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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곰이 강을 따라갔을 때』 X 『페스트』

by 꿈의 떨림




익숙하고 지치고 무뎌지고 예민하고



『곰이 강을 따라갔을 때』를 통해 내가 하고 싶은 말은 책 속 주인공들처럼 삶이라는 강에 자신을 맡기고 성큼 배에 올라타 볼 것, 개성이 다른 이들과 힘을 합치고 함께 모험을 떠나 보라는 것입니다. 놀랍게도 그동안 알지 못했던 새로운 세상이 눈앞에 펼쳐질 거예요. 이 그림책의 독자들 모두가 통나무배에 올라타고 신나는 모험을 즐기길 진심으로 바랍니다.

- 글 작가 노트(리처드 T. 모리스) -



한 달 전만 해도 7월이 되면 거리두기가 완화될 거라 기대했습니다. 확진자가 크게 늘지 않는 한 사적 모임 인원이 증가할 거라 예상하면서 다섯 명 정도만 모여 책모임을 해보자 L과 이야기를 했었지요. 마스크를 쓰고 거리를 두고 앉으면 괜찮지 않을까, 했어요. 변수는 없을 거라 확신하면서 책방 블로그에 모임에 관한 공지를 올렸는데 앞날은 정말 알 수가 없네요. 방역수칙이 약화될 거라 확신했던 말투와 웃음이 무색해졌습니다.


코로나가 발생한 지 1년 반이 지나고 있습니다. 그 이전이 어땠는지 기억이 나지 않을 정도로 이 생활이 너무 오래된 듯합니다. 익숙하면서 지치고, 무뎌지면서 예민하고, 그러려니 하다가도 순간순간 화가 치밀어 오르네요. 작년만큼의 불안과 분노는 아니지만 그래도 여전히 인간에 대한 경계를 지울 수 없습니다. 문제는 방역수칙을 제대로 지키지 않는 사람 때문에 그렇지 않은 선량한 사람마저 의심한다는 거죠. 길에서 마주치는 저 사람이, 대중교통을 같이 타고 가는 저 사람이, 심지어 가족과 친구들이 그런 사람은 아닌지 날을 세우고 있습니다.


코로나 이후 경제가 어떻게 변할지에 관한 책을 읽으면서 인간관계는 어떻게 변할지 생각했습니다. 서로의 체온을 나누자거나, 당신의 숨결을 느끼고 싶다거나, 손에 손을 잡고 벽을 넘자는 건 이젠 고리타분한 옛말이거나 불쾌한 농담이 되는 건 아닌지 걱정이 되더군요. 이런 문구를 좋아하지 않지만 이 안에 담긴 마음이 비아냥거리가 되거나 무시무시한 협박이 되는 건 원치 않습니다.


그런데 아무래도 제가 이 문장에 담긴 뜻마저 거부하고 있는 듯합니다.



불안이 만든 불만



저는 유독 불안이 많습니다. 생활보다 생각 때문에 지치고, 일어나지 않을 일을 걱정하느라 도전하지 못한 일이 많죠. 그래서 코로나가 시작된 이후 더욱 고립된 생활을 하고 있습니다. 여행은 물론이고 친구들도 만나지 않습니다. 외식도 거의 하지 않고, 교통수칙을 지키지 않는 그들 때문에 배달음식도 자제하고 있어요. 요리에 소질도 관심도 없기에 주로 냉동식품으로 배를 채우다가 조가 그것들을 거부하면 주문합니다. 자주 가던 맛집과 그곳에서 먹던 소주가 그립지만 이 상황에 가고 싶지는 않더라고요.


제 불안은 다른 사람에게도 너그럽지 못합니다. 제가 안 된다고 하는 바람에 조 역시 친구들을 못 만나고 있어요. 공기업에 다니는 조의 친구가 자기네 회사 규칙보다 제 규칙이 더 무섭다고 했다더군요. 전화를 할 때마다 엄마에게 마스크를 잘 쓰고 다니라고 잔소리를 하고, 친구들과의 만남도 계속 미루는 중입니다. 그러니 방역수칙을 지키지 않는 이들을 볼 때면 화가 날 수밖에요. 이렇듯 코로나는 저를 더욱 웅크리게 하면서 어떤 면은 무척 예민하게 만들고 있습니다.


인간에 대한 애정과 예의가 있다면 저렇게 하지 않을 텐데, 하는 생각이 들 때면 인간에 대한 환멸이 올라오려 합니다. 대다수의 사람들은 자신과 가족과 이웃을 위해 방역수칙을 잘 지키고 있는데 그렇지 않은 소수의 사람들 때문에 인간 전체에 대한 회의가 듭니다. 지금 이 순간에도 방역과 치료를 위해 애쓰는 분들이 많은데 그분들보다 그렇지 않은 사람들이 왜 더 크게 보일까요.


결국 대안은 사람이고, 함께 소통하고 연대해야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고 말하고는 있는데 그게 정말 제 진심인지, 학습이 빚어낸 버릇 같은 결론인지 헷갈리기 시작하더라고요. 코로나 이후 경제가 어떻게 변할지에 관한 책을 읽다가 인간에 대한 희망을 느낄 수 있다는 『페스트』를 펼쳤습니다.



"내가 확실히 알고 있는 것은(그렇습니다, 리유. 아시다시피 나는 인생 만사를 다 알고 있지요), 사람은 제각기 자신 속에 페스트를 지니고 있다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세상에서 그 누구도 그 피해를 입지 않는 사람은 없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늘 스스로를 살펴야지 자칫 방심하다가는 남의 얼굴에 입김을 뿜어서 병독을 옮겨 주고 맙니다. 자연스러운 것, 그것은 병균입니다. 그 외의 것들, 즉 건강, 청렴, 순결성 등은 결코 멈춰서는 안 될 의지의 소산입니다. 정직한 사람, 즉 거의 누구에게도 병독을 감염시키지 않는 사람이란 될 수 있는 대로 마음이 해이해지지 않는 사람을 말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결코 해이해지지 않기 위해서는 그만한 의지와 긴장이 필요하단 말입니다. 그렇습니다, 리유. 페스트 환자가 된다는 것은 피곤한 일입니다. 그러나 페스트 환자가 되지 않으려고 발버둥 치는 것은 더욱더 피곤한 일입니다. 왜냐하면 오늘날에는 누구나가 어느 정도는 페스트 환자니까요."

- 페스트 -



'코로나' 현실과 너무 닮은 소설 '페스트'



의사 리유는, 입 다물고 침묵하는 사람들의 무리에 속하지 않기 위하여, 페스트에 희생된 그 사람들에게 유리한 증언을 하기 위하여, 아니 적어도 그들에게 가해진 불의와 폭력에 대해 추억만이라도 남겨 놓기 위하여, 그리고 재앙의 소용돌이 속에서 배운 것만이라도, 즉 인간에게는 경멸해야 할 것보다는 찬양해야 할 것이 더 많다는 사실만이라도 말해 두기 위하여, 지금 여기서 끝맺으려고 하는 이야기를 글로 쓸 결심을 했다.

- 페스트 -



194X년 오랑시를 배경으로 한 『페스트』는 코로나를 겪고 있는 지금 우리의 상황과 무척 닮았습니다. 전염병으로 인해 사람이 죽어가고, 도시는 봉쇄되고, 그로 인해 사랑하는 사람을 만날 수 없습니다. 누군가는 사명감을 갖고 환자를 돌보고, 누군가는 보건대를 조직해 방역에 힘쓰고, 누군가는 혈청을 개발합니다. 또 누군가는 어떻게든 이 도시에서 나가려 하고, 누군가는 신이 내린 벌이라며 회개하라 하고, 누군가는 페스트 덕에 웃습니다.


베르나르 리유(외래어 표기법에 따라 '베르나르 리외'가 맞지만 이 책에서는 소리의 어색함을 피하기 위해 '리유'로 한다고 밝혔습니다)는 오랑시의 의사입니다. 이 소설의 주인공이면서 이 사건을 기록한 인물이죠. 그는 의사로서 최선을 다하고, 기록자로서도 객관성을 유지하려 애씁니다. 랑베르는 취재를 하기 위해 오랑시에 방문한 기자입니다. 페스트로 도시가 봉쇄되자 그는 자기는 이 도시 사람이 아니라며 어떻게든 오랑시를 빠져나가려 합니다. 타루 역시 페스트가 발생하기 전에 이 도시에 온 사람입니다. 그는 페스트에 맞서기 위해 자원봉사자들로 구성된 보건대를 조직합니다. 여기에 합류한 그랑은 모든 통계를 기록하는 서기 역할을 하지요. 파늘루 신부는 페스트는 신이 자기를 거역하는 인간에게 보낸 형벌이라며 이 불행을 겪어 마땅하다고 합니다. 많은 이들이 절망과 두려움과 고통을 겪고 있을 때, 코타르는 예외입니다. 불안과 두려움 때문에 자살시도까지 했던 그는 자신의 범행이 페스트로 인해 묻히자 기분이 좋습니다. 도시는 봉쇄되고, 우편 서비스가 중단되자 시민들은 다른 도시에 있는 가족과 친구와 연인을 그리워합니다. 불법으로 도시를 탈출하려는 이들도 생기죠. '양질의 술이 세균을 줄인다'는 근거 없는 소문이 사실인 양 퍼지고, 화재와 약탈과 폭력이 일어납니다. 경제가 파괴되면서 실업자가 많아지고, 페스트로 인해 사망자가 늘어나자 장례식의 모든 형식은 간소화됩니다.



이러한 모든 상황은 설상가상으로 바람까지 겹쳐서, 어떤 사람들의 정신에도 불을 댕겨 놓았다고 볼 수 있다. 시의 문들은 밤에 몇 번씩이나, 그것도 이번에는 무장한 소규모 집단에게 습격을 받았다. 총격전이 벌어졌으며 부상자가 생겼고 도망자도 있었다. 감시초소들이 강화되자 그러한 시도는 이내 중지되었다. 그러나 그러한 시도가 있었다는 사실 자체만으로도 시내에 일종의 혁명과 비슷한 분위기를 조성해, 몇 건의 폭력 사건을 이야기하기에 충분했다. 보건상의 이유로 폐쇄되었거나 화제가 난 집들이 약탈을 당했다. 사실 그런 행위가 계획적인 것이었다고 추측하기는 어려웠다. 대개의 경우 여태껏 점잖았던 사람들이 돌발적인 기회에 비난받을 만한 일을 저질렀으며, 그런 행위에 이어서 이내 딴 사람들이 흉내를 냈던 것이다. 그리하여 슬픔이 극에 달해 얼이 빠진 집주인이 보고 있는 앞에서, 아직도 불타고 있는 집으로 정신없이 뛰어드는 미치광이들도 있었다. 집주인이 가만히 있는 것을 보자 구경꾼들도 그들이 하는 짓을 따라 했고, 그래서 그 어두운 거리에는 꺼져 가는 불길과 어깨에 걸머진 물건, 또는 가구들로 해서 생긴 일그러진 그림자들이 화재의 불빛을 받으며 사방으로 도망치는 모습을 볼 수 있었다.

(중략)

당국은 묘지 맨 끝에, 유향 나무들로 뒤덮인 빈터에다가 엄청나게 큰 구덩이 두 개를 마련했다. 남자용 구덩이와 여자용 구덩이였다. 이러한 점에서 보면 행정 당국은 예의를 갖춘 셈이었다. 여러 가지 사태의 압력으로 급기야는 그 마지막 수치심까지 팽개치고서 체면 따위는 아랑곳하지 않은 채, 여자 남자 가리지 않고 뒤범벅으로 포개어 묻어 버리기 시작한 것은 훨씬 뒤의 일이었다. 다행히도 그런 극도의 혼란은 그 재앙이 최종 단계에 이르렀을 때만 나타난 것이었다. 지금 우리가 언급하는 이 시기에는 구덩이가 구별되어 있었고, 도청에서는 그 점을 몹시 중요시했다. 그 구덩이 밑바닥마다 아주 두껍게 입혀 놓은 생석회가 김을 뿜으며 부글부글 끓고 있었다. 또 구덩이의 가장자리에는 같은 생석회가 산더미처럼 쌓인 채 거품을 대기 속에서 터트리고 있었다. 구급차의 왕복이 끝나면, 들것들이 줄을 짓고 거기에 담긴 벌거벗겨지고 약간 뒤틀린 시신들을 거의 나란히 붙여 구덩이 밑바닥으로 쏟아붓고, 그 위에 생석회를, 다음에는 흙을 덮는다. 그러나 그것도 다음에 들어올 손님을 위해서 일정한 높이까지만 덮고 만다.

- 페스트 -


강을 따라가다 만난 친구들



이 끔찍한 전염병에 투쟁하기 위해 리유를 중심으로 사람들이 모입니다. 타루는 자원 보건대를 조직하는 구상을 리유에게 말하고, 리유는 타루의 착상을 도청에서 수락하도록 책임을 지겠다고 합니다. 자질구레한 일에 도움이 되고 싶다며 그랑이 보건대에 자원하고, 카스텔은 혈청을 제조하는 데 몰두합니다. 심지어 자기는 이 도시 사람이 아니라며 불법적인 방법으로 탈출하려 한 랑베르와 페스트는 신의 뜻이라고 한 파늘루 신부까지 보건대에 합류합니다.





밤에도 흐르고,
낮에도 흐르는 강이 있었어.

강이 어디로 가는지는
아무도 몰랐지.

어느 날,

곰이 강을 따라갔어.

그저 궁금해서 말이야.


- 곰이 강을 따라갔을 때 -



강을 따라가는 곰에게도 친구들이 생깁니다. 어느 날, 곰은 강을 따라갑니다. 밤에도 흐르고 낮에도 흐르는 강이 어디로 가는지 아무도 알지 못하기에 그저 궁금했지요. 그러다 그만 곰은 강에 빠집니다. 사실 강이 아니라 엄청난 모험에 빠진 거죠. 개구리가 뛰어올라 곰의 머리 위에 앉습니다. 친구가 없어 외로웠던 개구리는 곰의 머리 위에서 무척 행복한 표정을 짓습니다. 곰과 개구리가 탄 통나무배는 강을 따라 흐릅니다. 그때 불쑥 나타난 거북이들이 통나무배에 올라탑니다. 그다음 비버가, 너구리들이, 콰당 부딪힌 오리까지 합류합니다. 여럿이 함께 있어 이들은 행복합니다. 하지만 곧 눈앞에 폭포가 나타납니다. 절벽에 떨어지기 직전, 곰과 친구들은 두려움에 털이 곤두서고 눈이 커집니다.



통나무배를 타고 내달리는 게 정말 신났어.
하지만 조심해야 된다는 건 몰랐지.

콰당,
오리하고 부딪힐 때까진 말이야.

오리는 여럿이 함께 있는 게 무척 좋았어.
하지만 곧 새로운 세상을 보게 될 줄 몰랐지.

- 곰이 강을 따라갔을 때 -





강을 따라가다 보면 생기는 일



삶이라는 강을 따라가다 보면 예상치 못한 일들을 만납니다. 뜻하지 않게 아름다운 광경을 보기도 하고, 고마운 사람을 만나기도 하죠. 강 너머에 있는 풀 한 포기가 예사롭지 않게 보이기도 하고, 모든 게 다 나를 위해 존재하는 것처럼 느껴질 때도 있습니다. 그러다가도 폭포를 만나 아래로 아래로 떨어지기도 하고, 거친 물살을 헤쳐가야 할 때도 생깁니다. 때로는 평온한 날씨에 통나무배가 뒤집히기도 하고, 누군가에 의해 물에 빠지거나, 누군가를 물에 빠뜨려야 하기도 합니다.


코로나라는 거친 물살 앞에 있는 저는 그 중심에는 들어가지 않으려 애쓰는 중입니다. 그러느라 주변을 보지 못합니다. 소용돌이 한가운데에서 고통을 외치는 사람들의 아픔과 노력에 울컥하지만 잠시 뿐입니다. 대부분 무심하고, 일부러 외면하고, 그러다가 비난합니다. 함께 강을 건너는 이들을 돌아볼 여유가 없고, 그들이 있기에 잘 건너고 있다는 사실도 자주 잊지요. 사회적 거리두기가 심리적 거리두기로 이어질까 봐 걱정하면서 정작 제가 그러고 있습니다.


얼마 전, 친구와 통화를 했습니다. 코로나 이전부터 계획했던 제주도 여행에 대해 묻더라고요. 지금은 시기가 좋지 않은데 좀 나아지면 갈 수 있냐고 하는 친구에게 나아진다는 기준이 어느 정도인지는 모르겠지만 백신을 맞더라도 올해는 어렵다고 했습니다. 나날이 확진자 수가 최대를 넘고 있는 이 상황에서 여행을 가고 싶은 생각은 조금도 없다, 코로나가 종식되더라도 한동안 움직이지 않을 것이다, 혹시 코로나에 걸린다면 굳이 갈 필요가 없는 곳에 가서 민폐를 끼치는 것이다, 나 때문에 누군가가 피해를 입는 건 원치 않는다 등의 말을 했죠. 제 말투는 단호했고, 왜 이 시기에 여행 얘기를 꺼내느냐는 비난이 섞여 있었습니다. 지금 당장 가자는 것도 아니고, 제주도에 살고 있는 친구에게 조언을 구할 것도 있어 상황을 보자고 한 건데 제가 너무했죠. 좀 더 편하게 말할 수도 있었는데 너무 까칠했어요. 저와 함께 강을 건너고 있는 친구인데, 누구보다 성실하게 하루를 살면서 남에게 폐를 끼치지 않으려 노력하는 친구인데 그런 친구마저 불신했습니다.


미안해, 불안해서 그랬어. 친구에게 사과할 일을 또 만들었습니다.


강을 따라갈 때 필요한 것



코로나에 걸린 사람들이 가장 두려운 건 병에 걸린 게 아니라 확진자라는 낙인이라고 합니다. 확진자에 대한 비난과 혐오, 신상 털기, 부당해고 등으로 인해 몸은 괜찮아져도 심리적 고통은 오래간다고 합니다.


지금 제가 민감하게 반응하는 이유도 이것 때문입니다. 제 몸이 아픈 것보다, 저 때문에 누군가가 피해를 받는 것보다 누군가가 저를 원망하며 비난하는 게 훨씬 무섭습니다. 그래서 최대한 사람을 적게 만나고, 최대한 돌아다니지 않으려 합니다. 다행히 활동적인 인간이 아니어서 많이 답답하지는 않습니다. 그래도 한 번씩 이곳을 벗어나고 싶을 때가 있어요.


"그럼 넌 가까이에 있는 사람 때문에 코로나에 걸리면 그 사람을 탓하고 미워할 거야?"

여행을 갔다가 코로나 판정을 받으면 그 원망을 어떻게 감당하느냐는 제 말에 친구가 묻더라고요.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몰라 음, 이라는 단어만 길게 내뱉었습니다. 저에 대한 비난만 생각했지 거기에 대해서는 생각해 본 적이 없었어요. 혹시 저 사람 때문에 코로나에 걸리지 않을까, 두려워하면서 날을 세웠지만 막상 그 일이 현실로 닥치면 어떻게 해야 할지는 모르겠더라고요. 제가 좋아하는 사람들을 떠올리면서 그들 때문에 코로나에 걸린다면 어떻게 하나, 고민했는데 원망은 못하겠더라고요. 그렇다고 온전히 괜찮다고 할 자신도 없고요. 방역 수칙을 어겨서 그런 거라면 탓하지 않을까,라고 대답했는데 아무리 생각해도 그들이 그럴 사람이 아니고 또 그렇다고 하더라도 쉽게 비난할 수는 없을 것 같아요.


만약 그런 일이 생긴다면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고, 누구의 잘못도 아니라고, 강을 따라가다 보면 그런 일도 만나는 거라고, 같이 이 험한 물살을 잘 헤쳐나가 보자고 말할 수 있도록 해야겠어요.


강을 따라 흘러가면서 알게 된 것





그동안 여러 친구들은
저마다 따로따로 살아왔어.
여기 이렇게 함께 있게 될 줄 몰랐단다.

강을 따라 흘러가 보기 전까지 말이야.

- 곰이 강을 따라갔을 때 -



어둠침침한 항구로부터 공식적인 축하의 첫 불꽃이 솟아올랐다. 온 도시는 길고 은은한 함성으로 그 불꽃들을 반기고 있었다. 코타르도, 타루도, 그리고 리유가 사랑했으나 잃고 만 남자들과 여자들도, 사자(死者)들도, 범죄자들도 모두 잊혔다. 노인의 말이 옳았다. 인간들은 늘 똑같은 것이다. 그러나 그것이 그들의 힘이고 순진함이기도 하다. 그런 점에서 리유는 모든 슬픔을 넘어서 자신이 그들과 통한다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더 힘차고 더 긴 함성이 테라스 밑에서 발밑에까지 밀려와 오래도록 메아리치는 가운데, 온갖 빛깔의 불꽃 다발들이 점점 그 수를 더해 가며 하늘 높이 솟아오르는 것을 바라보며 의사 리유는, 입 다물고 침묵하는 사람들의 무리에 속하지 않기 위하여, 페스트에 희생된 그 사람들에게 유리한 증언을 하기 위하여, 아니 적어도 그들에게 가해진 불의와 폭력에 대해 추억만이라도 남겨 놓기 위하여, 그리고 재앙의 소용돌이 속에서 배운 것만이라도, 즉 인간에게는 경멸해야 할 것보다는 찬양해야 할 것이 더 많다는 사실만이라도 말해 두기 위하여, 지금 여기서 끝맺으려고 하는 이야기를 글로 쓸 결심을 했다.
그러나 그래도 그는 이 연대기가 결정적인 승리의 기록일 수는 없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이 기록은 다만 공포와 그 공포가 지니고 있는 악착같은 무기에 대항해 수행해 나가야 하던 것, 그리고 성자가 될 수도 없고 재앙을 용납할 수도 없기에 그 대신 의사가 되겠다고 노력하는 모든 사람들이 그들의 개인적인 고통에도 불구하고 아직도 수행해 나가야 할 것에 대한 증언일 뿐이다.

- 페스트 -


코로나라는 뜻하지 않은 소용돌이 속에서 인간에 대해 더 많이 생각하고, 고민합니다. 수많은 인간 중 하나인 저에 대해서도 마찬가지고요.


언젠가 조가 코로나에 걸리고 안 걸리고는 운이라면서 너무 그러지 말라고 하더라고요. 그나마 이렇게 하고 있어서 아직까지 큰 문제가 없다고 당당하게 말했습니다. 자신뿐 아니라 타인에게 피해를 줄 수 있는 상황이니 조심하고 또 조심해야죠. 다만 불안해서 불만과 증오를 키우고, 고립이 싫다면서 스스로 단절하고 있지는 않은지 반성합니다. 강을 건너다보면 어쩔 수 없이 만나게 되는 폭우를 개인의 탓으로만 돌리지 않았는지도 뉘우치고요.


사납고 강한 폭풍을 헤치고 있는 지금, 혼자만의 힘으로 강을 건널 수 없음을 압니다. 폭포를 만난 곰과 친구들이 서로를 꽉 붙잡고 물속으로 뛰어들었듯이, 페스트에 투쟁하기 위해 리유와 친구들이 서로의 힘을 모았듯이 지루하고 고단한 시간을 지나기 위해서는 우리도 함께 해야죠.


더운 날씨에 최선을 다하고 있는 의료진들과 방역관리자들을 비롯해 각자의 자리에서 성실하게 자신의 역할을 하고 있는 모두에게 감사합니다. 그 고마움을 당연하다 여기며 잊고 있지는 않았는지 돌아봅니다.


부디 모두 이 강을 잘 건너가길, 덕분이었음을 느낄 수 있길, 강을 따라가다 보니 이런 일도 있었다고 웃으면서 이야기하길 바랍니다.


덧붙여 자유라는 이름으로 포장하고 있는 방종을 멈춰주길 바랍니다. 진정한 자유는 타인에게 피해를 주지 않으며, 자신의 행동에 책임을 질 수 있을 때 가능한 겁니다. 자유와 방종을 구분하지 못하는 사람들과는 함께 강을 따라 흐르고 싶지 않습니다.


나는 이제 50대 중반이다. 수많은 실망스러운 사건이 있었음에도 나는 아직 세상이 좋아질 것이라는 아련한 믿음을 가지고 있다. 과연 한국이 ‘재난자본주의’ 형태로 갈 것인지, 아니면 그보다는 좀 더 나은 세상으로 갈 것인지, 우리는 분기점 위에 서 있다. 세상이 좋아질 것이라는 나의 어렴풋한 꿈을 독자 여러분과 나누고 싶다.

다음번 팬데믹까지, 모두 안녕!


- 팬데믹 제2국면 : 코로나 롱테일 충격은 오래간다, 우석훈 지음, 문예출판사 펴냄 -



* 곰이 강을 따라갔을 때, 르웬 팜 그림, 리처드 T. 모리스 글, 이상희 옮김, 소원나무 펴냄

* 페스트, 알베르 카뮈 글, 김화영 옮김, 민음사 펴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