캐나다 기록
J에게
목표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사람이 너라서, 첫 편지를 써. 내가 캐나다로 떠나기 전 가장 많이 들은 이야기가 뭔지 알아? “목표를 제대로 세우고 가야 알찬 시간 보내고 올 수 있대” 였어. 알찬 시간이 어떤 시간인지는 잘 모르겠지만 어쨌거나 많은 대학생들에게는 교환학생이 처음으로 홀로 외국에서 시간을 보내는 경험이 될 터이니 얻고 싶은 것을 확실이 하라는 조언인 것 같아. 알찬 시간을 위한 목표가 무엇인지 도무지 모르겠던 나는 조금 다른 이유로 목표를 세웠어. 김영하 작가는 <여행의 이유>에서 여행에 대해 이렇게 말해.
“기대와는 다른 현실에 실망하고 대신 생각지도 않던 어떤 것을 얻고, 그로 인해 인생의 행로가 미묘하게 달라지고, 한참의 세월이 지나 오래전에 겪은 멀미의 기억과 파장을 떠올리고, 그러다 문득 자신이 어떤 사람인지 조금 더 알게 되는 것. 생각해보면 나에게 여행은 언제나 그런 것이었다.”
나는 이런 여행을 하고 싶어. 실패와 놀람, 희로애락이 가득해서 듣는 사람이 안달 나는 여행 이야기를 나도 하나쯤 가지고 싶다 생각했어. 우당탕 어디로 튈지 모르는 나다운 생각이라 생각하며 웃어주렴. 자 그럼, 기대와는 다른 현실에 실망하기 위해 설정한 나의 기대와 목표 이야기를 해줄게.
우선, 내 캐나다 생활의 키워드는 ‘자유’야. 5개월간 나는 자유로운 국가에서 자유로이 새로운 자극을 잔뜩 받아들이고 자유로이 날 표현하고 생활하며 시간을 보낼 거야. 자유롭게 영어로 내 언어를 잘 구사하고 싶기도 해. 한국에서의 생활이 자유롭지 못하고 괴로웠던 건 아니야. 일찍 독립하여 서울에서 혼자 살며 부모님의 간섭 없이 하고 싶은 것들을 대부분 하며 잘 지낼 수 있었어. 다양한 사람들을 만나며 열심히 놀러 다니고, 여행도 틈 내서 다니고, 공부는 하고 싶은 만큼만 하고, 대뜸 악기를 배우고 싶어 베이스를 시작해 밴드 공연도 해보고, 경제적으로도 자립하기 위해 과외도 하고 빵집 아르바이트도 하며 나름의 독립적이고 자유로운 삶을 살았지. 그 생활의 많은 부분에 너도 있었으니 그곳에서의 내가 충분히 자유롭고 행복했다는 걸 너도 잘 알 거야. 그러면서도 서울에서의 나는 늘 마음 한편에 답답함을 안고 있었지. 불안한 미래, 갈등과 분노로 가득한 소식 창, 정신없이 무언가를 향해 달려가는 주변 사람들, 나에게 너무 많은 것들을 묻고 기대하는 사람들, 고통에 울부짖는 사람들, 그리고 무엇보다도 나를 계속해서 억누르고 있는 나의 다름이 받아들여지지 못할까 걱정하는 두려움. 이 모든 것들이 나를 답답하게 했어. 내가 이 세상 어느 곳에 있든 20대 초반인 나는 계속해서 불확실한 미래에 막막해할 테고, 지구가 멸망하지 않는 이상 늘 뉴스 창에는 나를 아프게 하는 소식들이 오가겠지. 하지만 적어도 서울을 떠난 곳에선 난 그곳의 속도와 질문에서는 조금 벗어날 수 있을 테고, 다양한 존재들이 그곳의 정체성이 되는 공간에서 나의 다름에 대한 두려움을 이겨낼 수 있지 않을까 하는 기대가 생겨.
J야, 정상이라는 단어는 대체 누가 만들어낸 것일까? 어떤 것을 언어화하는 것은 중요한 일이지만 나는 정상이라는 단어는 너무나도 폭력적이라 애초에 존재하지 않는 편이 나았지 않을까 생각해. 대개 많은 이분법적 구분들이 그러하듯, ‘정상’과 ‘비정상’의 구분은 나를 슬프게 해. 내 존재가 반으로 갈라지는 것만 같아. 내 ‘비정상성’을 발견할 때마다 그 상처가 더 아리곤 해. 쿨하고 멋진 사람들은 스스로 정상과 비정상의 경계를 쉽게 허물고 그 구분의 관습에서 벗어나 자신만의 ‘정상성’ 혹은 특성을 자랑스럽게 여기더라. 하지만 오랜 시간 한국의 ‘정상’적인 교육을 순종적으로 따라오며 끝내는 사람들이 말하는 가장 이상적인 ‘정상의 삶’을 살 수 있는 기회를 가지게 된 내가 스스로의 다름을 ‘비정상’이 아닌 그저 ‘다름’으로 인정하기란 쉽지 않더라. ‘비주류, 비정상’의 범주에서 나를 찾는 것이 두렵고 버거운 날들이 있었어.
난 이제 다른 것보다 비슷한 것을 찾기 쉬웠던 곳을 떠나 다른 것들을 더 많이 만날 수 있는 공간으로 떠나보려 해. 다양한 인종, 다양한 특징을 가진 사람들이 곳곳에 살 고 있는 큰 땅에서 나는 나 자신을 보듬어주고 온 마음 다해 스스로를 옥죄던 내 편견을 지우고 자유로이 새로운 정상을 만나보고자 해. 그렇게 자유를 찾아볼게.
그럼 돌아와서 만나. 기대와 다른 것들을 얻어오길 더 기대하며, 안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