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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조주영 Oct 04. 2024

[소설] 14장. 재심사

[판타지 장편 소설] 댓플레이스(That Place)

 희주는 거울 속에 비친 자신의 모습을 물끄러미 응시했다. 단정하게 뒤로 묶은 머리, 한치의 주름도 허용하지 않은 매끈한 문지기복, 깨끗하게 닦은 구두. 주머니에 잘 넣었는지 몇 번이고 확인한 죽음의 시계. 모든 것이 완벽하다. 자기도 모르게 미세하게 떨리는 손을 제외하고는. 오늘, 무조건 재심사에 통과해야 한다.


 최초에 <댓플레이스> 입구에서 23점이라는 점수를 받은 후, 약세 달 후에 재심사 기회가 주어졌다. 다행인 것은 오늘 미즈키도 재심사를 본다는 것이다. 만약 미즈키와 함께 <댓플레이스>에 들어갈 수 있다면, 더 없이 좋은 시나리오이다.


 “희주! 기분 괜찮아? 너무 긴장한 건 아니지?”


 미즈키가 희주의 방 문을 벌컥 열며 말했다. 여느 때처럼 잇몸이 보이도록 밝게 웃고 있는 미즈키였지만, 희주는 그녀의 입꼬리가 바르르 떨리고 있음을 눈치챌 수 있었다. 늘 카리스마 있고 여유로운 모습만 보여 주었던 미즈키였기에, 긴장한 듯한 그녀의 모습에 희주의 손이 더욱 바르르 떨렸다. 희주는 마치 소근육 발달 연습을 하는 아기들처럼 양손을 쥐었다 폈다 했다. 긴장하면 안돼, 긴장하면 안돼, 라고 되뇌일수록 몸은 더욱 움츠러들었다. 코끼리 생각을 하지 말라고 하면 머릿속이 온통 코끼리로 가득 차는 것과 같은 이치다. 인간 세상에서나 이 곳에서나, 마음처럼 몸이 컨트롤 되지 않는 것은 여전하다.


 “뭐, 긴장이 전혀 안된다고 하면 거짓말이지만, 그럭저럭 괜찮아요. 미즈키, 그 어색한 입꼬리나 좀 어떻게 해봐요.”

 희주가 일부러 말을 툭툭 내뱉었다.


 “티나?”

 “완전.”

 눈을 마주친 두 사람은 그제서야 팽팽했던 긴장의 끈을 놓고 피식 댈 수 있었다. 여간해서는 속내를 드러내지 않는 미즈키가 마음 놓고 피식 거리자 희주의 마음도 조금 가벼워졌다. 희주는 누구보다도 미즈키가 <댓플레이스>로 들어갈 수 있기를 진심으로 바랐다.


 “미즈키, 제가 처음에 심사 탈락하고 문지기 대기실에 왔을 때, 당신이 했던 말 기억나요?”

 “글쎄? 나는 늘 똑 같은 말을 했던 거 같은데.”

 “분명한 건, 누군가는 재심사를 통과해서 <댓플레이스>로 입장하고 있습니다. 그 답은 여러분 스스로가 직접 찾아야 합니다.”

 희주가 미즈키의 카리스마 넘치는 저음을 흉내 내며 말했다.


 “하하, 그랬던 것 같네.”

 “그래서, 답을 찾은 것 같아요?”

 “글쎄, 그건 입장 심사대가 알려주겠지. 50점이냐, 51점이냐.”

 “에이, 그걸 누가 몰라요? 나눠줄 팁 같은 거 있나 해서 물어본거죠.”


 희주가 투덜대자 미즈키가 대답없이 한쪽 입꼬리를 올리며 희주에게 팔을 둘러 어깨동무를 했다. 그녀의 팔은 어떠한 체온도 느껴지지 않았지만 왠지 따뜻한 기분이었다.


 “미즈키는 심사 3구역으로 가는 거죠?”

 “응. 희주는 심사 2구역이지? 2구역에서 내려다보면 바로 3구역이야. 나 심사하는 거 구경해.”

 “두 눈 똑바로 뜨고 구경할 테니까 꼭 통과하세요.”


 희주가 오른손으로 검지와 중지를 펴서 자신의 눈 앞에 갖다 대었다가, 마치 눈빛을 발사하듯 미즈키를 향해 손가락을 다시 뻗었다. 왠지 우스꽝스러운 그녀의 행동에 미즈키가 참지 못하고 피식거렸다. 희주의 행동이 정말 웃겨서라기 보다는, 본인도 긴장했을텐데 애써 미즈키의 긴장을 풀어주려고 애쓰는 희주의 마음이 귀엽게 느껴져서였다.


 문지기 숙소에서 나온 두 사람은 여전히 어깨 동무를 한 채 2구역으로 함께 걸어갔다. 2구역에 가까워질수록 시공간이 일그러지며 왠지 공기가 점점 묵직해지는 기분이 들었다. 


심사 구역은 끝없이 아래로 이어지는 메자닌 건축 구조와 비슷하다. 즉, 심사 2구역에서 아래 층을 내려다보면 심사 3구역이 보이고, 그 아래로 심사 3구역, 4구역이 계속 이어지다가 결국 끝이 어디인지 알 수 없는 검은 소실점으로 수렴한다. 심사 구역이 몇 번까지 있는지 아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고, 모두들 그저 심연의 구역이라고 부를 뿐이었다. 희주는 괜히 공포감만 조성하는 이 건축 구조가 영 마음에 들지 않았다.


심사 2구역 입장 심사대 앞에는 똑 같은 옷을 단정하게 차려 입은 문지기들 한 무리가 이미 오밀조밀하게 모여 있었다. 이제는 다들 문지기복이 썩 잘 어울린다. <댓플레이스> 입장 심사대는 여느 때처럼 우아하게 아치를 그리며 묵직하게 뿌리를 내리고 서 있었다. 매일 같이 마주하는 심사대가 오늘 유독 높아 보이는 듯했다. 


 심사대 바로 옆에 처음보는 문지기가 서 있었다. 남자인지 여자인지 모를 그 문지기는 왠지 모르게 좀 더 고급스러워 보이는 문지기복을 입고 차르르한 광택이 도는 붉은 허리끈을 매고 있었다. 얼굴에는 역시 새하얀 가면을 쓰고 있었는데, 표정을 알 수 없는 새하얀 가면이 붉은 허리끈 색과 대조를 이루며 묘한 분위기를 자아냈다. 가면에 뚫린 눈구멍과 입구멍으로 문지기의 이목구비가 감질나게 보일 듯 말 듯했다. 


 “저 분이 말로만 듣던 문지기들의 관리자인가요? 처음 봐요.”

희주가 미즈키의 귀에 대고 소근 대며 물었다.


 “응, 맞아. 저 분들은 <댓플레이스>에 들어가지 않고 문지기로 계속 일해. 일반 심사는 하지 않고, 재심사나 특별 심사 같은 까다로운 심사만 진행하거나, 일반 문지기들에게 잘 알려지지 않은 비밀스러운 일들도 많이 진행한다고 하더라고. 그래서 개인 숙소 외에는 가면도 벗을 수 없어. 자기가 재심사해야 하는 일반 문지기들 중에 혹시나 알던 사람이 있을 수 있으니까.”


 “엑? 문지기로 계속 일해요? 설마…… 심사에 계속 탈락한 거예요?”

 “그렇지는 않아. 대부분은 본인이 자원해서 대기실에 남기로 한 걸로 알고 있어. 뭐, 그렇게 되기까지 각자 다양한 사연들이 있겠지만 나도 제대로 아는 건 없어.”


미즈키가 어깨를 으쓱하며 대답했다. 그러고보니 그 관리자 문지기는 겉으로는 일반 문지기들보다 화려해 보였으나 오른쪽 다리가 불편한지 왼쪽 다리에 지탱하며 약간 기우뚱거리며 걷고 있었다. 희주는 그의 사연이 궁금해졌다. 


 “문지기들이 한 둘이 아니기 때문에, 생각보다 관리할 일이 많을 거야. 예를 들면, 각자 사이즈에 맞춰서 문지기들의 복장을 준비 한다든지, 숙소를 꾸민다든지, 죽음의 시계를 제작한다든지. 망각 주스나 안정 주스를 만든다든지, 그런 컨시어지 업무를 한다고 들었어. 중요한 의사 결정을 위해서 회의체를 구성하기도 하고. 그러고보니 처음에 이 곳에 왔을 때 왜 인간 세상 탐사선이 심사대를 발견한 것을 알고도 가만히 두었냐고 물어봤었지?”


 “아! 맞아요! 지금 생각해도 그건 정말 이상해요. 그걸 왜 그냥 놔두는 거예요?”

 “나도 건너들은 이야기야. 탐사선이 심사대를 발견했다는 사실을 알고 여기도 한바탕 난리가 났지. 그런데 관리자 문지기 회의체에서 대응하지 않고 지켜보는 쪽으로 결정했던 거야.”




[6년 전, 관리자 문지기 회의실] 


‘위잉위잉위잉, 긴급 상황입니다. 관리자 문지기들은 지금 즉시 회의실로 모여 주시기 바랍니다. 위잉위잉위잉.’


웬만해서는 울리지 않는 비상벨 소리에 관리자들은 매뉴얼에 따라 하던 일을 즉시 멈추고 비상벨 소리가 미처 잦아들기도 전에 회의실로 이동했다. 인간 세상에 뭔가 일이 생긴 것이다.


“빨리 들어오세요. 빨리 빨리.”

회의실 입구에서 관리자 하나가 손을 흔들며 서둘렀다. 회의실 안에는 전에 없던 긴장감이 감돌았다.


“시간이 없으니 바로 본론부터 들어가겠습니다.”

인간 세상 모니터링 업무를 담당하는 라비가 가쁜 숨을 내쉬며 다급하게 말했다. 매일 똑 같은 일이 지루한 듯 늘 심드렁한 얼굴로 일하는 모습만 보여줬던 그가 안절부절 못하는 모습을 보니 다른 관리자들도 덩달아 초조해지는 것 같았다.


“얼마 전 인간 세상에서 보낸 탐사선 하나가 1구역 2007번 심사대과 가까운 행성에서 발견되었던 거 모두 기억하시죠?”


라비가 말했다. 회의실에 모인 관리자들이 고개를 끄덕였다. 사실 그 동안 심사대 근처에서 인간들이 보낸 탐사선이 발견된 것은 하루 이틀 일이 아니다. 수시로 탐사선들이 발견되고 탐사 신호가 잡히지만 대부분 그냥 지나쳐 갔기에 별 문제 삼지 않고 넘어 갔었는데, 2007번 심사대 근처에서 발견되었던 탐사선은 한동안 떠나지 않고 머물러 있어서 예의 주시하고 있던 참이었다. 


“탐사선 명칭은 <테라 A-148호>이고요, 그 탐사선이 파라스페이스 입장 심사 현장을 촬영해서 인간 세상으로 송출하는데 성공했습니다.”


관리자들은 자신의 귀를 의심했다. 아무리 인간 세상의 기술력이 하루가 다르게 발전한다지만, 사후 세계 촬영이 가능하단 말인가? 회의실 안이 웅성거리기 시작했다. ‘그게 가능해?’ ‘탐사선을 쥐도 새도 모르게 없애 버려야 하는 거 아니야?’ ‘영상을 송출했다 한들 무슨 일이 있겠어? 다들 조작이라고 생각할거야.’ ‘아마 인간들에게 공개하진 못할 거야. 파장이 어마어마 할 텐데 말이야.’ ‘오히려 이 곳이 공개되면 사람들이 좀 더 착하게 살려고 노력하지 않을까?’ ‘무슨 소리야? 댓플레이스 심사 통과는 착한 게 산 것과는 별 상관없다는 거 잘 알잖아.’ ‘이 곳을 본격적으로 탐사하려고 들면 어쩌지?’ ‘그래봤자 살아있는 사람들이 이 곳에 미칠 수 있는 영향은 아무 것도 없어.’라며 저마다 자기의 생각을 떠들어댔다. 


“일단 국제 천문 연맹에서 송출 받은 영상을 분석하고 있는 중입니다. 사후 세계일지도 모른다는 쪽으로 의견이 모이고 있는 것 같아요. 세상에 공개할지 여부는 아직 결정되지 않은 것 같습니다.”


라비가 겨우 숨을 고르며 말을 이어갔다. 그러고보니 과거에도 비슷한 일이 몇 차례 있었다. 죽음으로 가는 오솔길에서 갑자기 삶으로 되돌아간 사람들 중에 어찌된 일인지 그 기억을 일부 가지고 돌아가는 사람들이 있었는데, 증거도 없는 데다가 한 두 사람의 개별적인 경험이 세상에 미친 영향력은 거의 없다시피 해서 별 대응 없이 넘어갔었다. 하지만, 이번에는 직접적인 증거가 영상으로 남았다니, 상황이 아주 달랐다. 


“어차피 우리가 영상물에 직접적으로 개입할 수 있는 부분은 없을 텐데요. 그 탐사선을 없애 버릴 수도 없고 말이예요.”


 문지기 하나가 어깨를 으쓱하며 냉소적으로 말하자, 곳곳에서 ‘그건 그렇지…….’하며 체념하는 듯한 동조의 반응들이 여기저기에서 튀어나왔다. 평소에 모든 일에 될 대로 되라는 듯, 늘 심드렁한 태도를 유지했던 자였다. 


그 때 심사대 보수 공사 담당자가 손을 들었다. 

“말씀하신대로 영상물에 직접적으로 개입할 수 있는 부분은 없습니다. 탐사선을 없애 버릴 수도 없고요. 하지만, 그 영상의 피사체를 없애 버릴 수는 있죠.”


평소 조용하던 문지기가 입을 떼자, 모두의 시선이 일제히 그에게 향했다.

“영상에 찍힌 파라스페이스 2007번 심사대. 다른 곳으로 이전시키겠습니다.”


그 말에 ‘그런 간단한 방법이 있었네!’ ‘미친 거 아니야? 심사대 이전이라니. 각 심사대가 자체적으로 저장하고 있는 심사 기록들을 안전하게 옮긴다는 건 거의 불가능하다고. 뭘 모르고 하는 소리로군.’ ‘젠장, 일거리가 또 하나 늘었네.’ 라며 회의실이 다시 한번 웅성거리는 소리로 가득 찼다. 


“좀 더 지켜보는 건 어떨까요? 아직 영상이 세상에 공개된 것도 아니고 말이예요. 지금 심사대를 이전시켜버린다면 오히려 사후 세계에서 탐사선에 반응했다고 생각하고 사람들을 더 자극시킬 수도 있어요.”

또다른 문지기가 말했다. 그 이후로도 문지기들이 우후죽순 의견을 내는 바람에 회의실이 한동안 야단법석이었다.


‘쾅! 쾅! 쾅!’

그 때 한참 동안 상황을 지켜보던 총 책임자인 파란띠를 두른 문지기가 희의봉을 두드렸다. 소란스럽던 회의실이 순식간에 고요해졌다.


 “모두들 진정하세요. 지금까지 나온 의견을 종합해 보면, 2007번 심사대를 이전하자, 그리고 당분간 두고 보자. 이렇게 나뉜 것 같네요. 회의 규정에 따라 투표로 결정하겠습니다.”


회의 운영자가 관리자들에게 투표 용지를 나누어 주었다. 어떤 이들은 관자놀이를 짚으며 오랫동안 고심했고, 어떤 이들은 용지를 받자마자 투표하고 망각주스 제조가 밀렸다며 슬그머니 나가버렸다. 


투표 결과는 일단 두고 보자는 쪽이 압승이었다. 설마 국제 천문 연맹에서 엄청난 파장을 감수하고 대중에게 영상을 공개하기는 쉽지 않을 것이라는 예상도 있었고, 심사대 이전에 대한 부담도 컸던 것이다. 


그러나, 이들의 예상을 뒤엎고 국제 천문 연맹은 사후 세계 영상을 포착한지 약 1년 후, 영상을 대중에게 공개하기로 결정했다. 2118년 2월 19일. 온 세상이 속보로 뒤 덮였고, 충격 받은 사람들의 집단 자살 소동 등으로 한동안 인간 세상과 사후 세계 모두가 아수라장이 되었다. 




“당분간 두고 보자는 결정이 잘못된 거였어요. 누가 책임질 겁니까?”

“투표로 정한 건데 공동 책임이죠! 그런 말로 자꾸 분란 일으키지 말아요.”

“지금이라도 2007번 심사대를 이전시켜야 합니다!”

“그럼 2007번 심사대의 심사 기록들을 포기하자는 말입니까? 그 기록들까지 옮길 수는 없어요!”

“심사대 이전은 지금까지 한번도 시도해보지 않은 일입니다. 어떤 여파가 일어날지 전혀 예측할 수 없어요.”


또 다시 관리자들이 긴급 소집되었다. 회의실에 모인 관리자들은 핏대를 세우며 언쟁하기 시작했다. 사후 세계의 혼돈은 인간 세상보다 더 하면 더 했지, 결코 덜 하지 않았다. 


“오히려 잘됐어요. 이왕 이렇게 된 거 여기랑 지구랑 소통 채널로 쓰는 게 어떨까요?”


그 때, 어린 관리자 문지기가 태연하게 말했다. 사실 그는 호칭만 관리자였지, 심사를 보지 않고 엄마 아빠를 기다리겠다며 떼쓰는 바람에 어쩔 수 없이 관리자들이 돌보고 있는 어린 아이일 뿐이었다.


“2007번 심사대에 배정받는 사람들은 심사 보기 전에 카메라 쪽을 향해 인사할 수 있도록 기회도 주면 좋겠어요! 유족들이 얼마나 기뻐할까요?”


어처구니없는 말에 다른 관리자들이 대꾸도 하지 않고 다시 언성을 높였다. 그러나 그는 아랑곳하지 않고 두 손을 맞잡으며 부푼 목소리로 계속 말을 이어갔다. 


“아주 재미있을 것 같아요! 댓플레이스가 좋은 곳이라는 걸 알게 된다면, 사람들이 그 곳에 들어가기 위해 노력하지 않을까요? 착한 일도 많이 하고요. 최소한 나쁜 일을 하는 사람은 줄어들 것 같은데요?"


“흠, 틀린 말은 아니군요.”

말도 안되는 이야기에 파란띠를 두른 문지기가 맞장구를 치자 다른 관리자들이 일제히 “뭐라고요?”하며 합창을 했다.


“이미 지난 1년간 촬영된 영상을 바탕으로 사람들이 무수한 연구를 했을 겁니다. 문을 통과한 사람과 갑자기 사라진 사람들의 차이를 말이죠. 저는 그 연구가 최소한 ‘인간 세상에서 제멋대로 살아도 된다.’는 아닐 거라고 생각해요. 오히려 긍정적인 효과가 있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드는군요.”


“그, 그건”

모두에게 존경받는 총 책임자의 입에서 의외의 말이 나오자 다른 관리자들이 꿀 먹은 듯 입을 닫았다. 모두들 머릿속이 복잡했다. 무엇이 옳은 결정인지 도무지 판단하기 어려웠다. 그 때, 총 책임자 문지기가 따뜻하고 단호한 음성으로 관리자들의 마음을 하나로 모았다. 


“아직 저 땅에서 살아가고 있는 인류를, 우리 가족들과 후손들을 한번 믿어봅시다.”




 “그래서 결국 기나긴 회의 끝에 2007번 심사대를 그대로 유지하되, 그 곳에 배정받는 사람들이 돌발 행동을 하지 않도록 철저하게 관리하자는 방향으로 결론을 맺었다고 해. 재밌지?”


“재밌네요.” 

미즈키의 이야기에 푹 빠져들었던 희주가 맞장구를 쳤다.


“사실 잘 한 결정이었는지는 모르겠어요. 체감상 댓플레이스가 발견됐다고 해서 사람들이 착해졌다거나 그런 건 아닌 것 같아요. 인간의 본성은 똑같고, 사는 게 힘들고 지루한 건 예나 지금이나 마찬가지거든요. 그나저나, 이 곳에서도 관리자들끼리 회의 시간에 싸우고 투표로 결정하고 그런 건 똑같네요? 사후 세계라고 해서 딱히 일 처리가 더 정교하고 완성도가 높은 건 아닌 모양이에요.”


“인간 세상이랑 똑같지 뭐. 그 관리자 문지기들도 결국 평범한 인간들이었을 뿐이니까.”

 희주가 약간 냉소적으로 말하자 미즈키가 희주의 어깨를 툭툭 다독이며 말했다. 


“다음! 사토 미즈키 심사 대기하세요.”

그때, 재심사 2구역 아래 3구역에서 관리자 문지기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이런, 나 이러다가 늦겠다. 이제 3구역으로 내려가야 해.”

 한참 동안 중간 지대에 대한 수다를 떨던 미즈키가 정신을 퍼뜩 차리고 갈 준비를 서둘렀다. 이제 정말 미즈키와 헤어질 시간이다. 희주는 미즈키와의 헤어짐이 아쉬웠지만, 진심으로 이 곳에서 다시 만나지 않기를 바랐다. 


“미즈키, 우리 꼭 같이 들어가요.”




 “다음! 사토 미즈키 올라오세요.”


 재심사 3구역 입장 심사대 옆에 서 있던 문지기가 미즈키를 호명했다. 드디어, 미즈키의 두 번째 재심사가 진행된다. 미즈키는 굳은 얼굴로 자리에서 서서히 일어나 입장 심사대 쪽으로 몸을 돌렸다. 희주는 2구역 난간에 기대어 아래쪽 3구역을 내려다보며 그녀의 움직임을 따라 시선을 옮겼다. 긴장감에 손바닥이 땀으로 가득 찼다. 희주는 심사대를 향해 걸어가는 미즈키의 뒷모습을 바라보며 자신도 모르게 손을 길게 뻗었다. 미즈키의 손을 잡고 함께 걸어가고 싶었다. 


그 때, 미즈키가 고개를 돌려 2구역에서 자신을 향해 손을 뻗고 있는 희주를 바라보았다. 미즈키는 굳은 얼굴을 풀고 희주를 향해 살짝 미소 지었다. 나 먼저 <댓플레이스>에 가서 기다리고 있을게 희주, 하는 미즈키의 목소리가 들리는 것만 같았다.


 미즈키가 입장 심사대 앞에 섰다. 그녀는 문지기를 향해 말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시작할게요.”

 문지기가 빨간색 버튼 위에 손을 올리며 말했다. 그는 망설임 없이 버튼을 눌렀다. 그 광경을 바라보던 희주는 숨이 멎는 듯 했다.


 ‘띵동. 65점입니다. 입장하세요.’


“하아…….”

 점수를 확인한 미즈키가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아마 자기도 모르게 숨을 꾹 참고 있었던 모양이다.


 “미즈키!”

 희주가 큰 소리로 미즈키를 불렀다. 어찌나 크게 불렀는지 희주 옆에 서서 함께 3구역 심사를 구경하고 있던 어린 문지기 하나가 ‘우엥!’하고 울음을 터뜨렸다. 희주의 외침과 어린 문지기의 울음소리가 묘하게 엉키며 심사 2구역과 3구역을 넘어서 심연의 구역까지 닿을 기세로 일렁거렸다. 


미즈키가 고개를 돌려 희주를 올려다보았다. 미즈키의 눈가에 맺힌 눈물 한방울이 문 안쪽에서 뿜어져 나오는 환한 빛에 반사되며 반짝였다. 유독 환해 보이는 빛이 2구역까지 퍼지며 빛에 익숙한 관리자 문지기마저 그 빛을 마주 보지 못하고 고개를 돌려야 할 정도였다. 희주도 가까스로 실눈을 뜬 채 그 빛을 바라보았다.


<댓플레이스> 입구에 선 미즈키는 한 동안 희주에게 시선을 떼지 못했다. 그녀는 자신의 오른쪽 손바닥을 왼쪽 가슴 위에 올려 둔 채 간절한 눈빛으로 희주를 바라보았지만, 영문을 모르는 희주는 발만 동동거릴 뿐이었다. 힌트가 분명한데, 도무지 의미를 알아챌 수 없었다.


 “다음! 한희주 올라오세요.”


 심사 2구역 문지기가 희주를 호명했다. 숱하게 상상해 오던 시간이었다. 희주는 코로 숨을 깊게 들이 마셨다가, 입으로 세게 내쉬었다. 미즈키가 심사에 통과할 것이라고 예상은 했지만, 막상 망각 주스를 마신 후 <댓플레이스> 안으로 걸어가는 미즈키의 뒷 모습을 보니 희주의 마음이 한층 심난해졌다. 어느덧 미즈키의 실루엣이 희미해졌다. 희주는 호흡을 가다듬으며 심사대 앞으로 서서히 걸어갔다.


 “시작할게요.”

 “자…잠깐만요!”


 희주가 심사대 앞에 채 도착하기도 전에 문지기가 심사를 서두르려 하자 희주가 반사적으로 외쳤다. 희주의 외침에 문지기의 강렬한 눈빛이 가면을 뚫고 나와 희주의 얼굴에 꽂혔다. 희주도 지지 않고 그의 얼굴을 한 동안 쏘아보았다. 일생 일대의 순간을 이렇게 번갯불에 콩 구워 먹듯이 진행하는 건 좀 아니지 않나요? 하는 무언의 항의였다. 


 “준비되면 이야기하세요.”

 희주가 보낸 무언의 항의가 통했는지, 문지기가 한 발 뒤로 물러섰다. 희주는 그를 바라보던 날선 눈빛을 거두고, 미즈키가 했던 것처럼 오른쪽 손바닥을 왼쪽 가슴에 올렸다. 그녀의 심장이 마치 살아있을 때처럼 세차게 뛰는 것 같았다. 심장부터 시작한 뜨거운 혈류가 희주의 온 몸을 빠르게 휘감았다. 희주는 알 수 없는 충만함에 휩싸여 양 볼이 상기되는 듯 했다.


 “저 준비 됐어요!”

 희주가 살짝 숨이 찬 듯한 목소리로 외치자, 한 걸음 뒤에서 그녀를 지켜보던 문지기가 고개를 한번 갸우뚱 하더니 희주에게 다가와 그녀를 뚫어져라 바라보았다. 매섭지만 온기가 느껴지는 눈빛이었다. 그는 말없이 빨간색 버튼 위에 손을 올렸다. 희주는 그 동안 재심사를 보게 되면 두 눈을 똑바로 뜨고 점수를 마주하리라 다짐했지만, 그런 다짐은 아무 소용이 없었다. 희주는 온 몸의 힘을 눈꺼풀에 집중하여 영원히 눈을 뜨지 않을 것처럼 두 눈을 힘껏 감았다. 


찰나의 시간이었다.


‘띵동, 23점입니다. 대기하세요.’



- The image created by CHO JUYOUNG with Midjourne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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