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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쟁 채권③ 해밀턴의 해법, ‘국가 신용을 회복하라’

1. 신생 국가는 어떻게 빚을 갚을 것인가?

by 한정엽

장관으로 임명 받은 해밀턴은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모든 어려움을 극복하고 국가의 틀을 잡았는데, 아직도 쌓이고 쌓인 문제는 해결의 실마리가 보이지 않았다.


재무부 장관인 해밀턴의 해결 과제


모리스가 떠나면서 ‘잘 부탁한다’는 한 마디가 야속할 정도였다. 하지만 아직 시작도 안 했다. 이제 본격적인 능력을 보여줄 때가 되었다.


재무부 장관 시절의 알렉산더 해밀턴 <출처 : 위키피디아>



가장 시급한 문제는 수출과 수입의 불균형으로 국가 재정이 고갈되는 것을 막는 것은 물론, 독립전쟁 차관에 대한 이자와 원금을 어떻게 해결할 것인지 그 해답을 찾아야 했다.


사실 독립 직후의 미국은 모든 것이 손을 대기가 힘들 정도로 엉망이었다.


연방헌법 체계도 이제 막 틀이 잡혀 나가기 시작해 정부라 부르기에 민망할 정도의 소규모 행정부였고 운영 인력도 태부족이었다.


1790년 미국의 모습 <출처 : 위키피디아>


전쟁으로 미국 내 주요 농토는 황폐화되었고, 영국의 통상 보복이 진행되어 영국령 서인도 제도로의 수출도 막혀 있었다.


초창기 미국의 무역 불균형과 인플레이션


식민지 시대에 같은 영국령이라 혜택을 받았던 우호 관세도 폐지되면서 영국 수출품에 높은 관세율을 적용받았다.


반대로 수입의 규모는 더 늘어났다. 전체 수입 물품 중 90%가 영국산이었고 이로 인한 무역 적자는 계속 늘어 경제적 종속을 염려할 정도였다.


야심 차게 독립국가의 타이틀을 달고 출발한 해외 수출은 영국의 은근한 방해로 영국령 지역의 수출이 과거와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감소했다.


계속되는 무역수지 불균형은 경제적 압박을 가져왔고 지속적인 금과 은의 해외 유출을 발생시켰다.


재정 적자를 메우기 위해 주 정부는 지폐를 남발해서 발행했는데 당시 스페인 은화 1달러(1페소)를 교환하기 위해서는 대륙 화폐 100달러를 지급해야 할 정도로 인플레이션이 심각했다.



1806년 스페인 은화 모습 <출처 : 위키피디아>


국가 재정 증가를 이끌 핵심 세수인 관세 수입은 주 정부의 기득권 유지로 실행되지 못하고 있었고, 주 정부의 권리를 침해한다는 불만과 함께 방해하는 현상까지 생겨났다.


장기적인 해법 마련과 세금 확보


돈 들어올 곳은 없는 데 쓸 곳만 늘어나는 상황이었다. 해밀턴은 이러한 근본적인 문제점을 단번에 끊어낼 방법을 찾기 시작했고, 원칙적이면서 장기적인 해법을 준비했다.


그는 초대 재무부 장관으로 취임하자마자 연방정부의 주요 세수 수입원으로 관세 수입을 확립할 것을 요청했다.


이른바 <공공 신용에 관한 보고서(Report on Public Credit)>의 주요 의제였다.



해밀턴의 <공공 신용에 관한 보고서> <출처 : 위키피디아>



여기에서 연방정부와 주 정부의 현 재정 상황을 솔직하게 표현했고, 장기적인 자본 관리를 통해 안정적인 정부 운용을 해야 한다는 내용을 설명했다.


채권의 상환을 통한 신용 회복 노력


아울러 유럽의 국가들이 초미의 관심사로 지켜보는 차관에 대해 보고했다. 그것은 ‘독립전쟁 기간 중 발행한 채권을 액면가대로 상환한다’는 것이었다.


지금 보면 당연한 말이지만, 당시 상황은 그렇지 못했다.


독립전쟁 당시 사용된 전쟁 비용(국채 발행과 외국 차입금)의 규모는 향후 20년간(1790년에서 1810년 까지) 정부 예산 모두를 합친 것보다 더 많았다.



미국 관세 세율의 변화 모습. 맨 좌측 미국의 관세율은 50%가 넘었다. <출처 : 위키피디아>



이러한 상황에서 예산의 대부분이 전쟁 차관의 이자를 갚는 데 사용되고 있었고 어떤 경우에는 이자조차 기일을 미뤄서 지급할 정도였다.


발행 채권의 원금은 고사하고 이자를 갚는 것도 허덕이는 상황이었다.


사실상 국가적 망신이었고 이러다 파산을 하게 되면, 신뢰도는 바닥으로 떨어질 판이었다.


굳은 의지와 미국 경제의 신용 확보


이런 불안한 상황은 미국의 장래를 어둡게 만들고 있었고 하루빨리 신뢰를 회복하기 위해 채권의 신용을 확실하게 보증하겠다는 의지를 보여주는 것이 필요했다.


힘들고 어려운 독립전쟁 때 발행된 채권을 원금을 줄이지 않고 동일한 금액의 새로운 채권으로 상환한다는 의지를 보여준다는 것은 미국의 신용이 살아있다는 것을 의미했다.



미국 독립전쟁 당시 프랑스 해군과 영국 해군과의 전투 모습 <출처 : 위키피디아>



부채를 줄일 수 있는 방법도 추가했다.


옛날 채권과 새로 교환해 주는 채권은 이자 지급을 어기지 않겠다는 내용을 보증하는 대신에 금리를 낮추어 발행하기로 했다.


아울러 신 채권(상환 채권)의 담보는 연방정부의 관세법을 제정, 향후 벌어들일 세금으로 충당하기로 했다.


한 마디로 국가 신용을 높여 이자비용을 줄이자는 뜻이었다. 이것을 설득하기 위해 20년간 정부가 줄일 수 있는 이자 금액도 제시했다.


의회 통과 후 새로운 채권 발행


이 안건은 어렵사리 의회를 통과하여 유럽 국가가 가진 채권이 새로운 채권으로 교환되었다.


이는 신생국가인 미국의 채권 판매가 본격적으로 시작되었음을 알려주는 계기가 되었고 이후 몇 번의 경제 공황을 거치며 국가 신용이 출렁이는 파도처럼 흔들렸지만 무난하게 작동되었다.



1795년 초창기 미국 금화의 모습 <출처 : 위키피디아>



다만 채권의 매입 주체는 유럽의 왕족과 귀족, 은행가였다.


아직 개인을 대상으로 채권을 판매하는 방법은 생각조차 하지 못했고 사람들의 자본은 침대 밑에 보관된 금화처럼 조용히 잠들어 있었다.


이를 본격적으로 움직이게 한 것은 남북전쟁 당시에 발생된 제이 쿡의 전쟁 채권 판매가 그 시작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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