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작년 여름, 일을 그만둔다고 하자 엄마를 포함한 지인들이 한 마디씩 했습니다. 왜 잘 다니던 직장을 그만두느냐, 괜찮은 일자리를 왜 걷어차느냐, 젊은 나이도 아닌데 그곳에 계속 붙어있어야 하지 않느냐 등등의 안타까움이 섞인 비난이 들렸습니다. 비정규직이었기에 계약기간이 끝났다고 몇 번을 말했는데도 엄마는 했던 얘기를 계속했습니다. 한 번 퇴사한 후에 다시 들어간 곳이었기에 엄마는 이번에도 그럴 수 있다고 생각했나 봐요. 네가 다시 하겠다고 하면 되지 않느냐고 했습니다. 딸의 능력을 과하게 높이 평가하면서 꽤나 복잡하고 까다롭게 운영되는 조직을 단순하고 무르게 치부한 거죠. 그러면서 정규직이 될 가능성에 대해 묻더군요. 없다고 했지만 사실이 아니었습니다. 제가 안 하겠다고 하자 같이 일하던 사람들이 다들 놀라더라고요. 당연히 응할 줄 알았대요. 저를 몇 번이나 설득하던 팀장은 제가 뜻을 굽히지 않자 뭔가 큰 계획이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계획이라고는 아무것도 하지 않겠다는 것뿐이었는데 더 큰 일을 하기 위해 나간다는 소문이 돌았습니다. 그 오해가 민망했지만 싫지는 않았습니다. 제가 꽤 근사한 사람이 된 기분이었거든요. 일을 하면서 유일하게 결정을 굽히지 않은 게 퇴사였기에 지금도 후회는 없습니다. 이러려고 퇴사했나, 하는 자괴감이 들 때가 있긴 하지만요.
일을 그만두고 그림책과 관련된 강의를 들었습니다. 그곳에서 만난 분이 누군가에게 제가 도서관에서 근무했다는 얘기를 듣고는 왜 그 일을 그만뒀느냐고 묻더군요. 그분은 그림책 강사로 일을 하는데 매번 면접에서 떨어지고, 섭외가 오지 않는다면서 힘들어하셨어요. 강의를 하고 싶은데 자기를 선택하는 곳이 없다면서 제게 왜 '갑'인 그 일을 그만뒀느냐며 눈을 동그랗게 뜨고 안타까움과 놀라움이 담긴 말투로 질문했습니다. '갑'이라는 말을 듣는 순간, 저 역시 무척 놀랐지요. 갑이라니요. 저는 한 번도 갑인 적이 없어요. 을도 되지 못한 병과 정으로 살아왔는 걸요. 그림책 강의를 들었던 건 순전히 병과 정으로 살았던 지난날을 치유하기 위한 선택이었어요. 그런데 그 수업에서조차 저는 쪼그라들고 있는 유일한 인간이었습니다. 이미 강의를 하고 있거나, 이제부터 강의를 하겠다는 열정적인 분들 사이에서 저는 강의를 하겠다는 의욕이 1도 없는 무기력한 인간이었거든요. 제가 감히 누구를 가르치겠어요, 라는 진실을 겸손처럼 포장해 겨우 말할 뿐이었지요. 그림책 수업이 제게는 치유의 시간이었는데 강의에 관한 내용이 나올 때면 압박과 함께 점점 작아졌습니다. 이건 내가 들을 수업이 아니구나, 하는 무거움과 함께 어떻게든 끝까지 완수하겠다는 책임감이 왔다 갔다 했지요. 강의를 하겠다는 열의와 열정을 뿜어내는 분들 사이에 끼지 못한 채 조용히 혼자만의 시간을 보내면서 끝까지 참여하긴 했습니다.
제게 갑이라는 얼토당토 한 신분을 주신 분께 계약기간이 만료되었다는 얘기는 하지 못하겠더라고요. 만약 그 말을 했다면 정직원이 될 수도 있었다는 사연을 구구절절 읊었겠죠. 구차한데 필요할 것 같은 얘기를 늘어놓으면서 분명 후회했을 겁니다. 갑과 을이 될 수 없으니 괜찮은 병과 정처럼 보이고 싶은, 그 안에서도 서열을 만들어 어떻게든 상위를 차지하고 싶은 제 마음을 어쩌겠어요. 무시당했던 날들이 아직 아물지 않아 그러는 것을요.
퇴사 전까지 제가 맡은 업무는 대출반납은 기본이고, 유아와 청소년 프로그램, 그림책모임 운영, 외부 프로젝트 공모, 타기관과 연계하여 도서관에 파견 온 청년과 중장년 일자리 지원 업무, 민원 상담, SNS에 도서 소개, 홈페이지에 글 올리기, 그 외 자잘한 일들과 다양한 변수였습니다. 계약직 치고는 일을 많이 했지요. 거절을 하지 못해서 그랬고, 인정을 받고 싶어서 그랬고, 재미있어서 그랬습니다. 어느 도서관은 계약직원은 결재를 올릴 수 없어서 일은 일대로 다 하고 결재는 정직원 이름으로 올린다고 하더라고요. 다양한 업무를 주지 않고 오로지 대출반납과 책 정리만 하는 곳도 많다고 들었습니다. 제가 있던 곳은 그렇지 않았죠. 힘든 순간도 있었지만 좋아하는 일이었고, 함께 일하는 사람들 역시 좋았기에 퇴사한 지금도 관계를 유지하고 있습니다.
전에 일하던 곳과 비교가 되더라고요. 그곳에서 저는 정직원보다 더 강력한 평생 직원이었는데 일과 삶을 분리할 수 없어 잠자는 시간만 빼고 거의 일에 매달렸습니다. 대표는 장난 20%와 진심 80%를 담아 정년퇴직도 없다면서 퇴사를 하려거든 손가락 하나를 자르고 나가라고 했죠. 겨우겨우 어찌어찌 그곳을 그만두고 간 곳이었기에 거의 야근을 하지 않는 계약직이 얼마나 좋았는지 몰라요. 물론 미래를 보장받지 못하는 불안이 있었고, 비정규직은 정직원에 비해 능력이 없거나 일을 대충 한다는 편견과 부딪쳐야 했고, 정직원과의 차이이면서 차별이 존재했기에 서글플 때도 있었습니다. 지난날의 경험과 기타 등등 여러 가지 이유로 계약직으로 있기도 싫었고, 정직원이 되기도 싫었어요.
그분이 '갑'이라고 했던 도서관에서 저는 결코 갑이지 않았습니다. 직원들 사이에서도 엄연히 계급은 존재하기에 거기에 맞춰 따라야 했죠. 상사와 선배와 동료와 후배 사이에 끼어 눈치 볼 일도 많았어요. 민원과 갈등이 싫어 이용객들에게 친절인지 비굴인지 모를 자세를 취했고요. 기획한 프로그램에 신청자가 없으면 돈을 주고라도 참여해달라 부탁하고 싶었고, 신청자가 몰리면 억지를 부리는 사람들의 기분을 맞추며 죄송하다는 말을 반복했습니다. 프로그램이 진행되면 참여자들의 만족도가 높은지 아닌지 또 신경 썼지요. 강사는 강의를 잘하는지, 혹시라도 강사와 참여자들 사이에 문제는 없는지, 출석률은 좋은지, 예기치 못한 변수가 생기는 건 아닌지 등등을 신경 썼습니다. 괜찮은 강사와 작가를 섭외할 때면 적은 예산에 사정했고, 일정을 조율할 때면 굽신거렸죠. 독서모임을 하는 시간이 되면 오늘은 몇 분이나 오실지, 책은 다 읽었는지, 서로 갈등은 없을지 등등에 대해 신경을 곤두세웠습니다. 목소리가 크고 불만이 많은 자원활동가 분들에게 이건 아니라고 말하고 싶었지만 그 마음 다 이해한다며 허리를 숙였고, 묵묵히 자신의 일을 하는 분들에게는 감사해서 또 허리를 숙였습니다. 결재가 예상보다 늦어지면 문제가 생긴 건 아닌지 전전긍긍했고, 프로젝트를 지원하는 담당자에게 서류를 보낼 때면 혹시 실수한 게 있지 않은지 늘 마음을 졸였죠. 아이들을 대상으로 한 프로그램이 진행될 때면 왜 이렇게 시끄럽냐고 항의하는 이용자와 아이들의 특성을 이해해야 한다는 부모 사이에서 이 사람에게도 양해를 구하고, 저 사람에게도 양해를 구했습니다.
도서관에서 뿐 아니라 무슨 일을 하든 저는 한 번도 갑인 적이 없었습니다. 그렇기에 그분의 '갑' 발언에 손사래를 치며 절대 아니에요, 라는 말만 했습니다. 그분의 마음이 어떤지 알기에 다른 말을 할 수 없었어요. 어쩌면 우리 모두는 의도치 않게 누군가에게 갑이 되었다가, 을이 되었다가, 병과 정이겠구나를 생각하며 씁쓸했습니다.
어디에나 존재하는 매미와 아카키 아카키예비치
원하던 퇴사였지만 불안도 강했습니다. 앞으로 뭘 할지 대책이 없었으니까요. 신경 쓰며 살았던 모든 것을 다 내려놓고 싶은 욕구만 있을 뿐이었어요. 그때 만난 그림책이『매미』였습니다.
매미는 고층빌딩에서 일합니다. 십칠 년 동안 쉬지 않고, 실수 없이 일을 하는데 승진도 없습니다. 인간 직원이 아니거든요. 회사 화장실을 써서도 안 됩니다. 열두 번 길을 건너 공중화장실로 가야 합니다. 그때마다 회사는 임금을 깎습니다. 늘 늦게까지 남아 일을 하는 매미에게 아무도 고맙다고 하지 않습니다. 그러기는커녕 인간 동료는 매미에게 못된 짓을 많이 합니다. 십칠 년이나 일한 매미가 은퇴할 때에는 파티는 고사하고 악수도 없습니다. 자기가 쓰던 책상까지 직접 치워야 하죠.
매미는 고층 빌딩에서 일한다. 데이터를 입력한다. 십칠 년 동안 아파서 쉬는 날은 없다. 실수도 안 한다. 톡 톡 톡!
(중략)
십칠 년 일한 매미가 은퇴한다. 파티는 없다. 악수도 없다. 상사는 책상을 치우라고 말한다. 톡 톡 톡!
-『매미』-
『매미』는 짧은 문장으로 핵심만 전달하고 있습니다. 감정을 배제한 채 별 것 아니라는 듯이 툭툭 내뱉지요. 반복되는 '톡 톡 톡!'이 너무 경쾌해서 비정하기만 합니다. 그 문장이 그림과 만나면 헉, 소리가 납니다. 아무도 없는 넓은 사무실에 홀로 앉아 늦은 시각까지 일을 하는 매미, 뒷짐을 지고 돌아선 인간에게 다리를 가지런히 모으고 서 있는 매미, 인간의 구둣발에 배를 밟힌 채 버둥거리는 매미, 인간의 키에 맞게 설계되어 있어 아무리 다리를 뻗어도 엘리베이터 버튼을 누를 수 없는 매미의 모습이 아무렇지 않다는 듯 무심하게 던지는 글과 만나면 탄식이 나옵니다. 엘리베이터를 타기도 힘든 매미가 길을 열두 번이나 건너야 하는 공중화장실로 가려면 어떤 고충을 겪어야 하는지, 매미가 잠시라도 자리를 비우면 인간들이 무슨 꼬투리를 잡을 것인지, 퇴사하는 날까지 인간들이 매미를 어떻게 대했을지, 그때마다 매미의 기분은 어땠을지 등등은 이 책에 없습니다. 그런데도 그 부분이 저절로 그려집니다.
『외투』의 주인공 아카키 아카키예비치 역시 조직 내에서 차별과 무시를 받고 있습니다. 9급 문관인 아카키 아카키예비치에게 관심을 갖는 이는 아무도 없지요. 그가 언제 어느 때 국에 들어왔는지, 누가 그를 임명했는지 아무도 기억하지 못합니다. 국장과 부장이 수없이 바뀌었지만 그는 늘 같은 자리와 지위와 직무를 유지하며 변함없이 서류를 정서할 뿐이죠. 매미처럼 아카키 아카키예비치도 자신의 직무에 충실합니다. 열심히 일한다는 말로는 부족할 정도로 정서하는 일을 좋아합니다. 그런데 그를 존경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경비원들은 그가 지나갈 때 자리에서 일어나지 않을 뿐 아니라 눈길조차 주지 않습니다. 부장들은 폭군처럼 그를 대하고, 젊은 관리들은 그를 놀립니다.
아카키 아카키예비치처럼 자신의 직무에 충실했던 사람은 어디에서도 찾아볼 수 없을 것이다. 열심히 일했다는 말로는 부족하다. 아니, 그는 애정을 가지고 일했다. 정서하는 일에서 그는 다채롭고 즐거운 자신만의 세계를 발견했다. 즐거움은 그의 얼굴에도 나타났다. 그는 몇몇 글자를 특별히 좋아했는데, 그 글자들을 발견하면 마음의 평정을 잃고 슬쩍 웃음을 짓기도 하고, 눈을 깜짝이기도 하고, 입술을 움찔거리기도 했다. 그가 펜으로 무슨 글자를 쓰는지 그의 얼굴에서 모두 읽어낼 수 있을 정도였다. 그에게 열성에 걸맞은 상을 주었다면, 그 자신도 놀라겠지만, 아마 5급 문관은 되었을 것이다. 그러나 그가 근속해서 얻은 것이라곤 독설가인 동료들의 표현대로 단춧구멍의 훈장 걸쇠와 치질뿐이었다.
-『외투』-
아카키 아카키예비치는 정서하는 일 외에는 아무것에도 관심이 없습니다. 옷차림에도 전혀 신경을 쓰지 않고, 유흥에도 빠지지 않죠. 그런 그도 참을 수 없는 것이 있습니다. 바로 페테르부르크의 추위입니다. 얼마 전부터 그는 등과 어깨가 유난히 시리다는 느낌을 받았고, 자신의 얇은 외투가 거의 닳았다는 것을 확인했죠. 그의 외투는 동료들이 '실내복'이라고 놀릴 정도입니다. 이번에도 수선을 맡기려는데 재능 있는 재봉사 페트로비치가 절대로 할 수 없다고 합니다. 새 옷을 맞춰야 하는데 가격이 놀랍습니다. 열심히 살았는데 하급관리 월급으로는 고민이 되는 금액이죠. 아카키 아카키예비치가 아무리 사정해도 페트로비치는 절대로 수선할 수 없다는 말만 합니다. 고생 끝에 겨우 외투를 장만한 아카키 아카키예비치에게 변화가 일어납니다. 그가 외투를 장만했다는 소문이 돌면서 사람들은 그에게 관심을 갖습니다. 정확하게 그가 아닌 그의 외투이고, 일시적인 현상일 뿐이지만요. 어쨌든 그 외투 덕에 아카키 아카키예비치는 관리의 집에 초대를 받습니다. 이제 아카키 아카키예비치의 신경은 정서하는 일이 아닌 온통 외투에게 쏠립니다. 외투 하나로 세상의 모든 것에 관심이 생기고, 자신감이 생기죠. 그런데 그 소중한 외투를 하루 만에 강도에게 빼앗깁니다.
아카키 아카키예비치에게 이날은 온종일 가장 성대한 축일이었다. 그는 가장 행복한 기분으로 귀가해 외투를 벗어서 조심스럽게 벽에 걸어놓고 양복지와 안감을 다시 한번 살펴보았다. 그리고 완전히 너덜너덜해진 이전의 '실내복 같은 외투'를 일부러 꺼내 새 외투와 비교해보았다. 그는 낡은 외투를 힐끗 쳐다보고는 심지어 웃음까지 지으며 '정말 엄청난 차이가 나는군!' 하고 생각했다. 그 후 그는 오랫동안 식탁에 앉아서 낡은 외투의 상태를 떠올리며 내내 쓴웃음을 지었다. 그는 즐겁게 식사를 했고, 식사 후에는 아무것도, 어떤 서류도 정서하지 않았으며, 날이 어두워질 때까지 침대에서 잠시 뒹굴었다.
-『외투』-
누군가에게는 목숨 같은, 누군가에게는 하찮은
아카키 아카키예비치에게 외투는 단지 자존감과 만족도를 높이는 도구만은 아닙니다. 강력한 추위로부터 자신을 보호해야 하는 도구이죠. 생존을 위한 필수품이기에 아카키는 궁상맞을 정도로 일상의 지출을 줄이고, 몇 년 동안 모은 돈과 보너스 등을 합쳐 힘들게 외투를 장만합니다. 그런 외투를 하루 만에 강도에게 빼앗겼으니 완전히 얼이 빠질 수밖에요. 외투를 강도 맞은 광장의 초소로 달려가 근무 경관에게 호소하자 경관은 내일 파출소장을 찾아가라고 합니다. 다음 날, 아파트 주인 노파의 뜻에 따라 아카키 아카키예비치는 파출소장이 아닌 경찰서장에게 갑니다. 경찰서장은 사건의 본질이 아닌 다른 것에 더 관심을 두죠. 왜 그렇게 늦게 귀가했는지, 어떤 지저분한 곳에 들른 건 아닌지 등을 캐묻는 바람에 아카키 아카키예비치는 당황합니다. 고관을 찾아가는 게 낫다는 동료의 조언에 이번에는 고관에게 갑니다.
이 고관의 직책과 직위가 무엇인지는 지금까지도 알려지지 않았다. 이 고관은 최근에야 중요한 인물이 되었고, 그 전에는 별 볼 일 없는 인물이었음을 알아둘 필요가 있다. 그의 지위는 지금도 다른 최고위층에 비하면 그다지 중요하다고 볼 수 없다. 하지만 다른 사람들이 보기에 중요하지 않은 것도 중요하게 여기는 부류가 항상 있게 마련이다. 어쨌든 고관은 이런저런 방법으로 자신의 중요도를 높이려고 노력했다. 이를테면, 출근할 때 부하 직원들이 계단에서 자신을 맞이하도록 했고, 감히 그 누구도 자기를 직접 찾아오지 못하게 했으며, 모든 것이 엄격한 질서에 따라 이루어지도록 했다. 즉 14급 관리는 12급 관리에게, 12급 관리는 9급 관리나 적당한 다른 문과에게 보고하도록 하는 식으로 절차를 걸쳐야만 자기에게 보고할 수 있게 한 것이다.
-『외투』-
아카키 아카키예비치의 겸손한 모습과 낡은 제복을 본 고관은 갑자기 그를 향해 몸을 돌리더니, 현재의 자리와 고관직을 받기 일주일 전부터 방에서 혼자 거울 앞에 서서 일부러 연습하여 익힌 단속적이고 딱딱한 목소리로 물었다. "무슨 일이신가?" 아카키 아카키예비치는 당연히 미리부터 겁을 먹고 약간 당황해 다른 때보다 더 자주 "저……"를 섞어가며, 할 수 있는 한 혀를 놀려 완전히 새것이었던 자기 외투를 어떻게 무자비하게 강탈당했는지 설명했다. 그리고 경찰서장이나 다른 누군가에게 서신을 보내거나, 어떻게든 영향력을 행사해 외투를 찾아달라고 부탁하기 위해 왔다고 말했다. 그런데 고관은 왠지 모르게 아카키 아카키예비치의 그런 태도가 허물없이 구는 것처럼 느껴졌다. "지금 무슨 말을 하는 거요?" 고관은 띄엄띄엄 말을 이었다.
아카키 아카키예비치는 외투를 찾기 위해 관료들을 찾아다니지만 그들은 아카키예비치의 외투에는 관심이 없습니다. 오히려 자신의 시간을 빼앗은 아카키 아카키예비치를 비정하게 대합니다. 고관은 '네깟 놈이 감히 내게 외투를 찾아달라 하느냐'며 호통을 칩니다. 두려움에 떠는 아카키예비치를 보면서 고관은 자신이 갖고 있는 막강한 힘에 만족하죠.
누군가에게는 목숨을 걸 만큼 중요한 문제가 누군가에게는 하찮고 귀찮은 일이라는 게 가슴 한 구석을 뻐근하게 합니다. 책 속 이야기가 아닌 이게 우리의 삶이고, 이게 인간의 밑바닥이라 말하는 것 같아 마음이 무겁습니다.
당연하지 않은 당연함
매미와 아카키 아카키예비치는 차별과 멸시를 당해도 시키는 대로 합니다. 폭력에 대항하지도 않습니다. 부당한 일을 당해도 그러려니 합니다. 그럴 수밖에 없는 이유를 너무나 잘 아는데 화를 참을 수 없습니다. 진짜 분노해야 할 대상은 매미와 아카키 아카키예비치가 아닌데 그들에게 화가 납니다. 매미와 아카키 아카키예비치에게서 제 모습이 보였기 때문이겠죠. 무엇보다 그들이 만만해서겠죠.
필요에 따라 저를 형편없는 인간으로 만들었다가 대단한 능력자로 평가했던 대표, 전화 한 통화로 저를 해고했던 원장, 계약기간이 아직 남았는데 일정상 편의를 위해 계약직원들을 같은 날 그만두게 한 관장, 책임질 것처럼 큰소리치고는 결국 일이 터지자 다 제 잘못으로 몰고 가던 팀장, OO 교수가 외국에 있어 섭외를 할 수 없다고 하자 다짜고짜 욕을 퍼붓던 피디, 100일 넘게 책을 연체하고는 연체된 날만큼 책을 대출할 수 없다고 하자 미친 듯이 소리를 지르던 이용자, 사소한 일로 꼬투리를 잡으면서 텃세를 부리던 그들에게 고개를 숙이며 죄송하다고 한 저를 아직도 용서할 수 없나 봅니다. 어쩔 수 없는 외부 상황과 상대의 잘못을 보지 못한 채 모든 게 다 제 탓이라 몰아넣었던 지난날이 억울한데 이 와중에도 다 제 탓인 것만 같아 괴롭습니다.
지나고 나니 별 것 아니었던 조직 안에서도 저는 나약한 존재였는데 이 거대한 사회 시스템 속에서 저는 얼마나 하찮고 하찮을까요. 그나마 저는 화제가 될 정도로 억울하고 비참한 삶은 아닌데 아무리 소리치고 두드려도 열리지 않는 벽 앞에 선 사람들의 심정은 어떨까요. 과연 저는 힘없고 나약한 사람들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이고 있을까요.
매미인 줄 알았는데 매미에게 무심한 인간이기도 했습니다. 노골적이고 직접적이지는 않았지만 매미와 아카키 아카키예비치를 차별하고 무시했습니다. 고관처럼 누군가를 보면서 우월감에 도취된 적도 있었고요.
재능기부를 하겠다며 찾아온 분들을, 자신의 강의 이력이 담긴 포트폴리오를 들고 온 분들을 저 역시 거절한 적이 있습니다. 나름 공손하게 한다고 했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제 입장이겠죠. 제가 진행했던 프로그램에 대해 이야기를 듣고 싶다고 온 분들도 꽤 있었어요. 바쁜데 찾아온 분들이 귀찮기도 했고, 화가 나기도 해서 일부러 냉정하게 군 적도 있습니다. 한참 높은 기준을 정해놓고 그만큼 하지 않는다며 후배를 울리기도 했고, 잘못된 관행을 따지겠다는 선배를 말린 적도 있어요. 간절함을 호소하는 이에게 어쩔 수 없다는 말만 반복하기도 했습니다. 겉으로는 공감과 안타까움을 표현했지만 속으로는 제가 안아야 할 부담과 손해를 계산하면서 최소한의 개입만 하려 했습니다. 행색이 남루한 이들을 피했고, 답답한 그들을 볼 때면 '그러니까 당하지'라는 생각도 했습니다. 제가 그토록 싫어하던 권위적인 모습이 제게도 있었죠. 늘 피해자인 줄 알았는데 누군가에게는 아니었더라고요.
돌아보니 정말 대항하고 저항해야 할 본질과 상대는 비껴간 채 만만한 이들을 골라 갑질 아닌 갑질을 했습니다. 그들 역시 저처럼 힘없고 나약한 존재인데 제가 위에 있다고 착각하면서 말이죠. 갑도 아니면서, 대단한 사람도 아니면서 비뚤어진 우월감에 도취되었습니다.
이 정도의 가해는 누구나 주고받지 않나,라고 생각하다가 놀랍니다. '이 정도'라는 말속에 담긴 안일함과 무심함과 순응이 얼마나 무서운지 간과했어요. 가해자를 정당하게 하면서 피해자를 당연하다고 여기는 그 생각이 얼마나 많은 차별과 강한 폭력을 만들고 있는지 둔감했습니다. 돈 버는 게 원래 힘들고, 다들 이렇게 살고 있다며 부당함마저 그러려니 한 제 모습이 부끄럽습니다. 당연하지 않은 일을 당연하다 여기면서 받아들이고, 그것을 또 누군가에게 강요했던 지난날을 지우고만 싶습니다.
반전은 있습니다
더는 비굴하게 눈치 보면서 살지 않겠다며 퇴사를 했지만 어디를 가든 눈치 볼 일은 많더군요. 보잘것없긴 해도 저를 대변해주던 지위와 신분이 사라지자 저는 아무것도 하지 않는 사람이 되었습니다. 적은 금액이었어도 한 달에 한 번씩 들어오던 월급이 주던 안도감과 든든함이 사라지자 괜히 주눅이 들었고요. 지난날의 상처는 자꾸만 저를 들쑤셨고, 무언가를 시작하기 두렵게 했습니다. 패배감과 상실감에 짓눌린 저는 자꾸만 무기력해졌고요.
그때마다 몇 번이나 보고 보고 또 본 『매미』의 장면이 있습니다. 십칠 년 일한 곳에서 악수도 없이 은퇴하는 매미가 상사의 명령에 따라 책상을 닦은 후 안녕을 고하겠다며 옥상으로 올라갑니다. 옥상 난간에 서 있는 매미를 보는데 심장이 쿵, 하고 내려앉았습니다. 집을 빌릴 형편도 못 되서 사무실 벽 틈에서 사는 매미가 선택할 수 있는 건 이것밖에 없다고 생각하자 도저히 책장을 넘길 수 없더라고요. 몇 번이나 한숨을 쉰 후에야 본 다음 장면은 예상과 달랐습니다. 다음 장도, 그다음 장도, 또 그다음 장도요. 뜬금없는 그림에 이게 뭔가 싶었다가, 징그러웠다가, 어느 순간 그 모습이 짜릿했습니다. 비정하게 느껴졌던 '톡 톡 톡!'이 마지막에는 유쾌하고 경쾌하게 울립니다.
조롱만 받다가 관심도 받지 못한 채 죽은 아카키 아카키예비치의 이야기도 여기에서 끝인 줄 알았는데 『외투』에도 반전은 있습니다. 안타까움과 안쓰러움을 동반하긴 하지만 고관을 향한 반격과 고관의 변화는 통쾌합니다.
『매미』와 『외투』는 비극적인 이야기에 희극과 유머와 환상을 결합했습니다. 풍자를 곁들여 현실을 비판하면서 지금 우리의 모습은 어떤지 돌아보게 하지요. 이 두 작품이 가슴을 답답하게 하다가 마지막에는 짜릿한 쾌감을 주는 건 고단한 우리의 삶에도 반전은 있다는 희망을 주었기 때문입니다. 당연했던 것들이 더는 당연하지 않다는 것을 깨달았을 때, 나와 당신의 존재가 소중하다는 걸 인지했을 때, 같은 처지인 우리가 공감하면서 힘을 모을 때 더는 차별과 갑질을 할 수도, 당하지도 않겠죠.
그래서 저도 반전을 준비하려 합니다. 과도한 자책과 찌질한 우월을 버리고 지금부터 어깨를 펴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