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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한정엽 May 01. 2020

독립전쟁 당시의 시대적 상황

미국 경제 역사 이야기 09

식민지인들이 영국의 조세에 저항했던 이유


사실 식민지 내에서도 자체적인 의회를 통해 세금을 납부하고 있었다. 그래서 느닷없이 영국 의회가 결정한 세금에 반감을 가지게 되었는데, 자신들의 자치권에 대한 간섭과 통제로 받아들였기 때문이다. 즉 식민지인들의 권리를 존중하지 않았던 것이다.


벤저민 프랭클린의 정치 만화. 식민지의 단결을 주장했다. <출처 : 위키피디아>


식민지인들은 초창기 이민 시대부터 지켜온 존 로크(John Locke, 1632∼1704)의 사상에 입각한 자유권, 생명권, 행복추구권의 권리가 훼손되었다는 사실을 받아들일 수 없었다. 너무나 보편적이라 생각되개인의 자유가 당시에는 새로운 국가를 만들 만큼 중요하고 존중받아야 할 소중한 것이었다     



1776년 애덤 스미스(Adam Smith)의 국부론(The Wealth of Nations) 출간


이는 갓 태어난 새로운 국가가 가질 수 있었던 가장 큰 행운이었다.


국부론으로 인해 유럽 세계가 가지고 있었던 경제의 기준이 바뀌게 되었고, 신생국인 미국은 이 영향으로 경제적 시행착오 없이 곧바로 새로운 경제 방향을 수립할 수 있었다.


국부론 첫 페이지  <출처 : 위키피디아>


국부론은 자유로운 무역을 통해 시장 경쟁을 유도하고, 정부의 간섭을 최소화 함으로써 국가의 경제력이 더 강성해 질 것이라고 주장했다.


이러한 분위기 속에 미국은 기존의 독점적 권력이나 기득권 영향 없이 새로운 경제 체계를 받아들여 적용할 수 있었다. 즉 유럽의 귀족 세력이나 왕실의 독점적 특혜가 발생될 여지 자체가 아예 없었다. 이런 장점은 정치에도 영향을 끼치게 된다.



대륙회의(Continental Congress)의 역할


대륙회의(Continental Congress)는 식민지를 통치하는 명백한 법적 권한을 가지고 있지 않았다.


하지만 외국으로 파견할 대사의 지명, 국가 간 조약 체결, 군대의 조직, 이를 지휘할 장군의 임명, 전쟁 시 유럽에서의 차관 도입, 자체적인 대륙 지폐의 발행(일명 컨티넨탈), 자본적 지출의 의사결정 등을 결정하고 진행했다.


펜실베이니아 필라델피아의 독립 기념관 <출처 : 위키피디아>


사실상 국가 행정부가 수행할 수 있는 대부분의 기능을 맡아 운영한 것이다.


다만 법적 권한이 없었기에 세금을 부과할 권한을 가지고 있지 않았다. 이러한 문제점이 전쟁 내내 가장 큰 불안요소였다(유럽의 국가들은 외채의 상환을 어떻게 진행할지 가장 궁금해했다)


하지만 급박하게 돌아가는 독립전쟁의 자금을 마련하기 위해, 13개 식민지 내 자금 및 물자, 군대를 요구할 수 있었다.


그렇지만 강제조항이 아닌 만큼 이를 거부하거나 무시한 사례가 발생했다. 연방정부가 수립되고 나서 초대 재무부 장관이 된 알렉산더 해밀턴이 가장 먼저 조세권을 만들게 된 계기가 된다.



<독립선언서(United States Declaration of Independence)>의 의의


독립선언서는 1776년 7월 4일 정식으로 공포된다. 이 날은 미국의 독립기념일로 지정되어 있다.


토머스 제퍼슨(Thomas Jefferson, 1743~1826)이 기초하고, 필라델피아 인디펜던스 홀(Independence Hall)에서 56명이 서명한 이 문서는 미국의 독립의 정당성을 공시하고 독립전쟁의 대의명분 및 인간의 기본적인 권리인 생명권, 자유권, 행복추구권은 그 누구도 침해할 수 없다는 내용을 담고 있다.



<독립선언서>  작성   <출처 : 위키피디아>


인간은 누구나 평등하다는 내용은 후대에 많은 영향을 끼치게 된다.


이 평등의 개념은 남북전쟁 시 노예제도의 반대 논리에도 사용되게 된다. 아울러 미국 문화와 법률에도 고스란히 영향력이 남아 있다.



토마스 페인(Thomas Paine)상식론(Common Sense)


영국 잉글랜드 노퍽에서 출생한  토마스 페인(Thomas Paine, 1737 ~ 1809)은 런던에서 만난 벤자민 프랭클린의 소개로 1774년 10월 필라델피아로 이주하였다.


이후 1776년 1월 《상식론(Common Sense)을 출판하여 미국 독립이 가져오는 목적과 장점에 대해 발표하여 사람들에게 독립에 대한 열망을 불어넣었다.


그는 미국의 독립이 지극히 상식적이고 당연한 진실이라고 주장했다. 또한 봉건제와 국왕을 강하게 비판했다.


토마스 페인  <출처 : 위키피디아>


이 책은 미국 독립전쟁에 엄청난 기여를 하게 된다.


수많은 식민지 사람들에게 심리적 변화를 통해 행동으로 나서게 했다. 독립전쟁에 참여하게 된 정신적 기반이 된 것이다.


이 소책자는 250만 인구 기준으로 50만 부가 발행되었다. 원고료나 인세를 받지 않아 저렴하게 판매할 수 있었다. 덕분에 누구나 손쉽고 부담 없이 구입해 읽었다.


미국의 제2대 대통령인 존 아담스(John Adams, 1735~1826)는 "페인의 펜이 없었더라면 조지 워싱턴의 칼은 쓸모없었을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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