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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조주영 Sep 30. 2024

[소설] 12장. 사망 사유(1)

[판타지 장편 소설] 댓플레이스 (That Place)

“희주, 지금 쉬는 시간이에요?”

“민수! 나 오늘은 일 끝났어. 오후 타임에 새로 들어온 문지기들 실습 교육해야 한다고 해서 오후 심사는 쉬어도 된대.”


갑작스레 생긴 휴식 시간이었다. 이 곳에는 아무리 일을 해도 피로하진 않았지만, 그래도 일하는 것 보다야 숙소에서 뒹굴 거리는 것이 훨씬 나았다. 희주는 오늘 오전에도 아주 불량한 영혼 하나를 심사하면서 애를 먹었던 터라, 빨리 숙소로 들어가서 어딘가에 화풀이를 하고 싶은 마음뿐이었다. 언제쯤 재심사를 볼 수 있을지 일정에 대한 아무런 소식도 없고, 매일 쉴 새 없이 반복되는 심사 스케줄에 넌더리가 나려던 참이었는데, 마침 꿀 같은 휴식이 주어진 것이다. 


“오! 잘됐다! 그럼 저랑 같이 입장 심사 구경하러 갈래요?”

“뭐?”


민수가 넉살 좋게 희주에게 팔짱을 끼며 말했다. 민수는 희주보다 키가 한 자 이상 컸기 때문에 무릎을 굽혀 우스꽝스러운 포즈로 희주에게 팔짱을 껴야만 했다. 민수는 27세에 죽었는데, 겉모습은 227세라고 해도 믿을 만한 늙은 모습이었고, 왼쪽 허벅지 아래 다리가 없었다. 그래서 한 쪽 다리로만 서서 무릎을 구부리고 있는 모습이 마치 홍학이 한 쪽 다리를 접어 숨기고 다른 한 쪽 다리만 내어 놓은 채 고고하게 서 있는 모습 같았다. 


민수는 희주보다 훨씬 먼저 문지기로 일하고 있었는데, 들리는 소문에 의하면 현재 일하고 있는 문지기들 중 가장 오랫동안 일하는 중이라고 했다. 그러다 마침 희주와 민수의 숙소가 가까워 오다가다 마주치는 일이 많아지면서 서로 한국인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고, 그 이후 급속도로 가까워졌다. 붙임성 좋은 민수와 적응력 빠른 희주는 117세와 27세, 즉 90세의 나이차를 극복하고 친구가 되었다. 


희주는 눈칫밥 한번 안 먹고 자랐을 것 같은 민수가 왜 이렇게 어린 나이에 죽음의 문턱에 와 있는지, 그리고 왜 재심사에 통과하지 못하고 있는 것인지 궁금했다. 그러나 문지기들 사이에서는 굳이 사망 사유를 묻지 않는 것이 불문율이었기에 지금까지 궁금증을 꾹 누르고 있었다. 하긴, 사망 사유가 무엇이든 자신의 입으로 아무렇지 않게 죽음의 순간을 이야기할 수 있는 이가 얼마나 되겠는가?


“매일 같이 하는 게 입장 심사인데, 뭘 또 굳이 구경까지 가?”

희주가 귀찮은 티를 팍팍 내며 민수에게 말했다. 민수는 스물 일곱이라는 어린 나이 답게 궁금한 것은 많고, 눈치는 아직 한참 부족하다. 희주는 손을 휘휘 내저으며 얼른 대기실 밖으로 나가려 했다. 


“다양한 사람들 많이 봐 두면 좋죠 뭐, 저랑 같이 구경 가요. 네?”

민수가 덩치에 어울리지 않게 코맹맹이 소리를 내며 희주를 졸랐다. 희주는 생글생글 웃는 민수의 얼굴에 대고 차마 매정하게 거절할 수 없었다. 어차피 이렇게 된 거 오늘은 민수의 이야기를 좀 들어볼 참으로, 마지못해 고개를 끄덕였다. 


 “좋아. 그럼 대신에, 나 그 동안 민수한테 궁금했던 거 있었는데 물어봐도 돼?”

 “뭔데요?”

 “음… 그러니까…….”

 “어쩌다 스물일곱이라는 나이에 이 곳에 오게 되었는지요?”


 희주가 한동안 뜸을 들이자 민수가 눈치를 채고 되물었다. 생각보다 아무렇지 않은 민수의 반응에 희주는 멋쩍은 웃음을 지었다.

“들으면 깜짝 놀라실텐데…….”

“놀랄 게 뭐 있어? 나도 나름 문지기 생활 3개월차라고. 다양한 케이스 많이 겪었어.”

민수가 머리를 긁적이며 대답을 망설이자 희주가 얼른 민수의 말을 낚아챘다.


“힌트를 좀 드려볼게요. 제가 처음 받았던 입장 심사 점수 모르시죠?”

“그렇지. 말해준 적 없잖아.”

“음… 0점이었어요.”

“……뭐!?”


전혀 예상하지 못했던 민수의 답변에 희주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이전에 심사를 여러 번 탈락했다는 소문을 듣긴 했지만, 0점이라니. 지난 3개월간 문지기로 일하면서 딱 한번 봤던 케이스였다. 희주는 왠지 그의 사망 사유를 알 것만 같았다.


“설마… 너 스스로…….”

한 동안 입만 떡 벌리고 있던 희주가 가까스로 말을 내뱉었다. 차마 ‘목숨을 끊은 거야?’라는 뒷문장을 이을 수가 없었다. 민수는 멋쩍은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희주는 민수의 얼굴에 순간적으로 스친 텅 빈 눈빛을 놓치지 않았다. 희주는 도저히 믿어지지가 않아 멍한 표정으로 고개를 가로저었다. 너무 어린 나이에 죽음을 맞이한 사람이라 뭔가 사연이 있을 것이라고 생각은 했지만 그 동안 민수의 밝고 쾌활한 모습만 보았기에 더욱 믿어지지가 않았다.


“그 땐 그랬어요. 스스로 생을 마감하는 것 외에는 제가 할 수 있는 선택지가 없다고 생각했었죠.”




 민수는 베이비박스에서 발견되었다. 미혼모였던 민수의 엄마는 그가 뱃속에 있을 때부터 베이비박스를 물색했고, 베이비박스 근처의 숙박 시설에서 혼자 아이를 낳았다. 민수의 엄마는 숙박 시설에 비치되어 있던 수건으로 서둘러 아이의 몸을 감쌌고, 엉망이 된 방을 대충 정리했다. 우렁차게 울던 아이는 엄마의 젖을 물고 잠잠해졌다. 민수의 엄마는 사람들의 눈을 피해 늦은 밤 베이비박스에 곤히 잠든 아이를 넣어두고는 보육 시설의 문을 여러 차례 세차게 두들긴 후, 쇠한 몸을 겨우겨우 이끌고 어디론가 사라졌다. 그녀는 아이의 이름도, 생일도, 언젠가 찾으러 오겠다는 약속도 남겨두지 않은 채, 숙박 시설의 이름이 수 놓인 수건과 아이만 남겨두고 떠났다.


민수의 이름은 보육원에서 지어준 것이었다. 아니, 지어줬다기 보다는 그저 순번대로 부여받았다고 하는 편이 적절할 것이다. 민수는 하루 종일 칭얼대는 아이였다. 의학의 발달로 원한다면 대부분의 사람들이 아이를 가질 수 있는 시대에서 입양을 희망하는 사람들은 점점 줄어 들었고, 하루 종일 칭얼대기만 하는 아이를 입양해 갈 사람은 더더욱 없었다. 


민수가 스무살이 되던 해, 그는 아주 낙후된 동네에서 겨우 한 두 달 정도 살 수 있을 정도의 자립정착금을 손에 쥔 채 보육 시설에서 나왔다. 그는 여러모로 로봇보다 나을 것이 없었다. 로봇보다 친절하지도 않았고, 로봇처럼 밤을 새서 일할만한 체력도 없었고, 로봇보다 무거운 물건을 들 수도 없었다. 그가 ‘스무살 인간’이라는 특징을 가지고 돈을 벌 수 있는 일은 생각보다 많지 않았다. 


두 달 만에 자립정착금 대부분을 써버린 민수는 염치를 무릅쓰고 보육원장에게 연락했다. 이 세상에서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없어요, 도와주세요, 라고. 한참동안 난처해하던 보육원장은 민수에게 누군가의 연락처를 알려주며 그가 너를 도울 수 있을 거야, 물론 선택은 너의 몫이지만, 이라고 말했다.


보육원장에게 전달받은 연락처의 주인은 외과의사였다. 그는 신체교체수술 전문가였다. 젊음과 아름다움을 향한 인간의 욕망은 끝이 없었고, 돈이 필요한 기증자와 젊음과 아름다움을 원하는 수혜자간의 필요는 결국 신체 교체라는 합일점을 만들어냈다. 그가 처음으로 기증한 것은 검고 탐스러운 머리카락이 촘촘하게 자라고 있는 두피였다. 그는 듬성듬성 흰 머리가 나 있는, 속이 훤히 보이는 두피를 받는 대신, 1년치 월세를 낼 수 있는 돈을 받았다. 민수는 갑작스레 늙어버린 자신의 모습을 거울로 비추어 보며, 다시는 신체 기증을 하지 않겠다고 다짐했다. 


그러나 돈을 버는 방법도, 그것을 지키는 방법도 제대로 배우지 못했던 민수는 금세 돈을 탕진했고, 또 다시 신체 기증을 선택할 수밖에 없었다. 그렇게 민수의 겉과 속은 점점 늙어가고 있었다.  


 민수는 스무살부터 스물일곱까지 7년간 끊임없이 신체 교체술을 받았고, 그가 기증할 수 있는 신체도 얼마 남지 않은 시점이었다. 왼쪽 다리뼈 교체술을 받던 도중, 의료 사고가 발생했다. 그의 왼쪽 다리뼈는 이미 수혜자에게 이식이 완료된 상태였으나, 골다공증을 심하게 앓던 280세 할머니 수혜자의 다리뼈는 민수의 몸에 정상적으로 이식되지 못한 채 괴사하고 말았고, 결국 그는 다리를 절단할 수밖에 없었다. 


더 이상 월세를 낼 수 없었던 민수는 다시 한번 보육원장에게 연락했고, 그는 이제 더 이상 내가 해 줄 수 있는 것은 없어, 벌써 7년이 지났는데 뭘 한 거니? 라고 차갑게 말했다. 민수는 보육원장을 원망했다. 그가 외과의사를 소개해 주지 않았더라면 적어도 이렇게 왼쪽 다리를 잃는 일은 없었을 것이다. 


민수는 몇 개 되지 않은 짐을 가방 두 개에 나눠 담고는 불편한 다리를 끌며 월세방을 나와 거리로 향했다. 하염없이 거리를 걷다가 몸을 뉘일 곳만 있다면 어디든 멈췄다. 그러면 이따금 다리 하나가 없는 딱한 그의 모습을 본 사람들이 한 두 끼 정도를 해결할 수 있는 돈이나 음식을 던져 주기도 했다. 생각보다 거리에는 그와 비슷한 사람들이 많았다는 것이 그에게는 적지 않은 위로가 되었다. 


기록적인 폭설이 연일 내리던 어느 날이었다. 겨울은 방랑자에게 그 어느 때보다 힘든 계절이다. 거리에는 걸어 다니는 사람이 거의 없었고, 모두가 집 안에서 문을 걸어 잠그고 있었다. 사람들이 던져준 낡은 옷과 종이박스 등으로 겨우겨우 폭설을 견디던 민수는 차라리 이러다가 얼어 죽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며칠간 제대로 먹지 못해 정신이 혼미할 지경이었다. 잠이 쏟아졌다. 


막 눈이 감기려고 하던 차에 기적처럼 그의 눈 앞에 과자 한 조각이 떨어졌다. 잘못 본 것이 아니라면 그를 가엾이 여긴 신의 선물이 분명했다. 민수는 본능적으로 눈을 번쩍 뜨고 재빨리 과자를 집어 입에 넣었다. 그와 동시에 무언가 둔탁한 것이 순식간에 그의 얼굴을 덮쳤다. 


커다란 개의 앞발이었다. 당황한 민수는 입에 넣었던 과자를 뱉어 멀리 던져 버렸다. 그를 덮쳤던 개는 과자를 따라 달려 가려다가 주인이 힘차게 당긴 목줄에 막혀 낑낑거렸다. 개의 주인은 이리와! 로쏘! 저런 사람이 먹던 거 함부로 먹으면 안돼! 라고 소리쳤다. 순간 민수와 개 주인의 눈이 마주쳤고, 민수는 단번에 그를 알아보았다. 그의 왼쪽 다리를 가져간 할머니였다. 


그 순간, 민수는 스스로를 버리기로 결심했다. 태어나자마자 부모에게, 그리고 세상에게 버림받은 그는, 이제는 내가 나를 버릴 차례야, 라고 생각했다. 그렇게 민수는 스스로를 고층 빌딩 옥상에서 바닥으로 버리고 말았다. 




한참동안 민수의 이야기를 듣던 희주는 말없이 민수의 등을 쓰다듬었다. 그들은 입장 심사를 구경가기로 한 것도 잊은 채 문지기 대기실에 앉아 이야기를 나누었다. 


“처음에 여기에 와서 입장 심사 0점을 받고 나니 어이가 없어서 실소가 나오더라고요. 인간 세상에서도 0점짜리 인생이었는데, 이 곳 에서조차 0점이라니. 지금이야 이미 인간 세상에서 <댓플레이스>의 존재를 알고 있고, 자살한 사람 중에 <댓플레이스>에 들어간 사람은 아무도 없다는 것을 알고 있으니 자살로 생을 마감하는 사람이 많이 줄었다지만, 제가 죽을 때만 해도 <댓플레이스>의 존재는 아무도 몰랐거든요. 하지만 알았다고 해도 저는 아마 같은 선택을 했을 것 같아요. 살아서 지옥에 있으나 죽어서 지옥에 있으나 마찬가지라고 생각했겠죠.”


민수가 내용과 어울리지 않는 환한 얼굴로 아무렇지도 않게 이야기했다. 

“난 정말 상상도 못 했어. 워낙 나이가 어려서 무슨 일이 있긴 했겠다 싶었지만, 이렇게 큰 일을 겪었을 줄이야……. 게다가 네가 좀 잘 웃니? 맨날 나사 하나 빠진 것처럼 웃고 다니니 내가 상상이나 했겠어?”

희주가 씁쓸한 마음을 감추려고 일부러 툴툴대며 말했다. 힘들어 죽겠다며, 이렇게 사느니 죽는 게 낫겠다며 입버릇처럼 말했던 지난날 자신의 모습이 떠올라 속이 불편했다.


“하하, 처음부터 이랬던 건 아니예요. 처음 입장 심사 0점을 받고 그 이후로도 한동안 0점이었어요. 제가 재심사를 몇 번이나 봤는 줄 아세요? 무려 열일곱번이예요. 열일곱번! 주변 문지기들 중에 17번 심사 구역까지 다녀온 사람은 저 밖에 없을걸요?”

민수가 자랑이라도 하듯 양 손을 허리춤에 얹고는 의기양양하게 말했다. 


“열일곱번? 너 그럼 도대체 죽은 지 몇 년이나 된 거야?”

“몰라요. 15년 정도 세다가 그만 뒀어요. 나이 먹는 것도 아닌데 세어서 뭐해요.”

“그건 그렇지만… 그 동안 심사 점수가 올라가긴 했어?”

“그럼요. 실은 바로 지난 심사에서 47점이었어요.”


“와! 이제 진짜 얼마 안 남았네! 이게 뭔가 노력한다고 해서 올릴 수 있는 것은 아닌 것 같은데…….”

희주가 말 끝을 흐리며 민수를 곁눈질로 힐끗 바라보았다. 어느새 민수의 이야기를 들은 충격은 사라지고, 도대체 어떻게 점수를 올린 것인지, 비결이 궁금해 엉덩이가 들썩였다.


“그러게요. 저도 잘 모르겠어요. 사실 문지기로 일하면서 몇 년 전에 누군가를 만났는데, 그 이후로 점수가 변하기 시작했어요.”

“그게 누군데?”

희주는 의자를 옮겨 민수에게 바짝 다가가 앉았다. 누구인지는 몰라도, 민수에게 이야기를 들은 즉시 그를 찾아갈 생각이었다. “최은정. 저랑 같은 보육원에서 생활하던 친구였어요.”



- 다음 장에서 계속 -


-The image created by CHO JUYOUNG with Midjourne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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