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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청오랑 Dec 26. 2023

아니 땐 굴뚝에 연:기 나는 법 없다

실패한 배우의 이야기

어릴 적 소원이 있었다. 


한 학교에 입학해서 그 학교에서 졸업하는 것이었다. 초등학교만 해도 3번의 전학을 갔다. 중학교 때도 부모님의 이혼으로 또 전학을 가야 했다.


다행히 고등학교는 한 학교에서 졸업했지만, 회비를 못내 자퇴 위기에 몰리기도 했다. 불안한 가정환경에 가난은 옵션이었다. 이런 환경은 희망이라는 단어조차 나에게 허락하지 않았다.


그래도 괜찮았다. 꿈이 있었기 때문이다.


배우가 되겠다는 꿈.
영화감독이 되겠다는 꿈.
한국의 클린트 이스트우드가 되겠다는 꿈.


 


군대를 제대하고 영화배우가 되기 위해 39만 원을 들고 서울로 무작정 상경했다. 군인정신이 남았는지 아니면 삶에 대한 의지였는지 모르겠지만, 당시 내 눈엔 모든 것이 가능해 보였다.


원하는 것만 바라봤고 원하는 대로 배우가 되었다.


비록 영화판은 아니었지만, 연극이라는 새로운 길이 열렸다. 모든 것이 새로웠다. 신기했다. 재미있었다. 그리고 왠지 난 잘될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미친 듯 열심히 했다. 극단에서 온갖 잡일을 도맡아가며 했다.


하루하루가 정신없이 흘러갔다. 연기하고 있는 내가 좋았고 같은 꿈을 공유하는 사람들과 함께 하는 것도 즐거웠다. 이 소속감이 나를 뿌듯하게 했다.


'아. 내가 드디어 배우가 되었구나.'


이 성취감은 자신감을 심어주었고 앞으로 나아갈 힘을 주었다. 나는 믿었다. 유명한 배우가 될 수 있다는 걸 말이다. 또, 시간은 나에게 많은 인맥을 선물해 주었다. 무대 위에서 함께 연기하고 술자리에서 함께 인생과 연기를 논할 동료들이 생긴 것이다.


무대 위에서 취하고, 삶에 취하고, 내 인생에도 취해있었다. 새로운 세상이었다. 이 기분을 이어나가고 싶었고 영원할 거라 믿었다.



시간이 흐르자 같이 연기를 시작했던, 함께 연기 이야기를 하며 싸우고 응원했던 사람들이 하나 둘 배우 생활을 그만두기 시작했다. 안타까웠고 슬펐다.


때론 '더 해봐야 하는 것 아니야!'며 질책도 했다. 내가 어찌하든 떠날 사람은 떠났고 남을 사람은 남았다. 그들이 어떤 선택을 하든 상관없이, 난 할 수 있다고 믿었다.



'나는 할 수 있다! 버티다 보면 반드시 성공하게 될 거야!'



어떻게든 버텨내는 내가 대견했다.


하지만 하면 할수록 자신감이 떨어지고 자존감까지 바닥을 쳤다. 더는 발전이 없었기 때문이다. 난 나를 향해 날카로운 활을 쏘기 시작했다. 처음엔 아팠지만, 하도 많이 맞으니 이 또한 무뎌졌다. 나를 향한 비난도 더는 소용없었다. 실패는 날 너무 지치게 했다.


내 생존 시스템은 활시위를 외부로 돌리라고 지시했다. 순종적인 난 살아가기 위해, 나를 보호하기 위해 '탓'이라는 활을 마구마구 쏘기 시작했다.



부모 탓! 남들처럼 평범한 부모님 밑에서 살았더라면!

학력 탓! 좋은 학교를 나왔더라면!

사회 탓! 가난한 사람도 예술을 할 수 있는 시스템이 갖춰졌더라면!

외모 탓! 잘 생기고 매력적으로 생겼더라면!

극단 탓! 좋은 극단에서 좋은 선생님, 선배님을 만났더라면!

환경 탓! 여유 있는 집 안에서 살았더라면!

시대 탓! 시간 탓!

탓!

탓!

탓!



'배우로 성공한 사람은 단지 운이 좋았을 뿐이야!'


'부모 잘 만나고 좋은 대학 나왔으니 당연히 성공하지!'


이런 합리화를 지껄이며 나를 위로했다.



어느새...

난 (비참한) 현실과 (이루지 못한) 이상의 괴리에 갇혀버린 인간이 되어 있었다.


더는 믿을 수 없었다. 이제 내 눈엔 가능성이 아닌 불가능함만 보였다. 무명 생활은 차곡차곡 쌓이고 통장은 늘 메말라 있었다.



'17년 동안 아무것도 이뤄낸 것 없는 배우로 실패한 하남자야!'

텅 빈 지갑이 나에게 이렇게 외치는 듯했다.


실패한 배우.

초라하지만 이것이 내 현실이었다..




점점 사는 것이 무서워지기 시작했다.

.

.

.


'정말 이대로 괜찮은 걸까?'

'나 지금 뭐 하고 있는 거지?'

'이대로 살면 어떻게 되는 걸까?'

'난 배우로 성공할 수 있을까?'

.

.

.


 

'난 이제 쓸모없는 배우인가?'

.

'아니 쓸모없는 인간일지도...'

.

.

.


'난... 이제 어떻게 살아야 하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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