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판타지 장편 소설] 댓플레이스(That Place)
“보자… 그 다음 사람은 최은정. 나이는 52세, 이런, 너무 젊네… 사망 사유는 화재로 인한 질식사라. 아이고…….”
오늘 도착할 영혼들의 프로필이 담긴 책을 훑어보며 중얼거리던 민수는 은정의 사진 위에서 손가락을 멈칫했다. 얼굴이 조금 변하기는 했지만 분명 낯이 익은 얼굴이었다.
그 때, 연기 기둥이 조금씩 모양을 드러내기 시작했다. 중간 지대을거친 영혼이 오고 있다는 신호이다. 민수는 연기 기둥이 어느정도 길쭉한 모양새와 두께를 갖추기까지 여유롭게 지켜보았다. 이제 연기 기둥 속에서 영혼을 찾아 끄집어 내는 작업은 아주 익숙해졌다. 처음에는 연기 기둥이 채 피어 오르기도 전에 성급하게 손을 집어 넣었다가 한참 동안이나 연기 기둥 속을 헤집어야 했었다. 게다가 긴장한 탓에 온 몸에 과도한 힘이 들어가 모든 동작이 뻣뻣하고 어색했는데, 시간이 지날수록 힘을 빼는 것이 요령이라는 것을 깨달았다. 힘을 최대한 빼고 연기 기둥에 손을 넣어 뭔가가 잡히는 듯하면 손가락만 살짝 까딱해도 영혼이 딸려 나온다.
“어서 오세요, 최은정씨.”
민수는 가장 무난한 인사법으로 은정을 환영했다. 열정이 넘치는 문지기들 중에는 쓸데없이 다양한 환영 세레모니를 준비하기도 했는데, 영혼들의 호불호가 큰 방식이었다. 민수는 그런 호들갑이 성격에도 맞지 않는 데다, 세레모니까지 준비하면서 환영을 할 만한 진심도 없었다. 민수는 그저 다음 재심사를 위해 어쩔 수 없이 문지기로 무료 봉사를 하고 있는 것 뿐이었다.
‘엇, 저 사람은……?’
민수는 연기 기둥 속에서 빠져나온 사람을 알아보고 소스라치게 놀랐다. 사진 속에서는 긴가민가 했지만, 막상 눈 앞에 서 있는 그녀를 보니 분명히 알아볼 수 있었다. 그와 같은 보육원에서 지냈던 최은정이었다.
‘어쩌다가 이렇게 일찍 여기에…….’
“누구……시죠?”
민수가 은정을 알아보고 잠시 멍해 있자, 그녀가 먼저 입을 열었다.
“아, 죄송합니다. 저는 최은정님의 <댓플레이스> 입장 심사를 도와 드릴 문지기입니다.”
정신을 차린 민수가 은정을 입장 심사대 쪽으로 안내하면서 그 동안 숱하게 이야기했던 앞으로의 절차를 설명했다. 댓플레이스에 들어가려면 일단 심사대에 서서 입장 심사를 봐야 하고, 점수에 따라 그 곳으로 들어갈 수 있을지 없을지가 결정된다고 알려주었다. 만약 심사에 통과하게 되면 망각 주스를 마시게 되고, 인간 세상에서의 모든 기억을 잊게 된다는 내용도 덧붙였다. 꽤 긴 설명을 하는 동안 은정은 민수에게서 눈을 떼지 않은 채 이따금 네네, 하고 대답할 뿐이었다. 민수는 혹시나 은정이 자신을 알아볼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등에 식은땀이 흐르는 것 같았다.
“큼큼, 일단 인터뷰 먼저 진행할게요.”
민수가 최대한 아무렇게 않은 척 목소리를 가다듬고 말했다. 은정이 옅은 미소로 대답을 대신했다. 민수가 기억하는 어린 시절의 미소 그대로였지만, 고생을 많이 했는지 얼굴은 꽤 상해 있었다.
은정은 민수의 이야기를 가만히 듣기만 했다. 화재로 인한 죽음의순간을 이야기할 때에도 잠시 미간을 찡그릴 뿐이었고, 궁금한 것이 있냐는 질문에도 고개를 저었다. 안타까웠지만 유족들이 남긴 마지막 메시지도 없었다. 인터뷰는 싱겁게 끝났다. 보육원을 떠나 쉽지 않은 시간을 보내다가 화재로 짧은 생을 외롭게 마감한 그녀의 인생이 눈에 보이는 듯했다.
“그럼 은정씨, 심사를 시작해도 될까요?”
“네, 준비됐어요.”
민수는 은정을 향해 고개를 한번 끄덕이고는 심사대의 빨간 버튼을 꾹 눌렀다.
‘띵동, 82점입니다. 입장하세요.’
0점이 나올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민수의 머릿속에 떠오름과 동시에 점수판에 ‘82’이라는 예상치 못한 숫자가 선명하게 떠오르며 심사대의 문이 서서히 열리기 시작했다.
“흡!”
점수를 확인한 민수는 순간적으로 비명이 튀어나오려 하자, 얼른 입을 틀어막았다. 문지기 교육 내용 중에 영혼들의 심사 점수를 함부로 예측하거나, 그 결과에 반응하지 말라는 항목이 있는데, 정확히 반대로 하고 말았다.
“어…… 그러니까… 점수가 82점……이네요. 축하해요 은정씨!”
민수는 목소리가 떨려 쉽사리 말을 잇지 못했다. 82점이라니. 한번에 입장 심사를 통과했다. 보육원 출신이 말이다. 기억 속 은정은 민수와 마찬가지로 특별할 것 없는 여자 아이였다. 은정도 세상에 나와 할 수 있는 일은 별로 없었을 것이다. 세상이 민수 자신만 버렸을 리 없지 않은가. 민수는 여전히 알 수 없는 입장 심사 기준에 갑작스레 부아가 치미는 듯했다.
“댓플레이스에 들어갈 수 있게 되었습니다. 정말 축하해요……. 그 동안 어떻게…… 지냈어요?”
“네?”
은정의 점수에 충격이 가시지 않은 민수가 자기도 모르게 그녀에게 어떻게 지냈냐고 묻자 최은정이 당황하며 되물었다.
“아, 그게…… 원래 인터뷰 항목에 포함되는 내용이었는데…… 제가 오늘 심사가 많아 정신이 없어서 빼먹고 말았네요.”
민수가 얼버무리며 말했다. 심사 통과 후에는 망각 주스를 마시고 바로 입장을 해야 하지만, 민수는 그녀의 삶에 대해 꼭 들어야만 했다.
“죽기 전에는 보육원을 운영했어요. 그 보육원에서 불이 나서 이렇게 갑자기 죽게 될 줄은 상상도 못했지만…….”
“보육원이요?”
“네. 실은 제가 보육원에 인생을 한 번 빛 진 사람이거든요. 아차, 이제 사람이라고 하면 안되겠네. 어쨌거나 보육원에서 저를 거둬주지 않았더라면 저는 아무도 모르는 곳에서 죽을 운명이었어요. 태어나자마자 버려졌거든요. 죽다 살아났으니, 저처럼 버려진 사람들을 돌보며 살겠다고 오랫동안 생각했어요. 그런데 막상 보육원에서 나오니까 할 일이 정말 없더라고요? 아무 능력도 없는 저를 누구도 써 주지 않았어요. 저 같아도 가성비 좋은 로봇을 쓰지 굳이 사람을 쓰지는 않았을 것 같아요. 하하.”
최은정이 사람 좋은 웃음 소리를 내며 덤덤하게 이야기를 이어갔다.
“그래서 제가 지내던 보육원장에게 도와달라고 연락을 했는데, 원장이 누굴 만나보라고 했는 줄 아세요?”
“누구……를요?”
민수는 답을 알면서도 되물었다. 목구멍을 타고 끈적한 침이 꼴딱 넘어갔다.
“신체교체수술 하는 외과 의사였어요. 갈 곳 없는 보육원 아이들을 소개해 주고 도대체 얼마를 받아먹는지는 모르겠지만, 정말 어처구니가 없었어요. 단번에 거절했죠. 오로지 돈을 위해서라면 손톱 하나라도 싫었어요. 그 때부터였어요. 많은 보육원들이 암암리에 아이들을 신체교체수술 하는 병원에 소개해 주고 뒷 돈을 받고 있었다는 사실을 알게 되면서 그걸 막으려고 무던히 애를 썼답니다. 여기 저기에 제보도 하고, 국가 기관에도 무작정 찾아가고. 그러다가 가끔 일자리가 생기면 일하고, 공부하고, 자격증도 따고. 그렇게 애쓰며 살다 보니 제 노력을 세상이 인정해 주더라고요. 작은 마을에 있는 공립 보육원장으로 발령 받아서 아이들을 돌보면서 지냈어요. 보육원 출신들이 대부분 마찬가지였겠지만, 우리가 어렸을 때는 정말 먹고 자는 것만 해결했지 제대로 된 교육도 못 받았거든요. 그런 아이들이 세상에 나가서 적응하지 못하고 소모품처럼, 인간답지 못하게 살아갈 수밖에 없었던 것은 어쩌면 당연했던 것 같아요. 저는 아무래도 보육원 출신이다보니 아이들 사정에 더 마음이 쓰이더라고요. 그래서 아이들도 저를 잘 따라줬고……. 아, 그런데 여기도 물 같은 게 있나요? 기분 탓인지 모르겠지만 목이 좀 타는 것 같아서.”
말을 이어가던 최은정이 갑자기 헛기침을 하며 불편한 듯 목을 매만졌다.
“죽음 이후에는 목마름은 물론, 어떤 감각도 고통도 없어요. 아마도 사망 사유인 화재의 기억 때문에 목이 타는 것 같은 느낌을 받나봐요.”
민수는 최은정에게 얼른 흥분을 가라앉혀주는 안정 주스를 건넸다. 최은정은 안정 주스를 단숨에 들이킨 후 금세 평온을 되찾았지만, 오히려 민수는 목이 타는 기분이었다.
“감사합니다. 한결 낫네요. 그런데 망각 주스라는 걸 마시면 화재의 순간도 잊혀지나요?”
“네, 모든 기억이 지워지니까요.”
“다행이네요. 제가 인간 세상에서 해야 할 일은 다 끝내고 온 것 같고, 화재의 순간이 너무 고통스러워서 그건 잊고 싶어요. 제 삶에서 불행했거나 고통스러웠던 순간은 그 때 뿐이었으니까요.”
“은정씨는 <댓플레이스>에 들어가기 직전까지 누군가를 돕고 갔네.”
잠자코 이야기를 듣고만 있던 희주가 말했다. 어느 새 꿀 같은 휴식시간이 끝나가고 있었다.
“맞아요. 은정은 그 말을 마지막으로 망각 주스를 마시고 <댓플레이스>로 들어갔어요. 저는 한 순간도 내 삶이 고통스럽지 않았던 적이 없었는데, 삶에서 고통스러웠던 순간은 화재의 순간 뿐이었다던 은정의 말이 제가 삶을 다시 돌아볼 수 있도록 도와줬거든요.”
민수가 은정의 마지막 모습을 떠올리며 말했다. 민수는 한 동안 천장을 바라보다가 시선을 희주에게 돌렸다. 두 사람의 눈이 마주쳤다. 민수가 입가에 잔잔한 미소를 머금었다. 희주는 그의 미소를 바라보며 직감했다. 민수를 문지기로 만날 날이 얼마 남지 않았다는 것을.
-The image created by CHO JUYOUNG with Midjourne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