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임리치
예비군 훈련을 위해 2박3일간 입소를 했다.
훈련 사이사이에 휴식시간이 주어진다는 걸 알고 있었다. 훈련중에는 스마트폰을 쓸 수 없기 때문에 특별한 계획이 있지 않으면 그 시간들을 날려 버릴 것 같은 생각이 들었다. 그러나 제한된 공간, 제한된 자유의 상황에서 생산적인 무언가를 할 수 있는 것이 마땅치 않았다.
나는 독서라는 단순한 계획 한가지를 세웠고, 두권의 책을 가방에 넣어갔다. 다른 사람들은 그 시간을 어떻게 사용할 지 매우 궁금했다. 그리고 첫번째 휴식시간이 주어졌을 무렵 나는 알게 됐다.
계획이 없으면 시간이 무의미해진다는 것을...
휴식시간인데 마땅히 할 일은 없고, 스마트폰도 없고...시간이 좀 더 흐르니 한 명씩 잠을 택하는 사람들이 보였다. 잠을 자는 사람을 보고 따라 자는 사람들도 늘기 시작했다. 한 생활관 안에 약 20명이 있었는데 결국 나를 포함해 2명을 제외하고는 나머지 모두가 잠을 잤다. 나 혼자 우두커니 앉아있는 것이 민망했다. 나는 용기를 내어 가방에서 책을 꺼냈다.
단지 독서를 하는 것 뿐인데 용기가 필요했다. 모두가 자니까...
처음엔 다들 전날 잠을 못자고 와서 피곤한가 보다 생각했다. 그런데 시간이 지나고 다음날이 돼도 매번 휴식시간이 찾아올 때마다 대부분 주어진 시간에 무엇을 할지 몰라 결국 잠을 택했다. 시간은 있는데 할 일이 없다는 것은 생각보다 괴로워 보였다. 마치 괴로움을 잊기 위해 잠을 자는 것처럼 보였다.
물론 입소하기 전의 일상이 너무 바빴고 지쳤기에 이곳에서 주어진 휴식시간이라도 푹 잘 수 있다면 가치있는 시간이었을 것이다. 그러나 계획에 없던 휴식은 휴식으로서 의미가 없었다. 그냥 남는 시간일 뿐이었다. 그들은 잠을 자면서도 모든 소리에 다 민감하게 반응했다. 다음 일정이 방송으로 나오면 마치 그것만 기다리고 있었다는 듯 바로 일어나서 몸을 정비했다. 잠이 아닌 그저 눈을 붙이고 있는 모습이었던 것 같다.
시간을 때워야 했으니까...
이 지루한 시간을 빨리 날려 보내야 했으니까...
그렇게 그들이 시간을 흘려 보내는 동안 나는 책을 읽었다. 3일동안 주어진 휴식시간에 틈틈이 책을 읽다보니 훈련이 끝날 시점 나는 1.5권 정도의 독서를 마무리 했다. 1.5권이면 바깥 사회에서는 평소 10일 정도의 시간이 필요했다.
이것을 온전히 나의 입장에서 기분 좋게 해석한다면, 계획을 갖고 시간을 활용함으로써 나는 잠을 잔 그들보다 10일의 성과를 앞섰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이것은 10일에 1.5권, 100일에 15권, 1년에 55권의 속도로 책을 읽는다는 가정에서다.
그들이 1년동안 10권의 속도로 책을 보는 사람이었다면 나는 그들보다 55일을 앞서게 된 것이고,
그들이 1년동안 1~2권의 속도로 책을 보는 사람이었다면 나는 그들보다 1년을 앞서게 된 것이다.
물론 발전을 위해서 필요한 항목에 독서만 있는 것은 아니다. 일, 취미, 일상, 인간관계, 공부, 사색, 꿀잠 등 수많은 요소들이 있다. 그러나 시간을 때우기 위해 눈을 붙이는 행동에서 발전을 기대하긴 힘들다. 그것은 시간을 사용하는 것이 아닌 버리는 행동이기 때문이다.
누구보다 앞섰다 혹은 발전했다라는 것이 우습게 들릴 수 있다. 마치 게임 캐릭터의 능력치 레벨이 올라갔다는 것처럼 들릴 수도 있다. 단지 2~3일 계획있게 보냈다고 인생을 크게 앞서간다는 것이 과장되게 보이겠지만 그것은 테크닉적이고 외적인 면만을 생각한 경우이다. 내면의 경우는 얘기가 다르다.
누군가는 아무 생각없이 살다가 목표한 대로 열심히 살아야겠다고 결심하는 데 1년이 걸렸다면, 누군가는 며칠동안의 독서로 인생의 목표를 결정하기도 한다. 이러한 격차가 벌어지는 주된 원인이 바로 계획의 유무이다.
'생각대로 살지 않으면 사는 대로 생각하게 된다'는 말이 바로 그것을 뜻한다.
그래도 그렇지.. 3일동안 책 좀 봤다고 55일을, 1년을 앞섰다고 말하는 것은 좀 심한 과장아닌가...?
나는 그보다 훨씬 더 앞섰다고 자신있게 말할 수 있다. 다시 말하지만 시간의 격차는 계획의 유무에서 나타난다. 목표를 세우고 계획대로 살아가는 것은 일종의 습관이다. 주어진 3일의 시간을 알차게 계획대로 보냈다는 것은 그동안의 삶 역시 그래왔다는 것을 말해준다. 반대로 주어진 3일의 시간을 단지 눈을 붙이는 데 썼다면 평소 일상에서 주어지는 휴식시간에도 무의미하게 썼을 가능성이 크다. 격차는 1년, 2년 그 이상도 될 수 있다.
이것은 결국 시간을 대하는 태도에서 비롯된다.
시간을 중요하게 여길 수록 계획이 정교해지고, 시간을 하찮게 여길 수록 계획은 무의미해진다.
[시간부자 26화 약속시간을 지키지 않으면 안되는 이유] 편에서 시간은 곧 생명임을 얘기한 바 있다.
내가 죽은 이후에 있는 시간은 사실 나에게 아무런 의미가 없다. 죽으면 모든 게 끝난다. 그러므로 나에게 의미있는 시간은 내가 살아있는 동안 뿐이다. 즉 나에게 주어진 의미있는 시간은 내 생명의 지속시간이다. 고로 내 시간의 일부는 내 생명의 일부인 것이다.
계획을 세우는 것은 나의 시간이 소중히 쓰일 수 있도록 지키는 일이다.
다시 말해 계획을 세우는 것은 나의 생명이 소중히 쓰일 수 있도록 지키는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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