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 11장. 인터뷰
[판타지 장편 소설] 댓플레이스 (That Place)
“엇, 희주야! 비상이다. 저거 가지고 얼른 따라와!”
“네? 저 지금 쉬는 시간인데…… 아, 알겠어요!”
문지기들의 대기실에 비상벨이 울리자 졸고 있던 미즈키가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며 희주에게 말했다. 희주와 미즈키는 그 사이에 한층 가까워져 말도 편안히 하는 사이가 되었다. 미즈키는 늘 그랬던 것처럼 앞뒤 설명 없이 희주에게 따라오라는 말만 남기고 옷을 대충 걸쳐 입었다.
미즈키는 대기실의 창고문을 열어 여기저기를 뒤지더니 하얀 무명천 두 장을 챙겨 뛰쳐나갔다. 희주는 영문을 알 수 없었지만 미즈키의 얼굴이 사뭇 다급해보여 무슨 일인지 묻지도 못했다. 미즈키가 희주에게 가져오라고 했던 것은 바퀴가 달린 새하얀 손수레 같은 것이었다. 희주는 한림에게 갑자기 먼저 일어나 미안하다는 뜻으로 눈인사를 살짝 하고는 얼른 손수레를 챙겨 미즈키를 쫓아 나섰다.
미즈키는 심사대 앞에 “죄송합니다. 다른 심사대로 이동하세요.” 팻말을 세워 놓고 이미 줄을 서 있던 심사 대기자들을 다른 심사대로 안내했다. 희주도 미즈키를 따라 사람들을 다른 쪽으로 안내했다. 미즈키는 입장 심사대 앞에 희주가 가져온 새하얀 손수레를 놓은 후 자신이 들고 온 무명천을 그 위에 반듯하게 펼쳐 놓았다. 그녀는 자꾸 밖을 내다보며 발을 가만두지 못하고 초조하게 서성거렸다.
“아! 이제 오나봐!”
연기가 스멀스멀 피어 오르자 미즈키가 외쳤다. 그와 동시에 손수레 위로 환한 광채가 형형하더니 순간적으로 빛이 차오르며 손수레를 가득 감쌌다. 눈을 뜰 수도 없을 만큼 강렬한 빛에 희주는 자신도 모르게 눈을 잔뜩 찡그린 채 고개를 돌렸다.
“어서 오렴. 오느라 힘들었지?”
미즈키의 따뜻한 목소리에 희주는 고개를 휙! 돌려 미즈키를 바라 보았다. 미즈키가 품에 품고 있는 것은 갓난아기였다. 아기의 얼굴은 희주의 주먹보다 작았고, 키는 고작 두세뼘 정도 되어 보였다. 미즈키는 조심스레 아기를 손수레에 눕히더니 들고 있던 나머지 한 장 무명천을 아기에게 덮어주고 아기의 배를 토닥였다. 아기는 울지도 않고 귀여운 눈을 동그랗게 뜬 채 생글생글 웃고 있었다.
“미즈키! 다행히 시간 맞춰 와줬네. 하마터면 맨 바닥에서 아기를 맞이할 뻔 했어.”
그 때, 노아가 어디선가 헐레벌떡 뛰어오며 말했다.
“노아, 왔구나! 우리도 조금 전에 도착했어. 이 아기는 어떻게 된 거야?”
“엄마 뱃속에서 여기로 바로 왔어. 탯줄이 엉켜 버렸거든. 엄마가 잠든 사이에 일어난 일이라 엄마가 자신의 칩 신호를 확인하고 병원에 도착했을 때는 이미 늦어 버렸지. 출산까지 이제 한 달 밖에 남지 않았는데, 안타깝게 됐어.”
노아가 아기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말했다. 노아의 손길이 마음에 드는지 아기는 자그마한 입을 크게 벌리고 웃었다.
“요즘 아기들은 거의 오지 않잖아. 정말 오랜만이라서 깜짝 놀랐어. 인공 자궁을 왜 안 쓴 걸까?”
“뱃속에 아기를 품고 있으면 24시간 아기와 함께 있을 수 있잖아. 태동도 느낄 수 있고. 아이와 교감하는 느낌은 겪어 보지 않은 사람은 몰라. 정말 감격스러운 경험이거든. 나도 아이 낳을 때 인공 자궁 안 썼어.”
미즈키의 질문에 노아가 자신이 아이를 낳았을 때를 회상하며 대답했다. 희주는 아기에게 눈을 떼지 못하고 바라보았다. 선생님과 보육 교사로 일하면서 아이들을 많이 만났었지만, 이런 갓난 아이는 정말 오랜만이었다. 희주도 세 번의 결혼을 겪으면서 아기를 갖고 싶다는 생각을 하지 않은 것은 아니다. 그러나 희주의 남편들은 모두 반대했다. 기대 수명이 너무 길다 보니 부부 두 사람만 먹고 살기에도 힘든 세상이라는 이유였다. 은퇴 후에도 100년 이상 살아야 하기 때문에, 노후 준비만 하기에도 빠듯하다는 말에 희주도 결국 동의하고 아이를 갖는 것을 포기했다.
“희주씨 아기를 만나는 건 처음이죠? 입장 심사랑 인터뷰 한 번해 볼래요?”
노아가 아기를 뚫어져라 바라보던 희주에게 말했다.
“네? 제가요? 아기 인터뷰를 어떻게…….”
말도 못하는 아기와 인터뷰를 어떻게 하라는 거지? 세상을 살아본 경험도 없는 아기의 입장 심사를 하는 것이 의미가 있나? 하는 생각이 희주의 머릿속을 복잡하게 만들었다.
“입장 심사는 손수레 채로 하면 되고, 인터뷰는 아기를 품에 안고 생각만 하면 돼. 그럼, 아기의 생각이 너에게 전달될거야. 쉽게 하지 못하는 경험이니까 한번 해봐.”
미즈키가 당황하여 얼어 붙은 희주의 어깨를 툭 치며 말했다. 미즈키는 손수레 손잡이를 희주의 손에 쥐여 주었다. 희주는 이내 난감한 표정을 짓다가 결심한 듯 손수레를 조심스레 끌어 심사대 앞에 놓았다. 희주가 점수 측정 버튼을 길게 눌렀다.
‘띵동. 100점입니다. 입장하세요.’
“100점이라고!?”
100점이라는 점수를 처음 본 희주가 자기도 모르게 소리를 지르고 말았다. 희주가 외친 소리에, 다른 심사대에 있던 사람들도 ‘100’이라는 숫자를 신기하게 바라보았다. 궁금증을 참지 못했던 어떤 사람은 대기줄을 이탈하여 아기를 구경하러 오기도 했다.
여전히 아기는 생글생글 웃고만 있었다. 희주는 마른 침을 꿀꺽 삼키고는 아기를 무명천에 조심히 싸서 품에 안았다. 어떻게 100점이 나왔는지 궁금해서 참을 수 없었다. 희주는 아기의 검은 호수 같은 눈을 바라보며 생각을 집중했다.
‘아가, 안녕?’
‘안녕하세요?’
아기의 목소리가 똑똑히 들렸다. 아니, 소리가 들렸다기 보다는 희주의 머릿속으로 아기의 목소리가 입력된 듯한 느낌이었다. 희주는 생소한 느낌에 온 몸에 소름이 돋는 듯하여 하마터면 아기를 놓칠 뻔했다.
‘난 한희주라고 해. 넌 이름이 있니?’
‘음, 제가 엄마 뱃속에 있을 때 엄마가 ‘하나’라고 불렀어요.’
‘예쁜 이름이네.’
희주는 갑자기 말문이 막혔다. 아기에게 무엇을 물어봐야 할지 가이드라인이 떠오르지 않았다.
‘하나, 여기가 어딘지 알겠니?’
‘그럼요! 제가 얼마 전까지 지내던 곳 인걸요. 엄마 뱃속에서 살기 전에 저는 여기에서 지냈어요’
‘뭐?’
‘저 문 안쪽 말이예요. 시작이자 끝인 곳이잖아요.’
아기가 손을 뻗어 어딘가를 가리키지는 않았지만 희주는 느낌으로 알 수 있었다. 아기는 <댓플레이스> 안쪽 세상을 말하고 있는 것이었다.
‘엄마 얼굴도 못 보고 와서 아쉽지 않아? 어떻게 100점이 나왔을까?’
‘엄마 뱃속에 있으면서 정말 행복했거든요. 엄청 따뜻하기도 하고 재미있는 곳이에요. 하루 종일 물 위에서 둥둥 떠다녀요. 엄마의 얼굴을 못 봤을 뿐이지 저는 엄마를 완전히 느낄 수 있었어요. 엄마랑 아빠가 내 이름을 부르면서 배를 쓰다듬어 줄 때가 가장 기분이 좋았어요. 그게 제가 겪은 세상의 전부였어요. 세상은 정말 멋진 곳이예요.’
‘……정말 행복했겠다.’
희주는 아기에게 ‘엄마 아빠는 많이 울었을지도 몰라.’라고 이야기 하려다가 그만 두었다. 세상은 정말 멋진 곳이라고 말하는 아기에게 무슨 말을 하겠는가. 아기가 행복한 기억만 가지고 <댓플레이스>으로 들어갔으면 했다. 희주가 고개를 들어 노아와 미즈키를 바라보자 두 사람이 고개를 끄덕였다. 희주는 아기를 다시 손수레에 조심스레 눕히고 <댓플레이스> 입구로 손수레를 힘껏 밀었다. 저 멀리 <댓플레이스> 안쪽에서 누군가가 나와 손수레를 데려가는 모습이 보였다. 희주는 아기를 잃고 슬퍼하고 있을 부부의 모습이 떠올라 씁쓸해졌다가, 시간은 많이 걸리겠지만 언젠가 아기가 엄마 아빠와 <댓플레이스>에서 새로운 인연을 맺을 수도 있으리라 생각하니 조금 위안이 되었다.
‘또 만나요!’
희주의 귓가에 아기의 목소리가 종소리의 여운처럼 울려 퍼졌다. 희주는 한 동안 자리를 뜨지 못했다.
-The image created by CHO JUYOUNG with Midjourne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