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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한정엽 Dec 04. 2021

대공황 당시 투자신탁회사의 흥망성쇠

1929년 미국의 대공황 05

1920년대 주식 시장에 불어닥친 뜨거운 열기는 기업의 자금 흐름에도 변화를 일으켰다.


기업의 자금 조달 방식 변화


과거에는 은행에서 대출을 받아 이 돈으로 경쟁업체를 인수하거나 새로운 사업에 투자하던 방식이었다.


이제는 회사의 채권을 발행해 자금을 모으거나, 주식 수를 늘리는 증자를 통해 외부 투자자들에게 직접 자금을 조달하게 된 것이다.



퍼스트 내셔널 은행 모습(1921년)  <출처 : 위키피디아>



이런 방식(직접 자금조달)은 기존의 소규모 기업에서 벗어나 엄청나게 큰 대기업으로의 성장이 가능하게 해 주었다. 막대한 자금을 활용해 마음껏 경쟁사를 흡수 합병해 버리는 일들도 비일비재하게 발생했다.


이것은 기존 금융업체들의 긴장감을 불러왔다. 기업들이 은행의 손을 빌리지 않아도 된 것이다.


수익이 줄어들 것을 염려한 금융권은 고유의 사업 뿐만 아니라 새로운 이익을 창출할 수 있는 금융사업 모델을 추구하기에 이르렀다.


투자신탁회사의 등장과 성장


이 과정에서 폭발적으로 늘어나게 된 것이 투자신탁회사(일명 투신사), 투자회사였다.


이러한 투신사는 미국보다 영국에서 먼저 유행을 한 사례가 있었다.


1880년대부터 소액 투자자들을 모아 이들의 자금으로 우량한 회사의 주식을 매입한 후 집중관리를 통해 이익을 얻는 구조였다.



미국 최초이자 최대 규모의 뉴욕 은행 청산소 모습  <출처 : 위키피디아>



여기서 발생된 이익은 다시 재투자되어 점점 더 많은 자금이 모였다. 이 돈으로 성장이 유망한 회사의 주식을 싸게 사서 배당이나 매매 차익을 통해 이익을 올리는 방식이었다.  


일반 투자자들은 전문적인 실력과 안목으로 이익을 내는 투자신탁회사에 기꺼이 수익의 일부를 수수료로 내주었다.


투신사의 경영진은 상당한 금액의 보수를 받으며 마음껏 우량 회사의 주식을 사모았는데, 많은 경우 약 500개에서 1,000개 회사의 기업 주식을 보유한 경우도 있었다.


주식 시장의 활황과 늘어나는 투신사


이런 투자 방법이 미국에 건너와 이제 막 달아오른 주식 시장의 열기에 편승해 유행을 타기 시작한 것이다.


이를 선도한 곳은 당연히 기존 금융사들이었다.



필라델피아의 Aldine Trust Company 주식 인증서(1929) <출처 : 위키피디아>



1927년 초 미국의 투신사 수는 대략 160개 정도였다. 이 한 해 동안 새로 생긴 투신사 수만 140여 개였다.


이들은 초기 투자를 조심스레 진행했다. 투자자들로부터 위탁받은 업무를 주로 진행했고 엄격한 규칙으로 매입할 기업의 주식과 운용 방식에 대해 관리감독을 진행했다.


하지만 불붙은 주가로 인해 곧이어 투신사가 직접 주식 투자에 나서게 된다. 수수료가 높았다.


이들은 자신들이 거래하는 기업에 대해 철저히 함구를 했다. 정보가 새 나갈 경우 해당 회사의 주가가 폭등할 것이라는 것이 그 이유였다.


투자자들은 투신사에 대한 신뢰가 높았고, 자신에게 가져다주는 수익률의 만족도도 높았다.


투신사의 성공과 커지는 운용 리스크


이런 분위기에 편승해 아예 투신사가 직접 자사의 주식도 발행했는데, 바로 대박이 났다.


신규 투신사를 상장하자마자 몰려드는 자금으로 주가는 상승했고, 주주들은 즐거운 비명을 질렀다. 곧바로 투신사 설립이 유행처럼 붐을 이루었다.



1929 Plaza Trust Company 주식 인증서 <출처 : 위키피디아>



1928년에만 186개의 투신사가 설립되었고, 1929년에는 10월 대폭락 전까지 하루에 한 개 꼴로 생겨났다(약 265개).


이들 투신사가 팔아치운 주식의 금액만 1927년에 4억 달러, 1929년에 약 30억 달러였다.


특히 1929년은 이 해에 발행된 신규 주식의 총액 대비 약 35% 비율이었다.


이를 뒷받침하듯 투신사의 자산 규모도 증가해 1929년에 약 80억 달러에 달했다. 이는 1927년 대비 약 11배나 증가한 수치였다.


이처럼 한번 불붙기 시작한 투신사 투자 붐은 좀처럼 꺼지지 않았다. 이런 투신사를 끼고 그 옆에서 수수료와 자문료, 재정적 지원을 하는 회사들도 덩달아 높은 수익을 올리고 있었다.



뉴욕의 Bankers Trust Company 건물 <출처 : 위키피디아>



이 시기에 투신사를 통해 단기간으로 돈을 버는 경우는 두 가지였다.


투신사가 돈을 버는 두 가지 방법


하나는 투신사를 직접 만들어 주식을 발행해 엄청난 자금을 끌어 모으는 방식이었다. 이후 본격적인 투자를 벌려 이익을 가져오는 것이었다.


다른 하나는 적당한 금액을 투신사에 투자해 주식을 배정받은 뒤, 이 회사의 주가가 오르면 이를 팔아 익을 챙기는 것이었다.


이를 적극적으로 부추긴 이도 있었다.


자동차 회사인 제너럴 모터스의 재무담당 부사장 출신이자 엠파이어스테이트 빌딩의 설립에 참여한 존 라스콥(John Jakob Raskob)이었다.



존 라스콥의 모습 <출처 : 위키피디아>



그는 1929년 대폭락이 있기 몇 달 전, ‘누구나 부자가 될 수 있다’라는 슬로건으로 ‘매달 우량주식에 15달러만 투자하면, 20년 뒤에 8만 달러라는 거금으로 돌려받을 수 있다’라고 주식 매입을 부추겼다.


이는 매년 24% 이상의 수익률을 달성해야만 가능한 수치였다.


1929년 10월 이후 폭락하는 투신사


하지만 이후 두 달 뒤에 주가 대폭락이 발생해, 그의 말이 얼마나 허구성에 사로잡혔는지 보여준 사례였다.


참고로 1929년 10월 '검은 목요일' 이후 주가는 평균적으로 매년 떨어졌고 1932년이 되어서는 1929년 9월 최고가 대비 약 90% 가까이 폭락하게 된다.


라스콥의 말대로 투자를 했다면, 원금의 90%를 손해 보는 경우가 발행한 것이다.



1929년 ~ 1932년 주가 하락 모습 <출처 : 위키피디아>



당시 투신사가 발행한 주가의 가치는 투신사가 보유한 회사의 자산 가치보다 높은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심한 경우 약 2배 정도 더 높았는데, 그만큼 투신사가 가진 금융 정보와 이들의 탁월한 천재성에 대한 프리미엄이 붙어 있었다.


투신사에 대한 맹목적인 기대와 믿음


투신사들은 ‘투자는 과학이다’라고 외칠 정도로 유명한 경제학자를 섭외하여 회사의 자문을 받아 브랜드 가치를 높이는 경우가 많았다.


예일 대학교의 어빙 피셔 교수를 비롯해 프린스턴 대학교의 화폐금융학자인 에드윈 케머러(Edwin Walter Kemmerer), 스탠퍼드대학교의 조셉 데이비스(Joseph Stancliffe Davis) 교수 등이 자문을 했다.



화폐금융학자 에드윈 케머러 모습 <출처 :: 위키피디아>



아울러 수익을 더 높이기 위해 레버리지 비율을 높이는 경우도 서슴지 않고 시행했다.


문제는 레버리지를 하나의 투신사에만 적용한 것이 아니었다. 투신사와 투신사 서로 간의 연대 보증을 통해 과도한 차입은 물론 회사 주식을 담보로 잡아 막대한 자금을 끌어왔다.


당시 투신사 간의 ‘근친결혼’이란 말을 들을 정도로 얽히고 설킨 관계가 복잡했다. 이를 통해 막대한 자금을 투자한 것은 물론 레버리지에 비례해 이익을 챙기고 있었다.


최고의 경지는 지주회사를 만들고 여러 투신사를 설립한 경우이다. 여러 투신사를 자회사로 만들어 엄청난 자금을 동원해 돈놀이에 나선 것이다.


대표적인 회사가 골드만 삭스였다.


골드만 삭스의 투자신탁회사


뒤늦게 이 시장에 뛰어든 골드만은 '골드만삭스 트레이딩 코퍼레이션(goldman sachs trading corporation, 이후 GSTC)'이란 신탁회사를 만들어 운용을 시작했다. 이것이 1928년 12월의 일이다.



골드만삭스 트레이딩 코퍼레이션 회사의 주식 <출처 : 위키피디아>


GSTC가 성공적으로 시장에 안착한 것을 확인한 골드만 삭스는 주요 지분을 남기고 주식을 모두 팔아버렸다.  


이후 무차별적으로 공격적인 운용을 통해 타 투신사를 인수합병한 것은 물론, 엄청나게 많은 자금을 투신사간 교차 투자해 지분율을 서로 나눠가졌다. 레버리지를 극대화한 것은 기본이었다.


한 예로 GSTC는 신탁 자회사로 '쉐난도어 코퍼레이션(Shenandoah Corporation)'을 만들어 GSTC와 똑같은 과정으로 이 회사의 주식을 모두 팔아 막대한 돈을 거머 쥐었다.


이후 쉐난도어 코퍼레이션은 또다시 신탁 자회사로 '블루 릿지 코퍼레이션(Blue Ridge Corporation)'을 만들어 위 과정과 동일하게 주식을 대중에게 팔아 치웠다.



뉴욕 맨하튼의 골드만 삭스 본사 <출처 : 위키피디아>



지주 회사를 통해 각 자회사의 지분 관계만 남기고 모두 주식을 팔아 수익을 거둔 것이다.


하지만 서서히 하락의 조짐을 보인 주식시장은 1929년 10월 본격 붕괴됨으로써 거대했던 골드만 삭스의 공든 탑도 무너져 내렸다.


무너진 투신사의 신화


당시 GSTC가 일반 주주에게 매각한 보통주 1주의 가격은 104달러였다. 하지만 1932년 1주의 주가는 겨우 1.75달러였다. 사실상 휴지나 다름없는 가격으로 폭락한 것이다.


이 신탁회사의 몰락으로 골드만 삭스도 거의 몰락할 뻔 했고 회사의 명성에 심각한 손상을 입었지만 나중에는 모두 극복해 냈다.


참고로 GSTC에 초기 투자한 주주의 수는 대략 42,000명 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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