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마음 약한 고슴도치 』 X 『필경사 바틀비』
안 하는 편을 택하겠습니다.
"시간이 다 되었네. 자네는 여기를 떠나야 해. 여기 돈이 있네. 미안하네만 자네는 가야 하네."
그가 등을 돌린 채로 대답했다.
"그러지 않는 편을 택하겠습니다."
(중략)
"왜 아직 돈에 손도 대지 않았지?"
나는 전날 저녁에 돈을 놓아둔 곳을 가리켰다.
그는 아무런 대답도 하지 않았다.
이제 나는 그에게 가까이 나아가면서 벌컥 성을 내고 다그쳤다.
"여기를 떠날 텐가 말 텐가?"
"떠나지 않는 편을 택하겠습니다."
"않는"을 살짝 강조한 대답이었다.
- 필경사 바틀비 -
나는 대체로 바틀비와 그의 태도를 존중했다. 가엾은 친구로군! 나는 생각했다. 그는 악의가 없어. 무례하게 굴려는 의도가 없는 건 분명해. 그의 용모를 보면 그의 기행들이 본의가 아님을 충분히 알 수 있지. 그는 내게 유용한 사람이야. 나는 그와 잘 지낼 수 있어. 내가 해고하면 그는 아마 덜 관대한 고용주를 만나겠지. 그러면 그는 무례한 취급을 받을 것이고, 어쩌면 굶어 죽도록 비참하게 내몰릴지도 몰라. 그래. 나는 여기서 달콤한 자기 승인을 값싸게 획득하는 거야. 바틀비의 친구가 되어주고, 그의 별난 옹고집에 장단을 맞춰준다고 해서 손해 볼 것은 없으니까. 그러면서 나는 궁극적으로 내 양심에 달콤한 양식이 될 것을 내 영혼에 비축하는 거지. 그러나 이런 내 기분이 불변하는 것은 아니었다. 간혹 바틀비의 소극성 때문에 신경질이 났다.
- 필경사 바틀비 -
그의 명이 길어서, 내 사무실을 계속 점유하면서 내 권위를 부인하고, 방문객들을 당혹케 하고, 나의 직업적 명성을 훼손하고, 사무실 전체에 어두운 그림자를 드리우고, 의심할 바 없이 하루에 오 센트밖에 쓰지 않으면서 저축한 돈으로 최후까지 연명할 것이라는 생각, 그리고 결국은 아마도 나보다 오래 살아서 종신 점유를 이유로 들어 내 사무실의 소유권을 주장할 것이라는 생각이 나를 엄습했다. 이 모든 음울한 예상이 점점 더 내 마음에 쇄도했고, 친구들은 내 사무실의 유령에 대해 끊임없이 잔인한 소견을 나에게 들이댔다. 그런 이유들로 내게 큰 변화가 생겼다. 나는 모든 능력을 총동원해서 이 견딜 수 없는 악령을 영원히 제거하기로 했다.
- 필경사 바틀비 -
안 하는 것을 택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