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집 서재 한쪽 구석에는 3년째 같은 자리에 있는 잡지들이 있다. 영화 평론지 '키노'다. 무려 1995년, 지금으로부터 24년 전 창간된 월간지로, 2003년 7월에 폐간됐다. 한때 영화감독을 꿈꾼 남편이 고등학생 때부터 고이 모아 온 잡지다. 그렇다고 귀중한 컬렉션처럼 모셔둔 건 아니다. 빨간 노끈으로 아무렇게나 묶어 놓았다. 나는 크지도 않은 서재방의 한 자리를 차지한 잡지들을 볼 때마다 "제발 처분하라"라고 빌다시피 했다. 공공 도서관에 기부하라는 아이디어도 줬다. 남편은 "처음부터 다시 읽어보고 처리하겠다"라고 답했다. 그렇게 말한 지 3년이 지났다.
내 남편은 저장 강박증 비슷한 것이 있다. 신혼집에 들어올 때 내 짐보다 남편의 짐이 두 배는 많았다. 버리고도 남았을 낡은 옷들, 영화가 저장된 옛날 CD들, 15년은 돼 보이는 스탠드를 바리바리 싸왔다. 남편이 가져온 책들은 서재방 책장으로 모자라 거실 한쪽에 쌓아둬야 할 정도였다. 그렇다고 가져온 책들을 다 읽은 것도 아니다. 남편이 다독가이긴 하지만, 그가 책을 읽는 속도보다 책을 사는 속도가 더 빨랐다.
신혼 초 인테리어에 관심을 많이 가졌던 나는 남편의 저장벽에 불만이 많았다. 미니멀리즘과 북유럽 스타일을 추구(만)했던 내 인테리어 철학에 남편은 너무 방해가 됐다. 남편이 쌓아두기는 하지만 버리는 걸못하는 게 문제였다. 그는 몇 년 전 시어머니가 보내신 선물용 꿀 상자를 아직까지 버리지 않고 책장에 올려둘 정도다. 내가 남편의 물건을 마음 잡고 버리려고 하면 굉장히 불편해하고, 이내 싸움으로 번진다.(참고 글=패션 테러리스트)
이런 남편의 저장벽은 시어머니와 닮았다. 시댁의 옷방은 시어머니의 옷과 액세서리로 가득하다. 시어머니가 사치를 하시는 건 절대 아니다. 시어머니는 수십 년 된 옷들까지 버리지 않으시고 정리해 두셨다. 오래된 옷들을 단정하게 보관하시는 시어머니의 능력에 감탄이 나올 정도다. 하지만 남편은 깔끔하게 정리하는 습관만은 시어머니에게 배우질 못한 듯하다.
CD들은 대체 언제 버릴꺼냐.(출처=picjumbo)
최근에 남편은 고음질 음악을 저장하는 데 열을 올리고 있다. 마흔 줄의 접어든 그가 스스로에게 제대로 된 선물을 해주고 싶었는지 얼마 전 고가의 헤드폰을 구입했다.(역시나 싸게 사는 능력을 발휘해 정가의 절반도 안 되는 값에 샀다.) 고가의 헤드폰을 온전히 즐기기 위해서는 고음질의 음원이 필요하다. 우리 집 컴퓨터가 밤낮없이 켜져 있는 건 이 때문이었다.
남편의 즐거움을 방해한 사람은 다름 아닌 그의 아기였다. 시댁에 가는 날, 남편은 설거지를 하고 있었고 나는 짐을 싸고 있었다. 아기는 재빠른 움직임으로 서재에 기어 들어가 컴퓨터 코드로 돌진했다. 잡히는 대로 손을 놀리는 법을 알게 된 아기에게 코드 뽑는 건 일도 아니었다. 설거지를 마치고 서재에 들어간 남편은 비명을 질렀다.
"악, 이게 얼마 짜린데."
남편은 망연자실했다. 컴퓨터가 다운로드 도중에 멈추는 바람에 며칠 동안 공들여 받은 음원 전체가 날아갔다. 아기는 좌절하는 아빠를 뒤로 하고 거실로 오더니 내가 싸놓은 캐리어 안의 짐을 마구마구 뺐다. 남편은 그런 아기를 따라 나와 조용히 내려다봤다. 눈시울이 붉어진 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