그림과 짧은 글을 통해 유추하고 상상해야 하죠. 인류 역사에서 꽃이 사라진 적이 없으니 미래의 어느 날이겠구나, 하고 짐작할 뿐입니다. 회색빛의 도시와 퀭한 눈의 사람들을 보면서 밝고 활기찬 시대는 아니구나, 판단하면 됩니다.


사람들이 사는 건물은 모두 똑같이 생겼습니다. 하나의 창문에 한 명의 사람만 보이네요. 모두 혼자 살고 있군요. 이곳 역시 가족과 친구의 개념이 없는 듯합니다. 얼굴에 생기는 없는데 외로워 보이지는 않습니다. 모두가 이렇게 살고 있고, 이 방법 외에는 생각한 적이 없으니 뭔가를 원하지도 않는 듯합니다.


출근길의 풍경은 유령이 사는 도시 같습니다. 모두들 똑같이 생긴 검은 우산을 쓰고 갑니다. 사람들의 표정은 하나같이 어둡습니다. 하늘에서 내리는 건 비인지, 먼지인지 모르겠는데 이 우중충한 도시를 더 우중충하게 하네요. 『멋진 신세계』는 쾌락과 행복이 가득한 세상이라면 『위험한 책』은 감정이 사라진 세상이라 할 수 있습니다.


색깔이 없는 이들 틈에서 주인공 브릭은 그나마 옅은 색을 갖고 있습니다. 그런데 생기라고는 찾아볼 수 없습니다. 무기력하고, 나약한 모습입니다. 그나마 브릭 맞은편에 있는 여자의 눈빛이 또렷합니다. 볼도 발그스름하고요. 하긴 어느 곳이든 남들과 다른 사람이 있죠. 여자의 등장은 여기까지이지만 책 너머 어딘가에서 꽃을 피우고 있으리라 믿습니다.



꽃과 책의 의미


책과 요란한 소리, 꽃과 정류 쇼크 - 이미 유아의 의식 속에는 이 조합이 멋지게 연결되어 있었다. 그리하여 이와 동일하거나 유사한 훈련을 2백 번 반복하면 양자의 결합은 도저히 분리할 수 없이 견고한 개념이 될 것이다. 인간이 결합시킨 것은 아무리 자연이라 할지라도 분리시킬 수 없다.

"아기들은 심리학자들이 말하는 책과 꽃에 대한 '본능적' 증오심을 가지고 성장할 것입니다. 영구 불변하게 심어준 조건반사인 것입니다. 그들은 평생 책이나 식물로부터 안전할 것입니다."

- 멋진 신세계 -


"왜 그것이 금서가 되었나요? 야만인이 물었다. 셰익스피어를 읽어본 인간과 만났다는 흥분으로 인해 그는 모든 것을 순간적으로 망각하고 있었다.
총통은 어깨를 움찔했다.
"낡았기 때문이지. 그것이 주된 이유일세. 이곳에서는 낡은 것은 전혀 쓸모가 없단 말일세."
"그것들이 아름다워도 그렇습니까?"
"특히 아름다운 것이면 더욱 그렇지. 아름다움은 매력적이거든. 그런데 우리는 낡은 것에 사람들이 매혹되는 것을 원치 않아. 사람들이 새로운 것을 좋아하기를 바라는 입장일세."

- 멋진 신세계 -


브릭은 도서관에서 일했습니다.
도서관에는 가끔 위험한 책들로 꽂혀 있었어요.

어느 날, 브릭은 어둑한 지하 서고 꼭대기 칸에서
"읽지 마시오."라고 표시된 책 몇 권을 발견했습니다.

그리고 숨어서 읽었지요.

그 책에는 브릭이 한 번도 본 적이 없는 것이 있었어요.
모양도 색깔도 더없이 아름다운 그것을 '꽃'이라 부른다고 되어 있었죠.

- 위험한 책 -




『멋진 신세계』와 『위험한 책』속 세상은 꽃과 책을 금지합니다. 『멋진 신세계』는 조건반사 훈련을 통해 낮은 계급의 아이들이 꽃과 책을 증오하게 만듭니다. 낡고 아름답기에 셰익스피어의 책은 금서가 되었지요. 『위험한 책』에서도 읽으면 안 되는 책이 있습니다. 그중 하나가 꽃에 관한 책입니다. 도서관에서 일을 하는 브릭은 그 책을 몰래 빼내 집으로 갖고 옵니다. 한 번도 본 적 없는 더없이 아름다운 그것을 본 후 브릭은 꽃을 찾으러 다닙니다. 작은 흔적이라도 찾고 싶어 수많은 거리를 헤매다가 도시 변두리 오래된 동네 고물상에서 먼지가 잔뜩 낀 꽃 그림을 발견합니다. 그림 뒷면에는 '씨앗'이라 부르는 게 있네요. 흙으로 덮고 물을 주라는 설명도 있고요. 흙이 없으니 브릭은 먼지를 긁어 모아 씨앗을 심습니다. 꽃을 알게 되면서 브릭의 얼굴에 감정이 생깁니다.


"내일 지구가 멸망하더라도 나는 오늘 한 그루의 사과나무를 심겠다."


우리나라에서는 스피노자가 했다고 하고, 외국에서는 마틴 루터가 남긴 말이라 하는데 정확한 사실은 아무도 모른다고 합니다. 확실한 건 스피노자가 한 말은 아니라고 하네요. 어쨌든 저는 어렸을 때부터 이 말이 싫었습니다. 지구가 멸망하는데 생명을 심겠다니요. 죽을 게 뻔한 상황에서 이게 말이 되나요. 이렇게 잔인하고, 무서운 짓을 사과나무에게 한다는 게 이해가 안 갔죠. 지금도 그때의 마음이 살짝 남아있지만 이젠 이 말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압니다. 내일 지구가 멸망하더라도 희망을 품고 할 일은 해야 한다는 거겠죠.


이 두 책을 보니 지구가 멸망하더라도 한 그루의 사과나무를 심겠다는 문장이 선명하게 다가왔습니다. 지구가 멸망한다고 하지만 멸망할지 안 할지 확실히 알 수 없고, 지구가 멸망하더라도 누군가는 살아날 수 있으니 희박한 확률이라도 희망을 가져야겠지요. 그러면서 든 생각이 왜 하필 사과나무였을까, 였습니다. 멸망한 지구에서 살아남으려면 튼튼하고 강력한 게 필요할 텐데 말이죠. 그러다가 꽃을 금지했던 이유와 같은 건 아닐까, 하고 마음대로 결론 내렸습니다. 멸망한 지구에서 싹을 틔우고 있는 사과나무를 본다면 살아남은 사람들은 혹은 새롭게 탄생할 인류는 척박한 환경에서도 꿈과 희망을 키울 겁니다.


권력자들이 책을 태우고, 금지시키는 이유는 일찍이 알고 있었지만 꽃은 늘 의문이었습니다. 과도한 감정 때문에 힘겨워하면서 어떤 부분은 바싹 말라버린 제게 꽃은 별 의미가 없었거든요. 그런데 나이를 먹다 보니 꽃과 나무가 좋아지더라고요. 싹을 틔우기 위해 저 연약한 게 얼마나 힘든 시간을 보냈을까, 생각하다가 울컥한 적도 있었지요. 인간의 감정을 차단하고, 꿈과 희망과 성장을 막아야 하는 사회에서 꽃은 위험할 수 있겠더라고요. 지식과 정보를 습득하고, 감정과 감성을 조율하면서 인간은 인간다워지니까요.


자유롭고 싶지만 희생하고 싶지는 않은……



『멋진 신세계』에서 가장 인상적인 인물을 꼽으라면 버나드 마르크스를 선택하겠습니다. 그는 최상위인 알파 플러스 계급이지만 키는 알파 계급의 표준치보다 8cm가 작고, 얼굴도 잘 생기지 않았습니다. 그는 늘 외모에 대한 열등감으로 인해 경멸당하고 있다는 두려움을 느낍니다. 버나드는 고립감과 함께 높은 자의식을 느끼며 이 사회에 회의를 품습니다.


그렇게 비참한 기분에 사로잡혀 있으면서도 레니나가 반 그램의 산딸기 선디를 먹으라고 억지로 권하자 버나드는 단호히 거절하는 것이었다.
“나는 그냥 나대로 있고 싶습니다. 울적한 나대로가 좋습니다. 아무리 즐거울지라도 타인이 되고 싶진 않습니다.”하고 그가 말했다.

(중략)

“아니, 진정한 문제는 내가 그렇게 될 수 없는 것이 어떤 이유에서인가 하는 것입니다. 아니 그보다 - 내가 그렇게 될 수 없는 이유는 너무나 잘 알고 있기 때문에 – 내가 혹시 그럴 수 있다면, 즉 내가 자유롭다면, 조건반사적 교육으로 노예화되지 않았다면 도대체 어떤 것이 되었을까 하는 의문입니다.”
“버나드, 당신은 지금 가장 끔찍한 이야기를 하고 있는 거예요.”
“레니나, 당신은 자유로워지고 싶지 않으세요?”

- 멋진 신세계 -


버나드가 자유를 얻기 위해 혁명을 일으키지 않을까, 기대했는데 그는 제 예상과 전혀 다른 인물이었습니다. 그의 냉소적인 태도는 자신의 세계에 대한 의심보다는 주류에 속하고 싶지만 그렇게 하지 못하는 분노에 가까웠습니다. 물론 소마에 의지하지 않고 스스로의 힘으로 시련을 이겨내고 싶다는 열망을 갖기도 하고, 고통을 동경한 적도 있지만 딱 거기까지입니다. 막상 현실로 다가왔을 때, 버나드는 참으로 찌질하고 비겁하더군요. 그런 버나드를 욕하기에는 너무 이해가 갑니다. 그의 울부짖음이 너무 생생해서 이건 그의 고통인지, 저의 고통인지 헷갈립니다.



통제받지만 안전한 삶 vs 고통이 따르지만 자유로운 삶



자유와 안전이 매번 공존할 수는 없습니다. 지금의 민주주의를 얻기 위해 수많은 사람들이 희생했고, 지금도 자유를 얻기 위해 투쟁하는 사람들이 많이 있습니다. 자유 뒤에는 책임이 뒤따르는데 책임은 회피하면서 자유만을 원하기도 합니다. 그로 인해 크고 작은 문제들이 끊임없이 발생합니다.


『멋진 신세계』가 사람들의 자유를 뺏고 인간을 조작하는 데에는 그만한 이유가 있습니다. 무스타파 몬드 총통과 존의 대화를 읽다 보면 대체 무엇이 옳은 건지 헷갈립니다. '기술의 과도한 발전이 가져올 위험을 경고한 반유토피아 소설'이라는 설명에 고개를 끄덕이지만 늙지도 아프지도 불행하지 않다면 좋지 않을까, 하는 생각도 듭니다. 멋지게 '불행해질 권리를 요구'하고 싶지만 그게 어디 쉽나요. 문명세계에 환멸을 느낀 존처럼 나이를 먹어 추해질 권리, 매독과 암에 걸릴 권리, 먹을 것이 떨어지는 권리, 이가 들끓을 권리, 내일 무슨 일이 일어날지 몰라서 끊임없이 불안에 떨 권리, 장티푸스에 걸릴 권리, 온갖 표현할 수 없는 고민에 시달릴 권리를 요구하고 싶지만 쫄보에 겁쟁이인 저는 그 권리를 사양하고 싶네요.


사실 『멋진 신세계』의 사람들은 자기들이 통제받고 있는지 모르잖아요. 『위험한 책』의 사람들은 꽃을 모르기 때문에 꽃에 대한 열망이 없잖아요. 그렇다면 통제받더라도 안전한 게 괜찮지 않을까요? 책임지지도 못할 자유 때문에 위협적인 일들이 일어나는 것보다는 그 편이 좋을 듯한데요. 인간적인 감정 때문에 상처 받고 힘들다면 감정이 사라져도 나쁘지 않을 것 같은데요. 근데 이러는 제가 참 싫네요.


"얘기를 들어보면 결혼 전에 친구들과 음주를 많이 즐겼는데 결혼 후에 답답하지 않으세요?"


얼마 전에 L이 이런 질문을 했습니다. 저는 전혀 답답하지 않다고 대답했습니다. 놀만큼 놀아서 미련이 없다고 했지요. 물론 어디까지나 제 기준에서의 '놀만큼 놀았다'입니다. 겁이 많아 매사 순종적이던 제가 할 수 있는 용기와 객기를 그때 다 부렸거든요. 사교적이거나 활동적이지 않은 제가 가장 활발하게 교류했던 10여 년이었기에 미련은 없더라고요. 다행히 남편인 조가 술을 좋아해서 일주일에 한 번 이상은 꼭 음주를 즐깁니다. 집에 가는 길을 걱정하지 않아도 되니 더 좋지요. 결혼을 하면서 친구들과의 물리적 거리가 멀어졌고, 나이까지 먹으니 그때처럼 못 놀겠더라고요.


만약 집을 나오지 않았다면 어땠을까, 상상하니 그건 후회했을 것 같더군요. 부모님과 함께 살았다면 분명 안정적이고 순탄한 삶을 살았을 거예요. 월세, 공과금 등을 걱정할 필요 없이 돈도 착실하게 모았겠죠. 술에 취해 미친 척도 덜 했을 거고, 아찔한 순간들도 피했겠죠. 결혼도 일찍 했을 수 있어요. 엄마는 제가 어렸을 때부터 스물일곱 살에 결혼해야 한다고 당부했어요. 스물세 살에 결혼한 엄마는 제가 너무 어린 나이에 결혼할까 봐 걱정하면서 스물일곱을 제시했죠. 어렸을 때부터 이번 가족은 어쩔 수 없지만 스스로 가족을 만들지 않으리라 다짐한 제게 스물일곱 살의 결혼은 상상할 수 없었죠. 그런데요, 부모님과 같이 살았다면 저는 그즈음에 결혼했을지 몰라요. 부모님의 잔소리에서 해방할 수 있는 기회이니까요. 그리고 계속 그 얘기를 듣다 보면 세뇌가 될 테니까요. 엄마를 통해 들어온 선자리에서 만난 남자와 결혼해서 살았을지 몰라요. 제가 만났던 남자들과는 다르게 어른들이 맺어준 남자이니 안정적일 테니까요.


그런데 저는요, 겉으로는 순종적이지만 마음속은 늘 반항심으로 가득했습니다. 고분고분 네네, 하다가도 한 번 아니다 싶으면 매정했지요. 그러니 일찍 결혼해서 살았다면 분명 힘들었을 거예요. 나는 대체 누구인가를 끊임없이 물으면서 후회를 하다가, 부모를 원망하다가, 새롭게 꾸린 가족을 미워했겠죠. 안정적인 환경을 깰 용기도 없으면서 끊임없이 자유를 그리워하면서요. 집을 나와 혼자 생활하고, 사회생활에 치이고, 인간관계에 부딪치면서 그나마 문제 해결 능력이라는 게 생겼는데 집을 나오지 않은 스물일곱 살의 저라면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한 채 소극적인 태도로 살다가 이 나이가 됐겠죠. 겉으로는 네네, 하지만 속으로는 미움을 쌓고 쌓으면서요.


아빠에게 무릎을 꿇고 엄마에게 사정하면서 집을 나왔을 때 진정한 자유가 이거구나, 싶었습니다. 월급도 제가 관리를 했으니 부자가 된 기분이었죠. 그런데 아끼고 아껴도 카드빚에 허덕였습니다. 밤이면 누군가가 침입하지 않을까, 두려웠고요. 매일 밤마다 술을 마시고, 친구들과 왁자지껄 웃고 떠들다가도 집에 돌아오면 피곤과 허무가 몰려왔습니다. 술에 취해 미친 짓도 많이 했고, 부끄러운 행동도 반복했습니다. 이렇게 무사히 있다는 게 감사할 정도로 지우고 싶은 날들과 아찔한 날들도 많았습니다.


그런 일을 겪으면서 부모에 대한 원망과 미움이 이해와 감사로 바뀌더라고요. 집을 나오지 않았다면 가족에 대한 원망이 더 커졌을 거예요. 혼자 살기 시작하면서 아빠와 엄마도 힘들었겠구나, 그래도 두 분 덕에 내가 잘 먹고 잘 살고 있구나를 깨달았죠. 동생들에게 미안함과 고마움도 느꼈고요. 불편함과 어색함은 여전하지만 그래도 집을 나왔기에 가족에 대해 다시 생각할 수 있었습니다. 친구들이 있어 좋다는 사실도 진심으로 느꼈습니다. 싸우기도 하고, 속상하기도 했지만 그들 덕분에 유쾌하고 즐거운 시간을 보냈습니다. 무엇보다 더 놀았어야 하는데, 라는 아쉬움과 후회가 없습니다. 제 기준에서 저는 놀만큼 놀았으니까요.


그때와 비교하면 지금 저는 무척 안정적입니다. 10년 정도 납부한 보험을 해지할 정도로 카드빚에 쩔쩔매던 과거와 달리 통장에 돈도 있어요. 아주 적은 금액이지만 마이너스 인생만 살던 제게 이 돈은 무척 든든한 금액이죠. 늦은 시각에 집에 올 때면 부담 없이 부를 남자도 있고, 그 남자와 자주 술잔을 기울이며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눕니다. 수입은 거의 없지만 마음이 맞는 L과 일을 하고 있어 편안합니다. 제 삶에 이토록 자유롭고 안정적인 날은 없었습니다. 너무 자유롭고 안정적이어서 발전도 없지만요. 하나를 얻으면 하나를 잃는다는 게 이런 건가 싶어요.



안전과 자유, 둘 다 필요합니다.



글이 이렇게 길어질 줄 몰랐습니다. 하고 싶은 이야기가 많아서 그랬지만 결론을 내릴 수 없었습니다. 통제받지만 안전한 삶과 고통이 따르지만 자유로운 삶, 둘 중 어떻게 하나만 고를 수 있겠어요.


얼마 전만 해도 멋지고 당당하게 불편을 요구하면서 자유를 달라 말하는 사람이 되고 싶었습니다. 어떤 일이 있어도 인간다운 삶을 포기하고 싶지 않았습니다. 어딘가에 있을 꽃을 찾아다니는 사람이 되고 싶었고, 척박한 환경에서도 씨앗을 심고 싶었습니다. 그런데 주제 파악을 하면서 저는 그런 사람이 못 된다는 것을 알게 됐습니다. 버나드처럼 평온한 환경에서는 세상의 부조리를 비판할 수 있지만 고난이 닥치면 비굴해지는 인간이 바로 저거든요. 브릭처럼 있을지 없을지 모르는 꽃을 찾아 헤맬 만큼의 끈기도 없고요. 그래서 위대한 사람이 되는 것보다 작품 속의 세상처럼 극단적인 상황이 닥치지 않기를 바라기로 했습니다.


부디 우리에게 주어진 자유를 함부로 사용하지 않기를, 모두에게 평화와 자유가 주어지기를 오랜만에 기도를 해야겠습니다. 종교는 없지만 신을 부정하지는 않으니까요.

나를 절망의 바닥 끝까지 떨어지게 하소서
잊고 살아온 작은 행복을 비로소 볼 수 있게
겁에 질린 얼굴과 떨리는 목소리라 해도
아닌 건 아니라고 말하는 그런 입술을 주시고
내 눈물이 마르면 더 큰 고난 닥쳐와 울부짖게 하시고
잠 못 이루도록 하시며
내가 죽는 날까지 내가 노력한 것 그 이상은
그저 운으로 얻지 않게 뿌리치게 도와주시기를

거친 비바람에도 모진 파도 속에도
흔들림 없이 나를 커다란 날개를 주시어
멀리 날게 하소서 내가 날 수 있는 그 끝까지
하지만 내 등 뒤편에서 쓰러진 친구 부르면
아무 망설임 없이 이제껏 달려온 그 길을
뒤돌아 달려가 안아줄 그런 넓은 가슴을 주소서

- 노땐스, 기도 -



* 위험한 책, 존 라이트 글, 리사 에반스 그림, 김혜진 옮김, 천개의바람 펴냄

* 멋진 신세계, 올더스 헉슬리 지음, 이덕형 옮김, 문예출판사 펴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