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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민들레 Sep 08. 2021

가장 나약한 존재의 어리석음

나의 먹는 자아

“아, 뭐먹지” 아침에 일어나 가장 먼저 하는 생각이다. 아침에는, 점심에는, 저녁에는 무엇을 먹을지 늘 생각한다. 무엇을 먹을까는 내 하루의 가장 중요한 질문이라고 봐도 과언이 아니다. 생각하다가 떠오르지 않으면 유투브에 들어가 비건 요리를 검색한다. 자취생 요리라고 입력하면 내가 요리하여 먹을 수 있는 것은 거의 없기 때문이다.


페스코 베지터리언으로 지낸지 딱 1년이 되었다. 어느 순간 육류를 먹기 싫다는 마음이 들었다. 나 한사람의 생존에 과한 희생이 든다는 생각에서였다. 눈 앞의 “고기”가 사실은 얼굴을 가지고 따뜻한 열을 내는 닭, 소, 양, 돼지이고 오직 우리가 먹기 위해 이 존재들을 키우며 자연환경을 파괴하고 있다는 것을 인식하게 되었기 때문이다. 1년간의 채식 지향을 하면서 이 방향이 거의 모든 방면에서 최선의 선택이라는 생각을 하면서 더 완전한 채식인(비건)이 되기 위해 노력했다. 그리고 많은 채식인을 만났다. 다양한 이유로 채식을 시작하여 각자의 방식으로 식생활을 이어가고 있었다. 대부분은 환경, 동물권, 건강 상의 이유로 육류를 먹지 않기 시작한 것 같았다.


‘악어의 먹이’를 쓴 발 플럼우드의 계기는 조금 특별했다. 탐험가인 그녀는 카누를 타고 호주 숲을 관찰하고 있었다. 악어를 발견했을 때도 그녀는 카누 위에서 흥미로운 자연 생태계의 관찰 대상으로만 그를 바라보고 있었다. 우리가 사파리 체험을 할 때 지프 차에 타서 사자와 호랑이를 바라보듯 말이다. 그 순간엔 인간 세계와 비인간 세계가 분리된 것처럼 ‘신비로운 자연’에 감탄할 수 있었다. 그런데 정글은 절대 인간과 비인간이 분리된 공간이 아니다. 악어는 플럼우드를 자신의 먹이로 인식했다. 자연 생태계의 일부로, 먹이사슬의 일부로 그를 인식하고 카누를 공격해왔다. 플럼우드를 물고, 도망가려는 그를 다시 물어와 흔들었다. 이렇게 악어의 먹이가 될 뻔한 그의 경험은 칸트의 코페르니쿠스적 전환처럼 그가 자신과 세계를 인식하는 관점을 뒤집었다. 자신 또한 “먹힐 수 있는 존재”임을 경험한 것이다.


그의 이야기를 읽으며 생각했다. 나의 채식은 오히려 인간중심적 관점에서 시작된 것이 아닐까. 비인간 동물과 비인간 자연의 생명력을 인식하고서는 인간과 유사한 존재라는 점에서 동정심을 갖고, ‘우월한’ 인간으로서 베풀 수 있는 시혜적인 선의로 채식을 실천하는 나의 도적적 '우월성’에 취해 있었던 것은 아닐까. 생태계 내 인간-동물 존재로서의 나를 돌아보았다.


어릴 적의 나는 동물을 무서워했다. 개에 물린 경험을 통해 동물도 날카로운 이빨을 가지고 있으며 나를 물 수 있다는 것을 경험했기 때문이다. 무의식적으로 내가 다른 존재보다 나약해질 때가 있다는 것을 인지했다. 그런데 이후 자라면서 내가 동물들에 의해 공격받을 수 있다는 사실을 잊어갔다. 동물원이나 아쿠아리움, 친구의 집에서 동물을 만나본 것이 다였고, 그때 경험한 동물들은 대개 온순하고 인간의 통제 하에 있었기 때문이다. 과학시간에 먹이사슬에 대해 공부할 때도 그랬다. '식물>초식동물>육식동물'의 사이클 가장 위에 인간이 위치해 있었고 식물과 비인간-동물을 인간이 섭취하는 것이 당연하게 느껴졌다. 모든 것은 나와 내 주변의 사람들을 중심으로 돌아가는 것 같았고 생태계는 인간 주변의 ‘환경’으로서만 존재하는 것 같았다. 아주 오만했다.


나날이 발전하는 기술은 인간이 모든 것을 통제할 수 있다고 착각하게 만들었고, 우리가 생태계의 일부라는 사실을 망각하게 했다. 인간에 의해 가공된 세계의 일부만 보며 자라온 나는 그 망각된 세계가 전부라고 생각했다. 인간이 동물에게 물려 죽었다는 소식을 듣거나 “죠스” 같은 영화를 봐도 두렵다는 생각이 들긴 했지만 결국은 우리 인간이 이길 것이라는 오만한 생각을 했다. 하지만 생태계 내 동물인 우리 인간은 절대 생태계 밖에서 흐름을 통제할 수 없다. 코로나19 팬데믹을 겪으며 우리는 ‘생태계-내-존재’로서의 인간의 취약성, 생태계와의 연결을 더욱 감각하게 되었고 망각된 세계를 되찾아야 함을 깨달았다. 생태계 속 에서 복잡하게 연결되어 있는 우리 존재들은 생존하기 위해 자연의 질서에 따라야한다는 것도 인식했다.


그러니, 이제는 정말로 자연의 질서를 파괴하며 인위적으로 생명을 착취하고 환경을 파괴하는 것을 멈춰야한다. 다른 무언가를 위해서가 아니라, 너무나도 나약한 존재인 우리 인간이 생존하기 위해서이다. 서서히 자신의 먹이를 죽일 수 있는 악어가 잠시 우리를 봐주고 있다. 그 찰나의 순간에 도망쳐 나온 플럼우드처럼 우리도 이 찰나의 순간에 우리가 생태계의 일부임을 다시 한번 깨닫고 자연의 순리에 순응해야 한다. 적어도 인간의 기술로, 공장식 축산, 공장식 농업, 공장식 _ _ _ 의 방식으로 자연을 통제하려는 시도는 그만두어야 한다.


이제는 “뭐 먹지”하는 질문으로 아침을 시작하고 싶지 않다. 여전히 무엇을 먹어야 하는가는 나에게 중요한 문제이지만, 그저 ‘먹는 나’에게만 몰입하고 싶지 않기 때문이다. 대신 모든 것에 감사하며 하루를 시작하고 싶다. 먹히지 않고 눈떠 파란 하늘을 바라볼 수 있다는 사실에, 미약한 인간 존재가 이 지구에 발 디딜 곳이 있다는 사실에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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