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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조정여 Sep 02. 2019

운전을 싫어하는 남자와 사는 법

제가 모실게요

 남편은 운전을 별로 좋아하질 않는다. 몰래 사내연애를 해야 했던 열악한 상황에서도 차를 가지고 나온 날은 손에 꼽는다. 그런 날마저도 항상 싸움으로 끝났다. 남편이 긴장하는 통에 조수석에 앉은 나는 조용히 있어야만 했다. 내가 "차선 바꿔야 하는 것 아니야"라고 한마디 할라치면 남편은 신경을 곤두세우며 짜증을 냈다. 남편이 운전을 할 때에는 몸은 편해도 마음은 불편했다. 결혼을 하자마자 운전면허시험을 준비한 이유다.


운전면허를 딴 뒤 남편을 옆에 태우고 처음 자유로를 달린 날, 나는 그 자유로움을 아직도 잊지 못한다. 그날 우리 부부는 정말 즐거웠다. 차 안에서 콜드 플레이의 노래를 들으며 목청껏 따라 불렀고, 컬투가 진행하는 라디오 속 사연에 귀 기울이며 배꼽 빠지게 웃었다. 남편과 단 둘이 차 안에 있는 게 행복하다는 생각을 그때 처음 했다. 남편이 운전을 했을 땐 느낄 수 없는 감정이었다. 나는 운전이 즐거웠고, 남편보다는 운전을 잘한다는 생각을 했다. 물론 남편도 동의했다. 그 뒤 우리 집 운전 담당은 내가 됐다.

여보, 운전은 내가 할게.(출처=picjumbo)

휴가 차 제주도에 갔을 때 우리는 어마 무시한 안개를 만났다. 영화에서나 본듯한 안개였다. 가시거리는 1미터도 안됐다. 앞차의 깜빡이에 의지해 거북이걸음으로 운전을 했다. 한 치 앞도 안 보이는 위험한 상황에서도 나는 내가 운전을 하고 있는 것에 안도했다. 남편이 운전을 했다면 상상도 할 수 없는 스트레스를 조수석에서 받아야 했을 것이다. 안갯속을 빠져나온 뒤 그가 나와 똑같은 생각을 했다고 고백했다. 남편은 역대급 안개를 동영상에 담고 싶었지만, 운전하는 아내를 약 올리는  같아 차마 찍지 못했다고 했다.  역시 평생 보기 힘들 안개를 영상으로 남기질 못한 게 두고두고 아쉬웠다. 하지만 남편이 옆에서 휴대전화로 동영상이나 찍고 앉아 있었다면 그를 가만 두지 않았을 . 남편은 내 심기를 건드리지 않는 방법을 점점 알아가고 있다.


아기가 생긴 뒤 남편은 내 옆이 아닌 뒷좌석에 앉는다. 카시트에 앉은 아기님을 보필하기 위해서다. 남편은 아기가 칭얼댈 때마다 옆에서 재롱을 부리며 아기를 달랜다. 그런 남편을 백미러로 보고 있으면 내가 운전을 담당하는 게 밑지는 장사만은 아니라는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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