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혼 초에는 주말마다 맛있는 아침을 차려먹는 게 소소한 즐거움이었다. 팬케이크와 에그 스크램블을 어설프게 만들어 카페에서 파는 브런치를 흉내 내 보기도 하고, 계란에 파를 송송 썰어 넣어 부치고는 케첩과 설탕을 뿌린 식빵에 넣어 길거리 토스트를 해 먹기도 했다. 내가 요리에 재능이 있다는 걸 결혼 후 새삼 알게 됐다. 남편은 항상 맛있게 먹었고 "결혼 참 잘했다"며 좋아했다.
그러던 어느 토요일 아침. 밥상을 차리고 시계를 보니 오전 10시였다. 일어났어도 진작 일어났어야 할 시간에 남편은 이불속에 있었다. 나는 전날 남편이 "아침 7시에 일어나서 책 읽을 거야"라고 한 말을 기억하며 그를 깨웠다.
"여보 일어나. 벌써 10시야."
남편은 미동도 없었다. 나는 커튼을 치고 창문을 열며 "밥 차려놨어. 어서 일어나"라고 거듭 말했다. 남편은 그제야 조금만 더 잔다며 뒤척였다. 화가 났다. 밥까지 차려놨는데 더 잔다니. 내 선의가 무시당한 기분이었다. "아 됐어. 먹지 마." 나는 짜증을 있는 대로 내고 거실로 나왔다.
부스스한 몰골로 침실을 빠져나온 남편의 말이 더 가관이었다. 남편은 소파에 앉더니 짜증 섞인 목소리로 이렇게 말했다.
"나는 네가 밥 먹으라 할 때 밥을 먹어야 해?"
왜 그때 나는 엄마가 떠올랐을까. 결혼하기 전 내가 꼭 그랬다. 엄마는 식탁에 반찬을 올릴 때부터 나를 불렀다. 게으른 딸이 한 번에 일어나지 않는 걸 아셨기 때문이다. 나는 그럴 때면 "엄마 제발 5분만"이라며 사정했다. 엄마는 밥솥에서 밥을 뜰 때 또 나를 불렀다. 나는 "알겠어. 1분만"이라며 몸을 꼬았다. 엄마는 상을 다 차린 뒤 내 방까지 나를 '모시러' 와야 했다. 엄마가 얼마나 짜증이 났을까. 나는 짐작도 못 했다.
하지만 단 한 번도 "내가 엄마가 밥 먹으라 할 때 밥을 먹어야 해?"라며 따져 묻지 않았다.(상상만 해도 후레자식아닌가?) 너무 졸리고 피곤해서 밥을 먹기 싫다고 생각한 적은 있지만 입 밖으로 꺼낸 적 역시 없다. 엄마가 주말 아침 된장찌개를 끓이고 미역줄기를 무친 건 순전히 딸을 위해서라는 걸 잘 알았기 때문이다.
엄마, 깨울 때 바로 일어나지 않아서 미안해.(출처=picjumbo)
아주 당당하게 못난 말을 뱉어낸 남편의 눈빛이 흔들렸다. 이쯤 하면 소리를 지르며 따져야 할 와이프가 가만히 쳐다보며 서있다. 말문이 막힌 나는눈물이났다. 이내 방바닥에 주저앉아펑펑 울었다. "엄마 미안해."한껏 눈물을 쏟아낸 나는 어금니를 꽉 깨물고 남편에게 말했다.
"앞으로 당신 밥은 당신이 차려 먹어."
그날 이후 나는 꽤 오랜 기간 주말 아침이되면 남편을 깨우지 않은채 내가 먹을 것만 차려 먹었다. 나만의 복수 방식이었다. 남편이 미안하다고 빌어도 분이 안 풀렸다. "당신 아침 먹을래?"라고 묻기 시작한 건 얼마 안 됐다. 남편은 "제발 물어보지 말고 같이 차려달라"며 애원하고 있지만, 그때 생긴 마음의 상처는 좀처럼 회복되지 않는다. 남편은 "딱 한 번 그랬는데 너무하다"라며 억울해하기도 한다. 어쩔 수 없다. 나는 이렇게 뒤끝이 긴 여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