헤르만 헤세 「싯다르타」
'덕중의 덕은 양덕'이라는 말이 있다. 동양사람들 보다 서양사람들이 서브컬처문화에 더 진심이고 뭔가 리미트가 풀려있다는 점에서 나온 말이다.
헤르만 헤세 또한 어릴 적부터 번역된 동양철학 서적들을 읽으며 자라왔고 「싯다르타」, 「유리알 유희」같은 작품들에서 그의 동양철학에 대한 이해와 관심이 어느 정도인지 볼 수 있었다.
고타마 싯다르타. 우리가 아는 석가모니의 본명이다. 「싯다르타」에서 주인공 싯다르타는 석가모니가 아니다. 석가모니는 고타마라는 이름으로 등장하고 싯다르타는 고타마(=석가모니, 부처)와는 별개의 인물로 등장한다.
이야기는 브라만의 아들로 태어난 싯다르타가 사문(수도승)의 살면서, 세속의 삶을 살면서, 뱃사공이 되면서 깨달음을 찾아 떠나는 여정이다.
싯다르타는 자신이 가는 곳마다 자신에게 가르침을 줄 스승을 삼았다.
깨달음의 첫걸음을 사문들과 함께 걷고, 고타마에게서 확신을 얻었다.
카말라에게선 사랑을 배웠고 카마스바미를 통해 속세와 인간욕망에 빠졌다.
오랜 친구 고빈다에게 조언을 받고 뱃사공 바수데바에게 경청의 자세를, 그리고 마지막 스승을 자기 자신으로 삼으며 강물에게서 세계의 단일성에 대해 깨닫는다.
경험은 곧 그에게 가르침이자 깨달음이자 스승이 되었다.
지혜란 다른 사람에게 전할 수 없다.
지혜란 현자가 아무리 그것을 전하려 해도 언제나 어리석은 소리로 들리기 마련이거든
내가 이 책에서 느낀 이상한 점이 하나 있는데, 책에 묘사된 것만 보면 적어도 이 시대 사람들(석가모니가 살던 시대 인도겠지?)은 살아가는데 어떠한 부담감이라는 게 없는 것 같았다.
물론 카스트제도 아래의 저마다 고충이 있었겠지만, 사문 하고 싶다고 부모님이 말리는데 뒤도안 돌아보고 냅다 사문으로 들어가고, 끼니는 동냥하러 다니고, 가진 것 없이 세 마디로 여자 꼬실 수 있고, 인생 망했다 싶으면 뱃사공 한 명 붙잡아서 인턴 하면서 정규직전환되는 것이 부러웠다.
책의 본내용과는 동떨어진 감상이란 것은 알고 있다. 그냥 읽으면서 그런 게 부러웠다.
젊을 때 하는 경험은 돈주고도 한다지만 (적어도 대한민국에서는) 안타깝게도 현실에서 실패라는 것은 용납되지 않는다. 돈이 많으면 용납이 된다
내가 잘하고 우리가 잘해서 다 같이 성장하는 것이 아닌 다른 사람을 깎아내려서 상대적으로 내가 올라가는 것처럼 보이려는 사회정서만 봐도 알 수 있다.
창업? 스타트업? 라이선스? 공무원시험? 청년세대는 어떤 선택을 할 때 엄청난 리스크를 지는 선택을 할 수밖에 없다. 이 책에서 전달하고자 하는 지혜는 분명 엄청나지만 그렇기 때문에 나는 그것에 곧이곧대로 동의할 수가 없다. 싯다르타가 부처의 가르침을 따르지 않은 이유도 나와 같은 이유일 것이라 의심치 않는다.
당신은 무엇을 할 수 있나요?
나는 사색할 줄 압니다.
나는 기다릴 줄 압니다.
나는 단식할 줄 압니다.
그럼에도 우리가 깨달음을 쫒아야 하는 이유는 그것이 우리가 살아가는 이유이기 때문이다.
사랑하기 위해서 행복하기 위해서 슬퍼하기 위해서 굶주리기 위해서 분노하기 위해서 두려워하기 위해서...
그렇게 살다 보면 우리도 강물의 소리를 듣는 날이 올지도 모른다. 그것이 바로 '옴'이다.
나 또한 큰 강물에서 갈라진 지류(支流) 일뿐이다. 언젠가 바다로 흘러 들어갈 수 있기를 바라본다.
싯다르타의 미소는 고빈다 자신이 평생 동안 사랑했던 모든 것, 그의 삶에서 가치 있고 신성했던 모든 것을 떠오르게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