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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용팔 Oct 30. 2020

걸어야 비로소 보이는 것들

느긋한 가을 햇살이 이제 막 젖은 대지를 데우기 시작했다. 늦은 아침을 짓는 어미새의 분주한 날개 짓에 생체들의 살 냄새가 코끝에 머문다. 간간히 이는 왜바람에 가지 끝 마른 잎들이 돋아난 감정으로 떨고 있다. 이미 계절의 색깔을 입은 녀석들은 안도감으로, 여전히 낡은 초록을 입은 녀석들은 조급함으로 서로를 맞대고 비벼 빨갛게 태운다. 날카로운 비늘처럼 꽂히는 빛줄기를 받으며 강변에 서자 메마른 얼굴이 비릿한 강물에 촉촉히 젖어 간다. 


걸어야 비로소 보이는 것들을 차곡차곡 담는다.

날 것들의 생동감은 묵은 상념들과 뒤섞여 정화돼 새롭게 채워진다. 때문에 내게 있어 걷기는 비움이 아닌 채움의 시간이요 그렇게 채워진 생각들은 이 풍경 안에서 가을처럼 풍요로워진다.

그 생각이 글이면 땅 위에 쓸 것이요 어떤 그림이라면 하늘에 그릴 것이다.


가을 빛의 파장은 점점 더 넓게 퍼져간다.

짙은 숲의 향은 서로를 빨갛게 태우고 있는 나뭇잎들의 살냄새, 그렇게 태우고 남은 앙상한 몸뚱이가 부서져 떨어질때 이 계절의 끝자락과 마주할 것이고, 손톱의 거스러미를 뜯어내 듯 가을은 흔적들을 하나 둘 지워갈 것이다. 시인 도종환은 흔들리지 않고 피는 꽃은 없다고 했던가? 그렇듯 흔들리지 않고 어찌 이 계절을 보낼 수 있으리.

                                                                                          - 양평. 두물머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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