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쁘지 않은 인간이고 싶습니다

『우리 가족입니다』 X 『변신』

by 꿈의 떨림



인간의 조건



인간이라면 당연히 그래야지.

부모에게 간이식을 해줬다는 누군가의 사연을 듣고는 그분이 대뜸 이 말부터 했습니다. 부모가 해준 게 없어도 자식은 당연히 그래야 한다면서 자식의 본분과 사람의 도리를 강조했지요. 그 뒤부터 인간은 이렇게 살아야 한다는 연설이 시작되었습니다. 저는 살짝 미소를 지으며 열심히 고개를 끄덕였습니다. 중간중간 네,라고 대답도 했을 거예요. 동의의 표현은 아니었습니다. 그 당시 저는 이십 대 중반이었고, 그분은 제 나이의 두 배가 넘는 연배였기에 나이와 지위에서 오는 위력에 눌렸지요. 그분의 얘기를 듣는 내내 저는 혼나는 기분이었습니다. 그분이 제시하는 '인간이라면 마땅히 해야 할 덕목'들을 실천할 자신이 없었거든요. 그냥 이 시간이 빨리 지나가길 바라는 마음뿐이었습니다.


그분이 『우리 가족입니다』를 봤다면 당연한 이야기라고 했을 겁니다. 어렸을 때부터 같이 살지 않았어도 사람이라면 당연히 치매에 걸린 어머니를 모셔야 한다며 또다시 길고 긴 연설을 늘어놓았겠죠. 『벌레』의 가족에 대해서는 어떻게 인간이 이럴 수 있냐며 화를 냈을 거고요. 그분이 자주 했던 말 중에 하나가 '인간 같지도 않은 인간'이었는데 그 표현도 여러 번 반복했을 겁니다.



변해버린 가족을 대하는 자세




『우리 가족입니다』의 '나'는 식당에 딸린 집에서 엄마, 아빠, 동생과 삽니다. 어느 날, 할머니가 찾아옵니다. 할머니는 시골에서 혼자 살았는데 이제부터 '나'의 가족들과 함께 산다고 합니다. 어린 '나'는 할머니가 싫습니다. 할머니는 버려진 옷을 주어 오고, 세탁기도 사용하지 못하게 합니다. 양치질도 안 하고, 요강을 옆에 두고 방바닥에 오줌을 쌉니다. 젓갈을 옷장에 넣는가 하면 바지에 똥까지 싸고 아무데서나 옷을 벗습니다. 식당일로 바쁜 중에도 엄마와 아빠는 할머니를 돌봅니다. 할머니의 밥 위에 반찬을 올려주고, 할머니의 옷을 빨고, 할머니의 오줌으로 흥건한 바닥을 닦습니다. 이유는 모르겠지만 아주 어렸을 때부터 아빠는 할머니와 살지 않았습니다. 아빠는 엄마라는 이유로 같이 산 적이 없는 할머니를 묵묵히 돌봅니다. 무표정한 엄마와 아빠의 얼굴에서 언뜻 삶의 고단함이 보입니다. 그런데 싫은 내색은 조금도 없습니다. 당연히 해야 할 몫이라는 듯 묵묵히 할머니를 돌보고, 자식들을 키우고, 식당일을 하죠.


우리 가족입니다.
엄마, 아빠, 나, 동생. 이렇게 네 명입니다.
우리는 엄마 아빠가 하는 작은 식당에서 삽니다.
참, 할머니도 한 분 계신데 멀리 시골에서 혼자 사세요.
할머니는 아빠가 아주 어릴 때부터 따로 사셨대요.
왜 그랬는지는 잘 모르겠어요. 엄마가 말해 주긴 했는데.
아무튼 할머니는 지금도 우리랑 같이 살기 싫으시대요.
사실은 나도 그게 더 좋아요. 왜냐하면…….

- 우리 가족입니다 -


『변신』의 그레고르는 출장 영업사원입니다. 오 년 전 아버지의 사업이 망한 후부터 그레고르는 가족을 위해 온 힘을 다해 일했습니다. 다른 동료보다 몇 배의 열성을 가지고 일을 한 덕에 말단 사원에서 출장 영업사원으로 빠르게 승진했죠. 그만두고 싶어도 가족을 생각하며 꾹꾹 참은 날이 많았습니다. 그런 그레고르가 어느 날 아침 벌레로 변합니다. 출근을 해야 하는데 그럴 수가 없게 됐죠. 이제 그레고르는 가족을 위해 돈을 벌 수 없습니다. 가족들은 벌레로 변한 그레고르를 외면합니다. 아버지는 벌레가 된 아들을 향해 사과를 던지고, 그토록 아꼈던 여동생은 그레고르를 향해 '저것'이라고 합니다. 어머니는 그레고르를 안타까워하지만 그를 제대로 보려고 하지 않죠.


그는 생각에 잠겼다. ‘아아! 나는 어쩌다 이런 고달픈 직업을 택했단 말인가. 허구한 날 여행만 다녀야 하다니. 회사에 앉아 실제의 업무를 보는 일보다 스트레스가 훨씬 더 심하다. 게다가 여행할 때의 이런저런 피곤한 일들이 마음을 더 무겁게 한다. 기차를 제대로 갈아타기 위해 늘 신경을 써야 하는 일, 불규칙하고 형편없는 식사, 상대가 늘 바뀌어 결코 오래 갈 수 없는 만남과 결코 진실하게 이루어질 수 없는 인간적 교류 등등. 악마여, 제발 이 모든 것들을 다 가져가다오.’ 배 위쪽이 약간 가려운 느낌이 들었다. 머리를 좀 더 쳐들어 더 잘 볼 수 있도록 그는 등으로 몸을 밀어 천천히 침대 기둥 쪽으로 다가갔다. 그러다 마침내 가려운 곳을 발견했는데 그곳은 온통, 뭐라고 판단하기 어려운 깨알같이 작고 흰 반점들로 뒤덮여 있었다.

(중략)

식구들이나 그레고르나 다들 익숙해져서 이젠 당연한 일처럼 되어버린 것이다. 식구들은 그레고르가 벌어다 준 돈을 감사하게 받았고 그는 그 돈을 기꺼이 내놓았지만 애틋한 정 같은 것은 이제 더 이상 오가지 않았다. 오로지 여동생만이 그래도 그레고르와 가깝게 지냈다.

- 변신 -



경이롭거나 경악스럽거나



인간에게 회의와 실망을 반복하던 때가 있었습니다. 그때 저는 성선설보다는 성악설에 훨씬 높은 비중을 두었습니다. 인간은 모두 악하게 태어났지만 학습효과와 타인의 시선과 적당한 환경 덕에 본성을 누를 수 있다고 확신했지요. 극한 상황에 몰릴수록 악하고 여리고 추악한 모습이 나온다고 믿으며 인간을 경멸하고 두려워했습니다.


그렇기에 '어떻게 인간이 그럴 수 있니'라는 말을 들으면 인간이기에 그럴 수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사람 같지도 않은 사람'이라는 말을 들으면 사람이기에 그렇다고 생각했지요. 동물은 배가 부르면 눈앞에 먹잇감이 있어도 절대로 잡지 않지만 사람은 장난으로도 생명을 해치는 종족이니까요. 사건과 사고에 대한 기사를 볼 때면 인간만큼 어리석고 추악한 생명체가 없다며 치를 떨었습니다.


그러다가도 선행에 관한 기사를 보면 끊임없이 감격하고 감탄했습니다. 도저히 제가 따라갈 수 없는 경지에 있는 분들이기에 부럽다거나 닮고 싶다는 마음조차 품지 못한 채 존경만 했어요. 조국을 위해, 정의를 위해, 타인을 위해 자신을 희생하는 분들을 보면 인간이 어떻게 이럴 수 있는지 울컥하면서 먹먹했습니다. 악행을 저지르는 사람보다 선행을 하는 사람들이 더 '인간 같지 않은 인간'처럼 보였죠.


그 시절 저는 사람에게 경이를 표하거나 경악을 금치 못하거나 둘 중 하나였습니다. 그 중간 어디는 없었어요. 극과 극의 감정을 넘나들 때면 사람이 징그럽다가도 사람이 그리웠죠. 미워해서 미안했고, 고마워서 또 미안했던 날이었습니다.


지금은 극과 극의 사람 사이에는 무수히 많은 보통의 사람들이 존재한다는 것을 압니다. 평범한 삶에서도 특별한 날을 만들고, 주저앉다가도 희망을 품으며 다시 일어나는 우리가 있다는 것을 알지요. 강도가 다를 뿐 우리는 타인을 위해 자신을 희생하고, 자신의 이익을 위해 욕심을 부리면서 하루를 살고 있습니다. 누군가에게는 좋은 사람이지만 누군가에게는 불편한 사람이기도 하고, 누군가에게는 도움을 주지만 또 누군가에게는 상처를 주면서 오늘을 보냅니다. 옳고 그름의 경계에서 이쪽으로 가기도 하고, 저쪽으로 가기도 하면서요.


선과 악, 그 모호한 기준



어렸을 때는 선과 악, 옳고 그름, 해야 할 일과 그러면 안 되는 일을 명확하게 구분했습니다. 착한 사람은 복을 받고, 나쁜 사람은 벌을 받는다는 주제의 책을 읽으면 누가 착한 사람인지 아닌지를 단번에 알았죠. 시간이 지날수록 선과 악의 구분이 모호해졌습니다. 선하다고 믿은 사람이 누군가에게는 한없이 피곤하고 불편한 상대일 수 있고, 악당인 줄 알았던 사람이 어떤 면에서는 당당하고 솔직하더군요.


세상에는 명확하게 구분할 수 없는 게 너무나 많고, 명확하게 구분하더라도 당연하게 해야 하는 일과 하지 말아야 할 일을 실천하기가 얼마나 어렵고 힘든지 알기에 함부로 타인의 삶을 재단하고 평가할 수 없습니다.


그렇기에 『우리 가족입니다』의 이야기가 평범한 일상처럼 보이지 않고 대단하고 위대하게 보입니다. 어린 시절부터 같이 살지 않았으니 어머니에 대한 사랑과 고마움도 거의 없을 텐데, 오히려 미움과 원망이 있을 텐데 『우리 가족입니다』의 아빠와 엄마는 마땅히 자식이 해야 할 일이라는 듯 묵묵히 받아들입니다. 무뚝뚝하지만 가족에 대한 애정과 책임이 강하게 느껴집니다. 가족의 사랑을 미화하거나 현실이 얼마나 힘든지 과장하지 않은 채 담담하게 있는 그대로를 보여주면서 가족의 소중함과 끈끈함을 극대화하고 있죠. 할머니에게 인상을 찡그리고 타박하는 어린 '나'도 부모를 보면서 할머니를 받아들이며 성장합니다. 가족 때문에 피곤하고 고단하지만 가족이 있어 힘든 시간을 이겨내는 이야기를 볼 때면 코끝이 시큰하고 심장이 간지러우면서 아픕니다.


아빠, 할머니 다시 가라고 하면 안 돼요?
안 돼.
왜요? 아빠 어릴 때도 따로 살았다면서요.
그래도 안 돼. …… 엄마니까. 할머니는 아빠 엄마거든.
그럼 아빠, 할머니도 우리 엄마처럼 아빠를 사랑했어요?
……

- 우리 가족입니다 -


만약 그레고르가 말을 할 수 있었다면, 또 여동생이 그를 위해 해야 했던 모든 일에 대해 그녀에게 고마움의 뜻을 표할 수만 있었다면, 그는 그녀의 봉사를 보다 가벼운 마음으로 받아들였을 터이다. 그러나 그럴 수가 없어서 그는 괴로웠다. 반면 여동생은 곤혹스러운 이 모든 상황을 가능한 한 지워버리고자 애썼으며, 당연한 일이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그만큼 더 수월하게 일을 해냈다. 여동생이 들어오는 기척만 있어도 그는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다. 그전 같으면 그레고르의 방을 아무도 들여다보지 못하게 무척 신경을 쓰던 그녀였지만, 이제는 달랐다. 방에 들어서기가 무섭게 방문을 닫을 겨를도 없이 곧장 창가로 달려가 마치 질식해 죽을 것 같다는 듯 두 손으로 황급히 창문을 홱 열어젖히고는 잠시 창가에 서서 심호흡을 하는 것이었다. 아무리 추운 날이라 해도 마찬가지였다. 그녀는 하루에 두 번씩 그렇게 소란을 피우며 달려들어와 그레고르를 놀라게 했다. 그러는 동안 내내 그는 소파 밑에서 떨어야 했지만, 그녀가 창문을 닫고도 그레고르와 함께 방 안에 있을 수 있었다면 분명 그런 일로 자신을 괴롭히지 않았을 거라는 것 역시 잘 알고 있었다.

- 변신 -


『우리 가족입니다』의 가족에게는 경이와 박수를 보낸다면 『변신』의 가족에게는 다양한 감정이 얽히고 얽혀 한숨이 나옵니다. 그들의 태도는 분명 옳지 않지만 마냥 비난할 수가 없습니다. 아무리 고마운 사람이라 하더라도 내게 이익이 될 때와 짐이 될 때 똑같이 대할 수 있을까요? 그 상황이 기약도 없이 계속 이어진다면요? 절대로 그들처럼 되지 않을 거야, 라는 확신이 없으니 절대로 이렇게 하지 말아야지, 하는 다짐도 나오지 않습니다.


이럴 때면 저 자신이 징그럽습니다. 어떻게 인간이 그럴 수 있냐며 혼나는 기분도 들지만 어쩔 수 없습니다. 아무리 가족이라 해도 저의 신체 일부를 내어주는 건 쉽지 않습니다. 오랫동안 치매에 걸린 가족을 돌봐야 한다거나, 벌레로 변한 가족을 받아들여야 한다면 시작하기도 전에 도망칠 궁리부터 할 것 같아요. 사람의 도리와 가족의 역할에 대해 분명하게 말할 수 있지만 그 기준을 제게 적용하려니 무척 어렵습니다. 행동은 『우리 가족입니다』의 가족처럼 하더라도 본심은 『변신』의 가족이지 않을까, 싶어요.


그래서 그런가 봐요. 『우리 가족입니다』보다 『변신』이 인간의 진실을 더 잘 보여주고 있다고 느끼는 이유가 말이죠.



인간다움의 선택



아주 어렸을 때부터 '엄마가 죽으면 어떻게 하지'라며 무서워했습니다. 돈을 벌어야 했던 엄마는 저를 떼어놓기 바빴고, 저는 엄마에게 매달리다가 늘 혼이 났습니다. 엄마는 늘 불안하고 무섭고 또 간절한 존재였습니다. 엄마가 없으면 어떻게 하지, 걱정하면서 울었던 적이 많았죠. 그때의 제 감정은 엄마라는 사람 그 자체에 대한 그리움과 사랑이 아니었습니다. 엄마의 역할을 해주는 사람에 대한 필요였어요. 제가 돈을 벌 수 있을 때까지는 엄마가 살아있어야 한다며 간절하게 빌었죠.


태어날 때부터 같이 산 할머니는 어느 순간부터 똥이 묻은 옷을 입고 창문을 열어 길가에 가래침을 뱉었습니다. 버려야 할 물건을 집안 곳곳에 숨겼고 듣기 싫은 얘기를 반복했습니다. 저는 소리를 지르는 날이 많았고, 할머니의 행동은 더욱 강해졌습니다. 병치레를 길게 길게 하지는 않았지만 병원 몇 군데와 집을 오가면서 꽤 오랫동안 누워있었죠. 아들을 못 낳는다는 이유로 그렇게 구박을 받던 엄마가 할머니의 병시중을 거의 도맡아 했습니다. 『우리 가족입니다』 가족처럼 자기의 몫이라며 당연하게 받아들였죠. 이제 갓 스무 살이 넘은 저는 바쁘다는 이유로 무관심했어요. 할머니에 대한 미움도 많았고, 할머니의 필요성도 크게 느끼지 못했기에 할머니가 돌아가셨을 때도 울지 않았습니다. 그때의 제가 『변신』을 통해 생생하게 기억났습니다. 인간에 대한 회의와 실망과 경악은 저에 대한 미움에서 비롯되었던 거였어요.


나이만 먹은 그 아이는 멋지고 훌륭한 사람은 못 되더라도 그럭저럭 나쁘지 않은 인간이고 싶은데 오늘도 현실과 이상의 경계선 앞에 아슬아슬 서 있습니다. 이기적이고 냉정한 모습을 주의하다도 그게 인간이라며 합리화를 하면서 말이에요. 때가 되면 제 부모가 했던 것처럼 할 수 있을지 의문을 품다가 이제는 가족의 변신에 의젓해지자고 중얼거립니다.


오래전, 그분이 제시한 인간의 조건을 전부 충족할 수는 없지만 최소한의 도리는 지키자고 다짐합니다. 저는 늘 선하지 않고, 옳은 선택을 하지 않으며, 이기적이고 어리석을 때가 많지만 그럭저럭 적당한 인간다움은 선택할 수 있습니다. 나쁘고 못난 사람이 되지 않으려 노력하다 보면 점점 멋지고 근사한 사람으로 변신할 수 있겠죠.



* 우리 가족입니다, 이혜란 지음, 보림 펴냄

* 변신, 프란츠 카프카 지음, 루이스 스카파티 그림, 이재황 옮김, 문학동네 펴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