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멕시코 전쟁(Mexican-American War)은 1846년에서 1848년까지 미국과 멕시코가 싸운 전쟁이다. 포크 전쟁이라고도 불린다(당시 대통령 이름을 땄다).
텍사스 공화국과 미국-멕시코 전쟁(Mexican-American War)
이 전쟁은 미국의 일방적인 승리로 끝이 났다.
과달루페 이달고 조약을 통해 낮은 가격(1,825만 달러)을 지급하고 멕시코의 영토였던 뉴멕시코, 캘리포니아, 콜로라도, 애리조나, 네바다, 유타주 등을 양도받았다. 넓이는 한반도의 15배에 달하는 광활한 영토였다.
미국의 영토 확장 지역 <출처 : 위키피디아>
전쟁이 일어난 원인은 영토의 소유권에서 비롯됐다.
전쟁 발발 1년 전,텍사스 공화국(Republic of Texas)과 미국의 합병에 멕시코의 불만으로 시작되었다.
1836년 텍사스 혁명(Texas Revolution, 1835~1836)으로 생겨난 텍사스 공화국은 그 역사가 9년 정도다. 멕시코 코아우일라이테하스주의 북동부가 분리 독립하여 탄생한 공화국이다. 현텍사스주 전체 지역과 와이오밍주, 뉴멕시코주, 콜로라도주, 캔자스주 일부의 영토였다.
공화국은 1845년에 미국에 흡수, 합병되어 28번째 주로 편입되어 사라졌다. 당시 멕시코는 텍사스의 독립은 인정했지만, 미국과합병은 인정하지 않아 전쟁으로 이어진 것이다.
1847년 3월 역사상 최초의 수륙양용 군사작전이 진행됐다. 멕시코 베라크루스(Veracruz)에 상륙한 것이다. 전의를 상실한 멕시코 사령관은 미군에 항복하고, 1847년 9월에 수도 멕시코시티가 함락되었다.
베라크루스(Veracruz) 전투 <출처 : 위키피디아>
전쟁은 미군의 완벽한 승리로 끝나게 된다. 미국이 가진 군사력과 경제력이 독립전쟁 시절에 비해 눈부시게 성장한 것이다.
멕시코로부터 사들인 땅으로 미국의 영토는 대서양에서 태평양으로 이어지는 광대한 지역을 갖게 되었다. 하지만사람이 살고 있지 않은 지역이 많았다.
영토 확장의 결과로 미국경제를 뒤흔들 만큼 커다란 사건이 발생한다. 캘리포니아의 골드러시(gold rush)였다.
캘리포니아 골드러시(California Gold Rush, 1848~1855)
1848년 캘리포니아(California)에서 사건이 터졌다. 콜로마의 서터스 밀에서 금이 발견된 것이다.
발견된 금은 기존의 것과 차원이 달랐다. 금 생산량은 과거보다 10배 이상 증가하였고 소문이 퍼지면서 너도나도 떼를 지어 몰려들었다. 약 30만 명의 사람이 달려든 것이다.
캘리포니아 금맥 지도 (노란색 표시 부분) <출처 : 위키피디아>
채굴된 양은 1849년에 60톤, 1853년에 93톤으로, 무더기의 금이 쏟아졌다. 골드러시 첫 5년간 채취된 금의 양은 약 370톤이었다.
사람들은 단번에 부를 움켜쥐고자 대박의 꿈을 좇아캘리포니아로 몰려들었다.
이 골드러시에미국인들만 참여한 것이 아니다.
라틴아메리카, 유럽, 오스트레일리아 및 아시아 등지의 사람도 유입되었다. 발굴 초기에는 기술력이 낮아 주로 강바닥의 사금을 찾으러 다녔지만, 장비와 기술이 발전하면서 전문적기술이 적용되었다.
캘리포니아 금 채굴 장면 <출처 : 위키피디아>
개인보다 자본의 규모가 있는 회사들이 참여했고, 그만큼 발굴된 양도 달랐다. 광산 개발이 진행된 것이다. 발견된 금으로 엄청난 부자가 탄생했지만 대부분 사람은 빈손으로 돌아가야 했다.
그러나 골드러시의 영향으로 당시 소규모 개척지였던 샌프란시스코는 일약 신흥 도시로 우뚝 섰다. 캘리포니아에는 도로, 교회, 학교 및 마을이 건설되었다.
이와 더불어 행정력을 위한 법률 체계와 주 정부가 창설되어 1850년미국의 31번째 주로 편입되었다.
환경 파괴의 우려도 있었지만, 기존에 없었던 새로운 교통 체계가 들어서고, 증기선이 정기 운항하면서 사람의 왕래가 좋아졌다.
이후 대륙횡단철도가 건설되면서 광업의 뒤를 이어 농업이 캘리포니아의 주력 사업으로 발전한다.
캘리포니아 홍보물 <출처 : 위키피디아>
골드러시로 발견된 금은 경제에영향을 끼쳤다. 늘어난 금의 양만큼 화폐 발행이 가능해졌고 통화의 유통량이 급격히 늘어났음을 의미했다.
캘리포니아에서 발견된 금광은 연방정부의 금화 주조량을 증가시켰고, 이를 바탕으로 은행권 발행도 기하급수적으로 증가했다.
하지만 중앙은행의 부재로 통제하거나 제어할 장치가 없어 경기는 과열의 단계를 넘어섰다.
이 시기(1850년대)에 들어서면서 철도의 확장과 유럽의 자본투자 증가, 기술 발전으로 미국의 경제 성장이 본격적으로 진행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