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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한정엽 Dec 24. 2021

대공황에 맞서 거부가 된 플로이드 오들럼

대공황과 연관된 이야기 4

1929년 대공황이 시작되었을 때, 모두가 금융 투자로 손해를 본 것은 아니었다.


혼란 속에서도 과감한 투자로 자신의 재산을 수십 배로 키운 이가 있었으니, 바로 플로이드 오들럼(Floyd Odlum) 이다.


플로이드 오들럼의 모습 <출처 : 위키피디아>


직장 생활부터 시작된 투자 활동


그는 1892년 3월, 미시간 주 유니언 시티에서 감리교 목사인 조지 오들럼(George A. Odlum)의 막내아들로 태어났다.


오들럼이 16살 때 그의 가족은 콜로라도 주 볼더로 이사했고, 그는 콜로라도 대학교(University of Colorado)에서 법학 학위를 받았다.



유니언 타운십 위치 <출처 : 위키피디아>



졸업 후 '유타 전력 & 조명 회사(Utah Power and Light Company)'의 법률 사무원으로 일하게 되었고 솔트레이크시티에서 기업 변호사로 왕성한 활동을 벌였다.


이후 뉴욕의 한 회사에서 이직 제안을 받고 이곳으로 일하다가 1921년에 그의 고객 중 하나였던 일렉트릭 본드(Electric Bond and Share Company, Ebasco) 회사의 부사장이 되었다.



일렉트릭 본드 건물  <출처 : 위키피디아>



그는 합병업무 등을 담당하며 자신의 경력을 쌓아 나갔다.


자신의 회사 설립과 본격적인 금융 투자 


이후 1923년에 친구들과 함께 투자의 종잣돈인 3만 9천 달러를 모아 이를 자본으로 한 '유나이티드 코퍼레이션(United Corporation)'을 설립했다.


그는 주식 투자를 전문으로 진행, 단 2년 만에 자본금을 70만 달러(약 17배)로 늘리는 놀라운 실력을 보여주었다.


1928년에 오들럼은 다른 회사의 주식을 인수하기 위해 '아틀라스 코퍼레이션(Atlas Corporation)'이라는 회사를 만들어 '유나이티드 코퍼레이션'과 합병했다.


참고로 '아틀라스 코퍼레이션'은 오들럼이 사장으로, 그의 처남인 보이드 헤처(Boyd Hatch)가 부사장으로 시작했다.



플로이드 오들럼의 모습 <출처 : 위키피디아>



그는 1929년 여름, 자신의 회사가 보유한 주식을 모두 내다 팔아 현금화했다. 또 아틀라스 회사의 지분 절반과 함께 900만 달러 어치의 채권도 팔아 추가로 현금을 마련했다.


대공황을 대비한 오들럼


이렇게 마련하여 오들럼이 소유하고 있던 단기성 현금 규모는 약 1,400만 달러였다.


조만간 주식 시장이 무너질 것이라고 내다본 것이다.


그의 예상은 맞아 들었고 몇 달 뒤인 10월에 들어서자 주식시장의 대폭락이 연출되었다.


이후 그의 기업사냥이 본격적으로 시작되었다. 집중적으로 매입한 곳은 투자신탁회사(일명 투신사)였다.



투자신탁회사의 주식 권리증 모습 <출처 : 위키피디아>



당시 투자신탁회사(이후 투신사)들은 신종 투자 기법을 홍보하여 외부 투자자들의 돈을 모아 각종 우량회사들의 주식을 사들인 금융회사였다. 이들이 운용하는 자산 규모는 약 40억 달러였다.


1929년 금융권에 신규로 투자된 자금 중 약 35% 이상이 투신사에 몰려들 만큼 투자자들에게 인기가 높았다.


하지만 투신사가 어떤 투자를 통해 수익을 얻는지 자세한 내막을 알고 있는 사람들은 많지 않았다.


사실 투신사들은 지주회사를 만든 다음 계속적으로 자회사(신탁회사)를 만들었다. 이후 자회사의 지분(주식)을 팔아 자산을 채우고 있었다.


자회사로 만든 투신사의 주가가 오르면 모회사의 주가가 오르는 구조였다. 주식 시장의 호황으로 몸집 키우기에 여념이 없었다.



추락하는 다우존스 지수 1928~29년 <출처 : 위키피디아>



하지만 주가의 급격한 폭락은 이 모든 것을 무너뜨릴 만큼 위협적이었다.


얽히고설킨 투신사의 지분관계 속에 자회사인 투신사 주가가 폭락하면 연달아 지주회사의 주가도 폭락하는 일들이 비일비재하게 생겨났다.


극도의 공황과 공포 속에 사람들은 주식을 팔기에 바빴고 우량 자산을 가진 투신사까지 말도 안 되는 가격에 주식이 거래될 정도였다.


이들을 일컬어 동전으로 주식을 살 수 있다고 해서 '동전주, 페니(penny) 주'라고 불렸다.


투자신탁회사를 사모은 오들럼


오들럼은 자신의 경험을 바탕으로 철저하게 우량 자산을 가진 지주회사 위치에 있는 투신사 지분을 긁어모았다. 그가 인수한 회사 중에는 '골드만삭스 트레이딩 코퍼레이션'을 비롯, 쉐난도어, 블루 릿지 등 쟁쟁한 투신사만 22개였다.



1929년 10월에 발생된 월스트리트의 폭락 모습 <출처 : 위키피디아>



투신사가 보유한 자산보다 더 낮아진 가치로 떨어진 주식을 긁어모은 오들럼은 시간이 지나면 이들이 언젠가 다시 올라갈 것이라는 믿음을 가지고 있었다.


사실상 하늘이 내려준 기회였다.


지주회사 지분을 사 모은 오들럼은 자연스럽게 자회사의 자산까지 운영할 수 있는 권리를 챙겼다. 회사의 사업 구조를 분석한 뒤 철저한 경영권을 행사했다.


막대한 투자 수익과 늘어나는 자산


투신사의 포트폴리오를 재조정하거나 수익이 발생하면 뒤도 안 돌아보고 현금화하여 자산을 불려 나갔다.


이 방법으로 대공황이 마무리되는 시점인 1933년 무렵에 1,400만 달러를 투자한 금액이 1억 2,500만 달러로 불어났다.


이 해에 '아틀라스 코퍼레이션'은 미국에서 가장 큰 투자신탁회사로 성장해 있었고 오들럼은  미국에서 가장 부유한 10인 중 한 명이 되었다.



골드만삭스 트레이딩 코퍼레이션 주식 권리증 <출처 : 위키피디아>



참고로 당시 그의 별명은 '50퍼센트' 였는데, 저평가된 회사를 인수할 때 50%의 낮은 가격으로 매입했다고 해서 붙여진 별명이었다.


여기까지 성공한 이력으로 보면, 그는 단순히 시기를 잘 맞춘 투자자로 판단할 수 있지만 이후의 행보가 그를 더 유명하게 만들었다.


본격적으로 시작된 사업적 본능


프랭클린 루스벨트(Franklin Delano Roosevelt)가 대통령에 당선되고 본격적인 '뉴딜(New Deal)'이 시작되자 그의 사업적 본능이 다시 움직였다.


그는 금융투자 방식을 버리고 기업의 가치를 높이는 방식으로 전환했다. 투자 대상을 부동산, 철도, 영화, 광산, 석유 등 직접 투자 방식으로 바꾼 것이다.



보윗 텔러 백화점 <출처 : 위키피디아>



그가 투자하여 매각한 회사 중 대표적인 것 중 하나가 300만 달러에 인수한 RKO스튜디오(RKO Studios, 당시 할리우드 5대 제작사 중 하나)였다.


매입 후 5년 만에 하워드 휴스(Howard Robard Hughes, Jr.)에게 3배가 되는 900만 달러에 판 것이었다.


이 외에도 파라마운트(영화), 그레이 하운드(버스 운영회사), 힐튼(호텔), 보윗 텔러(Bonwit Teller, 백화점), 매디슨 스퀘어 가든의 수익성 회복 등 다양한 재투자와 매각을 통해 엄청난 사업적 성공을 거두었다.



그레이하운드 버스 모습 <출처 : 위키피디아>



거의 모든 산업 분야의 기업을 재편한 것이다. 이런 그를 첫 번째 기업사냥꾼으로 보는 시각도 있다.


한 시대를 휩쓴 투자 방식과 성공


대공황을 이용, 엄청난 부를 거머쥔 오들럼은 1976년 6월 캘리포니아주 인디오에 있는 자택에서 사망했는데 당시 나이 84세였다.


그는 말년에 류머티즘 관절염으로 거의 몸을 움직이기 힘들 정도로 고생이 많았다. 이런 영향인지 '관절염 및 류머티즘 재단'을 설립하고 연구비를 지원하는 한편 명예회장을 역임했다.



힐튼 호텔의 모습 <출처 : 위키피디아>



그의 명언 중에 '시장이 급변할 때 현금을 보유하는 것은 현명한 방법이다. 그리고 모든 주식 지수가 나빠 보일 때, 매수를 두려워하면 안 된다'라는 말과 '다른 사람들이 주식을 팔 때 이를 사고, 주가가 가장 장밋빛으로 보일 때 보유한 주식을 팔아라'라는 말이 유명하다.


그는 정확한 투자 시점을 볼 줄 알았고, 지속적인 투자 방식의 변화를 통해 당대의 부를 거머쥔 사람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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