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Judy Apr 25. 2020

조심해! 옆방에 시엄마가 살고 있어

04_주문을 외워보자

미국에 도착한 후 남편과 나는 시차 적응을 위한 아무런 노력도 하지 않았다. 졸리면 대낮에도 방에 들어가 잤고, 눈이 떠지면 한밤중이어도 벌떡 일어나 집안 여기저기를 돌아다녔다.


시어머니가 사는 집은 강남의 30평 아파트 값 보다 저렴했지만, 실내 공간(침실 4개, 화장실 5개, 거실 2개, 부엌, 서재, 게임룸 등) 100평, 수영장과 풀하우스가 딸린 앞뒤 정원은 대략 150평, 암튼 엄청나게 넓어서 집안을 돌아다니다 보면 다리가 아플 지경이었다.

덕분에 남편과 내가 새벽 2시에 깨어 돌아다녀도 시어머니의 단잠을 깨울 일은 절대 없었다.


그 대신, 집이 광활하다 보니 눈에 보이는 게 전부 일거리였다. 새벽에 잠 깬 남편과 나는 집안 여기저기를 돌아다니다가 지저분 한 곳을 쓸고 닦았고, 고장 난 것들을 발견하면 몇 시간이고 수선하다가 아침해가 뜰 무렵에야 다시 잠자리에 들었다.

시어머니는 자고 일어나면 조금씩 말끔해지는 집안을 볼 때마다 "얘들은 밤에 잠은 안 자고... 무슨 도깨비들이냐." 하면서도 싱끗 웃었다.

시차 덕분에 시어머니와 다른 시간대에 살다 보니, 한 집에 살지만 그녀와 대면하는 시간은 많지 않았다. 대면할 기회가 적으니 부딪힐 일도 적었던 .

하지만 나는 일주일도 안돼서 온종일 '나무 아비타불 관세음보살'을 되뇌게 되었다. 무교도인 내가 아는 주문이라곤 이게 다였으니까.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는 딱 요만큼만 알고, 당시 내겐 '기도' 보다는 '주문'이 필요했다.


미국 집은 넓었지만 쓸만한 공간은 많지 않았다. 이리 넓은 집을 시어머니 혼자 관리하자니 어려움이 많았을 거다. 집이 넓으니 어질러진 공간은 문을 닫아버리고 그쪽으로는 발길도 눈길도 돌리지 않았던 것 같다. 그래도 남은 공간이 아직 많았으니까.


네모 반듯한 30평 아파트에서 장롱도 식탁도 김치냉장고도 없이 사는, 미니멀리스트 우리 눈에 시어머니의 집은 온통 난장판으로만 보였다.

청소와 정리를 하는 내내 내 입은 잠시도 가만있지 못하고 저절로 중얼거렸.

"감당도 못하실 거면서 왜 이렇게 큰 집을 사셨을까. 식구도 없는데 가구는 왜 이렇게 크고 많아, 도대체... 집만 크고 좋으면 뭘 해. 관리가 돼야 말이지, 관리가... 청소도 제대로 못하실 것 같으면 작은 집에 사시던가, 참말로... 청소를 해도 해도 끝이 없네..."

시어머니가 시킨 것도 아니고 나 좋아서 하는 청소였지만, 나도 모르게 청소하는 내내 시어머니 뒷담화를 줄줄 하고 있었다.


2년 , 이 집을 사겠다는 시어머니를 남편은 한참을 뜯어말렸지만 소용없었다.  한번 꽂히면 기어이 해야만 직성이 풀리는 그녀였다.

"집이 크면 관리도 힘들 거고 비용도 많이 들 거예요."라는 아들의 말 따위가 이미 그 집에 홀딱 빠져버린 그녀의 귀에 들릴 턱이 없었다.

큰돈 쓸 때일수록 더욱더 대범해지는 그녀는 덜컥 계약서에 싸인했다.


왜 이렇게 큰 집을 사야만 했냐고 내가 물은 적이 있다. 시어머니는 이렇게 답했다.

"니 시아버지랑 결혼하고 처음 산 집은 마당이 참 넓었어. 그땐 그 양반, 돈이 많았지. 그 넓은 마당에 내가 사과나무, 배나무, 감나무, 종류별로 다 심고 키워서 철마다 따먹고 했지. 그런 넓은 마당, 시 갖고 싶었어. 그리고..."


그녀는 넓은 정원 집에 이사 온 후, 옛날 집 마당에 심었던 나무들을 똑같이 심고 정성스레 가꾸었다.  내부 관리는 전혀 되지 않아 점점 난장판이 되어갔지만, 나무마다 주렁주렁 사과, 배, 감 그리고 캘리포니아 레몬과 오렌지, 아보카도가 열리는 걸 보며 그녀는 마냥 행복하기만 했다.


언젠가 시어머니가 내게 고백한 적이 있다.

"나는 청소엔 병이야."

새 집으로 이사 온 후 몇 개월은 한국인 청소부를 고용해 썼다 한다. 스패니쉬 청소부가 좀 더 저렴했지만, 말이 통하지 않는 사람을 집 안으로 들이는 게 무서웠다고.

매주 한 번씩 두 명이 와서 서너 시간 청소를 하고는 1인당 100불씩 총 200불을 받아갔다 한다.


청소비 외에도 큰 집을 관리하는 데엔 비용이 많이 들었다. 잔디깎이(매주 100불), 수영장 관리비(매주 50불), 쥐/해충약(매월 100불) 등등. 이외에도 잔디에 주는 물값만 매월 수백 불이 들었고, 앞뒤 정원엔 야간 조명을 켜 둬야 했기에 전기세도 제법 나갔다.


곧 그녀는 청소만이라도 혼자 해보자 다짐했지만, 그녀가 고백한 대로 그녀는 청소엔 소질이 없었다. 결국 생활 반경을 좁혀서 청소해야 하는 공간을 줄였지만, 그마저도  되지 않았던 것 같다.

 

우린 미국에 도착하자마자 잔디 깎기, 청소, 수영장 관리, 쥐약 놓기 등을 우리가 직접 하기로 다. 이렇게 하면 최소 매주 4~5백 불은 절약할 수 있었다. 시어머니 집에 얹혀 사는 값은 될 것 같았다.


처음엔 기분 좋게 시작한 일이었는데, 집안 일이 끝도 없이 계속되니, 내가 이러려고 미국에 왔나 싶은 생각이 들 때도 있었다.


특히 주방 일은 내 전담이었고 아무리 깔끔하게 정리를 해놔도 식사 시어머니가 왔다 가면 단번에 청소 이전 상태로 돌아가버리니 슬금슬금 짜증이 올라왔다. 그럴 때마다 나는 속으로 '나무 아비타불 관세음보살'을 외웠다.


시어머니는 옛날 분이셔서 그런지 모든 음식을 손으로 만지고 담았다. 김치냉장고에서 김치를 손으로 꺼낸 후 김치 국물이 잔뜩 은 손으로 김치통과 김치냉장고를 닫고 김치냉장고가 있는 전등 스위치를 끈 후, 조리대에서 도마와 칼을 꺼내 김치를 썰었다.

나는 식사시간이 지나면 그녀의 동선을 따라 김치 국물을 닦아야 했다. 사방팔방 묻어있는 김치 자국을 보면 부주의한 시어머니의 행동이 눈에 자꾸만 거슬렸다.

그렇다고 "어머니, 제발 김치 국물 좀 묻히고 다니지 마세요."라고 말할 수는 없다. 여기는 그녀의 왕국이고, 그녀가 뭘 어찌 하든 그녀의 자유다.

나무 아비타불 관세음보살.


어느 대기업 회장의 팬티를 개키면서 '행복하고 만족한다' 했다는 서울대 법대 출신 부장 얘기를 들은 적이 있다.

벽에, 전등 스위치에, 냉장고에, 칼자루에 벌겋게 묻어 있는 김치 국물을 닦으며 나는 전혀 행복하지 않았다.

비닐장갑이나 집게를 쓰지 않는 시어머니가 원망스럽고 김치 국물 묻은 손닦지 않는 그녀를 이해할 수 없었다.

나는 본격적으로 짜증이 올라왔고 시어머니를 보면 웃음기가 가시기 시작했다.

나무 아비타불 관세음보살


다음 편에서 계속 to be continued...



이전 03화 조심해! 옆방에 시엄마가 살고 있어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