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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한정엽 Jul 30. 2021

기축통화⑬ 레이거노믹스와 플라자 합의

3. 페트로 달러 시대

미국은 페트로 달러 체제가 구축되고 유와 달러의 연계가 진행되면서 안도의 한숨을 쉬었다.


늘어나는 달러의 수요와 미국 내부의 혼란


석유가 없어지지 않는 한, 달러의 지위는 유지될 것이라는 믿음이었다.


실제로 1979년 2차 오일쇼크 시에도 달러를 구하려는 전 세계 국가들의 요구가 폭발해, 달러 패권의 시대는가 지속되고 있다는 사실을 재확인했다.



페트로 달러 리싸이클링 <출처 : Dylogue>



하지만 문제는 미국의 내부 상황이었다.


치솟는 물가를 잡기 위해 폴 볼커 연준 위원장의 고금리 정책이 이어졌고, 달러가 은행 예금으로 몰리면서 유통량이 자연스레 감소하였다.


레이거노믹스 정책에 따른 대규모 감세 정책과 정부 예산 절감으로 시중에 발행되는 달러마저 줄어들었다.


달러의 발행을 늘려야 할 시기에 오히려 유통이 줄어든 것이다.


레이거노믹스로 인한 달러 가치의 상승


레이건 대통령의 경제 정책은 강력한 물가 통제와 경제성장률 상승이라는 긍정적인 지표를 가져왔으나, 유통되는 달러의 감소로 인해 예상하 못한 달러 가치의 폭등을 불러왔다.



레이건 대통령 <출처 : 위키피디아>


달러 가치 상승은 미국 상품이 다른 나라의 상품에 비해 고가로 판매된다는 것을 의미했다. 점차 시장 경쟁력이 떨어지면서 상대적으로 저렴해진 외국산 물건이 미국 시장을 점령하는 현상이 발생했다.


특히 주력 산업인 자동차 산업이 가장 큰 타격을 입었고,  시장을 일본과 독일 자동차가 차지해 버렸다.


달러의 가치가 높아졌다는 것은 기축통화를 구하기가 더 힘들어졌다는 것을 의미했고 이는 신뢰도의 하락을 가져올 수 있는 주요 이슈였다.



기축통화는 신뢰도가 가장 중요하다  <출처 : 위키피디아>  


결국 연준이 금리를 낮춰 대량의 달러를 시장에 공급하거나, 높아진 달러 가치를 하락시키는 방법 중에 하나를 선택해야 했다.


선택을 해야 하는 미국과 늘어나는 재정적자


그렇지 않으면 미국 상품의 수출 감소로 재정적자의 규모는 더 커질 수밖에 없었다.


레이건 대통령의 재임 시기인 1980년부터 1985년 사이에 주요 수입국인 영국의 파운드, 독일의 마르크화, 프랑스의 프랑, 일본의 엔화 대비 약 50%나 높게 달러가 고평가 되었다.



세금 감면 계획을 설명하는 레이건 대통령 <출처 : 위키피디아>


이로 인해 저렴한 외국산 제품으로 발생된 무역적자 규모만 약 1300억 달러였다.


이런 어려움에도 미국 정부는 금리를 낮추는 정책을 시행하지 않았다.


월스트리트의 금융가는 높은 금리로 인해 몰려드는 달러의 유동성을 포기하기 싫었고, 연준의 자칫 잘못된 금리 인하 발표는 어렵게 극복한 인플레이션이 다시 재발될 확률이 높았기 때문이다.


달러 가치를 하락시키기 위한 플라자 합의


결국 해결 방법은 하나로 정리되었다. 그것은 다자간 협력을 통해 미국이 원하는 정책을 실행하게 만드는 것이었다.



플라자 호텔 모습 <출처 : 위키피디아>


1985년 9월에 미국 뉴욕에 있는 플라자 호텔에서 G5 경제 선진국(미국, 독일, 프랑스, 일본, 영국)의 재무장관과 중앙은행 총재들이 모였다.


여기서 국제 통화의 안정적 체제 유지를 위한 의를 진행했고, 이른바 ‘플라자 합의(Plaza Accord)’라는 이름으로 정리했다.


주요 내용은 ‘과도한 달러의 가치를 하락시키고 반대로 일본의 엔화와 독일의 마르크화 가치를 높이는 정책’을 채택하기로 한 것이다.


이를 통해 미국을 포함한 5개 국가의 경제 부양을 유지하는 것을 목표로 삼았다.


미국의 입장에서는 무역적자 해소와 달러의 고평가를 해소하는 절호의 방법이라고 주장했지만, 상대적으로 손해를 보게 된 독일과 일본은 미국의 방만한 경제 정책이 문제라고 꼬집었다.



플라자 합의 당시 모습  <출처 : 위키피디아>


각 국의 합의와 달러 패권의 유지


미국은 자본주의의 선두 국가로서 책임과 의무를 다하라는 의미의 항의였지만 결과는 미국의 의도대로 진행되었고, 달러의 패권이 유지되는 계기가 되었다.


참고로 일본의 엔화는 합의 다음 날 235엔에서 205엔으로 가치가 9% 인상되었으나 1년 뒤에는 자그마치 120엔으로 2배 이상 상승한 결과를 가져왔다.


이후 일본은 강한 엔화를 무기로 미국의 자산을 반액 세일이라 부르며 무차별한 매입을 벌여 나갔으나 급격히 추락한 수출경쟁력과 자국의 버블 붕괴로 1990년을 기점으로 ‘잃어버린 10년’의 시대를 맞이했다. 지금도 30년째 불황이 이어지고 있다.


플라자 합의 이후 2년 간 미국의 달러 가치는 25.8 % 나 하락하게 되었는데, 단기간에 과도한 가치 하락은 다시금 미국의 불안감을 가져왔다.



일본 니케이 225 지수 모습. 버블 시대에 최고점에 다다랐다 <출처 : 위키피디아>



루브르 합의와 조정되는 달러의 가치


결국 1987년 프랑스 파리에서 ‘루브르 합의(Louvre Accord)’를 통해 달러의 지속적인 하락을 막는 협정이 체결되었고 미국은 재정적자 축소에 노력하겠다는 의지를 표명했다.


달러 가치가 높아지면 내리도록 했고, 너무 내려가면 다시 올라가도록 영향력을 행사한 것이다.


이후 미국의 달러를 지키기 위한 노력은 지금도 이어지고 있다. 현재 세계에서 가장 신뢰도가 높고 사용률이 높은 통화로 역사를 이어가고 있다.



2008년 금융위기 <출처 : 픽사베이>


2008년 미국에서 시작된 글로벌 금융위기를 맞아 달러의 시대가 끝날 것이라는 수많은 예언과 예측들이 많았지만 모두 이겨내고 견뎌냈다.


하지만 이 왕좌를 언제까지 이어갈지, 그리고 기축통화 자리를 넘보는 국가는 어떻게 공격해 올지 조심스레 지켜보고 있는 상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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