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이는 들었지만 진짜 어른은 아닌가 봐요

『혼나지 않게 해 주세요』X『나의 라임오렌지나무』

by 꿈의 떨림



펼치고 싶지 않은 불편함






표지의 아이는 눈을 맞추기 싫다는 듯 고개를 옆으로 돌리고 있습니다. 눈썹을 한껏 올리고 눈에는 잔뜩 힘을 주고 있네요. 어금니를 꽉 깨물고 있는 얼굴에는 억울함과 슬픔이 공존합니다. 눈에는 눈물이 고여 있고, 화를 참으려는 듯 아이는 얼굴뿐 아니라 어깨에도 힘을 줍니다. 제목으로 짐작했을 때 아이는 이번에도 혼이 났나 봐요.


첫인상부터 어린 시절의 저와는 다른 아이라는 느낌이 옵니다. 저 아이만 할 때 저는 혼이 나면 고개를 푹 숙이고 손가락만 만지작거렸습니다. 그러다 눈물을 쏟았죠. 억울함을 호소하고 싶을 때면 말보다는 딸꾹질과 울음이 먼저 나왔어요. 논리적일 수 없다면 억지라도 쓰고 싶었는데 머릿속에서만 외칠 뿐이었죠. 할 수 있는 방법은 더 크게 우는 것밖에 없더라고요. 똑바로 말을 하지 못한다고 더 크게 혼났습니다.


주로 물건을 잃어버리거나 깨뜨려서 혼났어요. 혼나는 게 무서워 거짓말을 해서 혼나기도 했고요. 정확하고 확실하게 의사를 표현하지 못한다며 야단맞은 적도 많아요. 저는 조용하고 얌전한데 산만하고 조심성이 없었고, 생각은 많은데 머릿속 생각을 제대로 얘기하지 못하는 소극적인 아이였죠. 줏대 없이 친구들에게 끌려다니는 저에 대한 걱정을 엄마는 화로 표현하면서 닦달할 때가 많았습니다. 주눅이 드니 더 소심해지더라고요.


어린 날의 저와 달라서일까요? 아니면 이미 어른이 된 제 입장에서 이 아이를 봐서일까요? 아이의 분노에 공감보다는 한숨이 나옵니다. 현실에서 이런 아이와 마주친다면 감당하기 힘들 거예요. 제게 고개를 돌리고 씩씩거리는 아이를 사랑으로 품어주는 건 불가능이겠죠. 첫인상만으로, 단편적인 부분만으로 전부를 판단하고 싶지는 않은데 역시 어쩔 수가 없네요. 분노에 찬 아이의 표정과 '혼나지 않게 해 주세요'라는 제목이 주는 절박함에 몇 년 동안 표지를 넘기고 싶지 않았어요.


역시 사놓고 읽지 않은 책이 있습니다. 십 년 넘게 책장에만 꽂아두었죠. 읽지는 않았지만 대략적인 내용을 알고 있기에 제대로 읽어보고 싶은 욕심과 이 슬픈 이야기를 마주하고 싶지 않은 불편함이 교차했습니다. 더는 미루면 안 되겠다 싶어 이제야 『나의 라임오렌지나무』를 펼쳤습니다.



폭력에 익숙한 아이들



나는 만날 혼나.
집에서도 혼나고 학교에서도 혼나.

- 혼나지 않게 해 주세요 -



『혼나지 않게 해 주세요』의 이야기가 시작되자 풀이 죽은 모습으로 '나'가 등장합니다. 가방을 멘 어깨에는 힘이 없고 고개도 아래를 향해 있습니다. 화풀이를 할 상대는 돌멩이뿐입니다. 의기소침한 아이를 고양이가 바라보고 있네요. 하늘은 맑고 화창한데 아이의 마음은 그렇지 않습니다. 아무래도 집에서 혼났나 봐요. 학교에서도 마찬가지죠. 그럴 의도가 아닌데 '나'의 행동은 친구들과 선생님을 놀라게 하거나 불쾌하게 합니다. 친구가 놀려서 때린 건데 선생님은 왜 그런지 묻지 않고 '나'만 혼냅니다. 어제도 혼났고, 오늘도 혼났으니, 내일도 혼날 게 뻔합니다.



나는 모든 것을 집 밖에서 배웠다. 집에서는 나 혼자 눈치껏 행동해야 했기 때문에 실수하기 일쑤였고 그 때문에 걸핏하면 매를 맞았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나를 때리는 사람은 없었다. 하지만 내가 사고뭉치라는 것을 알아챘는지 누구나 나를 볼 때마다 망나니라느니, 나쁜 놈이라느니, 억센 털 러시아 고양이 같은 놈이라느니 하며 욕을 해 댔다. 이런 것들은 이제 생각도 하기 싫다.

- 나의 라임오렌지나무 -



『나의 라임오렌지나무』의 주인공이자 화자인 '나' 제제는 다섯 살입니다. 장난이 심해서 매를 맞는 날이 많습니다. 동생 루이스를 빼고 가족 중 유일하게 제제를 때리지 않는 사람은 글로리아 누나뿐입니다. 가족들은 제제에게 악마의 피가 흐른다고 말하고, 제제 역시 자기 안에 악마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제제는 몸과 마음을 다칠 때면 라임오렌지나무인 밍기뉴를 찾아가 이야기를 합니다. 밍기뉴는 제제의 말을 들어주고, 제제의 편이 되어 주는 유일한 친구죠.



나는 참지 못하고 밍기뉴에게 실패담을 털어놓았다. 시퍼렇게 멍든 눈과 누렇게 부은 얼굴로는 도저히 숨길 수가 없었다. 아버지는 내 꼴을 보고 내게는 알밤을 한 대 먹이고 또또까 형에게는 일장 연설을 했다. 아버지는 절대로 형을 때리는 법이 없었다. 하지만 나는 못된 짓만 골라서 하는 아이였기 때문에 매를 맞았다. 밍기뉴는 내가 하는 모든 이야기를 귀담아 들어주었다. 그러니 어떻게 이야기하지 않을 수 있단 말인가? 그는 내 이야기를 듣고 속이 상했는지 내가 이야기를 끝내자 화난 목소리로 겨우 한마디 내뱉었다.
“비겁한 녀석들!”

- 나의 라임오렌지나무 -



그렇다 해도 정당화할 수 없는 폭력



『혼나지 않게 해 주세요』와 『나의 라임오렌지나무』의 아이들이 처한 환경은 좋지 않습니다.


『혼나지 않게 해 주세요』에 나오는 가족사진에는 '나'와 엄마와 동생만 있습니다. 이를 통해 아버지의 부재를 추측할 수 있습니다. 경제적으로 넉넉해 보이지도 않습니다. 일을 나가는 엄마를 대신할 다른 어른도 보이지 않고요. 그러니 집에서 엄마를 대신할 사람은 '나' 뿐입니다. '나' 역시 어른의 보살핌이 필요한 아이인데 오빠로서의 책임과 의무를 감당해야 하죠.


『나의 라임오렌지나무』의 아버지는 실직했습니다. 엄마는 아픈 몸으로 공장에서 돈을 벌고요. 누나들과 형이 차례로 동생을 돌봤듯이 제제도 동생 루이스를 돌봅니다. 악마인 자신과 달리 루이스는 천사라며 동생을 무척 사랑하지요.


삶의 고단함과 가난에 지친 부모는 아이들이 왜 그러는지 이해하려 하지 않은 채 무작정 화를 내고 폭력을 가합니다. '나'는 엄마가 없는 동안 동생을 돌봤지만 돌아오는 건 꾸중입니다. 엄마는 '나'가 왜 동생을 울렸는지, 숙제를 왜 하지 못했는지 이유를 묻지 않은 채 화부터 냅니다. 엄마가 언제나 예뻤으면 하는 마음에 화내면 얼굴에 주름이 생긴다고 말한 건데 엄마는 또 화를 내지요. 친구들과 선생님도 다르지 않습니다. 사마귀를 보여주고 싶었고, 맛있는 음식을 많이 주고 싶었을 뿐인데 선생님과 친구들은 결과만 보고 경악합니다.


제제는 일자리를 구하지 못해 괴로워하는 아빠를 위로하고 싶었습니다. 그래서 노래를 부른 건데 아빠는 다짜고짜 제제를 때립니다. 왜 그런 노래를 부르는지 묻지도 않고, 아이가 부를 노래가 아니라고 알려주지도 않은 채 점점 강도를 높입니다. 글로리아 누나가 말리지 않았다면 끔찍한 결과가 일어났을 거예요.



"엄마, 그렇게 화내면 얼굴에 주름 생겨."
며칠 전에 엄마한테 그렇게 말했다가 또 혼났어.
나는 엄마가 언제나 예뻤으면 해서 한 말이었는데.

학교에서는 쉬는 시간에 큰 소리로 노래를 부르다가 또 혼났어.
"좀 조용히 해!"
입학식 때는 '목소리도 크고 무척 씩씩하구나.'라고 했으면서.

- 혼나지 않게 해 주세요 -



내 얼굴은 얼얼함으로 거의 감각이 없을 정도였다. 내 눈은 아빠의 손찌검에 따라 떴다 감았다를 반복했다. 나는 노래를 그만두어야 할지 아빠가 시키는 대로 계속 불러야 할지 분간할 수가 없었다. 그러나 아픈 가운데에서도 한 가지 결심을 했다. 이것이 내가 맞는 마지막 매가 되도록 해야겠다는 것이었다. 맞아 죽는 한이 있더라도 이번이 마지막이 되도록 해야겠다고 결심하였다.
아빠가 손을 잠시 거두고 노래를 더 불러 보라고 소리쳤지만 난 부르지 않았다. 그 대신 경멸에 찬 목소리로 외쳤다.
“살인자! 날 죽여라. 날 죽이고 감옥에나 가라.”
아빠는 화가 울컥 치밀었는지 흔들의자에서 벌떡 일어나 차고 있던 허리띠를 풀었다. 그 허리띠에는 쇠고리가 두 개 달려 있었다. 아빠는 미친 듯이 욕을 했다. 개새끼, 쓰레기 같은 놈, 제 애비한테 욕을 해?
허리띠가 끔찍한 힘으로 내 몸을 휘감았다. 허리띠는 마치 천 개의 손가락이 달린 것처럼 내 몸 구석구석을 찾아 때리고 있었다. 나는 벽 한 모퉁이에 꼬꾸라졌다. 아빠가 나를 죽일 것만 같았다. 나를 구하러 나선 글로리아 누나의 음성이 희미하게 들렸다. 글로리아 누나. 나와 닮은 유일한 억센 털 러시아 고양이. 아무도 글로리아 누나에겐 감히 손을 대지 못했다. 누나는 아빠의 손을 꽉 부여잡으며 매질을 말렸다.

- 나의 라임오렌지나무 -


나이를 먹었다고 해서, 부모가 됐다고 해서 성숙해지지는 않습니다. 어른의 마음에도 아이가 살고 있고, 삶이 힘들 때면 쉽게 해결할 수 있는 일마저 도저히 풀 수 없는 문제처럼 느껴집니다. 몸은 지칠 대로 지치고, 생활비를 걱정하다 보면 사랑하는 사람까지 버겁지요. 자식을 위해서 일을 하는데 일을 하다 보면 자식의 마음을 놓칠 때도 많습니다. 삶이 뜻대로 되지 않아 화가 나는데 자식까지 원하는 대로 행동하지 않으니 머릿속이 복잡하고 슬금슬금 화가 나죠. 아이가 잘 되기 바라는 마음과 혹시나 하는 걱정과 내 뜻에 따라주기를 바라는 욕심이 감정을 더 격하게 합니다.


두 작품 속 부모가 얼마나 힘든지 압니다. 그렇다고 이들의 태도를 정당화할 수는 없습니다. 특히 제제의 아버지는 살인에 가까운 폭력을 저질렀습니다. 아버지가 아무리 후회하고 죄책감에 시달린다 해도 이미 다친 제제의 마음을 회복하기는 어렵습니다.



'다들 그렇다'가 주는 폭력



오랫동안 부모에 대한 양가감정으로 힘들었습니다. 원망과 미안함이 교차할 때면 엄마와 아빠를 제대로 안을 수도, 놓을 수도 없었지요. 두 분이 얼마나 고생했는지 알면서도 인정하고 싶지 않았습니다. 자식을 위해 궂은일을 마다하지 않는 부모에게 감사를 느끼기 전에 부모라면 당연히 그래야 한다고 생각했어요. 미안할 때면 화를 냈고, 고마울 때면 과거에 받지 못한 기억을 들추며 뻔뻔하게 굴었습니다.


남들에게는 좋은 사람이고 점잖은 사람이지만 가족에게 아빠는 그렇지 않았습니다. 어린 제 기억 속의 아빠는 가족들에게 좋지 않은 언어를 사용했고, 자주 화풀이를 했습니다. 술에 잔뜩 취해 오기도 했고, 엄마를 무시하는 말도 서슴지 않았죠. 아빠에게 많이 맞지는 않았지만 한 번 맞을 때면 걷잡을 수 없었습니다. 아빠는 쉬지 않고 제 뺨을 때렸고, 그러다가 막무가내로 몸을 때렸습니다. 여전히 제 머릿속에는 벽걸이 시계가 또렷하게 보입니다. 은색 테두리에 하얀색 바탕을 한 별 특색 없는 둥근 시계였죠. 열 살 때, 아빠에게 심하게 맞은 다음 날 그 시계의 초침을 보면서 제발 시간이 멈춰달라 빌고 또 빌었습니다. 아빠가 퇴근해서 오는 시간을 어떻게든 막고 싶었어요. 그 뒤로 저는 아빠가 오는 시간이 되면 자는 척을 했습니다. 이불을 뒤집어쓰고, 눈을 감고, 눈동자와 눈꺼풀을 움직이지 않으려 얼마나 애썼는지 몰라요. 아빠가 갑자기 죽는다고 해도 조금도 슬프지 않을 거라 자신했죠. 오히려 아빠가 없으면 편할 거라 생각했습니다.


재작년에 엄마에게 왜 그렇게 나를 자주 때리고 혼냈느냐고 물었습니다. 엄마는 당황하면서 내가 언제 그랬느냐고 했지요. 그 후로 일 년이 지난 어느 날, 엄마가 미안하다고 했습니다. 사는 게 너무 힘들어서 자식이 예쁜 줄 몰랐다고 하면서 제게 사과했어요. 그 순간 엄마가 참 작고 여리게 느껴졌습니다. 어렸을 때는 너무 무서웠던 엄마였어요. 『혼나지 않게 해 주세요』의 주인공처럼 저도 엄마에게 혼나지 않게 해 달라 매일 기도할 정도였지요. 그런 엄마가 어느 순간부터 만만해지기 시작하더군요. 그래서 이유 없이 엄마에게 화도 많이 냈어요. 어렸을 때 혼나고 맞았던 기억이 되살아나자 감정을 더 주체할 수 없었지요.


부모에게 혼나고 맞는 게 당연한 줄 알았어요. 사랑하니까, 잘 되라는 마음이 있으니까, 내가 잘못했으니까 그런다고 여겼죠. 저뿐 아니라 다른 친구들도 그 정도는 맞으면서 크니까요. 그래도 제 부모는 병원에 가야 할 정도로 저를 때린 적은 없으니 감사했죠. 그런데 그 마음이 저를 병들게 하더군요. 당연하지 않은데 당연하다면서 합리화하려 했고, 이해할 수 없는데 이해하려고 했어요. 고마울 때 원망하고 미안할 때 미워하면서 상황에 맞지 않는 감정과 싸워야 했죠. 엄마와 아빠가 없으면 좋겠다고 생각할 때면 죄책감 때문에 저를 없애고 싶었어요. 죽고 싶어 옥상에 올라갔다가 내려올 때면 용기 없는 저를 탓했습니다. 이번에도 또 혼나지 않을까, 하는 두려움은 생활을 잠식했고, 잘하는 분야에도 자신이 없었습니다. 칭찬을 들으면 기뻐야 하는데 혼나지 않아 다행이라고 안심했어요. 자존감은 늘 바닥이었고, 행복한 순간에도 불안하면서 죽음을 원했죠.


'다들 그렇다'는 이 말이 위안이 될 때가 있지만 '다들 그렇다'는 이 말이 폭력적일 때가 있습니다. 다 그러니 유난 떨지 말라는 누군가의 말에 제 감정을 누르고 억압하고 공격했습니다. 상처를 덮다가 안 되면 후비고 쑤셔 더 큰 상처를 만들었지요.


제 아픔을 보고 싶지 않아 오랫동안 이 두 책을 펼치고 싶지 않았습니다. 절대로 그런 어른이 되지 말아야지, 했지만 별반 다르지 않게 나이 든 저를 마주하고 싶지도 않았고요.



내가 다 낫기까지는 일주일이 걸렸다. 내 마음이 상한 이유는 아픔이나 매 때문이 아니었다. 식구들은 의심이 갈 정도로 내게 잘해 주었다. 그래도 무엇인가를 잃은 것처럼 허전했다. 나를 다시 예전의 나로 되돌려 주고, 사람과 그들의 선한 마음을 믿게 해 줄 중요한 무엇인가가 사라진 것 같았다. 나는 아주 조용히 지냈다. 아무 의욕 없이 밍기뉴 곁에 멍하니 앉아 무관심하게 살을 바라보았다. 밍기뉴와 말을 주고받는 것도 싫었고 그가 하는 이야기들도 시시했다. 내가 하는 일이라고는 기껏해야 동생이 내 곁에 있도록 하는 것뿐이었다.

(중략)

아빠는 내 손을 끌어다 식구들이 모두 보는 앞에서 나를 아빠 무릎에 앉혔다. 그리고 내가 어지럽지 않도록 천천히 의자를 흔들었다.
“다 지나갔다, 얘야. 모두 다 끝났어. 너도 이다음에 크면 아빠가 될 거야. 그리고 살다 보면 어려운 시기가 있다는 것도 알게 될 거다. 하는 일마다 잘 안 되고 끝없이 절망스러울 때가 있어. 하지만 이제는 그렇지 않아. 아빠는 산뚜알레이슈 공장의 지배인이 됐어. 이제 다시는 크리스마스에 네 신발이 비어 있는 일은 없을 거다.”
아빠는 잠깐 말을 멈추었다. 아마 아빠도 살아 있는 한 절대로 그 일을 잊지 않을 게 틀림없었다.
“여행도 많이 다니자. 엄마는 이제 일을 하지 않아도 돼. 네 누나들도 그렇고. 아직도 그 인디언 메달 갖고 있니?”
나는 주머니를 뒤져 메달을 찾아냈다.
“좋아, 다시 시계를 사서 메달을 달자. 언젠가는 네 것이 될 거야.”
‘뽀루뚜가, 탄화규소가 뭔지 아세요?'
아빠의 이야기는 끝이 없었다. 아빠의 깔끔깔끔한 턱이 내 얼굴을 스쳐 따끔거렸다. 오래 입은 옷에서 나는 냄새도 역겨웠다. 나는 아빠의 무릎 밑으로 빠져나와 부엌문으로 갔다. 그곳 계단에 앉아 어둠 속으로 사라져 가는 뒤뜰을 바라보았다. 기분이 언짢아졌다.
'저 사람은 뭣 때문에 날 무릎에 앉혔을까? 저 사람은 내 아빠가 아냐. 내 아빤 돌아가셨어. 망가라치바가 내 아빠를 죽였어.'

- 나의 라임오렌지나무 -



솔직할 수 있는 용기, 그 간절함



칠월 칠석날에, 우리 반 모두 쪽지에 소원을 적었어.
마사오아 다케시는 '축구 선수가 되게 해 주세요.'라고 쓰고
도모에는 '피아노를 잘 치게 해 주세요.'라고 썼어.

(중략)

나는 학교에 들어와서 배운 글자로
꼭 이루어졌으면 하는 소원을 적었어.
한 글자, 한 글자, 정성껏 썼지.

혼나지 안케
해 주새요

- 혼나지 않게 해 주세요 -



『혼나지 않게 해 주세요』의 '나'는 '혼나지 안케 해 주새요'라는 글을 적습니다. 곰곰이 생각하고, 골똘히 생각한 끝에 나온 바람입니다. 맞춤법은 틀렸지만 한 글자, 한 글자 정성껏 쓴 소원이죠. 연필을 잡은 아이의 모습이 너무나 진지해서 얼마나 간절한지 알 수 있습니다. 다른 친구들은 다 쓰고 노는데 '나'는 제일 나중에 소원을 쓴 쪽지를 선생님에게 줍니다. 또 맨 꼴찌라며 이번에도 혼날 거라 예상합니다.


『나의 라임오렌지나무』의 제제는 온전히 자신을 이해해주고 아껴주는 뽀르뚜가에게 아저씨의 아들이 되고 싶다고 말합니다. 아버지를 선택할 수 있다면 아저씨를 택하겠다면서 그렇게 된다면 욕도 안 하고, 공부도 열심히 하고, 착한 아이가 되겠다고 하죠.



그는 너무 감격한 나무지 벌떡 일어나 내 앉아 두 손으로 내 얼굴을 감싸 쥐었다.
"너, 내 아들이 되고 싶은 거냐?"
"태어나기 전에 아버지를 선택할 수는 없잖아요. 만약에 그럴 수만 있다면 당신을 선택할 거예요."
"정말이냐, 꼬마야?"

(중략)

"내가 없어지면 우리 집 식구들은 모두 기뻐할 거예요. 모두들 한시름 놓을 거라구요. 글로리아 누나랑 안또니오 형 사이에 누나가 한 명 더 있었는데 북쪽에 양녀로 줘 버렸어요. 그래서 그 누나는 지금 부자 사촌네랑 같이 살면서 공부해요. 이제 다 컸어요."
그는 계속 잠자코 있었다. 두 눈에는 눈물이 가득 고여 있었다.
"만약 아빠가 안 주겠다고 하면 날 사겠다고 하세요. 아빤 돈이 한 푼도 없으시거든요. 아빠는 분명 날 팔 거예요. 만약에 돈을 많이 달라고 하면 자꼽 아저씨가 물건 팔 때처럼 나눠서 내도 될 거예요……."
그가 계속해서 아무 말도 하지 않아 나는 제자리로 돌아누웠다.
"있잖아요, 뽀르뚜가! 나를 아들로 삼기 싫다고 해도 상관없어요. 당신을 울리려고 한 말은 아니었어요."
그는 아주 천천히 내 머리를 쓰다듬어 주었다.

- 나의 라임오렌지나무 -



친구들과 선생님에게 공개되는 상황인데도 '나'는 혼나지 않게 해 달라는 소원을 썼습니다. 저라면 좀 더 근사하거나, 저의 부끄러움이 드러나지 않는 소원을 썼을 텐데 '나'는 그렇지 않았습니다. 정말 자신이 원하는 게 무엇인지 깊게 생각한 뒤에 그 바람을 솔직하게 썼습니다. 자신의 아픔을 정면으로 바라보면서 용기 있게 자신을 드러낸 이 아이에게 울컥했습니다. 동시에 얼마나 간절하면 이럴까, 했죠. 제제에게도 마찬가지입니다. 얼마나 간절하면 뽀르뚜가에게 자신을 입양하라고, 아빠가 허락하지 않으면 돈을 주고 자신을 사 가라고 할까요. 너무 일찍 철이 든 다섯 살 아이의 절박함에 가슴이 먹먹합니다.



진정한 어른의 의미


사전에서 '어른'을 찾아보았습니다.


1. 다 자란 사람. 또는 다 자라서 자기 일에 책임을 질 수 있는 사람.

2. 나이나 지위나 항렬이 높은 윗사람

3. 결혼을 한 사람

4. 한집안이나 마을 따위의 집단에서 나이가 많고 경륜이 많아 존경을 받는 사람

5. 남의 아버지를 높여 이르는 말


1번과 4번의 뜻풀이가 마음을 짓누릅니다. 나이는 충분하고도 넘치는데 어른이라고 할 수 있는지 자신할 수 없습니다.


『혼나지 않게 해 주세요』의 선생님은 '나'의 소원을 보고는 눈물을 흘립니다. 그리고 바로 '나'에게 그동안 혼내기만 해서 미안하다며 사과를 합니다. 참 잘 썼다는 칭찬도 함께요. 선생님은 '나'의 엄마에게 전화를 걸어 오랫동안 이야기도 나눕니다. 그날 엄마도 변합니다. '나'는 자기의 소원이 이렇게 빨리 이뤄질 줄 몰랐다며 깜짝 놀랍니다. 그리고 착한 아이가 되겠다고 스스로 다짐합니다. '나'의 얼굴에 드디어 웃음이 생깁니다.


『나의 라임오렌지나무』의 뽀르뚜가 아저씨는 제제의 친구이면서 제제를 보호해주는 울타리입니다. 제제는 뽀르뚜가를 통해 진정한 사랑을 배우고 느낍니다. 제제가 폭력을 답습하지 않은 건 제제의 본바탕이 선하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뽀르뚜가의 사랑과 믿음 때문이죠.


저라면 『혼나지 않게 해 주세요』의 선생님처럼 제 잘못을 인정하면서 아이에게 사과를 할 수 있을지 모르겠습니다. 혼낼 만한 이유가 있었기에 혼을 냈다며 제 행동을 정당화하려 하지 않을까요. 사과를 하더라도 앞으로 네가 이렇게 해주면 좋겠다는 단서를 붙였겠죠. 상황 파악을 잘하지 못해 엉뚱한 행동을 하고, 규칙을 잘 지키지 않으며, 장난이 심한 아이에게 온전히 애정을 줄 수 있을지 자신이 없습니다. 아닌 척하고 있지만 제가 싫어하는 나이 든 사람의 모습을 그대로 드러내고 있지는 않은지 반성하게 되네요.



진짜 어른이 된다는 것




매일 혼나고 맞지만 이 두 아이는 누구보다 착하고 순수합니다. 어긋날 때가 있지만 자신이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해 동생을 돌보고, 가족을 웃게 해 주기 위해 애씁니다. 특히 제제는 무척 똑똑하고 호기심이 많은 아이입니다. 제제는 학교 선생님이 꽃을 받지 못하는 것을 안타까워하며 그녀를 위해 화병에 꽃을 꽂아놓습니다. 다른 이의 정원에서 꺾은 꽃이지만 선생님을 생각하는 마음은 누구보다 큽니다. 자신을 때리는 가족을 이해하려 하고, 그들의 고통을 헤아리려고도 하죠.


이런 아이를 부모는, 그리고 많은 어른들은 이해하지 못합니다. 이해하려 하지도 않지요. 평소에는 주눅이 든 '나'가 눈에 힘을 주고 인상을 쓰는 것도, 가족을 위하는 제제가 그들에게 심한 욕을 하는 것도 마음을 다쳤기 때문입니다.



차가 아주 천천히 달리는 동안 우리는 많은 이야기를 나누었다. 자동차마저도 우리 이야기를 귀담아들으려는 것 같았다.
"너는 나하고 있을 땐 비단같이 부드럽고 착해. 네 선생님하고 있을 때도. 네 선생님 성함이 뭐라고 했지?"
"쎄실리아 빠임이요. 선생님 한쪽 눈에 점이 나 있는 건 알지요?"
그는 웃었다.
"그러니까, 쎄실리아 빠임 선생님은 네가 학교 밖에서 못된 짓을 저지르고 다닌다는 것을 믿지 않는다고 그랬지. 네 동생이나 글로리아랑 있을 때도 넌 아주 착해. 그런데 어떻게 사람이 그렇게 변하지?"
"저도 모르겠어요. 집에서는 아무 생각 없이 하는 일도 장난이 돼 버려요. 내가 나쁜 짓을 저지른다는 걸 온 동네가 다 알아요. 악마가 내 귀에다 대고 나쁜 일을 불어넣나 봐요. 안 그러면 에드문두 아저씨 말처럼 어떻게 그 많은 장난을 혼자서 만들어 내겠어요. "

- 나의 라임오렌지나무 -


이제 저는 어린아이가 아닙니다. 내면과는 상관없이 겉모습은 어른이죠. 어린 날의 상처를 간직하고 있으면서 어린아이의 상처를 제대로 보지 못하고, 씩씩거리는 아이의 마음을 감싸주고 싶지 않고, 장난이 심한 아이에게 분노를 느끼는 나이만 먹은 어른입니다. 이해할 수 없는 아이를 볼 때면 왜 그러는지 알고 싶지 않고, 단편적인 모습으로 판단하고 단정합니다. 현실에서 이 두 아이를 만나면 분명 좋아하지는 않았을 겁니다. 가까운 사이일수록 혼을 내고 벌을 주는 강도는 심해지겠죠. 훈육이라는 이름으로 감정을 해소하기 위해 폭력을 사용할 수도 있습니다.


'세상의 모든 어린이들은 사랑스럽다'는 말에 동의할 수는 없지만 '세상의 모든 어린이들은 소중하다'는 말에는 동의합니다. 누구를 만나느냐에 따라 아이가 변한다는 것도 믿고요. 매일 혼나는 '나'는 어른들의 변화에 행복을 느끼고 착한 아이가 되겠다고 다짐합니다. 악마의 피가 흐른다는 말에 제제는 자기 안에 악마가 있다고 믿으며 스스로를 악마라 칭합니다. 하지만 제제는 자신을 믿고 사랑해주는 이들에게는 더없이 착하고 똘똘한 천사이지요. 어쩌면 세상의 모든 어린이들은 사랑스러운데 성숙하지 못한 어른들 때문에 그 사랑스러움이 깨어나지 못하는 것일 수도 있겠네요.


부모는 아니지만 저는 부모 교육과 아이들의 문제에 관심이 많습니다. 순전히 저를 위해서죠. 불안과 겁이 많은 저는 끔찍한 범죄가 사라지길 바라거든요. 범죄율이 낮아지기 위해서는 아이들이 잘 커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어른들의 역할이 무척 중요하죠.


과거에 만난 아이들에게 저는 어떤 사람이었는지 반성합니다. 앞으로 만날 아이들에게 그때의 실수를 되풀이하지 말자고 다짐하는데 역시 저는 모든 아이들에게 다정할 수는 없나 봐요. 좋은 영향은 주지 못하더라도 상처는 주지 말아야 하는데, 잘못을 가르칠 때에는 감정을 섞지 않아야 하는데, 상처를 주었다면 사과할 수도 있어야 하는데 생각만으로도 어렵네요.


나이는 들었지만 저 역시 진짜 어른은 아닌가 봅니다. 이 두 아이가 짠하면서도 현실에 있다면 골치가 아플 거라고 생각하는 걸 보면 말이죠. 오래전에 부딪쳤던 그 아이가 어떤 이유로 그랬는지 알고 싶지 않은 채 여전히 미운 걸 보면요.




* 혼나지 않게 해 주세요, 이시이 기요타카 그림, 구스노키 시게노리 글, 고향옥 옮김, 베틀.북 펴냄

* 나의 라임오렌지나무, J.M. 바스콘셀로스 글, 김효진 그림, 박동원 옮김, 동녘 펴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