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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udy Jun 02. 2020

조심해! 옆방에 시엄마가 살고 있어

05_아! 집에 가고 싶다

미국에 온 지 한 달만에 집은 모양새를 갖추기 시작했다. 모든 공간은 드디어 제 기능을 찾았고 이제 집 안 어느 곳도 가려져 있거나 닫혀있지 않았다. 공포의 전기공사를 성공적(두꺼비집이 열 번쯤 내려갔지만, 아마추어가 이 정도면 성공이지)으로 끝낸 날, 우린 시어머니와 함께 박수를 치고 축배를 들었다.

이제 뭐든 해낼 자신이 있었다, 뭐든!


하지만... 인생이란 게, 코너를 돌 때마다 예상치 못한 복병이 도사리고 있으니...


미국에서 합법적으로 살기 위해서는 몇 가지 해야 할 일들이 있다.

그린카드(영주권)를 받아야 하고, 소셜 번호(한국의 주민등록번호와 비슷한 것)를 발급받아야 한다. 은행계좌를 오픈하고 운전면허를 따야 한다. 적어도 이 4가지가 있어야 미국에서 합법적으로 일하고 돈 벌며 살 수 있다. 그리고 이것들을 만들기 위해서는 내가 미국에 거주지가 있고 그곳에 확실히 살고 있다는 증명을 해야 한다.


통상 자신의 이름과 주소가 찍힌 수도나, 전기요금 또는 핸드폰 요금의 우편 고지서를 자료로 제출하면 된다고 하는데, 시어머니 집에 얹혀사는 우리에겐 거주지를 증명할만한 고지서가 아무것도 없었다.

물론 핸드폰을 개통하면 간단히 해결될 문제였다. 하지만 1년의 반은 사용하지 못할 핸드폰을 개통하는 건 '알뜰한' 우리에겐 결코 허락되지 않았다. 다른 방법을 알아봐야지. 분명 방법이 있을 거야. 그럼 그렇고말고.


그린카드가 우편으로 배달되자, 우린 소셜 오피스(동사무소)에 가서 소셜 번호를 신청했다. 글로 쓰니 '신.청.했.다.' 고작 4글자, 엄청 단순한 일인 것 같지만 전~혀 그렇지 않았다.


학교에 10년 넘게, 그 후에도 영어학원을 종종 다니며 나름 열심히 공부했지만, 학원영어는 현장에서 전혀 통하지 않았다. 나는 영어 때문에 신경쇠약에 걸릴 지경이었다.

마트나 식당 같이 돈만 잘 내면 땡인 곳에서는 아무 문제가 없었지만, 관공서나 은행 등 업무를 봐야 하는 경우에는 잘못 알아듣거나 잘못 말하는 일이 없도록 고도의 집중력을 발휘해야 했다. 공무원들이 하는 빠른 영어를 알아듣자면 엄청난 긴장 상태를 유지해야 했기에 한두 시간만 일을 봐도 집에 돌아오면 우린 그로기 상태가 되어버렸다.

집에 돌아와서도 혹시나 실수한 건 없었는지 끝없이 되새김질을 했고, 내가 말한 엉뚱한 단어나 문장들이 떠올라 수도 없이 자책하며 괴로워했다.


암튼, 우여곡절을 겪으며 소셜 번호를 받았고(이 간단한 일처리를 위해 소셜 오피스를 3번이나 방문해서 한 달만에 겨우 받았다.) 은행계좌도 오픈했다(은행은 5번 방문해서 2주 만에 계좌를 만들 수 있었다.).


우리가 찾아낸 거주지 증명방법은, 영주권 받은 우편물을 소셜 오피스에 제출하고, 소셜 번호를 받은 우편물을 은행에 제출하는 거였. 은행에선 갸우뚱하길래, 영주권과 소셜 번호가 온 우편물을 모두 보여줬더니 '통과'됐다. 사람 사는 곳은 다 비슷했다. 우리가 '이렇게 하면 되지 않을까?' 하고 생각해낸 방법이 그들에게도 통했다. 야호!


이제 남은 것은 운전면허증.

소셜 오피스와 은행에 다니느라 녹초가 된 우리는, "국제면허증 있으니까 괜찮아" 하며 하루하루 DMV(자동차 운전면허 사업소)에 가는 것을 미뤘다.

DMV는 대기시간이 매우 길고 불친절하기로 악명 높은 관공서다. 미국 사람들도 제일 가기 싫어하는 곳 중의 하나라고 했다.


지난 며칠간 극심한 영어 스트레스에 시달린 우리는 서툰 영어 때문에 DMV에 가서 겪을지도 모를 수모를 굳이 앞당기기 싫었다.

우리의 이런 사정을 모르는 시어머니는, 우리를 볼 때마다 DMV에는 왜 안 가냐, 언제 갈거냐며 다그쳤다.

"미국에선 운전면허증 없으면 아무것도 못해. 빨리 DMV에 가서 면허증부터 신청해라. 니들이 미국을 잘 몰라서 그래. 엄마 말 좀 들어. 제발."


DMV 방문을 미루는 사정을 그녀에게 말하자니 "그 동안 똑똑한 척은 저 혼자 다 하더니, 고작 영어 때문에 DMV를 못 가는 거야?"하며 비웃음을 살 것만 같았다. 나는 그냥 "우리 일은 우리가 알아서 할게요."로 쭉 일관했다.


그러던 어느 날, 드디어 시어머니가 폭발하고야 말았다!


"니들이 미국에서 반평생 산 나보다 더 잘 알아? 미국에선 면허증이 신분증이야. 그린카드는 갖고 다니면 위험하다고. 길바닥에 깔린 게 불법체류자들인데, 걔네들이 그린카드 하나 얻으려고 얼마나 눈을 시뻘겋게 뜨고 다니는 줄 알아? 그러다가 영주권, 그거 잃어버리면 말짱 도루묵 되는 거 알아, 몰라?"


시어머니는 화가 아주 많이 난 상태인 걸 모르고. 나는 그만 늘 하던 대로 말하고 말았다.

"저희가 알아서 할게요. 어머님은 걱정 마-세--."

내 말이 끝나기도 전에 시어머니는 냅다 욕을 뱉고는 나가버리셨다.

"지랄 염병, 육갑들 떨고 있네."


평생 욕이라곤 들어본 적이 없는  시어머니의 욕설에 얼어붙어버렸다.

그리고  순간 나는, 미국의 모든 것이 싫어졌다.


아! 집에 가고 싶다. 한국에 가고 싶다.


다음 편에서 계속 to be continu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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