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 더 프롬(the Prom)
미인(美人). 성별에 관계없이 아름다운 사람이라는 뜻이다. 용기 있는 자만이 미인을 얻는다는 이 말이 나는 참 좋다. 이 말이 용기를 내서 연인의 사랑을 얻는 것에만 국한되는 것이 아니라 인생 전반에서 어떤 것이든 용기를 내는 사람만이 얻을 수 있다고 믿기 때문이다.
내가 선택한 것들의 교집합이 인생이니까 나의 현재의 삶이 마음에 든다면, 내가 용기 내서 한 선택들이 옳았다는 것을 증명해주는 게 아닐까. 지금 자신이 하고 있는 일이 정말 마음에 들고 행복하다면 용기 내서 그 일을 선택한 스스로에게 칭찬을 해주자. 또, 지금 나와 함께 하고 있는 사람이 나를 정말 행복하게 해 준다면 용기 내서 그 사람에게 다가가고 마음을 열었던 스스로를 칭찬해주자.
코로나19로 영화관에 가는 것도 뮤지컬을 관람하는 것도 쉽지 않은 이 시기에 보지 않고는 못 배기게 만든 영화 트레일러가 있었으니 바로 넷플릭스의 뮤지컬 영화 <더 프롬>이다. 넷플릭스에 공개되자마자 찾아서 본 <더 프롬>은 용기를 내서 스스로의 사랑을 밝힌 엠마의 러브스토리와 주변 인물들의 성장 스토리가 담긴 영화이다.
인디애나의 시골 마을에 사는 엠마(조 엘런 펠먼)는 학교에서 열리는 프롬(Promenade Dance)에 사랑하는 여자친구, 앨리사와 함께 참석하고 싶다. 둘의 이름에서 짐작할 수 있듯이 둘은 동성 연인이다. 이를 알게 된 학부모회에서는 아예 프롬을 열지 않기도 결정해버린다. 엠마 때문에 프롬이 취소되자 엠마는 화가 난 학교 친구들에게도 괴롭힘을 당한다.
한편, 브로드웨이의 공연이 망하자 대중의 눈길을 끌기 위해 엠마의 사연을 이용하기로 한 뮤지컬 배우들이 인디애나로 엠마를 찾아온다. 극 중에서 토니상을 두 번이나 받은 것으로 나오는 디디(메릴 스트립)는 배우로서의 경력은 화려하지만, 사랑도 타인에 대한 배려도 서툰 어른이다. 그렇지만 그녀가 주인공이 아닌, 엠마가 주인공인 이야기에 함께 하면서 그녀는 사랑을 표현하는 법과 남을 배려하는 방법을 배우며 진정한 어른이 되어간다.
교장 선생님과 엠마, 브로드웨이 스타들은 프롬을 다시 열기 위해 노력하고 그 노력에 힘입어 프롬은 다시 열기로 결정된다. 하지만 학부모회와 친구들이 프롬을 다른 곳에서 여는 바람에 결국 엠마는 앨리사와 함께 프롬에 참석하지 못한다. 각자의 방법으로 엠마가 다시 프롬에 갈 수 있게 돕는 뮤지컬 배우들. 디디는 끔찍이도 싫어하는 전 남편에게 연락할 정도로 변했고, 앤지(니콜 키드먼)는 자신의 트라우마를 극복한 방법을 통해 엠마에게 자신감과 용기를 준다. 하지만 엠마는 그들의 도움이 아니라 혼자의 힘으로 결국 프롬을 얻어낸다. 유튜브를 통해서 본인의 이야기를 고백하고 많은 사람들의 지지를 이끌어낸 것이다.
사실 엠마의 연인 앨리사는 엠마처럼 모두에게 본인을 드러내지 못하고 있었다. 엠마는 커밍아웃하고 부모님에게도 내쳐져 할머니와 함께 살고 있었지만, 공부, 운동, 외모 등 모든 분야에서 1등과 정석만을 하도록 강요하는 그녀의 엄마가 가장 강력하게 프롬을 반대한 장본인이기 때문이다. 엄마의 마음이 어떤 마음인지 알기에 소심한 반항 한 번 없이 자란 앨리사에게 쉽지 않은 길을 가는 것은 매우 어려운 일이었다. 하지만 용기를 내 스스로의 힘으로 프롬을 다시 한번 열게 만든 엠마를 보며 앨리사도 힘겹게 용기를 냈다. 그리고 둘은 함께 다시 열린 프롬에 손을 잡고 함께 입장한다.
대놓고 PC(Political Correctness)에 대해서 외치는 이 영화는 어느 부분에 이르러서는 조금 과하다고 느껴지기도 했다. 마치 영화가 P!!!!!!!!!!!!!!!!!!!!!!!!!!!!!!!! C!!!!!!!!!!!!!!!!!!!!!!!! 이렇게 크게 외치는 느낌이었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용기를 내서 한 발짝 내딛는 사람만이 앞으로 나아갈 수 있다는 결말이 좋았다. 주인공인 엠마뿐만 아니라 디디도 더 좋은 어른이 되기 위해 그리고 새로운 사랑을 만나기 위해 용기를 내 한 발짝 내디뎠고 배리의 엄마도 아들과 화해하기 위해 용기 내서 수십 년 만에 아들을 찾아왔다. 그리고 그 용기의 결과물로 엠마, 앨리사, 디디, 배리는 모두 어제보다 조금 더 행복하고 즐거운 내일을 맞이할 수 있게 되었다.
영화를 보고 나는 엄청나게 큰 성공이나 해피엔딩이 있지 않더라도 조금씩 용기를 내 어떤 것에 도전하고 맞닥뜨린다면 조금씩 더 행복한 하루를 맞이할 수 있을 거라는 확신이 들었다. 그런 의미에서 올해 내가 용기 내서 마주한 일들이 나에게 더 행복한 하루를 선사해줘서 나도 내 선택과 용기에 뿌듯해하며 2020년을 마무리할 수 있게 되었다. 조그마한 것이라도 용기 내서 선택한 게 있다면 우리 모두 뿌듯해하며 오늘 밤 잠자리에 들자. Good night!
P.S. 디디의 전 남편에게 연락한 이유가 그가 유명한 토크쇼의 진행자라 그의 토크쇼에 출연시켜 많은 사람들에게 알리기 위한 것이었는데 엠마는 밀레니얼 세대답게 TV쇼가 아닌 유튜브라는 새로운 매체를 통해 자신을 알린다. 영화의 전체적인 내용과 상관없이 이 부분이 우리가 지금 살고 있는 이 시대에 새롭게 떠오른 매체는 어떤 것인지 보여주는 장면이라 꽤나 인상 깊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