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똥철학
저번주 수요일 점심시간, 옆테이블에 앉은 사람이 너무 목소리가 크고 그냥 흘리기 어려운 이야기를 하길래 우연히 같이 이야기를 들으면서 밥을 먹었다.
이야기는 다음과 같았다.
"내 남자친구는 원래 애니메이션 같은 거 안 보고 왜 보는지 이해 못 하는 사람이었는데, 주말에 같이 볼 게 없어서 릴스 보다가 진격의 거인이 요새 유행이라길래 같이 보자고 해서 주말에 같이 봤거든? 근데 너~무 재밌는 거야 이게 사람들이 명작이라고 하는 이유가 있더라고 근데 나는 스토리에 집중이 안되고 거인들 나오면 저거 어떻게 죽여? 쟤들 집은어디야? 막 이런 질문들만...(중략)... 그래서 다음에 데이트할 때까지 시즌 하나씩 다 보고 만나서 같이 얘기하기로 했어 그리고 라푼젤이랑 토토로 같은 거도 아예 모르는데 한번 보여줘 보려고..."
웬만한 명작 만화 애니메이션들은 다 본 입장에서 그걸 인제 깨달았다니.. 하는 오타쿠 자부심과 입덕하는 친구들을 보며 기특하다는 생각과 더불어 나만의 명작을 다른 사람들에게 들켜서 약간의 질투심(?)도 들었을 때쯤 문득 든 생각이 있다.
아, 사람들은 콘텐츠에 굶주렸구나
도파민이 유행일 적이 있었다. 불과 몇 년 안 됐다. 드라마는 점점 더 자극적인 소재를 다뤘고, 순수 웃음을 위한 방송은 점점 설자리를 잃어버리고 개연성은 개나 줘 버린 '이탈리안 브레인 롯' 밈은 도파민의 정점을 찍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물론 그 빠른 인기도 역시 빠르게 식었지만.
높아진 도파민의 역치로 웬만한 것들로는 충족이 되지 않자,
새로운 신선한 콘텐츠가 나를 만족시켜 주리라 하는 기대감과 더불어 '이 정도로 될까?' '날 만족시킬 수 있어?' '오징어게임 3, 넌 무조건 재밌어야 해~' 하는 걱정까지 느껴지는 게 마치 무언가에 중독된 사람들의 심리와 닮아있음을 느꼈다. 사람들은 자신들을 만족시켜 줄 새로운 세계관과 판타지에 취해있는 것 같다. 하지만 그런 세계관들은 줄줄이 무너지고 있다.
오늘 보니 오징어게임 3은 역대급 혹평을 받고 있더라...
아는 맛이 무섭다 했나? 옛날에 내가 재밌게 했었던 것, 옛날에 내가 재밌게 봤었던 것이 리마스터, 클래식, 리부트, 실사화라는 이름으로 돌아오고 있다. 말인즉슨 새로운 콘텐츠가 더 이상 나오지 않고 있다는 뜻이다. 사람들도 경험한 것에 익숙하지 새로운 것을 배우고 알아가는 과정에 피곤함을 느낀다. 나이가 들 수록 더 그렇다.
이런 사회현상을 보고 있자니, 만약 누군가 독자적이고 창의적인 세계관을 구축했다면 그 사람은 떼돈 벌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 독특한 세계관 이야말로 이 사회를 살아가는 경쟁력 그 자체인 것이다.
이는 우리에게 좋은 기회이다. 도파민이 아닌 펜과 글에 익숙한 우리들은 우리가 가진 낭만과 철학을 결합시켜 새로운 세계관을 만들어낼 잠재력을 가지고 있다. 그래서 나도 조만간 펜을 들려고 한다.
나는 스스로에게 5년이라는 기한을 두었다.
우리 사회가 지속가능하지 않다는 것은 어느 정도 결정된 미래이고 이미 회복할 수 없는 상처를 입었다는 것은 자명한 사실이다. 특히 저출산고령화사회의 고질적인 문제 '실버민주주의'는 앞으로 우리 사회에 큰 위기를 불러올 것이다.
앞으로 5년까지는 대한민국이 사회 경제적으로 '버틸 순 있는' 수준이지만 그 이후 2차 베이비부머 세대들이 전부 은퇴하고 난 후 수면아래에 있던 문제들이 연쇄폭발하며 우리들은 끝없는 수렁으로 빠져버릴 것이다.
이것은 미래에 대한 예언이 아니라 스스로에게 하는 다짐이자 각오로 생각한다.
아직 꿈과 희망을 놓지 않은 청춘들이 자신만의 세계관을 만들고 꾸며나갔으면 좋겠다. 나 또한 그러기를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