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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udy 주디 Mar 26. 2020

조심해! 옆방에 시엄마가 살고 있어

01. 처음엔 자신 있었다

결혼 20년 차에 시어머니와 한 집에 살게 되었다.

이 말을 전해 들은 주위 사람들 10명 중 10명 모두 이런 나를 무척이나 안쓰러워했지만, 나는 뭐 대충 잘 지낼 자신이 있었다. 내가 뭐 열여섯 난 새색시도 아니고, 내 나이 곧 오십에, 사회생활도 할 만큼 했니까. 이 정도는 껌이지, 안 그래?

처음엔 그랬다.


어머니는 내가 남편과 결혼하기 10년쯤 전에 시아버지와 이혼하신 후 미국으로 건너와 이런저런 일들을 하면서 혼자 사 한다.


그녀에겐 미국에 먼저 들어와 살고 있 친오빠가 둘씩이나 있었고, 그들은 그녀 미국에서  정착할 수 있도록 물심양면 도왔다지만... 소주 한잔 들어가면 그녀 입에서 술술 흘러나오는 옛이야기를 들어보면, 그들의 도움은 명령과 강요의 연속이었음에 틀림없다.


영어 한마디 못하는 그녀는 영문도 모르고 그들의 손에 이리저리 끌려다녔고, 왜 해야 하는지도 모를 일들을  해야 했다. 그렇게 1년여를 질질 끌려다니며 운전면허증도 만들고, 중고자동차도 사고, 일할 가게계약했다.


주머니에 혼자 살 집을 빌릴 만큼의 돈이 모이자마자 그녀는 즉시 둘째 오빠의 집에서 탈출했다. 붕어 같은 남편하고도 못 살고 이혼한 그녀인데, 역시 두 번이나 이혼하고 - 물론 미국 한인 사회에서 두 번쯤 이혼은 별일도 아니다. 그녀의 큰 오빠는 세 번 이혼하고 지금은 또 다른 여성과 동거 중이다. - 당시엔 싱글이었던 둘째 오빠의 집에서 함께 사는 건 정말 견디기 힘들었다 한다.


"꼰대 그런 꼰대가 세상에 또 있을까. 어찌나 잔소리 많은지, 어딜 가든 쫓아다니며 잔소리를 해쌌는데 딱 죽을 것 같더라고. 딱 2천 불 모았을 때 현관문 걷어차고 후다닥 나왔지. 그제야 숨통이 좀 트이더라."


낯선 나라에서 여자 혼자, 영어도 못하면서, 외국인 상대로 옷도 팔고 네일숍도 하고 반찬도 만들어 팔았다 한다. 돈을 벌기 위해 그녀는 그녀가 할 수 있는 일이라면 뭐든 찾아서 했다.


네일숍을 운영할 때는 매일  왕복 4시간을 운전해서 일하는 사람들을 실어 날랐다고 한다. 그녀는 부자들이 많이 사는 미국 동북부 한 마을에 네입숍을 차렸고 뉴욕 한인타운에 사는 한국인들을 고용해서 매일 출퇴근시켰다고 한다.  얘기를 처음 들었을 땐, 십여 년 동안 매일 하루도 빠짐없이 운전을 하고 또 해야만 했던 그녀의 고달픈 인생사에 함께 눈물도 찔금거렸 것도 같다.


 결혼 20년 차가 되기까지 시어머니를 5번쯤 보았다. 혼식장에서 처음 인사를 했고, 결혼한 후 미국 여행겸 한 번, 남편의 미국 출장 때 두 번, 그리고 최근에 한 번 더. 시집살이 톡톡이 하는 친구들은 이런 나를 무지하게 부러워했다.


아들만 둘인 시어머니는 미국에서 유행하는 옷과 구두, 어그부츠, 프라다 가방 등 내가 내 돈 주고는 사 본 적 없는 명품들을 가끔씩 사서 내게 보내시면서, 늘 딸 하나 있었으면 했다며 내가 딸 같다고 말씀하셨다.


명품 따위가 뭐 별건가 하며 백화점 가판에서 산 2만원짜리 백을 쿨한 척 들고다니던 나였지만, 시어머니가 보내준 프라다 백을 처음 들던 날, 지나치는 건물 유리벽에 수도 없이 내 모습을 비춰봤더랬다. 무지하게 유치하지만 그때는 나도 모르게 어깨가 으슥으슥했던 것 같다.


그랬다. 몇 년에 한 번씩이지만 내 어깨를 으슥하게 만들어준 고마운 시어머니였다. 바로 그 시어머니와 한 지붕 동거가 시작되었다.


남편은 늘 말했다. "우리 오마니 성깔이 불같다고." 그럴 때마다 나는 프라다백을 떠올리며 대답했다. "글쎄, 난 잘 모르겠던데..."


남편은 이런 말도 자주 했다. "아버지 하곤 같이 살아도 오마니하곤 절대 같이 못 살아."

그럼 난 어그부츠를 떠올리며 이렇게 말했다. "홀시아버지랑 같이 사는 건 죽었다 깨나도 노우(No)야. 홀시어머니가 백 배 낫지."


세상 일을 누가 알랴. 남편이 절대 못 하겠다는 그 일이 벌어졌다. 뭐, 난 자신 있었다. 나를 딸처럼 생각하신다는 분이 설마 나한테 시집살이를 시키면 얼마나 시킬까.


난 그녀와  잘 지낼 자신이 있었다... 


다음편에 계속 to be continu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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