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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한정엽 Dec 06. 2021

1929년 월스트리트의 주가 대폭락

1929년 미국의 대공황 06

투지신탁회사의 열광적인 주식 투자에 결코 뒤지지 않은 금융기관이 있었다. 바로 은행이었다.


은행의 낙관적인 투자 권유


이들은 오직 낙관론에 근거해 일반인의 투자를 권유하였다.



주가 대폭락 시점의 다우존스 지수 <출처 : 위키피디아>



이유는 단순했다. 은행들은 자회사로 증권회사를 만들었고 이를 이용해 일반 고객들에게 채권과 주식을 팔면서 그 수수료로 이익을 내고 있었던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 가장 피하고 싶은 단어는 ‘이제 주식 시장의 성장은 끝났다’라는 말이었다.


1929년 부터 연방준비제도가 금리를 서서히 올리고 있었지만, 이런 불안감은 전혀 개의치 않았다.


투자를 강력하게 권유한 은행 중 대표적인 곳이 퍼스트 내셔널 시티 은행(First National City Bank)과 체이스 은행(Chase Bank)이었다.


퍼스트 내셔널 시티 은행의 찰스 미첼


특히 퍼스트 내셔널 시티은행의 찰스 미첼(Charles Edwin Mitchell) 은행장은 주가가 떨어질 것이라는 신문기사에 크게 분개하면서 강하게 항의를 하기도 했다.



찰스 미첼의 모습 <출처 : 위키피디아>



비단 은행을 위한 사명감도 있으나 미첼 본인의 개인적인 투자 금액도 적지 않았고, 이런 은행장을 따라 오직 자신들의 이익을 위해 투기를 일삼고 있는 은행 직원도 많았다.


1929년 9월은 사실상 주식 투기가 하나의 문화로 자리 잡고 있을 만큼 광적인 흥분에 휩싸여 있었다.


하지만 한달 뒤에 본격적인 하락이 시작되었다. 일명 월스트리트의 대폭락(Wall Street Crash of 1929)이었다.


1929년 월스트리트의 대폭락 발생


실실 웃으며 농담처럼 호황을 얘기하던 낙관론자들은 하루아침에 할 말을 잃어버렸다.



1929년 10월 24일 검은 목요일 신문 <출처 : 위키피디아>



사실 주식 시장만큼 경제 지수도 그리 좋지 못했다. 건설경기를 비롯하여 산업 현장 곳곳은 경기 침체가 진행될 것이라는 신호가 진작에 나타나기 시작했다.


하지만 그 누구도 이를 인정하지 않았고 받아들이지 못했다. 설마설마하는 마음에 향후 대공황이라는 경제 침체가 이렇게까지 오래갈 것이라 예상한 이도 없었다.



자동차를 판매 한다는 문구 <출처 : 위키피디아>



눈치 빠른 투기꾼들은 이미 이익을 챙기고 한 발 미리 빼두었지만, 사실상 이들의 종말도 거의 비슷했다.


주가 지수가 이제 바닥이라는 믿음 속에 다시 돈을 싸들고 투자했지만, 끝도 없이 떨어지는 주가에 결국 모두 막심한 손해를 보고 털어버린 것이다.



대폭락 이후 뉴욕증권거래소 앞 재무성 건물에 몰려든 군중 <출처 : 위키피디아>



역사적인 월스트리트의 대폭락이 발생된 1929년 10월 24일 목요일(검은 목요일) 하루 전날에도 신호는 있었다.


장 마감 한 시간을 앞두고 주가 하락이 벌어진 것이다.


당시 일일 평균 매매되는 거래량이 약 800만 주~900만 주였지만 이 날 장마감 한 시간 만에 손 바뀜이 된 주식수가 자그마치 260만 주였다.


마진론의 증거금 상환 압박과 공황에 빠진 투자자들


하락된 금액만큼 마진론에 대한 증거금 상환 압박이 시작됐고, 추가 담보를 제공하지 못한 이들의 주식은 강제로 헐값에 매각되기 시작했다.



뉴욕증권거래소 앞에 모인 사람들 <출처 : 위키피디아>



이러한 영향일까? 대폭락의 첫 날인 10월 24일이 시작되자, 오전부터 매도 포지션에 놓인 매물로 사람들의 얼굴은 공포와 두려움에 쌓여 어쩔 줄을 몰라했다.


하루 종일 떨어지기 시작한 주가는 주식시세 표시기가 2~3시간이나 지체되어 표시될 정도로 매물의 양이 폭증했고, 그만큼 하락의 폭이 깊었다.


울부짖음과 광기에 서린 고함소리가 거래소 곳곳을 둘러쌓았다. 사실상 패닉이었다.



월스트리트 대폭락 당시 월가 거리 모습 <출처 : 위키피디아>



이날 거래된 주식 수는 자그마치 약 1,290만 주였다. 누군가 헐값에 팔았다면 누군가 이 주식을 산 사람이 있었다.


이들은 낮은 가격에 잡았다고 좋아했지만, 얼마 후 자신도 동일하게 파국의 길로 걸어가는 것이라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



월스트리트 대폭락 당시 월가 거리 모습 <출처 : 위키피디아>



폭락한 주가로 증거금을 상환하지 못한 투기꾼들이 자살했다는 암울한 소식이 우울함을 더해 주었고 이런 상황을 금융가들은 가만히 지켜보지 않았다.


빨리 이 상황을 수습하지 않으면 더 큰 사단이 날 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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