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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YE Jun 06. 2019

01 :: 처음의 설렘(3)

TOKYO in 2015

TOKYO, 2015.11.06 

숙소 -> 디즈니랜드 -> 숙소           


버킷리스트

“디즈니 없는 나의 유년기는 생각 할 수 없다”          


 4년 전부터 어딜 가건 지니고 다니는 작은 노트가 있다. 겉은 단순한 노트다. 속지를 들여다 본 다른 이의 눈에 그 안의 내용은 그저 검은 글씨가 전부 일 것이다. 다른 이들에겐 그저 노트에 불과한 것이겠으나 나에게만큼은 결코 단순한 노트일 수 없다. 그 종잇장의 한 장 한 장에 기록되어있는 소중한 한자 한자는 세상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나만의 힘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노트에는 드라마 프로듀서를 꿈꾸면서 가진 다양한 목표가 기록 되어있다. 책을 읽다 마주한 내 깊은 곳을 쳐 주는 글귀가 적혀있다. 혹은 여느 예능에서 울림으로 다가왔던 누군가의 말 한마디, 드라마 주인공이 읊어준 가슴 따뜻해지는 진심의 대사 한 구절 등이 기록되어 있다. 또한, 기록장의 가장 앞마디에는 내가 걸어가는 혹은 가야할 인생에서 체크해야 할 백 여 개의 버킷리스트가 빼곡히 기록되어 있다.      


 어느 날, 나의 버킷리스트를 본 누군가가 내게 말했다. ‘이거 다 이루기도 전에 힘 빠지고 탕진해서 피골이 상접한 채로 곪아 죽겠는데?’ 당시에는 유쾌하게 웃어넘겼지만 그게 그렇게 넘어 갈 것이 아니었다. 나름대로 진지하게 성을 다해 기록한 나의 미래이자, 희망인데 그 싹에 초치는 말을 던지다니! 분했다. 동시에 알게 모르게 오기가 싹트기 시작했다. 그리고 보란 듯이 부지런히 이 항목들에 체크를 하고 나서기 시작했다. 자랑을 하자면, 그 중 4분의 1은 이루어 나가고 있는 중이다.        



내 유년시기만 해도 내 영원한 동반자이자 영혼의 단짝은 결코 여동생이 아니었다. 그 당시의 여동생은 내게 화의 근원이었으며, 질투의 대상이었다. 그 아이가 나타나기 전까지만 해도 온 가족의 시선이 나에게만 집중되어 있었다. 그런데 어느 날 불쑥 나타난 동생이라는 존재가 갑자기 내가 갖고 있던 모든 시선과 관심을 앗아갔다. 나는 만 2세라는 어린 나이에 인생처음으로 외로움과 소외감이라는 낯선 감정을 배워야 했던 것이다. 이 격동과 혼란의 시기를 겪던 내게 굉장히 의지가 되는 친구가 있었다. 바로, 디즈니 친구들이었다.      



 질투심에 눈이 먼 만2세의 하지혜는 아기 침대에 누워 있는 세상 얄미운 동생을 파리채로 찌르길 수 십 번이었다. 수 십 번 찌르고, 어른들에게 수 십 번 된통 혼이 나 잔뜩 못난이 얼굴을 하고 있길 반복해야 했다. 벽보고 반성하던 시간이 조금 흐른다면, 그 후의 상으로 주어졌던 것이 있다. 바로, 영상 속의 디즈니 친구들과 함께하는 시간이었다.  브라운관 너머로 닿을 듯 말 듯 한 거리에 있던 디즈니 친구들은 내게서 결코 등 돌리는 법이 없다는 것을 깨달았다. 제 아무리 성질 사납고 못되기로 유명한 스크루지 아저씨라도 나를 향한 모습에는 늘 일관성이 있었다. 내게 엄청난 의리를 보여주던 그들과 함께 나는 내 유년기를 채워갔다. 그렇게, 디즈니친구들 없는 하지혜의 유년기는 생각 할 수 없게 되었다.      



 키가 크고, 마음이 크고, 머리가 커 가는 과정에서 디즈니 친구들에 대한 열렬함은 곧 실물의 인간들에 대한 열렬함으로 대신하게 되었다. 미키마우스보다 내 현재의 시간을 함께 공유하며 공기놀이 같이 하는 반 친구들이 더 좋았고, 곰돌이 푸우보다 함께 맛 집 찾아다니며 서로의 부른 배를 둥둥거려 주는 남자친구가 더 좋았다. 그렇게 나는 나를 결코 배반 하지 않았던 디즈니 친구들에게 먼저 등을 돌리며 의리를 저버리기 시작했다.      



 디즈니성에 사는 친구들과 함께 했던 시간에 대해 되짚어 보는 것은 잠시 쉬어가는 틈이라는 것이 생겨 날 때야 베풀 수 있는 얕은 자비로만 남아있었다. 좋은 말로 풀어보자면, 유년기를 함께 해준 이들과 아득한 추억으로 떠나는 여행이었다. 본인에 대한 나름의 변호를 해보자면, 내 마음 한 구석에는 늘 잠재된 디즈니 친구들에 대한 설레는 덕심이 그대로였다는 점이다. 그리고 이 덕심의 실체를 제대로 느낄 수 있었던 것은 2015년 7월, 그 뜨거운 태양의 힘이 내리 쬐던 홍콩 땅에서였다. 따글 하게 내리쬐던 한 여름 홍콩의 한 낮, 디즈니친구들과 마주한 십 여 년만의 재회는 나의 잠자고 있던 마음을 폭발시켰다. 그렇게 전 세계 디즈니를 섭렵하겠다는 나의 목표는 2015년, 그 더웠던 홍콩 땅에서 시작 되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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