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제는 시간이 아니라 마음이었어요

『어느 우울한 날 마이클이 찾아왔다』 X 『모모』

by 꿈의 떨림




도둑맞은 듯한 시간


지하철을 이용하면 한 시간 남짓한 거리를 두 시간 넘게 버스를 타고 다닌 적이 있습니다. 도저히 지하철을 탈 수가 없었거든요. 마주 보면서 앉아 있는 구조가 힘들었고, 제 앞과 옆에 누군가가 있는 것도 불편했습니다. 불특정 다수 안에 특정인이 있을 것 같았고, 알지도 못하는 수많은 사람들이 저를 비난하고 비웃는 것만 같았어요. 그러다가 지하철 안으로 들어오는 사람들에게 떠밀려 그대로 쓰러졌습니다. 비명을 지르는 소리와 괜찮냐는 물음이 들렸고, 저를 일으켜주려는 손길도 느꼈습니다. 괜찮았는데, 정말 아무렇지도 않았는데 목소리는 나오지 않았고 몸을 움직일 수 없었어요. 그 뒤로 몇 년 동안 지하철을 타지 못했습니다. 버스 안도 두렵긴 했지만 지하철만큼은 아니었고, 별다른 대안이 없었기에 몇 시간이 걸리더라도 어쩔 수 없었죠.


시간을 충분히 갖고 나왔는데도 여의도로 가는 길은 늘 막혔습니다. 그곳에 갈 때면 항상 제시간에 가지 못할까 봐 초조했죠. 그럴 때면 시간이 평상시보다 훨씬 빠르게 흘러가는 듯했습니다. 누군가가 저를 곤경에 빠뜨리기 위해 시간을 훔쳐가고 있는 것처럼 말이죠. 시계를 바라보면 시간이 늦게 간다는 얼토당토않은 말에 의지해 시계만 뚫어지게 보기도 했습니다. 제 마음이 그러거나 말거나 여전히 버스는 그 자리에 멈춰서 있었고, 시간은 지루하게 흘러갔지만 어디까지나 심리적이었지 물리적인 변화는 아니었어요.


아무것도 하지 않은 채 흘려보낸 시간을 모아 지금 이럴 때 쓸 수 있으면 얼마나 좋을까, 하면서 손가락을 주무르며 한숨만 쉬었습니다. 시간을 모을 수 있다면, 필요할 때 그 시간을 쓸 수 있으면 하고 바랐지요. 지금이라도 버스에서 내려 택시를 타야 하는데 가망 없는 희망을 품느라 몸이 쉽게 움직여지지 않았습니다.


그렇게 고민하고, 불안해하고, 걱정하고, 이루어질 수 없는 꿈을 꾸고, 현실을 부정하면서 허비한 시간이 참 많습니다. 그러느라 정작 해야 할 일을 하지 못했고, 누군가가 제 시간을 훔쳐가고 있다는 확신에 억울했지요.

시간에 쫓겨 우울한 날



정신없이 바쁘게 보낸 시기가 있었습니다. 일은 해도 해도 끝이 없는 듯했고, 하나를 해치우면 다른 두세 개가 기다리고 있었죠. 집에 있는 밥통은 무용지물이 되었고, TV에서는 무슨 프로그램을 하는지, 최근에 무슨 영화가 개봉했는지, 서점에는 어떤 책들이 진열되어 있는지 관심조차 가질 수 없었습니다. 음식을 너무 급하게 먹은 탓에 소화는 잘 되지 않았고, 감기약은 거르기 일쑤였어요. 그나마 좋았던 건 오랫동안 저를 괴롭혔던 불면증이 사라진 거였죠. 새벽까지 잠을 자지 못했고, 잠이 들었다 하면 깨기를 반복했는데 그 시기에 저는 침대에 누우면 알람 소리도 듣지 못할 정도로 잠에 빠져 있었습니다. 아, 그리고 드디어 지하철을 탈 수 있게 되었습니다. 지하철 안에서 심장이 너무 두근거렸지만 그 일을 당장 처리하지 않으면 심장이 터져버릴지도 모른다고 생각하니 용기가 생기더라고요.


그때 저는 왜 그렇게 바쁘냐는 서운함을 외면했고, 일중독에서 빠져나오라는 걱정을 한 귀로 흘렸고, 감정을 숨기지도 조절하지도 못한다는 비난에 괴로워했습니다. 일을 하면서 제가 알지 못한 능력을 발견했고, 한 번도 들어보지 못한 찬사를 받았지만 숨기고 싶었던 단점과 그럭저럭 숨길 수 있었던 약점도 그대로 드러냈지요. 웃고는 있는데 눈물이 흘렀고, 괜찮다고는 했는데 얼굴은 잔뜩 굳어 있었습니다.


버팀목이었던 선배에게 화를 낸 적도 있습니다. 회의를 준비하는 과정에서 선배는 저를 챙기려 진행사항을 물은 건데 여기에서 더 어떻게 일을 하냐고 소리를 지르다가 미안하다며 울었어요. 제가 이룬 성과보다 하지 못한 일 때문에 초조했는데 그 일은 어떻게 되었느냐는 선배의 한 마디가 폭탄이 된 거죠. 바빠서 못 나간다는 말을 몇 번 했더니 친구들이 저를 부르지도 않더라고요. 그게 서운해서 약속 장소에 나가면 피곤과 짜증이 몰려와 가시를 세웠습니다. 너는 왜 전화를 안 하느냐는 엄마에게 퉁명스럽게 대꾸했고, 휴일에 집에 와서 밥 먹고 가라는 말에 화를 내며 전화를 끊었어요. 애인에게는 다음 날 눈을 뜨지 않고 싶다며 울먹였고, 그의 사랑을 시험하듯이 온갖 막말을 쏟았지요.


일로 만난 사람들에게는 좋은 모습을 보여주려 애썼으면서 가까운 사람들에게는 제 안에 쌓인 울분을 쏟아냈습니다. 시간을 낼 수 없다면서 소중한 사람을 먼저 단절했고, 제가 좋아하는 일을 나중으로 미뤘어요. 그 우울하고 복잡한 날에 마이클이 찾아와 주었는데 저는 그를 쫓아내려고만 했습니다. 모모처럼 제 목소리와 소중한 사람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이지도 못했고요.


그때와 비교해서 무척 여유로운 지금도 마찬가지입니다. 『어느 우울한 날 마이클이 찾아왔다』의 마이클처럼, 『모모』의 모모처럼 같이 춤을 추고, 이야기를 나누고, 온전히 상대의 말을 들어주고, 그의 마음을 다독일 수 있는 시간이 넘치고 또 넘치는데 여전히 저는 여유가 없습니다. 아무래도 이건 시간의 문제가 아니라 마음의 문제인가 봐요.



어느 날 갑자기 찾아온 마이클과 모모




단지 당신이 우울하다는 소식을 들었소.

내가? 누가 그래?

누가 그랬냐면 말이지,
내 친구의 친구의
사돈의 이종사촌의
옆집에 살았던
이웃의 삼촌의 고모의
당숙의 사돈의 형이
쓰레기를 버리다
할머니와 얘기하는 걸
들었소.

(중략)

난 생각이 많을 뿐이야.
우울 따윈 하지 않아.

- 어느 우울한 날 마이클이 찾아왔다 -



두 쪽을 가득 채울 만큼 초인종이 울리자 드디어 문이 열립니다. 여자인지 남자인지 구분이 가지 않는 집주인이 팔짱을 낀 채 마이클을 쏘아봅니다. 무슨 일로 왔냐는 집주인에게 마이클은 춤추러 왔다고 합니다. 이를 드러낸 집주인의 입술 사이로 씩씩대는 소리가 나는 듯합니다. 눈썹을 추켜올리고 몸에 잔뜩 힘을 준 그(녀)는 문 앞에 붙은 쪽지가 보이지 않느냐며 화를 냅니다. 거기에는 잡상인처럼 구는 사람과 공룡은 즉시 신고하겠다는 경고가 붙어있죠. 마이클은 당신이 우울하다는 소식을 들었다며 카세트 플레이어의 버튼을 누릅니다. 화가 난 집주인은 문을 닫고 안으로 들어갑니다. 쾅, 하고 닫힌 문 앞에서 마이클은 몸의 색이 변할 정도로 놀라지만 이내 굴하지 않고 음악에 맞춰 춤을 춥니다. 집주인은 현관문 렌즈로 마이클을 보고는 자기도 그 정도는 출 줄 안다며 음악에 맞춰 몸을 움직입니다. 부정적인 감정이 그대로 드러났던 집주인의 얼굴은 춤을 추면서 달라집니다. 황홀한 듯 눈을 감은 채 이 순간을 즐기기도 하고, 자신의 동작에 도취해 자신만만한 표정을 짓기도 합니다. 흥이 오르자 집주인은 스스로 문을 열고 나옵니다. 이제 둘은 음악에 맞춰 함께 춤을 춥니다. 모든 게 끝나자 집주인은 숨을 헉헉대며 자신을 달보라고 소개합니다.


『어느 우울한 날 마이클이 찾아왔다』의 마이클이 난데없이 나타나 달보의 마음을 바꾼 것처럼 『모모』의 모모 역시 어느 날 갑자기 나타나 마을 사람들의 가슴을 두드립니다.



수천 년 전에 지어져 이제는 폐허와 다름없는 원형극장에 누군가가 산다는 소문이 돕니다. 마을 사람들은 소문을 확인하기 위해 원형극장에 갑니다. 정말 그곳에는 작은 키에 무척 마른 소녀가 살고 있습니다. 한 번도 빗질이나 가위질을 한 적이 없는 듯 마구 뒤엉킨 머리, 맨발로 돌아다녀 새까만 발, 천을 이어 붙여 만든 치렁치렁한 치마에 다 낡아빠진 헐렁한 남자 웃옷을 걸치고 있지만 이 소녀의 눈은 깜짝 놀랄 만큼 예쁩니다. 소녀의 이름은 모모입니다. 마을 사람들은 모모를 돕기 위해 고아원으로 보내려 하지만 모모는 이곳에서 살겠다며 고집을 부립니다. 마을 사람 중 한 사람 집에서 살자는 제안도 거절하고요. 사람들은 오랫동안 의논한 끝에 모모의 뜻에 따르기로 합니다. 대신 함께 모모를 보살피기로 하죠. 마을 사람들은 모모의 집을 깨끗이 치우고 정성껏 수리합니다. 모모와 마을 사람들은 서로를 만난 게 행운이라고 생각합니다. 특히 마을 사람들에게 모모는 꼭 필요한 존재입니다. 마을 사람들은 무슨 일이 생기면 모모를 찾지요. 모모에게 가면 문제가 해결되고, 지혜와 희망을 찾을 수 있고, 새롭고 재미있는 놀이도 마구 떠올릴 수 있거든요. 모모는 그저 이야기를 들어주는 것뿐인데 사람들은 말을 하면서 해결점을 찾고, 아이디어를 얻습니다.



모모는 어리석은 사람이 갑자기 아주 사려 깊은 생각을 할 수 있게끔 귀 기울여 들을 줄 알았다. 상대방이 그런 생각을 하게끔 무슨 말이나 질문을 해서가 아니었다. 모모는 가만히 앉아서 따뜻한 관심을 갖고 온 마음으로 상대방의 이야기를 들었을 뿐이다. 그러면 그 사람은 자신도 깜짝 놀랄 만큼 지혜로운 생각을 떠올리는 것이었다.
모모는, 결정을 내리지 못하거나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는 사람들이 문득 자신이 무엇을 원하는지 정확하게 알 수 있게끔, 그렇게 귀 기울여 들을 줄 알았다. 모모에게 말을 하다 보면 수줍음이 많은 사람도 어느덧 거침이 없는 대담한 사람이 되었다. 불행한 사람, 억눌린 사람은 마음이 밝아지고 희망을 갖게 되었다. 내 인생은 실패했고 아무 의미도 없다, 나는 전혀 중요하지 않은 사람이다, 마치 망가진 냄비처럼 언제라도 다른 사람으로 대치될 수 있는 그저 그런 수백만의 평범한 사람 가운데 한 사람에 불과하다, 이렇게 생각하는 사람은 모모를 찾아와 속마음을 털어놓았다. 그러면 그 사람은 말을 하는 중에 벌써 어느새 자기가 근본적으로 잘못 생각하고 있었다는 사실을 깨닫게 되었다. 지금 있는 그대로의 나와 같은 사람은 이 세상에 단 한 사람도 없다, 그렇기 때문에 나는 나만의 독특한 방식으로, 이 세상에서 소중한 존재다. 이런 사실을 깨닫게 되는 것이었다.
모모는 그렇게 귀 기울여 들을 줄 알았다.

- 모모 -



그러던 어느 날, 소박하고 순수한 사람들 앞에 회색 신사들이 나타납니다. 그들은 시간 저축 은행에서 나왔다면서 시간을 허비하지 말고 저축하라고 합니다. 잠자는 시간, 밥을 먹는 시간, 가족과 보내는 시간, 반려 동물에게 신경 쓰는 시간, 사랑하는 사람에게 꽃을 보내는 시간 등등은 낭비라며 시간을 아껴야 한다고 정중하게 협박을 하죠. 이제 마을 사람들은 시간이 없습니다. 이웃에게 상냥한 미소를 보낼 수 없고, 서로 대화를 나누지도 않습니다. 마을 사람들의 얼굴에는 불만과 피곤함이 가득합니다. 더는 모모를 찾아가지도 않고요. 기쁨이니 애정이니 하는 것은 중요하지 않습니다. 짧은 시간 안에 많은 일을 하는 것만 중요하죠. 모모는 회색 신사들에게 빼앗긴 시간을 찾기로 합니다.



마이클과 모모가 되지 못한 이유


그는 점점 신경이 날카로워지고 안정을 잃어 갔다. 시간을 알뜰하게 쪼개 썼지만 손톱만큼의 자투리 시간도 남지 않았다. 정말 이상한 일이었다. 시간은 수수께끼처럼 그냥 사라져 버렸다. 그의 하루하루는 점점 더 짧아졌다. 처음에는 몰랐지만 나중에는 그 속도를 피부로 느낄 수 있었다. 어느새 일주일이 지나갔는가 하면, 한 달이 지나갔고, 한 해, 또 한 해 또 한 해가 후딱 지나갔다.
그는 회색 신사가 찾아왔다는 사실을 까맣게 잊었다. 그러니 그 시간들이 지금 어디로 갔는지 심각하게 생각해 볼 만도 했다. 하지만 그는 시간을 아끼는 사람들이 으레 그렇듯, 그런 질문은 하지 않았다. 푸지 씨는 편집증에 걸린 사람처럼 시간을 아끼겠다는 생각에 사로잡혀 있었다. 그리고 하루하루가 정말 빠르고 점점 더 빨리 흘러간다는 사실을 새삼 깨닫기라도 하면, 기겁해서 이를 악물고 더욱더 시간을 아껴 쓰는 것이었다.
대도시에는 어느새 푸지 씨와 같은 일을 겪는 사람들이 상당히 많아졌다. “시간 절약”을 시작한 사람들은 날마다 늘어났다. 그들의 수가 늘수록 점점 더 많은 사람들이 앞사람의 행동을 따랐다. 그러고 싶지 않은 사람도 같이 행동할 수밖에 없는 분위기였다.

(중략)

하지만 시간을 아끼는 사이에 실제로는 전혀 다른 것을 아끼고 있다는 사실을 눈치챈 사람은 아무도 없는 것 같았다. 아무도 자신의 삶이 점점 빈곤해지고, 획일화되고, 차가워지고 있다는 것을 알아차리지 못했다. 그 점을 절실하게 느끼는 것, 그것은 아이들 몫이었다. 사람들은 이제 아이들을 위해서도 시간을 낼 수 없게 되었던 것이다.

- 모모 -


회색 신사들에게 시간을 빼앗긴 마을 사람들이 언젠가의 저처럼 보입니다. 그때 저는 뭘 하든 조급했습니다. 마트에서 계산을 하기 위해 기다릴 때면 인상을 잔뜩 썼습니다. 횡단보도 앞에서 원망스러운 눈으로 신호등을 노려봤고, 못마땅한 표정으로 발을 동동 구르며 버스를 기다렸습니다. 늘 좋은 성과를 내야 한다는 강박에 시달렸고, 좋지 않은 평가를 받을까 미리 두려워했습니다. 그러다가 정말 그렇게 되면 아직도 살아 있는 저를 증오하고 혐오했지요.


그렇다고 해서 일 분 일 초를 아끼면서 치열하게 살지도 않았습니다. 심리적 압박감 때문에 여유를 느끼지 못했을 뿐이지 사실 제게는 시간이 아주아주 많았습니다. 무기력과 패배감에 젖어 아무것도 하지 못한 채 시간을 버거워한 적도 많았고요. 그럴 때면 세월이 빨리 흘러가길 간절하게 바랐죠.


불안과 강박 때문에 놓친 게 참 많습니다. 제 손에 박힌 가시만 보느라 다른 이의 심장에 박힌 비수를 보지 못했습니다. 누군가를 위로해주기는 커녕 무관심과 냉정함으로 또 다른 상처를 주었죠. 저를 위로해주기 위해 찾아온 친구의 마음 역시 제대로 받아주지 못했고요. 마이클처럼 초인종을 눌러대는 친구들이 귀찮고 부담스러워 숨은 적도 있어요. 제 얘기를 잘 들어주는 친구에게 쉴 새 없이 떠들었으면서 결정적인 말은 꼭꼭 감추었고요. 목구멍까지 차오른 문장들을 그대로 삼켜버리고는 뱉지 못했다며 후회를 반복했지요.


그러니 마이클과 모모도 되지 못합니다. 우울한 누군가에게 먼저 다가가지도 못하고, 누군가의 얘기에 진정으로 귀를 기울이지도 못하지요. 어느 정도까지는 허용하지만 조금이라도 선을 넘는 순간 매몰차 집니다. 자신의 우울을 숨기고 부정한 달보마저 마음을 열고 또 다른 우울한 친구를 찾아갔는데 저는 위로니, 위안이니, 치유 등의 단어에 고개를 저으면서 제게는 그럴 힘이 없다고 하고 있어요. 당신에게 위로를 받고 싶으면서, 당신에게만은 위로가 되고 싶으면서 그런 사람이 못 된다고 단정 짓고 있습니다.



시간이 아닌 마음의 문제



결국 제 시간을 훔치고 망친 건 저 자신이더라고요. 초인종을 누르든, 춤을 추든, 음악을 듣든, 이야기를 하든, 귀를 기울이든 뭐든 충분히 할 수 있었는데 그렇게 하지 못했습니다. 아니, 하지 않았습니다. 시간이 없다는 거짓말에 진실을 숨기면서 저 자신도 속였지요.


마이클과 모모만큼 할 수 없다면서 제가 할 수 있는 부분마저 삭제하고 부정했다는 사실을 이제야 깨닫습니다. 마음 한 칸 내주는 일에도 높은 잣대를 들이대며 온전하지 않다면 시작할 필요가 없다고 생각했습니다. 손해를 보지 않을까 미리 겁을 내면서 벽부터 쳤던 약하고 악한 마음이, 부딪치고 싶지 않아 회피했던 순간이 아프게 다가옵니다.


사소한 일에 매달리느라 중요한 일을 놓쳤고, 목적도 없이 떠도느라 주위를 둘러보지 못했습니다. 저에게 인색했기에 당신에게도 옹졸했습니다. 지금도 마찬가지죠. 이럴 시간에 안부 전화 정도는 할 수 있는데 지나간 일을 붙잡고 후회만 하고 있으니 말이에요.


왜 이러는지 가장 먼저 제 마음부터 살펴야겠어요. 마이클이 되어 닫혀 있는 문의 초인종을 눌러보려고요. 한바탕 춤을 춘 뒤에는 모모가 되어 다정하게 제 이야기에 귀를 기울여야죠.


이렇게 다짐했는데 또다시 핑계를 대며 다음으로 미루고 있습니다. 그래도 될까, 망설이는 마음에게 아주 쉽게 그러자,를 허용합니다.


지금은 시간이 없고, 당장 해야 할 일이 있으니 나중에 해도 괜찮겠죠.



* 어느 우울한 날 마이클이 찾아왔다, 전미화 지음, 웅진주니어 펴냄

* 모모, 미하엘 엔데 지음, 한미희 옮김, 비룡소 펴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