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 하는 편을 택하고 싶은데 마음뿐입니다

- 『마음 약한 고슴도치 』 X 『필경사 바틀비』

by 꿈의 떨림




저만 그런 건 아니죠?



그런 적 있나요? 피해자는 나인데 가해자가 된 것 같은 기분이 들 때요. 상대방의 요구대로 해주고 해주고 해 주다가 도저히 안 되겠다 싶어 미안함을 잔뜩 담아 거절을 했는데 내가 너무 냉정한 건 아닌가, 하는 죄책감이 들 때요. 몇 번을 망설이다가 도저히 안 되겠다, 싶어 결정한 건데 속 좁고 인내심 없는 인간이 된 것 같아 변명 아닌 변명을 하면서 씁쓸했던 경험, 한 번쯤은 있죠?


저는 좀 많습니다. 어렸을 때는 상대방의 부탁과 요구를 거절하면 안 되는 줄 알았어요. 착해서 그런 건 아니고요, 거부하는 방법을 몰랐어요. 나쁜 아이로 보일까 봐 걱정도 됐고, 상대방의 힘에 눌리기도 했고요. 거절한 후에 찝찝한 것보다는 마음에 들지 않아도 그들의 요구를 들어주는 게 편했습니다. 도저히 할 수 없을 때에는 사정하듯이 안 된다고 했죠. 그래 놓고 내가 잘못한 건 아닌가, 자책을 했습니다.


성인이 되면서 거절하는 횟수가 늘긴 했습니다. 만날 때마다 매번 뭔가를 사달라던 박, 아무 대책 없이 제가 혼자 살고 있는 지하 단칸방에서 같이 살자던 전, 술값 한 번 내지 않으면서 매번 술을 마시자던 정, 밤마다 불러 똑같은 고민을 되풀이하던 김 등등에게 안 된다고 하고는 내내 찝찝했습니다. 그동안 할 만큼 했으니 괜찮다고 스스로를 위로하기도 했고, 그들이 뻔뻔하다며 혼자 화를 내기도 했고, 어차피 이렇게 된 거 할 수 없다며 한숨을 쉬었지만 또다시 그들이 원하는 대로 했죠. 오해는 마세요. 마냥 호구는 아니어서 도저히 안 되겠다 싶으면 거절했어요.


지금도 후회하는 건 멋있게 거절하지도, 흔쾌히 수락하지도 못한 거예요. 그들의 요구대로 했지만 마지못해 한다는 티를 감추지 못했거든요. 그들의 요구를 거절할 때에는 설득력이 떨어지는 핑계를 대면서 여지를 남겼지요. 가끔은 참고 참고 참다가 과하게 감정을 표출하기도 했고요. 요구를 들어줄 수 없는 이유를 논리적으로 설명할 수 없다면 '싫어' 한 마디만 하면 됐는데 그걸 못해서 피해 다닌 적도 있어요.


『필경사 바틀비』의 바틀비처럼 "안 하는 편을 택하겠습니다"라고 말하지 못하고 『마음 약한 고슴도치』의 고슴도치처럼 시키는 대로 하고는 힘들어하던 그때가 떠오릅니다.



답답한 고슴도치와 놀라운 바틀비


집에서 멀리 떨어진 곳에서 자라는 블랙베리를 보기 위해 고슴도치는 날마다 먼 길을 걷습니다. 잘 익으면 맛있게 먹으려고요. 드디어 블랙베리가 다 익었습니다. 보석처럼 반짝이는 블랙베리를 먹으려는 순간, 까마귀가 날아와 외칩니다. 이렇게 큰 블랙베리는 사진을 찍어서 증거로 남겨야 하는데 뭐 하는 거냐며 윽박지르네요. 사진기는 집에 있다고 하니 블랙베리를 들고 빨리 집으로 가라고 합니다. 까마귀의 호통에 겁에 질린 고슴도치는 까마귀가 빌려준 수레에 블랙베리를 싣고 집으로 향합니다. 수레는 너무 무겁고, 돌에 바퀴는 부딪치고, 블랙베리는 덜컹거립니다. 이것을 본 여우가 소리를 지릅니다. 짓이겨지고 있으니 열매를 조심조심 들어야 한다면서요. 고슴도치는 블랙베리를 머리에 이고 조심조심 비틀비틀 나아갑니다. 이번에는 부엉이가 등이 다 망가진다면서 잔소리를 합니다. 부엉이의 뜻에 따라 고슴도치는 블루베리를 땅바닥에 내려놓고 굴립니다. 그러자 이번에는 족제비가 뭐라고 하네요.


바틀비는 변호사인 '나'의 사무실에서 일하는 필경사입니다. 필경사란 복사기가 없던 시대에 필사를 하고 글자 수대로 돈을 받던 직업이죠. 변호사가 처리할 서류 작업과 심부름도 대신했다고 합니다. 변호사인 '나'는 부자들의 채권이나 저당권, 등기필증을 다루는 일을 합니다. 이 일이 바빠 추가 인력이 필요해지자 '나'는 바틀비를 고용합니다. 바틀비는 놀라울 정도의 분량을 필사합니다. 쾌활과는 거리가 먼 묵묵히, 창백하게, 기계적으로요. 필사를 한 후에는 자신이 쓴 필사본이 정확한지 검증해야 합니다. 그런데 바틀비는 단호하게 말합니다.


안 하는 편을 택하겠습니다.

바틀비는 검증뿐 아니라 다른 일도 안 하는 편을 택하겠다고 합니다. 우체국에 다녀오라고 해도, 옆방에 있는 직원 니퍼스를 불러오라 해도, 사무실에서 살고 있는 것을 알게 된 '나'가 나가 달라고 해도 바틀비는 "안 하는 편을 택하겠습니다"라는 말만 합니다. 심지어 필사도 안 하겠다고 하는군요.


"시간이 다 되었네. 자네는 여기를 떠나야 해. 여기 돈이 있네. 미안하네만 자네는 가야 하네."
그가 등을 돌린 채로 대답했다.
"그러지 않는 편을 택하겠습니다."

(중략)

"왜 아직 돈에 손도 대지 않았지?"
나는 전날 저녁에 돈을 놓아둔 곳을 가리켰다.
그는 아무런 대답도 하지 않았다.
이제 나는 그에게 가까이 나아가면서 벌컥 성을 내고 다그쳤다.
"여기를 떠날 텐가 말 텐가?"
"떠나지 않는 편을 택하겠습니다."
"않는"을 살짝 강조한 대답이었다.

- 필경사 바틀비 -


답답할 정도로 남들의 요구를 거절하지 못하는 고슴도치와 놀라울 정도로 자기주장을 굽히지 않는 바틀비, 저는 이 둘처럼 되지 않는 편을 택하려 합니다.



고슴도치이기도, 바틀비이기도,

화자인 '나'이기도 합니다



고슴도치와 바틀비처럼 되지 않겠다고 했지만 제 안에는 바틀비와 고슴도치가 있습니다. '상황'보다는 '사람'에 따라 달라지더라고요. 남들의 말에 순응하면서 따랐던 순간에도 부모님 말은 죽어라 듣지 않았습니다. 저를 위한 얘기인데도 가족의 목소리에는 귀를 막은 채 고개를 저었습니다. 좋은 말인데 듣기 싫었고, 옳은 말인데 부정했습니다. 반대로 타인이 가하는 부당함은 옳고 그름을 따지지 않고 무조건 받아들였습니다. 이게 아닌데 싶었지만 바로 뿌리치지 못했습니다. 질질 끌고 끌다가 원치 않은 방법으로 원하는 결과를 얻기도 했지요.


어느 순간부터 『필경사 바틀비』의 '나'와 비슷해집니다. 타인에 대한 순수한 배려심과 이해심도 있지만 선민의식도 갖고 있습니다. 욕심 없이 누군가에게 도움을 주기도 하지만 근사한 사람으로 보이고 싶어서, 자기만족을 위해서, 그 사람이 필요해서, 벌을 받을까 두려워서 그런 적도 많습니다. 냉정해질 때면 마음을 엄청 졸입니다. 이렇게 해도 되는 건지, 내가 너무 매정한 건 아닌지 자책하면서 저 자신에게 변명을 늘어놓습니다. 너그럽고 이해심 많은 사람이고 싶고, 그런 면이 있다고 생각하는데 옹졸하고 야박한 제가 나올 때면 자책과 자기 합리화를 번갈아가며 합니다.


누군가는 화자인 '나'를 자본주의 사회 계급에 물든 위선자라 하더군요. 월 스트리트에서 잘 나가는 변호사로 일하고 있고, 정의를 위한 변론이 아닌 부자들의 재산과 관련된 일을 하며, 자기 자랑과 직원을 대하는 자세 등을 통해 그를 이렇게 정의했습니다. 물론 곳곳에 그의 특권 의식과 잘난 척이 보이지만 저는 그렇게까지 '나'를 몰고 가고 싶지는 않습니다. 어떤 부분은 그를 옹호해주고 싶어요. 아무래도 그에게서 제 모습을 발견했기 때문이겠죠.

나는 대체로 바틀비와 그의 태도를 존중했다. 가엾은 친구로군! 나는 생각했다. 그는 악의가 없어. 무례하게 굴려는 의도가 없는 건 분명해. 그의 용모를 보면 그의 기행들이 본의가 아님을 충분히 알 수 있지. 그는 내게 유용한 사람이야. 나는 그와 잘 지낼 수 있어. 내가 해고하면 그는 아마 덜 관대한 고용주를 만나겠지. 그러면 그는 무례한 취급을 받을 것이고, 어쩌면 굶어 죽도록 비참하게 내몰릴지도 몰라. 그래. 나는 여기서 달콤한 자기 승인을 값싸게 획득하는 거야. 바틀비의 친구가 되어주고, 그의 별난 옹고집에 장단을 맞춰준다고 해서 손해 볼 것은 없으니까. 그러면서 나는 궁극적으로 내 양심에 달콤한 양식이 될 것을 내 영혼에 비축하는 거지. 그러나 이런 내 기분이 불변하는 것은 아니었다. 간혹 바틀비의 소극성 때문에 신경질이 났다.

- 필경사 바틀비 -


그의 명이 길어서, 내 사무실을 계속 점유하면서 내 권위를 부인하고, 방문객들을 당혹케 하고, 나의 직업적 명성을 훼손하고, 사무실 전체에 어두운 그림자를 드리우고, 의심할 바 없이 하루에 오 센트밖에 쓰지 않으면서 저축한 돈으로 최후까지 연명할 것이라는 생각, 그리고 결국은 아마도 나보다 오래 살아서 종신 점유를 이유로 들어 내 사무실의 소유권을 주장할 것이라는 생각이 나를 엄습했다. 이 모든 음울한 예상이 점점 더 내 마음에 쇄도했고, 친구들은 내 사무실의 유령에 대해 끊임없이 잔인한 소견을 나에게 들이댔다. 그런 이유들로 내게 큰 변화가 생겼다. 나는 모든 능력을 총동원해서 이 견딜 수 없는 악령을 영원히 제거하기로 했다.

- 필경사 바틀비 -


자기 확신의 양면성



자기 개발서(자기 계발서)를 좋아하지 않습니다. 잘난 분들의 잘난 이야기를 읽으면 배가 아프거든요. 성공한 이들이 저를 다그치는 것 같아 혼나는 기분도 들고요. 무엇보다 저는 자기를 개발하고 계발하는 방법을 모르지 않습니다. 너무나 잘 알고 있지요. 그것을 실행할 수 없는 저라는 사람도 잘 알고 있고요. 그러니 굳이 책을 통해 확인할 필요가 없죠. '나는 할 수 있다', '나는 특별한 사람이다', '세상의 중심은 나다' 등의 말도 와 닿지 않습니다. 특별하지 않은데 특별하다고 하니 놀리는 것 같고, 할 수 없는데 할 수 있다고 하니 부담스러워요. 기분이 개운치 않아 잘 읽지 않는데 새겨야 할 건 분명 많습니다.


자기 개발서에서 강조하는 것 중 하나가 '확신을 가져라'입니다. 자신에 대한 믿음과 긍정이 기본으로 있어야 발전할 수 있다고 하죠. 전적으로 동의합니다. 자신을 믿지 못하면 자존감은 떨어지고, 남에게 의존할 수밖에 없습니다. 실패가 두려워 시작하기 힘들고, 조금이라도 어려운 일이 닥치면 회피하려 합니다. 절대로 성장할 수 없죠.


고슴도치는 자기 확신이 없었습니다. 그러니 그토록 오랫동안 참고 기다린 일을 앞두고도 자신이 원하는 대로 하지 못한 채 동물들의 말에 휘둘렸죠. 동물들의 윽박에 자신이 바보 같다 느끼기도 하고, 겁을 먹기도 하고, 당황하기도 하면서요.


반대로 바틀비는 남들이 뭐라 하든 자신의 뜻을 굽히지 않습니다. 자신을 위한 제안마저 거부하지요. 부랑자 취급을 당해 수감된 구치소에서도 그는 별난 사람이 됩니다.


바틀비가 왜 그러는지 모릅니다. 화자인 '나'가 모르니까요. 그는 바틀비가 어떤 사람이었는지, 자신을 만나기 전에 어떻게 살았는지에 대한 호기심을 충족시킬 수 없다고 밝힙니다. 1인칭 관찰자 시점이기에 오직 '나'의 시선과 정보로만 바틀비를 설명할 뿐이죠. 바틀비가 자본주의에 대항하기 위해 혁명을 일으킨 건지, 시키는 대로 하면서 살았던 지난날이 후회되는 건지, 충성을 다 한 사람에게 배신을 당한 건지 등의 이유는 짐작하고 상상할 수밖에요.


그나마 바틀비는 '나'에게 신뢰감을 주었기에 화자는 연민을 갖고 바틀비를 묘사합니다. 바틀비에 대한 부담과 분노를 숨기지 못하고, 그에게서 도망치기도 했지만 그래도 '나'는 끝까지 바틀비를 보면서 안타까워합니다. 위선이었든, 이용이었든, 고작 그 정도였든, 뭐였든 그래도 '나'는 바틀비를 도우려 했습니다. 화자의 이런 태도와 참으로 신선하고 독특한 캐릭터와 저라면 절대로 할 수 없는 행동에 경외심이 섞이면서 저 역시 바틀비에 대한 호기심과 안타까움이 생깁니다. 대체 왜 이렇게까지 하는지 화도 나지만 그보다는 안쓰러움과 뭉클함이 더 큽니다. 어떤 면은 너무 닮고 싶고요. 그렇지만 실제로 바틀비가 제 옆에 있다면 관계를 끊고 싶어 안달하겠죠. 그가 어떤 삶을 살았는지 호기심은 들겠지만 그가 어떻게 살았든 자기중심적인 바틀비를 받아들일 수는 없습니다. 자기 확신은 분명 필요하지만 고집과 아집으로 이루어졌다면 무척 위험하니까요.


왠지 바틀비는 스스로도 행복하지 않았겠구나, 하는 생각이 드네요.



안 하는 것을 택하고 싶은데 마음뿐입니다


그렇긴 해도 바틀비가 필요한 순간이 있습니다. 고슴도치처럼 안 해도 될 일을 강요받을 때면 절실하게 바틀비가 되고 싶습니다. 고슴도치처럼 살았던 날들이 자꾸만 마음을 후비면 고슴도치보다는 차라리 바틀비가 낫겠다 싶어요.


월 스트리트를 배경으로 한 『필경사 바틀비』는 1853년에 발표된 소설입니다. 당시 필경사의 업무량은 무척 많았습니다. 그에 비해 보수는 적었고, 근무환경은 열악했죠. 모두가 당연하다 여기며 순응할 때, 바틀비는 과감하게 '안 하는 것'을 '선택'합니다. 자신에게 어떤 불이익이 올지 뻔한 상황인데도 그는 굴하지 않습니다. 그런 그를 '자본주의의 모순과 문제에 저항한 혁명가'를 의미한다는 평도 있습니다. 혁명가인지, 자신만의 세계에 빠져 삶을 우울하게 만든 인물인지는 모르겠지만 이런 면은 진심으로 멋있습니다. 바틀비처럼 살고 싶지는 않지만 거부해야 하는 일에서만큼은 당당하게 맞서고 싶어요.


안 하는 것을 택하겠습니다.

몇 번이나 이 말을 하고 싶었는데 속으로만 중얼거리다가 또 상대의 뜻에 따랐습니다. 오늘도 마음뿐이지만 언젠가는 멋지고 당당하게 속에 담았던 진심을 꺼낼 수 있겠지요. 제 일상에 혁명이 일어나길 기대하면서 고슴도치 같은 당신에게도 변화가 생기길 바랍니다.


아! 반가운 소식을 알려드리자면 고슴도치는 변했어요.




* 마음 약한 고슴도치, 울리카 케스테레 지음, 윤영희 옮김, 문학과지성사 펴냄

* 필경사 바틀비, 허먼 멜빌 지음, 하비에르 사발라 그림, 공진호 옮김, 문학동네 펴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