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입매수(LBO)의 시작과 마이클 밀켄 이야기 13
1982년 1월, 자본주의 역사의 중요한 변곡점을 만드는 사건이 발생했다.
닉슨 행정부에서 재무장관을 역임했던 윌리엄 E. 사이먼과 그의 투자 컨소시엄은 인사말 카드 제조기업 깁슨 그리팅스(Gibson Greetings)를 8,000만 달러라는 거액에 인수했다.
이 거래의 특이점은 실제 투자자들이 직접 출자한 자본금이 전체 인수금액의 1.25%에 불과한 100만 달러였다는 점이다.
나머지 7,900만 달러는 부채를 통해 조달되는 금융공학의 산물이었다. 이것은 '레버리지 자본주의(Leverage Capitalism)'라 불리게 될 금융 기법의 서막을 알리는 사건이었다.
역사적으로 이 사례가 주목받는 이유는 그 결과에 있었다.
인수 후 불과 16개월이라는 짧은 시간이 경과한 1983년 중반, 깁슨 그리팅스는 주식시장에 상장(IPO)되며 기업가치가 2억 9,000만 달러로 급등했다.
이 과정에서 사이먼 개인은 6,600만 달러의 수익을 실현하는데, 이는 초기 투자 대비 6,600%에 달하는 기하급수적인 수익률이었다.
산업혁명 시대 공장주들도 상상하기 어려웠던 수익률이 현대 금융공학을 통해 실현된 순간이었다.
이 사건은 단순한 성공 투자 사례를 넘어 서구 자본주의의 본질적 변화를 상징했다.
전통적으로 기업은 제품 생산과 서비스 제공을 통해 이윤을 창출하는 존재였다.
그러나 깁슨 그리팅스 사례는 기업 자체가 매매와 재구조화의 대상이 될 수 있으며, 그 과정에서 막대한 부가 창출될 수 있음을 보여주었다.
이는 마치 중세 시대의 토지가 봉건영주에서 자본가로 소유권이 이전되며 자본주의가 태동했던 것과 유사한 패러다임의 전환이었다.
언론은 이 사건을 집중 조명하며 '레버리지 매수(LBO: Leveraged Buyout)'라는 금융 기법에 대한 대중적 관심을 촉발시켰다.
LBO는 본질적으로 차입금을 활용해 기업을 인수한 뒤, 인수 대상 기업의 자산과 미래 현금흐름을 담보로 삼아 부채를 상환하는 구조이다.
이는 16세기 스페인이 신대륙의 금은보화를 담보로 유럽의 은행가들로부터 차관을 얻어 제국을 확장했던 방식의 현대적 변용이라 할 수 있다.
깁슨 그리팅스의 성공 이후, 레버리지 매수는 금융계의 '골드러시'를 촉발시켰다.
1980년부터 1990년의 단 10년간 총 180건의 대규모 LBO가 실행되며, 이들 거래에 관련된 기업들의 장부가치는 총 392억 달러에 달했다.
이는 당시 미국 경제 규모를 고려할 때 상당히 큰 규모였으며, 산업구조의 대대적인 재편을 의미했다.
마치 15~16세기 대항해시대에 유럽 열강들이 신대륙 개척에 뛰어들어 새로운 식민지를 분할해 나가듯, 금융자본은 미국 산업계를 완전히 재편시킨 것이다.
깁슨 그리팅스에서의 경이적인 투자 성공을 발판으로, 윌리엄 E. 사이먼과 그의 파트너 레이 체임버스는 자본주의 역사의 새로운 장을 열어가는 여정을 계속했다.
참고로 이 둘이 만든 회사가 바로 웨스레이 캐피털 코퍼레이션(Wesray Capital Corporation)으로, 레버리지 바이아웃(LBO) 투자에 주력하는 사모펀드 회사다.
두 금융인은 이전의 성공에 고무되어 더 큰 규모의 사냥감을 노리게 되는데, 그것이 바로 7,160만 달러 규모의 아틀라스 밴 라인스(Atlas Van Lines) 인수였다.
이 거래는 단순한 기업 인수를 넘어 금융 자본주의의 새로운 시대상을 명확히 보여주는 상징적 사건이 되었다.
역사적 관점에서 보면, 사이먼-체임버스의 연이은 인수 활동은 17세기 네덜란드 동인도회사가 아시아 무역로를 따라 차례로 거점을 확보해 나갔던 과정과 유사한 패턴을 보였다.
당시 네덜란드 상인들이 주식회사라는 혁신적 금융 도구를 활용해 전례 없는 상업적 팽창을 이루었듯, 사이먼과 체임버스는 레버리지 매수라는 현대적 금융 기법을 통해 산업 제국을 확장해 나간 것이다.
아틀라스 밴 라인스는 미국 전역에 물류 네트워크를 갖춘 이사 서비스 기업으로, 산업화 시대 미국의 지리적 이동성을 지원하는 중요한 인프라 기업이었다.
참고로 아틀라스 밴 라인스는 인수 뒤, 기존의 에이전트(이사업체) 중심 경영에서 벗어나 기업 이익을 최우선으로 하는 경영체제로 구조를 바꾸어 버렸다.
하지만 4년 뒤인 1988년에 다시 에이전트들이 회사를 LBO 방식으로 매입해 경영 방침이 원점으로 돌아갔다.
이 과정에서 사이먼과 그의 파트너 레이 체임버스가 실제로 실현한 수익이 얼마였는지 구체적인 금액은 공개된 자료에 명확히 나와 있지 않다.
다만, 체임버스가 1981~1984년 사이에 14개 기업을 인수해 “엄청난(‘incredible’) 이익”을 실현했다는 점이 사이먼의 자서전과 여러 기록에 반복적으로 언급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