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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용팔 Jan 17. 2021

싸가지 있는 남편 되기

부부가 마트에 간 날, 아내가 주방용 고무장갑을 고른다.

미디엄 사이즈를 고를만한데도 라지를 카트에 담는다. 나는 던져진 고무장갑을 물끄러미 쳐다본다.

 

역시 새 고무장갑은 촉감부터 다르다. 미끈함도 덜해 접시가 쉽게 손에서 빠져나가지 않았고 손에서 나는 고무 냄새가 없어 좋았다.

나는 설거지 담당이다.  

백수 시절 경제주체의 역할이 바뀌면서 시작한 가사 일이 습관이 돼버려 아내보다 한 수 위인 설거지만은 손을 놓지 못하고 있다. 자연스레 고무장갑 선택 기준은 내 손 사이즈가 돼버렸다.

퇴근시간 때문에 주로 저녁 설거지가 내 담당이라 파트타임으로 일하고 있는 셈이다. 음식물쓰레기 처리도 덤으로 주어진다. 설거지가 늦어질 때는 퇴근하는 아들 녀석과 마주치기도 한다. 그렇다고 서로 멋쩍거나 어색해하지 않는다. 나는 앞치마를 두르고 설거지하다 아들을 맞는 아버지일 뿐이고, 아들은 소파에 누워 연속극 삼매경에 빠진 엄마와 설거지에 빠진 아버지를 봤을 뿐이다.

녀석이 이런 집안 풍경을 보면서 가정의 평화를 위해 사랑받는 남편이 되겠다는 꿈을 꿀지 아니면 마누라를 잘 얻어야겠다는 다짐을 할지는 알 수 없다.


예전에 고대 이집트 벽화의 상형문자를 풀어 보니

“요즘 애들은 버르장머리가 없어, 말세야 말세!”

라는 뜻이었다는 글을 읽었다. 젊은것들의 싹수없음은 동서고금을 막론하는 모양이다.

왜 그런 비난을 받아야 했을까? 피라미드 공사 현장에서 어른들은 몸통만 한 바위들을 발바닥에 땀이 나도록 나르는데 새파랗게 싱싱한 것들은 자기 주먹만 한 짱돌 몇 개 옮기면서 요령이나 피웠기 때문이었을까? 대가족이 모여 사는 집안일에 손끝 하나 데지 않은 남정네들의 게으름을 후대에 알리려고 문자로 새겨버린 걸까?


어릴 적 집 대문에는 문패 두 개가 나란히 걸려 있었다. 문패는 어느 집이든 당연히 아버지의 영역이었다.

너희 집에는 아버지가 둘이냐는 친구 물음에 당연히 나는

“아냐, 한 개는 엄마건 데 우리 아버지가 애처가 시구 페미니스트라 그래”

라는, 당시 내 나이 또래 사고영역을 넘어선 생각을 할 수 없었다. 그런 건 고사하고 오히려 창피함마저 갖고 있지 않았을까 싶다. 아버지가 페미니스트로 기억에 남지는 않는다. 집안일은 가족 구성원의 일이 행해지는 장소라 생각하셔서 아버지는 부부의 이름을 걸어놓음으로써 집이라는 공간이 공동 작업장임을 강조하고자 했음이 아니었을까.

워낙 부지런하신 성격 탓도 있지만 일찍부터 집을 떠나 자취로 몸에 배 신 습관으로 자연스럽게 반응하는 집안일이 아버지에게 익숙한 생활방식이었다. 청소는 으레 당신 몫이라 여기셨고, 연탄 갈기, 때론 밥 짓기로 어머니를 도우셨다. 휴일에는 그야말로 어머니가 개점 휴일이었다.

그런 아버지께서도 부엌에는 서지 않으셨다. 정확히는 아버지가 설거지를 하신 기억이 나지 않는다. 그 이유를 여쭤보지는 않았지만 아마도 어머니의 고유 영역 내지는 여성이라는 이름이 지켜질 수 있는 최후 일거리를 침범하지 않으시려는 아버지의 깊은 배려 때문이 아니었나 하는 전혀 근거 없는 이유를 생각해 본다.

아버지 영향을 받은 탓인지 나도 아내 일을 하는데 별 거부 반응을 느끼지 않는다. 설거지야 기본이고 주말에 아침상 차리기부터 청소하기 등 웬만한 일은 주저하지 않는다. 장보기는 오히려 즐기는 편이다. 이것저것 구경하기를 좋아해 마트 특히 재래시장 나들이(?)는 물 만난 고기처럼 신이 난다. 물론 가게 주인과 흥정은 두말할 나위 없다. 아무래도 내 전생의 성 정체성이 의심스럽다.


남자들이 집안일을 할 때 “가사 일을 돕다”라는 표현을 쓴다.

그만큼 가사 일은 여성의 전유물인 양 여겼고 남자도 부엌에 드나들면 거시기가 떨어진다는 삼국사기 속 대장부들을 길러낸 어머니 말씀처럼 그 불문율을 어기지 않았다.

시대가 변하면서 가사 일을 분담해하는 젊은 부부들이 많이 늘었다. 맞벌이해야 하는 세태가 만들어낸 낯설지 않은 풍경이다. 설거지하는 남편 모습에서 서투르지만 사랑하는 사람을 위해 애쓰는 모습을 감동의 눈길로 바라본다. 여기저기 물도 튀고, 간혹 접시를 깨더라도 콩깍지 낀 아내에겐 자상하고 박력 넘치는 남편일 뿐이다. 설거지하는 남자가 매력적이라는 인터넷 잡설들로 유혹하지 않아도 남자들에게 피할 수 없는 일상이 됐다. 할 일이 태산인 게 집안일이다.  


매년, 대대적으로 해야 하는 연중행사가 봄에 있다.

옷장 정리부터 시작해서 집 안을 한바탕 뒤집어엎어놔야 할 판이다. 나이가 드니 혼자 하기가 갈수록 벅차다. 올해는 짜장면이라도 사준다고 꼬드겨서 두 아들 녀석도 붙잡아 놔야겠다. 모름지기 집안일은 남자가 해야 할 일이라고 아내 앞에서 들으라고 톤을 높여 얘기한다. 달라질 저녁 반찬을 내심 기대해 본다.

혹시 또 아는가, 이렇게 집안일을 남자들이 나서서 하니 우리 후대들이 읽으라고

“요즘 우리 집 남자들 싸가지가 있어”

라는 글귀라도 어디다 박아 놓을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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